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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29) 은퇴 예산 짜기] 여가활동비·내구재 교체비는 별도 계정으로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은퇴 후 저축 가능한 금액으로 전환되는 ‘현역비용’이 재원...부족한 금액은 비상금으로 충당

지금까지 은퇴생활과 관련해 은퇴 전에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은퇴 후의 삶은 그야말로 상전벽해 식으로 바뀐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은 더 기대할 수없고 가진 건 평생 모은 돈과 바다와 같이 넓은 시간뿐이다. 이 시리즈 앞 부분에서 언급했던 예산 짜기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는 이유다. 현역 때와 달리 빤한 은퇴 수입으로 예산을 짜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은퇴 후 의료비는 과거보다 예산을 크게 잡아먹는다. 일하는 동안엔 대수롭지 않은 변수였던 물가는 은퇴 기간 내내 주된 관심사가 된다. 과거 직장에서 해결해 주었던 세금 계산과 신고 문제도 혼자 대처해야 한다. 자가용 구입처럼 한꺼번에 목돈이 들어가는 지출과 관련한 예산 수립도 힘든 과제가 될 전망이다. 만약 이들 비용에 대한 별도의 예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금방 가계재정에 빨간 불이 켜진다.

은퇴 3년 전 예산 짜기 착수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곤란을 겪는 것은 은퇴 후 10년 정도 예상되는 활동기를 보내는 돈일 것이다. 여기엔 취미생활이나 국내외 여행경비 등이 포함된다. 내구재 교체비용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 비용 마련을 위한 준비는 최소 은퇴 3년 전 착수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원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지출 규모를 얼만큼으로 할지, 내구재들의 내용연수는 얼마인지 알아야 구체적인 비용을 계산해낼 수 있다.

이들 ‘은퇴비용’을 계산하기에 앞서 은퇴 삶이 어떻게 바뀔지 생각해보자.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은가? 아니면 여행을 자주 가고 싶은가? 물론 전부 구미가 당기는 여가활동이다. 그러나 재원이 한정적이어서 가계 지출을 쥐어짜야 할 상황이라면 치밀하고 체계적인 사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를 테면 하루·주간·월간·연간 단위로 원하는 활동목록을 작성해보는 것이다. 매일 해야 할 것은 요리·청소 등이고, 주간 단위론 영화보기나 등산, 월간은 국내 여행, 연간은 해외 여행일 수 있다. 이렇듯 주기별로 원하는 이벤트 목록을 만들면 본격적인 예산 짜기가 가능해진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에 따라 재정 수요가 늘었다 줄었다 할 것이다.

먼저 은퇴 후 연간 예산에 대해 좀 더 분명한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은퇴하면 현역 때 고정적으로 나갔던 지출의 상당 부분을 절약할 수 있다[표1 참조]. 이를 저축으로 돌리는 것이 관건이다. 예컨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경우 은퇴 후엔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한달 지하철 출퇴근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자. 매달 집으로 날라오는 카드대금 청구서를 보면 한달 지하철 출퇴근 비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12를 곱하면 연간 지하철 이용액수가 나온다. 바로 이 금액이 은퇴 후엔 절약돼 저축 여력으로 바뀌게 된다. 다른 비용 항목들에 대해서도 현역 때의 연간 사용금액을 구해 은퇴 후 저축 가능 금액으로 환산해 보자. 현역 때의 고정비용은 교통비 외 차량유지비, 의류구입비, 외식비, 드라이크리닝비, 개인용품 구입비, 도서·정기간행물 구독비 등인데, 이들은 직장을 다니는 동안엔 필요하지만 은퇴하면 불필요해지거나 지출이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반면 현역 시절보다 늘어나는 것이 있다. 일이 없어져 남아도는 여가를 알맞게 쓰기 위해 드는 비용이다[표 2 참조]. 이는 은퇴 후 저축으로 전환된 ‘현역비용’으로 일부 충당할 수 있다. 여기엔 취미생활비, 국내외 여행비, 헬스장 등록비 등이 포함된다. 이들 비용을 연간으로 환산한 값을 구해 앞의 저축 전환 비용을 차감하면 은퇴여가계정 수지가 적자냐 흑자냐가 결정된다. 대개의 경우 여행비는 목돈 성격이어서 적자 수지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국내외 여행횟수를 줄이는 등 여가활동을 축소하거나 은퇴 후 여가 선용을 위해 비축하고 있는 비상금 규모를 더 늘리면 된다. 은퇴여가비용 마련은 보통 은퇴 3년 전부터 시작하는데, 비상금을 늘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어쩌면 이 비상금 마련이 은퇴 예산 짜기에서 가장 신나는 일일 수 있다.

은퇴생활에서 여가비용 외 꼭 고려해야 할 것은 내구재 교체를 위한 일회성 비용이다. 빠듯한 은퇴 살림에 적지 않은 돈이 드는 만큼 이에 대한 예산을 세우지 않으면 재정적 충격에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일회성 비용에 대한 예산을 세워야 최종적인 은퇴 예산 짜기가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내구재 품목별로 내용연수로 은퇴기간 30년에 품목별 사용연수를 더한 값을 나눈다. 이는 은퇴기간 중 내구재 품목당 교체 횟수를 의미한다. 여기에 품목별 교체 비용을 곱하면 은퇴 기간 동안의 교체 예산이 나온다. 참고로 내구재별 내용연수는 자동차 8년, 대형 스크린 TV 7년, 에어컨 10년, 데스크탑 컴퓨터 5년, 세척기 15년, 냉장고 20년, 세탁기 15년 등이다.

은퇴 재정 위협하는 내구재 교체비

계산 결과 예산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수 있다. 그리나 미리 겁낼 필요는 없다. 연간 교체비용(교체비용/내용연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고수익 저축계좌나 양도성예금증서(CD)에 적립해 나가면 나중에 교체에 사용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내구재는 관리 여하에 따라 수명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나중에 은퇴 수입이 내구재 교체로 인해 왕창 잡아먹힐 것이 걱정된다면 가전제품이나 생활필수품, 소비재의 수명을 연장할 방법은 없는지 모색해 보자.

[박스기사] 은퇴 축하금 만들기 - 은퇴 충격 완충역할 … 5000만~1억원

60세 은퇴해 건강수명 80세까지 산다고 할때 잠자는 시간을 뺀 실제 활동은 8만 시간 정도로 추산된다. 그래서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여가활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여가활동은 건강을 지키는 데 좋고 고독감이나 고립감을 해소할 뿐 아니라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재설계할 기회도 준다. 취미 활동과 관련한 기술과 지식은 은퇴 이전부터 길려야 한다. 또 이것저것 건드리기보다 한 가지에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될 정도로 몰입하는 것이 좋다. 취미를 자주 바꾸다 보면 비용이 많이 들뿐 아니라 만족감도 떨어진다. 많은 사람이 취미활동은 은퇴한 다음 여유가 생길 때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나이가 들면 상대적으로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또 여가활동 비용을 별도로 마련해 놓아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선진국에선 은퇴 후 여가활동에 쓸 ‘은퇴 축하금’을 만들어 놓고 최소 1년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미래 계획을 세우며 준비하는 은퇴자가 많다. 은퇴 축하금은 우리 돈으로 5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라고 한다. 은퇴 축하금은 말 그대로 은퇴를 자축하기 위해 마련하는 돈이다. 직장생활을 끝낸 자신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완주를 격려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금이다. 가정을 위해 자존심을 뭉개고, 스스로에게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은퇴자는 축하금으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거나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깊게 은퇴의 시간을 호흡할 여유를 갖는다. 일종의 은퇴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역할이다. 또 축하금은 인생의 전반전을 정리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은퇴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1405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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