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화훼센터 “정착시엔 가격 인상 가능성”...업계 상생 위한 조치라지만 설왕설래
▎3월 28일 오전 서울 반포동 서울강남터미널 꽃도매상가가 생화를 사러온 인파로 붐빈다. / 사진:사진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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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은 한 단에 1만3000원이에요. 이건 월요일에 들어온 거라 9000원까지 해줄게요. 쌀 때 한 단 사가요.” 상인이 가리킨 곳에는 네덜란드에서 들여왔다는 튤립이 색깔별로 곱게 진열돼 있었다. 일명 ‘고터 꽃시장'으로 잘 알려진 서울 반포동 서울강남터미널 꽃도매상가의 새벽은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174개 생화 판매 업체가 줄지어 있는 골목골목이 향기로 가득찼다. 한 업체 상인은 “졸업·입학 시즌이 지나서 3월 초보다 가격이 내렸다”며 “이제 결혼식을 준비하는 플로리스트나 업체가 많이 찾아올 시기”라고 설명했다. 프리랜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김선아(가명·36)씨는 3월 28일 이른 아침부터 꽃시장을 찾았다. 문화센터에서 꽃 강좌를 주로 하며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꽃 장식을 돕기도 한다. 수업이 있거나 예식을 앞둔 날이면 꽃을 사기 위해 이곳에 자주 들른다.최근 김씨는 시장에 붙은 회원 등록제 공고를 보고 걱정이 늘었다. 꽃도매상가 측이 3월부터 화훼 업계 종사자와 관련 단체만을 대상으로 회원 등록제를 실시한다고 밝힌 것. 사업자가 아닌 김씨는 대상자가 아니다. 그는 “앞으로는 사업자가 아니면 도매시장에서 꽃 값을 도매가로 사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수강생 가운데 일반 꽃가게에서 사기엔 값이 부담돼 일부러 도매시장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앞으로 수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서울강남터미널 꽃도매상가운영회(이하 상가운영회)는 3월 2일 상가 상인과 소매사업자, 관련 단체 간 상생을 위해 회원 등록제 시행 계획을 밝혔다. 사업자등록증이나 단체 회원증을 가져오면 확인을 거쳐 4월 중 회원증을 발급해 본격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공고를 보고 업계 관계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의 설왕설래가 오갔다. 주부들이 많이 가입된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회원이 아니면 출입이 금지된다’ ‘꽃을 도매가보다 더 비싸게 사야한다’는 등의 우려가 퍼졌다. 이에 대해 상가운영회 측은 “회원 관리 차원에서 등록제를 시행할 뿐 일반인과 사업자 간 가격 차이를 둘 계획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고터 꽃시장 “회원 관리 차원일 뿐 가격 변동 없어”
▎꽃도매상가 내 붙은 회원 등록제 시행 공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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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기 상가운영회장은 “고터 꽃시장이 생긴지 60년이 다 되도록 어떤 사람들이 주로 찾고, 구매하는지에 대한 데이터조차 없다”며 “업계 관계자들이 등록을 하면 앞으로 회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상가 운영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기점으로 화훼산업이 위축돼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다른 업종처럼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개인사업자이다 보니 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회원 등록제를 계기로 앞으로는 어려움을 함께 타결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원들에게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지만 어떤 혜택일지에 대해선 정해진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상가운영회 측 입장과 다른 의견도 있다. 이날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상가 측에서 당장 일반 소비자의 반발을 우려해 가격 차이는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회원에게 줄 수 있는 인센티브가 결국은 가격일 수밖에 없다”며 “몇 단 사러 오는 일반 소비자에 비해 대량으로 구매하는 사업자에게 싸게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기 성남시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박수민(가명·41)씨는 “소비자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정보력도 커지면서 동네 꽃집과 가격 비교를 해보고 더 저렴한 도매시장을 찾아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소매상 입장에서는 회원 등록제를 시행하면 사업자가 조금이라도 가격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서울 양재동에 자리한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사업센터(이하 aT)는 강남터미널 꽃도매상가에 한 발 앞서 ‘소매상 등록제’를 시행했다. 마찬가지로 절화매장을 이용하는 소매사업자를 대상으로 등록증을 발급해 중도매인과 소매사업자 간의 상생을 유도한다는 목표다. 3월 초 집중발급 기간을 거쳐 현재까지 1200여 명이 등록을 마쳤다. aT측은 “아직 시행 초기 단계라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고 있다”며 “제도가 정착되면 도·소매를 완전히 분리해 생화도매시장은 도매시장으로의 기능을 강화하고, 일반 소비자들은 소매점으로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등록증을 소지한 소매상의 경우 일반 소비자보다 판매 단가를 우대하는 방침에 대해 중도매인연합회에 협조를 요청한 상태”라며 “받아들여질 경우 일반 소비자의 구매 가격이 소매상에 비해 다소 인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소매상과 일반 소비자를 구분하기 위해 출입 시간대를 나눌 가능성도 있다.
경기 침체에 김영란법까지 … 국민 64% 꽃 구매 ‘연례 행사’aT 화훼사업센터는 국내 최초의 화훼류 공영도매시장으로서 1991년 문을 열었다. 화훼공판장에서 이뤄지는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이 생화를 구매하고, 이를 소매상이 생화도매시장에서 사가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되도록 도·소매인과 일반인에 대한 제대로 된 수요 조사나 판매 비중 집계 등은 이뤄진 적이 없다.강남터미널 꽃도매상가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개인사업자로 이뤄져 조사가 어려운 탓이다. 이 때문에 소매상 등록제 시행 후 자칫 일반인의 구매가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김선영(33)씨는 “평소 집안을 꽃으로 장식하는 걸 좋아한다”며 “동네에선 작은 꽃다발 하나도 3만원이 넘는데 이곳에 오면 장미꽃 서너 단을 사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소매상 등록제 시행으로) 동네 꽃집과 (가격이) 별 차이가 없어진다면 굳이 멀리까지 와서 살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일본이나 네덜란드 등 화훼선진국은 70% 이상을 가정이나 사무실 장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선물용 또는 졸업식이나 입학식 등 특정시기에 꽃 소비가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동안 꽃을 구매하지 않거나 한 번만 구매 하는 경우가 64%에 이르고, 경조사용 화환은 재사용 비율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훼 업계는 사업자와 일반인을 구분하는 제도가 시장 왜곡을 막고, 장기적인 산업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심정근 aT 화훼센터장은 “소매상 등록제는 영세 소매업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도소매인과 생산자 등 업계 전반의 상생을 위한 방편”이라며 “소비자들에게는 꽃이 사치품이 아닌 안정과 휴식, 심미적 기능까지 줄 수 있는 상품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