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인정 범위 갈수록 넓어져우리 헌법은 제34조에서 국가의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 증진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장애·질병 등으로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에 위협을 받는 국민에게는 적극적으로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산재보험은 그 일환으로 1964년 도입됐다. 근로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인한 피해를 입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보험이다.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소정의 보험료를 징수해 그 기금으로 사업주를 대신해 산재근로자에게 보상을 해준다.산재의 적용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건설 현장과 위험한 기계·기구를 설치·사용하는 사업장에서 주로 발생했다. 하지만 산업사회의 현대화·고도화·정보화 등으로 재해 발생 원인도 다양해지고 있다. 신종 직업병과 과로, 스트레스 등에 기인한 재해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업무의 범위’를 점점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양씨의 사건도 그런 과정 중 하나다. 일반적인 출퇴근 길을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이 되는 업무의 연장선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였다. 법적으로는 앞에서 보았듯이 산재보험법 제 37조에 따라 출퇴근 길의 산재 인정 범위가 제한되고 있었다. 통근버스와 같은 회사 소유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만 사고 때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4년 제121호 ‘업무상 상해 급부 협약’에서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도록 권고했지만, 국내에선 논의만 있었을 뿐 정작 입법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이를 문제 삼은 양씨는 헌법재판관들에게 이렇게 주장했다. “출퇴근과 업무는 밀접한 관계입니다. 상식적인 경로로 출퇴근한 것은 산재 보호 범위에서 제외시킬 수 없습니다. 출장에서 난 사고는 산재로 인정하면서 출퇴근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안 맞습니다. 통근버스만 산재를 인정해주는 건 통근버스조차 없는 회사에 다니는 직원에겐 부당한 차별입니다.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은 별도로 출퇴근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제한 없이 재해로 인정해주면서 일반 근로자는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평등원칙에 어긋납니다.”
위헌 의견 많았지만 ‘합헌’으로 선고이를 두고 재판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2013년 9월 결정의 순간이 됐을 땐 양씨의 의견을 받아들인 재판관이 한 명 더 많았다. 9명의 재판관 가운데 5명의 재판관이 산재보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그러나 선고는 ‘합헌’이었다. 위헌 의견이 다수지만, 위헌 선고를 위해 필요한 정족수(6명)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이로 출퇴근길 사고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당시 재판부는 “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며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않는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시했다. 이 조항이 통근차량 이용 근로자나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과의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에서 출퇴근 재해의 범위를 탄력적으로 해석해 권리를 구제하고 있다”며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이어 국회에 이를 정할 입법형성권이 있다는 점을 들어 현실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다. 재판부는 합헌 결정문에서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산재보험의 재정상황, 사업주와 근로자의 사회적 합의, 전체적인 사회보장의 수준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입법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안”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법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개별 소송을 제기하는 등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고용노동부가 출퇴근 때 대중교통 사고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국회에도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자동차보험과의 중복성이 있는 데다 회사 측의 산재 요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처리되지 못했다. 결국 산재보험법은 다시 헌재로 가게 됐다.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던 김모씨는 2011년 11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넘어지면서 버스 뒷바퀴에 왼손이 깔려 손가락 두 개가 부러졌다. 이후 그는 양씨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산재보험을 받으려 했지만 공단에서 불승인처분을 내렸고, 이를 두고 소송을 진행했다. 소송 중이던 2014년 6월 산재보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김씨가 청구한 사건의 결정은 2016년 9월에 내려졌다. 양씨의 사건이 마무리된 지 불과 3년 만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결정이 뒤집혔다. 헌재는 산재보험법 37조에 대해 헌법불합치(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공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하는 공무원에 비하여 일반 근로자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이라며 “사업주로부터 차량 지원 등을 받지 못하는 영세 사업장 근로자를 오히려 보호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출퇴근도 사실상 사업주의 지시로 결정”
올해 예상 출퇴근 산재보험 4570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