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5강 체제로 재편
우리은행이 내년 초 금융지주사로 전환한다. 우리은행은 현재 시중은행 중 유일한 비(非) 금융지주 체제의 금융회사다. 지난 2001년 우리금융지주로 국내 첫 금융지주 체제를 갖췄지만, 민영화 과정에서 증권과 보험, 자산운용사·저축은행을 매각하고 2014년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됐다. 우리은행의 지주사 전환에 속도가 붙은 것은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지난 5월 14일 회의를 열고 ‘선 지주사 전환, 후 정부 잔여 지분 매각’으로 방향을 틀면서다. 지난해 말 기준 예금보험공사(예보)는 우리은행 지분 18.43% 보유하고 있다.
2001년 국내 첫 금융지주 체제 갖춰우리은행이 지주사 전환에 나서는 것은 은행 체제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은행만 떼서 보면 다른 은행과 수익 규모는 엇비슷하다. 그러나 카드와 증권, 자산운용, 보험 등 비은행 부문을 따지면 KB국민·신한·KEB하나 등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수익 규모와 영업 경쟁력이 떨어진다. 은행 체제에서는 출자 여력도 제한된다. 은행은 은행법상 자기자본의 20%를 초과해 출자할 수 없다. 때문에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기 힘들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이런 출자제한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증권·자산운용 등 수익성 높은 업종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현재 국내 금융지주사는 하나금융·NH농협·KB금융·신한금융·BNK금융·JB금융·DGB금융 등으로 총 6곳이다. BNK금융·JB금융·DGB금융은 3대 지방금융지주사인 만큼 규모로 비교할 때 하나금융·NH농협·KB금융·신한금융에 한참 못 미친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지주사 판도를 4강(하나금융·NH농협·KB금융·신한금융) 체제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5강 체제’로 재편된다.국내에 금융지주회사가 등장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금융 전업주의를 고수하던 미국(1999년)과 일본(1998년)이 은행과 보험, 증권 등의 업무가 모두 가능한 겸업화와 대형화를 위해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한 직후다. 당시 정부도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에 의존하는 은행 중심 경영에서 증권·보험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하다며 2000년 10월 금융지주회사법을 제정했다.2001년 우리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가 설립된 후 2005년 하나금융지주, 2008년 KB금융지주가 만들어졌다. NH농협금융은 이들 중 가장 늦은 2012년에 출범했다. 대부분 지주사 전환 후 증권·카드·보험사 등을 M&A하며 몸집을 키웠다. 이들 지주사의 총자산은 1300조원이 넘는다.그렇다면 지주사 등장 후 지난 17년 간 지주사들의 경쟁력은 기대만큼 높아졌을까. 은행과 비은행 간의 협업 업무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나오긴 했다. 지주사들은 증권·은행·보험 협업체계를 구축해 은행 지점에서도 증권·보험 업무를 볼 수 있는 복합점포를 만들었다. 또 금융지주사들이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앱)에 계열사 서비스를 연결시켰다. 예컨대 KEB하나은행의 모바일뱅킹 앱 ‘원큐뱅크’에서는 증권 계좌정보와 하나카드의 결제 예정금액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증권 계좌 개설과 카드 가입도 가능하다.그러나 금융소비자에게 가장 민감한 금리나 수수료 부분에선 얘기가 다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은행의 가산금리 산정체계에 대한 검사를 진행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실에 따르면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시중·지방·특수은행 15곳 가운데 10곳이 가계 일반신용대출의 목표이익률을 높게 설정해 가산금리를 인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 대출금리는 코픽스나 은행채 금리 등 시장금리와 은행들이 정한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된다.중도상환 수수료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대출자들은 대출 후 3년 이내에 원금을 갚으면 최대 2%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수년 째 중도상환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아 대출 갈아타기가 걸림돌이라는 금융소비자 불만이 이어지고 있지만 좀처럼 수수료 인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도상환수수료는 만기 이전에 대출금을 갚으려는 사람에게 은행이 부과하는 일종의 해약금 성격의 비용이다. 전형적인 이자장사다. 실제로 지난 1분기 4대 시중은행의 이자이익은 5조4380억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9%(5770억원) 증가했다. 은행들이 수수료 인하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금융당국은 하반기부터 중도상환수수료를 낮추는 등 가계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여기에 기준금리 인상 이후 예금금리보다 대출금리가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금융지주사가 거둔 이익 중 대부분은 여전히 은행 수수료와 예대마진에서 나온다. 실제로 올 1분기 KB금융에서 전체 수익 중 은행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8.7%다. 1년 전(67.9%)보다 늘었다. 신한금융의 은행 계열사 비중은 지난해 1분기 52%에서 올 1분기에는 66%, NH농협금융은 61.9%에서 74.6%로 증가했다.그렇다면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장에서는 지주사를 은행·투자은행 등 자회사별이 아닌 사업 부문별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은행·증권·보험 등 업종별 자회사로 분류하고 있지만 해외 메가뱅크는 고객과 상품 구성별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웰스파고는 고객 1인당 5건 이상의 교차판매(보험·펀드 등 비은행 상품 판매)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적금고객에게 상품 판촉을 할 때 국내 은행처럼 무작정 캠페인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고객 특성을 정확하게 분석해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해외 유가증권 투자 비중도 늘릴 필요가 있다. 국내 은행이 해외에 진출하면 현지 교포와 한국 기업 대상의 예금과 대출에 치중하기 일쑤다. 이 때문에 국내 은행이 해외에서도 제한된 시장을 놓고 제살깎기 식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맹점에서 벗어나려면 선진 금융회사의 지분을 취득해 그들의 시장을 잠식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방식은 일본 대형 은행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BTMU) 계열사로 두고 있는 미쓰비시UFG파이낸셜 그룹(MUFG)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대형은행 다나몬 지분 40%(약1조9500억원)을 취득했다. 이로써 해외 수익 비중은 일본 은행 중 처음으로 50%를 웃돌게 됐다.
해외·디지털 진출 전략 다시 짜야물론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금융사의 해외 점포는 43개국 431개로 전년 대비 5%(24개) 증가했다. 문제는 해외 시장에 진출한 지점의 69.4%(299개)가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세안과 같이 개발도상국이 많이 포함된 지역에 진출할 경우 국가 간 경제협력, 국내 기업과의 동반 진출 등 전략을 적절하게 혼합해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글로벌 금융 환경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현실에 맞춰 기존 방식 외에 디지털 방식 진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