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발암물질 고혈압 치료제 파문 짚어보니] 제2, 제3의 발사르탄 사태 벌어질 가능성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값싼 중국산 원료 사용에 경고음…제네릭 의존도 낮추고 신약 개발에 집중해야

▎고혈압 치료제의 판매 잠정 중지를 알리고 있는 식약처 인터넷 홈페이지 화면. 식약처는 문제가 된 ‘발사르탄’ 중국산의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 사진:인터넷 캡처
제약 업계와 소비자 사이에서 발암물질 고혈압 치료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7월 5일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고혈압 치료제 제조에 쓰이는 원료 ‘발사르탄’ 중국산에서 발암 가능성이 있는 불순물이 섞인 사실을 확인해 회수한다고 발표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7월 7일 발사르탄 사용 가능성이 있는 219개 품목의 제조·수입·판매를 잠정 중지 조치했다. 이후 식약처는 현장 조사를 진행해 발사르탄을 사용하지 않은 104개 품목에 대한 조치를 해제, 115개 품목만 잠정 제재 대상으로 남겼다. 관련 업계의 경제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에 따르면 문제가 된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한 환자만 7월 9일 기준 총 17만8536명에 달한다. 국내 전체 고혈압 치료제 복용 환자(약 600만 명)의 2.9%가량인데 질환과 약의 특성상 매일 꾸준히 장기 복용한 경우가 많다는 측면에서 큰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무엇이 문제이며 어떤 사실에 유의해야만 하는지, 이번 파문의 요점을 질문과 답변(Q&A) 형식으로 짚어봤다.

발사르탄이 뭔가.

고혈압 치료제에 쓰이는 성분 이름인데, 원래는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오리지널 고혈압 치료제 ‘디오반’의 성분 중 하나다. 그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고 검증도 끝난 지 오래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제지앙화하이라는 중국 제약사가 제네릭, 즉 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복제약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화학적 합성법을 바꾸면서 발사르탄에 발암 가능성이 의심되는 불순물이 섞인 것이 검출돼서다. 참고로 오리지널 약은 2012년 특허가 만료되면서 그 후 제네릭만 수백 개가 등장했다.

어떤 불순물이기에 발암물질 얘기가 나왔나.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에서 ‘2A’ 등급으로 분류한 물질이다. WHO에 따르면 2A 등급은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의미한다. 발암 가능성이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불충분한 경우 이 등급을 적용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NDMA는 간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졌다. 각종 동물 실험에선 콩팥이나 폐 등에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NDMA가 들어간 중국산 발사르탄을 쓴 115개 품목은.

‘글로포지정10/160㎎(한국글로벌제약)’ ‘뉴사탄정80㎎(오스틴제약)’ ‘뉴젠포지정10/160㎎(뉴젠팜)’ ‘디로탄플러스정(이연제약)’ ‘메가포지정10/160㎎(한독)’ ‘브이반플러스정 80.0/12.5㎎(광동제약)’ ‘애니포지정5/80㎎(종근당)’ ‘엑시비탄정5/80㎎(케이엠에스)’ ‘코디르탄정80/12.5㎎(셀트리온제약)’ ‘하이포지정5/160㎎(한국콜마)’ 등이다. 모든 품목 명단은 식약처 인터넷 홈페이지(www.mfds.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올해 현재 국내에서 허가된 고혈압 치료제 품목은 모두 2690개, 이 가운데 발사르탄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571개다. 애초 제약사들이 제지앙화하이의 발사르탄 성분을 사용하겠다고 등록했던 품목은 216개였지만, 발사르탄을 실제 사용한 품목은 잠정 판매 중지 명단에 오른 115개뿐이었다.

그동안 115개 중 하나를 복용했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일단 구입해서 집안에 남은 약들의 환불은 받을 수 없다. 다만 별도의 본인 부담금 없이 다른 고혈압 치료제로 재처방·재조제 받아 복용할 수 있다. 기존에 처방 받았던 병·의원을 찾아 얘기하면 된다. 당뇨병 치료제 등 다른 의약품과 함께 처방·조제된 경우라면 문제가 된 고혈압 치료제에 한해서만 재처방·재조제 받을 수 있다. 의료기관이 너무 멀거나 거동이 불편하면 가까운 약국을 방문해도 의약품 교환(대체조제)이 가능하다.

불안한데 이참에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되나.

보건당국은 이를 절대적으로 만류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일상생활에서 공기와 물, 각종 음식물을 접하는 경우에도 소량의 NDMA에 노출될 수 있다”며 “판매 중지 대상의 품목을 복용하던 경우라도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면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우선 의사 등 전문가와 상담해 달라”고 했다. 당국이 남은 약의 환불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혹여 환불 후 불안감에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으려는 고혈압 환자들이 생길까 우려돼서라는 것이다.

국내 제약 업계 타격은.

의약품 시장조사업체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 따른 업계 전체의 경제적 손실 규모는 연간 330억원가량에 이른다. 115개 잠정 판매 중지 품목의 최근 연간 매출 규모를 집계한 수치다. 국내에서 발사르탄 성분의 고혈압 치료제 시장 규모는 연간 2900억원 수준이다. 그 10분의 1이 넘을 만큼 만만찮은 타격이라는 얘기다. 특히 115개 품목을 판매하던 54개 제약사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해 해당 품목 매출이 많았던 한국콜마(53억5004만원)·삼익제약(33억3810만원)·한림제약(28억2639만원)·한국프라임제약(23억1290만원)·바이넥스(17억5103만원) 등은 실적 악화 우려가 커졌다. 이와 달리 잠정 판매 중지 대상에서 제외된 고혈압 치료제를 취급하는 경쟁사들은 내심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얘기도 있다.

제약 업계 전반에서 원가 절감을 위해 값싼 중국산 원료를 제네릭에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높은 의존도가 이번처럼 언제든 독이 돼 날아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산의 안전성 문제가 재차 불거지면서 제2, 제3의 발사르탄 사태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업계가 수입한 중국산 원료는 6154억원 어치로 전체 원료 의약품 수입액(2조161억원)의 30.5% 비중을 차지했다. 지금이라도 중국산 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먼 미래보다 눈앞의 실적에 일희일비하는 기업들로선 결심하기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차제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약 개발보다 제네릭에 의존해 온 국내 제약업 관행이 이처럼 작은 외부 요인에도 크게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제약 업계만의 문제인가.

유통 업계도 고민이 많다. 며칠 사이 오리지널 약의 수요가 급증해 일부 의료기관과 약국에선 사재기 움직임까지 감지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장에 재고분을 소진한 유통 업체들로선 물량 부족에다 재고관리 어려움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어지면서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더구나 식약처에서 잠정 판매 중지 품목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각 제약사에 권고한 상태임에도 제약사들은 아직까지 별 움직임이 없어, 향후 반품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대란’ 발생 가능성이 큰 데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제약사들은 식약처가 NDMA 정밀 분석을 끝마치고 추가 조치할 때까지 일단 기다려본다는 입장이다. 당장 회수하기에는 부담이 커서다.

남은 과제는.

제약 업계가 일거에 중국산 원료 의존도를 낮추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이 차제에 보다 엄격한 원료 의약품 수입 및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7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약사법 개정안 심사를 조속히 진행해 달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한국은 약을 처음 허가할 때 해외 원료 공장을 조사하지만 허가 후엔 따로 실사 권한이 없어 의약품 원료가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비판이 많았다. 현지 실사 시 문제 발생 우려가 있으면 수입을 중단할 수 있어 보다 엄격한 관리가 가능하다. 이에 식약처는 2016년 6월 의약품 해외 공장을 등록해 현지 실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1443호 (2018.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