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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떠나는 암호화폐 기업들] ICO(암호화폐공개)시장 뺏기고 자본 유출 가능성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해외에서 거래소 세우고 ICO 준비도…정부 “11월 중 ICO 관련 입장 발표 계획”

▎사진:© gettyimagesbank
암호화폐 헤지펀드가 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했다. 암호화폐시장 조사기관인 크립토펀드리서치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출시된 암호화폐 헤지펀드는 90개로 연말까지 120개가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출시되는 600개의 헤지펀드 가운데 20%가 암호화폐 헤지펀드인 셈이다. 2016년 21개에 불과했던 암호화폐 헤지펀드 수는 지난해 118개로 늘었다. 암호화폐 헤지펀드 자산은 40억 달러(약 4조5300억원)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헤지펀드 증가세는 암호화폐가 새로운 대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기관투자자나 기업들의 펀드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예일대는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캐피털인 앤드리슨 호로위츠가 조성한 3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펀드에 투자했다.

미국·일본·독일 등은 이미 암호화폐를 금융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암호화폐공개(ICO)도 허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암호화폐에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를 물리고 있다. 이들 국가는 암호화폐를 통화, 결제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암호화폐 거래를 물물교환으로 보는 독일에서는 부가가치세를 매긴다.

미국은 올해 초 세계 최초로 가상화폐로 원유·농산물과 같은 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선물거래를 허용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모든 ICO는 증권거래법을 통해 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4월부터 ‘가상통화법’을 시행해 암호통화를 재산적 가치를 지닌 지급 결제수단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2014년 당시 세계 최대 암호통화 거래소였던 일본 마운틴곡스가 해킹으로 파산하는 충격적인 사태를 겪으며 자금결제법과 자금세탁방지법에 가상통화와 관련한 내용을 명시했다. 이런 행보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암호화폐로 가전제품 구매, 전기·가스요금 납부가 가능해졌고, 지난해 말에는 세계 비트코인의 40%가 엔화로 거래될 만큼 암호화폐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싱가포르는 ICO 관련 규제 샌드박스(신산업 육성을 위해 일정 기간 규제를 전면 면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스위스 은행협회는 ICO를 통해 가상통화를 투자받은 기업이 은행구좌를 개설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ICO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을 중심으로 암호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인정하며 실생활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업비트, 싱가포르에 법인 세워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암호화폐에 대한 불분명한 규제와 부정적 입장이 여전하다. ICO 금지, 신규 가상계좌 발급이 막혀있다. 여기에 지난 7월 27일 암호화폐를 사행성 업종으로 간주하고 거래소를 벤처 지정에서 제외됐다. 윤석현 금감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암호화폐는 암호자산의 성격으로 금융자산으로 보기 어렵고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없어서 정부가 신중하게 보고 있다”며 부정적 기조를 유지했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이 이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은 ICO를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다. 예컨대 ICO 거래소 상장, 비즈니스 생태계가 발달해 있는 에스토니아에는 30여 개의 암호화폐 기업이 에스토니아에서 ICO를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ICO 금지가 국가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병태 KAIST IT경영학과 교수의 ‘블록체인 산업의 고용 파급효과 분석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ICO 국외 유출 고위험국가’로 분류됐고, 실제 국내 기업의 ICO 모금액 중 93%가 해외에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ICO는 단순히 자금이 모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이 집약된 비즈니스 모델 등이 함께 제시된다. 특정 국가의 블록체인 생태계 발전에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소영술 KOTRA ICT성장산업실장은 “국내 기업들도 블록체인 입법이 완비된 일본·스위스·싱가포르 등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며 “해외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설립·컨설팅 비용 등으로 자금 유출과 기술 유출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블록체인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술이 상당히 앞서가고 있음에도 정부의 정책이 불투명해서 산업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관련 산업에 대한 규제 탓에 한국에서 짐싸는 가상화폐 거래소 늘고 있다. 업비트는 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해 거래소 운영을 시작했다. 빗썸은 싱가포르 BK글로벌컨소시엄에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싱가포르는 블록체인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규제가 거의 없는 나라 중 하나다.

암호화폐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을 정부도 모르는 건 아니다. 어떤 형태의 과세든 암호화폐에 대한 기준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정부도 지난해 말 발생한 암호화폐 투기광풍 이후 실명제 가이드라인 등 각종 규제를 신설했다. 그러나 문제는 명확한 암호화폐 가이드라인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해외처럼 과세 여부에 대한 검토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암호화폐에 대한 세금 부과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다만, 과세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정의 또 다른 원칙은 ‘조세법정주의’다. ‘과세의 종류와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암호화폐는 현재 한국의 세법에서 다루기가 모호하다. 실질과세 원칙과 조세법정주의라는 양대 과세 원칙이 충돌하는 셈이다.

문제는 암호화폐가 지급·결제 수단이 아닌 투기적 수단으로 악용되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다보니 가이드라인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제대로 된 법·제도 하나 없이 업계와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이 장기화되자 국회 차원에서 대응에 나섰다. 지난 10월 1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소속 의원들은 ICO 및 거래소 관련 규제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병두 정무위원장은 “우리나라 블록체인 산업 경쟁력이 선진국인 미국 대비 75%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정부의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정부가 ICO 정책 금지에서 허용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11월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혹은 특위 형태로 ICO 법안 공청회 개최를 예고했다. 정부와 협회, 유관기관이 함께 모여 문제 해결을 논의할 워킹그룹 구성도 제안했다.

정부도 반대에서 검토로?

현재 국회에는 지난해 7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암호화폐 거래사이트에 대한 규율을 골자로 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발의 후 현재까지 5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여야 의원이 참석, 정부 규제 개선을 촉구에 입을 모으면서 정부도 반대 입장에서 검토로 입장을 바꿨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11월 중 ICO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1456호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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