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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금융여수신 1조원 돌파한 유남영 정읍농협 조합장] 하나로마트 1호점의 기적 

 

남승률 기자 nam.seungryul@joongang.co.kr
농민-소비자 연결 본연의 기능에 충실...온라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유통망 구상 중

“신토불이가 캐치프레이즈이지만 사실 하나로마트(정읍농협)의 성공 출발점은 월마트입니다.” 유남영(63) 정읍농협 조합장은 뜻밖의 일화부터 들려줬다. 1996년 2월 부도 위기의 부실 농협 수장을 맡은 유 조합장은 일단 자신의 월급과 승용차를 반납했다. 열악한 조합 재정을 되살릴 방안을 수 개월 고민했다. 그는 조합의 자산 건전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론은 자체 마트 운영이었다. “서울 출장 중 우연히 들른 월마트에서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1997년)만 해도 창동 이마트점을 빼곤 변변한 대형마트가 없었습니다. 월마트 직원들 눈치를 보며 판매상품이나 진열방식 등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1999년 8월 첫 문을 연 정읍 하나로마트는 개장 후 1년 만에 5억원의 흑자를 냈다. 매출은 개장 첫 해 254억원을 올린 후 올해까지 평균 400억원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개장 당시 15만 명이 넘던 정읍 인구가 11만 명대로지 감소한 상황에서도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12월 인근에 들어선 대기업의 대형마트가 한 해 수억원의 적자를 내는 것과는 딴판이다.

박현수(64) 전북과학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조합원인 농민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소비자에게 값싸게 공급하도록 돕는 농협 본연의 기능 속에서 탈출구를 찾고자 한 게 맞아떨어졌다고 평가한다. 박 교수는 “정읍 하나로마트는 농협 ‘하나로마트’ 간판을 단 전국 1호점이자 5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린 첫 성공 사례”라고 덧붙였다.

하나로마트 개장은 지역민들의 라이프스타일도 바꿔놓았다. 전통시장이나 장터 밖에 몰랐던 시민들이 쇼핑을 하게 된 것이다. 유 조합장은 “검은 비닐 봉지에 물건을 담아 장을 보던 시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물건의 사는 일이 일상이 됐다”라며 “추석이나 설을 앞두고 고향을 찾은 손주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명절의 추억의 쌓는 장소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하나로마트의 성공으로 정읍농협 자체의 경쟁력도 단박에 올라갔다. 농민과 조합원이 주인이 된 마트 운영을 통해 지역민의 신뢰가 높아지면서 여수신 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유 조합장 취임 당시 1200억원에 불과했던 정읍농협의 상호금융여수신이 올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지역농협 관계자들은 도농복합형 중소도시 농협에서 1조원대의 여수신을 올린 것을 기적으로 평가한다. 정읍농협 5선 조합장인 그는 농협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국무총리표창, 2007년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6년부터 NH농협금융지주 비상임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유 조합장은 23년 전 조합원들과의 첫 만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불도 제대로 켜지지 않은 강당에 모인 조합원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지만, 원망의 눈빛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들의 피땀이 담긴 재산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조합원들의 예금인출 등 불상사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이 믿음이 정읍농협을 초우량 지역농협으로으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유 조합장은 매출 400억원대에서 정체되고 있는 하나로마트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입하는 곳이 대형마트에서 온라인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개인 간 거래(P2P) 방식을 이용, 농촌 생산자와 아파트단지, 맘카페를 연결하는 유기농 온라인장터 신설 등 새로운 유통망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1459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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