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보단 밸류에이션에 베팅...실적 탄탄한 종목 중심으로 옥석 가려야
▎지난 5월 17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여부를 가려내는 감리위원회가 열렸다.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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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5일 유한양행 주가가 가격제한폭인 30%까지 치솟았다. 유한양행이 글로벌 제약사 얀센 바이오테크와 폐암 치료를 위한 임상 단계 신약 ‘레이저티닙’의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서다. 임상시험과 개발, 시판 허가 등에 성공하면 총 12억500만 달러(약 1조3550억원)를 받게 된다. 유한양행의 지난해 매출(1조676억원)보다도 많은 액수다. 이날 유한양행 주가는 장이 끝날 때까지 상한가를 굳게 지켰고 이튿날도 8%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2015년 유한양행에 레이저티닙을 매각한 오스코텍의 주가도 덩달아 25% 급등했다.최근 코스피 2000선이 붕괴되는 등 국내외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 제약·바이오 업종은 나름 선전 중이다. 일부 바이오 기업들이 대규모 수출 계약을 하는 잭팟을 터뜨리면서 업종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5년 한미약품의 폐암 신약 후보물질 기술 수출을 비롯해 바이로메드·제넥신·코오롱생명과학주식회사·메디포스트·신라젠 등이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거나 가능성을 내비쳤다. 제약·바이오주는 지난 3년 간 천수답 국내 증시에서 유일한 성장 모멘텀을 보여준 업종으로 꼽힌다.대장주격인 셀트리온 주가는 2015년 7만원대에서 올 초 38만원대로 치솟았고, 같은 기간 제넥신도 4만원대에서 11만원대까지 뛰어올랐다. 대다수 제약·바이오 기업 주가는 지난 3년 간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으로 상승했다. 코스피의 11월 6일 종가는 2089.62로 3년 전과 비교해 3% 오른 것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상승률이다. 이 기간 코스닥 지수 상승률도 15.3%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제약·바이오 종목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 3년 간의 상승폭은 과도하며, 최근 글로벌 증시의 불확실성 증가 등 국내외 악재로 거품이 꺼질 것이란 관측에서다.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고착화된 가운데 한국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헬스케어 기업의 성장이 기대됐다. 국내 증시로 유입된 국내외 유동 자금이 성장 가능성이 큰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대거 흘러갔다. 이런 가운데 셀트리온·한미약품·신라젠·녹십자셀·필룩스 등 기업이 잇따라 글로벌 계약을 성사시키거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신청을 내며 업종 전반에 대한 성장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주가 흐름은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을 필두로 한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의 실적보다는 기술력이나 플랫폼 장악력으로 한 번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가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유한양행 수출 계약으로 바이오주 다시 관심이에 제약·바이오 업종과 관련 없는 기업들도 바이오 섹터로 진출하는 경우도 나온다. 정보기술(IT) 기업인 동양네트웍스와 자동차 부품 업체 이젠텍이 바이오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정보보안 기업 닉스테크는 회사명을 바이오닉스진으로 변경하고 바이오신약 개발·판매 사업 의사를 밝혔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4월 바이오주 진단 보고서에서 “지난해 11월 이후 주가 상승률 상위 30개 업체 중 80%가 바이오 기업이었으며, 많은 업체가 체력보다는 기대치가 앞서 고평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오와 관련 없는 일부 기업이 사업 목적에 바이오를 추가하고 인력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주가가 고공행진 했다”며 “중·소형주 가운데 바이오주 상승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거품”이라고 지적했다.실제 나스닥에 상장된 제약기업의 주가 흐름을 측정하는 나스닥바이오테크놀로지인덱스(NASDAQ Biotechnology Index)는 11월 6일(현지 시간) 3412.76로 최근 5년 고점인 2015년 7월 17일의 4162.86보다도 750포인트가량 낮은 상황이다. 한 바이오 벤처기업 관계자는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도 기술력이 없는 바이오 기업이 난립하고 있다”며 “잘못된 데이터로 작성한 엉성한 사업계획에도 10억~20억원 투자금이 몰리기도 한다”고 전했다.이런 상황이 제약·바이오 기업의 거품 붕괴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시각교정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실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높은 편이다. PER는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지수다. 지수가 높으면 실제 현금창출능력보다 주가가 높다는 뜻이고, 낮으면 기업 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1월 7일 종가 기준으로 셀트리온의 PER는 75.44배, 한미약품 79.41배, 유한양행 28.54배 등이다. 적자를 기록 중인 신라젠은 -85.43배, 바이로메드 -499.15배, 제넥신 -85.12배 등이다. 제약·바이오가 성장 산업인 측면은 있지만 삼성전자 8.07배, 포스코 8.48배, 현대자동차 7.61배 등인 것과 비교하면 수익성에 비해 주가가 높게 평가돼 있는 상황이다.특히 기술 검증을 위한 길고 긴 임상 단계와 특허, 판매 허가 등 실제 수익이 발생하는 데까지 넘어야 할 허들이 많아 불확실성도 크다. 한미약품의 경우 2015년 베링거인겔하임과 6억 9000만 달러 규모의 항암제 올무티닙 기술 이전 계약을 했지만 임상3상을 넘지 못하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유한양행 역시 연내 임상2상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내년 상반기 중에 임상 3상을 성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임상3상 후 FDA 등 당국 승인, 상업화까지 가는 데 2~3년가량 소요될 전망이다. FDA에 따르면 신약후보 물질이 임상1상부터 최종 승인까지 받는 데 성공할 확률은 9.6%에 그친다. 제약사가 개발한 10개의 신약 중 제품화 되는 것은 하나뿐인 셈이다.
전문가 “후기 임상이나 바이오시밀러 대상 선별 투자”금융감독원이 8월 15일 내놓은 ‘제약·바이오 기업 투자자 유의사항·사업보고서 모범사례’를 봐도 국내 신약개발 성공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임상2상을 거쳤다고 해도 임상3상을 통과할 확률은 58.1%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강양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제약·바이오 분야를 장기적으로 보면 파이프라인의 해외 진출과 기술수출 기대를 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투자심리의 변동성이 커진 최근 장세에서는 대형 바이오시밀러나 글로벌 후기 임상 중인 기업 위주로 선별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임상시험을 중단했으면서 이를 보고한 제약·바이오 기업은 전체의 7% 정도에 불과하다. 금감원은 “중요 정보를 공시하지 않아 투자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주의를 촉구했다.이런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하는 회계처리 방식에 대해 금융감독당국이 감리를 진행 중인 점도 제약·바이오 기업 투자에 부담을 준다. 라정찬 네이처셀 대표가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폴루스바이오팜이 감사의견 ‘한정’을 받는가 하면, 차바이오텍은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등 기업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점도 악재로 꼽힌다. 특히 최근 나스닥 바이오 섹터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가능성에 급락한 모습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바이오 기업들은 차입 비중이 커 시중금리가 오르면 조달비용 부담이 커진다. 최근 국내 시중금리가 들썩이는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1월 말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