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규제 1만5000개에 달해한국은 어쩌다 규제 공화국이 된 것일까. 역대 정권마다 규제 개혁 방안을 내놓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해마다 증가한 규제는 현재 1만5000개에 달한다. 한국의 규제 현황을 점검하며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창조경제연구회가 집중 토론을 벌였다. 이민화 교수의 사회로 규제 관련 전문가 세 명이 모였다. 규제개혁위원을 지낸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와 총리실에서 규제개혁 과제 조직 개편 방안을 진행했던 곽노성 한양대 특임 교수, 그리고 코리아스타트업 포럼에서 규제 개혁을 위해 활동 중인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필수”라며 “이를 풀어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이민화 교수(이하 이민화): 왜 지금 한국에서 규제 개혁이 절실하다고 보시는지요?구태언 변호사(이하 구태언):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과 기술 여기에 서비스를 더한 산업이 확장 중입니다. 변화에 나설 시점인데 규제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현행 법규는 스타트업보다 기존 플레이어를 보호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와 시장 진입을 막는 규제를 분리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이를 구분해줘야 디지털 전환기를 잘 넘어 갈수 있습니다.곽노성 교수 (이하 곽노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제도에서 나옵니다. 제도 경쟁력이라 할 수 있지요. 인재가 성장하고 기술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준비해야 앞서 갈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이 규제입니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는 최악의 규제 국가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이 시장에 적용된 다음 상황을 봐서 규제를 가합니다. 개도국에는 아예 규제가 없고요. 일본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최근 미국 식으로 법규를 바꾸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규제를 내놓는 우리가 경쟁에서 앞서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김태윤 교수 (이하 김태윤): 한국에선 혁신 기술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규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혁신 성장의 최소한의 토양은 신뢰입니다. 지금은 불신을 전제로 설계된 규제시스템이 충돌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혁신도 별로 없습니다. 해봐야 규제에 잡히니까요. 투자를 유인하지 못하는 정치·경제·사회 환경에서는 혁신과 성장 모두 기대하기 어렵습니다.”이민화: DJ 정부 시절 규제를 7000개로 줄였습니다. 지금의 절반 수준인데, 규제 개혁 사례로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왜 그 사이 규제가 다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요?곽노성: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곳에서 공무원은 책임을 회피해왔습니다. 규제를 풀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정치권도 개혁보다는 지지세력 확보의 수단으로 규제를 이용해왔습니다.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규제 강화로 책임을 피했습니다. 부처의 행정명령과 고시제도도 발목을 잡습니다. 법령이 아님에도 기업은 이를 따라야 합니다. 법제처는 법리상 부적절하나 현실적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힘을 실어 줬습니다. 이런 일이 쌓이며 한국이 규제 천국이 됐습니다.김태윤: 정치·관료·산업의 철의 삼각지대라고 봅니다. 독특한 방식으로 이들은 서로 비난하며 견제하는 가운데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사고가 생기면 원인을 분석해야지요. 이때 정·관·산 연합에 유리한 포인트를 잡아서 여론을 이끌어 갑니다. 안전에 민감한 국민의 마음을 이용해 안전 문제를 부각시킨 다음 규제를 만들어 냅니다. 그 사이 본질은 뒤로 밀려 잊혀지곤 했습니다.구태언: 아침에 ‘정부는 뭐하나?’라는 논조의 언론 기사를 검색했습니다. 15만건이 뜨더군요. 사회적 갈등을 정부의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는 타율문화가 있습니다. 정부도 이에 기대어 자신의 권한을 강화합니다. 이는 법령의 지속적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산업을 키우기 위해 나온 각종 진흥법이 500여 개나 됩니다. 문제는 이들이 진흥법의 기능을 상실하고 조직·예산·인력의 유지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입니다. 진흥법이 생기면 민간 기업이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규칙을 정해 놓은 셈이지요.
각종 진흥법, 조직·예산·인력 유지 수단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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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위원회 위상 공정위 수준으로 높여야”곽노성: 규제를 너무 쉽게 만듭니다. 최대한 신중하게 도입했으면 합니다. EU상의에서 낸 보고서가 있어요. EU가 새로운 충돌안전기준을 발표했습니다. 신차는 2022년 이후, 기존 차는 2024년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한국은 이 법안을 그대로 베낀 다음 국내에 2020년 9월부터 시행합니다.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놀랐지요. 업체가 따라갈 방법이 없는 법안을 시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지이요.구태언: 규제를 좀 더 차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축구도 월드컵, 각국 리그, 동네 축구의 룰이 다릅니다. 상황·지역·규모에 따라 다른 규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대기업 기준을 중소기업에 적용하면 기업들이 버티질 못합니다. 규제를 내놓 때에 ‘공무원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사업자가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준비해야 합니다.이민화: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였는데, 지금 규제로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혁신을 외치기에 앞서 이를 가로 막는 규제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며 내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