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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손자 증여’] 할증 부담에도 유리한 조건 많아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세대생략증여 최근 5년 간 2배로 증가... 50억원 이상 부자 44% “손자에게 증여”

▎사진 : 연합뉴스
70대 자산가 최성근(가명)씨는 최근 20억원 정도의 재산을 증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최씨는 그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로 했다. 대학 교수인 50대 아들을 건너 뛰고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손자에게 증여하기로 한 것이다. 최씨는 “이들은 이미 사회에 자리를 잡고 있고 나이도 차서 재산을 당장 쓰기보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손자에게 물려줄 게 뻔하다”며 “자산관리 전문가와 상의해 보니 이럴 경우에는 손자에게 증여하는 편이 세금을 덜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최씨처럼 ‘세대생략증여’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세대생략증여란 조부모가 자녀를 건너뛰고 손주 등 직계비속에게 직접 재산을 증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기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두관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세청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총 2만8351건의 세대생략증여가 있었다. 증여액은 약 4조8439억원이다. 2013년 4389건, 7590억원이던 세대생략증여 건수와 증여액은 2017년에는 8388건, 1조4829억원으로 약 2배가량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분할증여 효과로 누진세 회피


세대생략증여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고령 인구의 자산 증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20년 상속을 통한 세대 간 자산 이전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연간 60조원의 재산이 상속·증여(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되는 것을 감안하면 급격히 늘어나는 셈이다. 이경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재산을 물려준 자산가 중 60세 이상의 비중이 90% 이상”이라며 “본격적으로 세대 간 자산 이전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손자 증여의 의향을 가진 자산가도 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8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상속·증여 대상을 결정한 응답자 중 보유 자산을 자녀에게 상속·증여하겠다고 응답한 한국 부자의 비중이 84.9%로 가장 컸다. 다음으로 배우자 47.2%, 손자녀 22.6%, 형제·자매 2.8%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손자녀를 상속·증여 대상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전년 대비 10.6%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고액 자산가일수록 손자 세대에게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이들이 더 많았다. 금융자산 50억원 이상 부자의 경우 손자녀에 상속·증여하겠다는 응답자가 43.5%로 금융자산 10~50억원 부자 대비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세대생략증여가 증가하는 이유는 고령화로 자산 증여 인구가 늘어난 데다 자산 증여 시점이 과거보다 늦어지면서 손자 세대에게 바로 자산을 물려주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증여 규모가 큰 자산가일수록 아들 세대 역시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이기 때문에 자산을 증여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시간을 두고 두 번 증여세를 내는 것보다 할증을 포함해 한 번만 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세금 부담이 더 적을 수 있다는 납세자들의 계산이 깔려있다.

절세 측면에서 세대생략증여가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니다. 국내법상 손자에게 증여할 경우에는 증여세를 30% 더 내야 한다. 가령 성인인 자녀에게 1억원을 증여할 경우 5000만원을 공제하고 5000만원에 대해 10% 세율이 적용돼 자녀가 내야 할 증여세는 세액공제를 제외하면 500만원이다. 이와 달리 성인인 손자에게 증여하면 500만원에 30%가 가산되기 때문에 손자가 내야 할 증여세는 650만원이 된다. 특히 미성년자인 손자에게 20억원을 넘게 증여하는 경우 40% 할증 부담이 있다.

하지만 할증에도 자녀보다 손자에게 증여하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가 있다. 일단 조부모의 재산을 자녀 세대가 쓰지 않고 고스란히 손자 세대에게 다시 증여하는 경우다. 1억원을 증여한다면 가정하자. 증여공제가 없다고 가정할 때 2대에 걸쳐 증여하면 총 세율은 20%이지만, 세대생략증여를 하면 13%가 된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의 가치가 앞으로 더 커지거나 증여·상속세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세대생략증여를 하는 것이 시간을 두고 두 번에 걸쳐 증여하는 것보다 증여세를 줄일 수 있다.

증여규모가 큰 경우 분산증여로 세율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재산을 손자에게 몰아주지 않더라도 아들·며느리·손자 등 여러 명에게 나누어 증여할 경우 과세표준 구간을 낮춰 낮은 세율을 적용 받고, 증여세 면제한도도 각각 따로 적용 받을 수 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그의 장모가 딸과 외손녀에게 건물 지분을 나눠 증여해 증여세율을 40%에서 30%로 낮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자녀에게 이미 10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이 많을 경우에도 손자 세대에 증여하는 것이 유리하다. 동일인으로부터 10년 이내에 증여 받은 재산은 모두 합산돼 누진세율(10~50%)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자녀에게 사전증여를 통해 상속세를 절세하려면 증여하고 사망 시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상속인이 아닌 손주에게 증여한 재산은 증여일로부터 5년만 지나면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에 합산되지 않기 때문에 증여하고 5년 내에 사망하지 않는다면, 사전 증여를 통해 상속세를 절세할 수 있다.

부의 대물림 vs 조세 형평 논쟁도 치열

세대생략증여가 늘면서 이를 둔 논쟁도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시각에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김두관 의원은 “미성년자들이 건물주가 되고, 주식 배당소득으로 몇억원씩을 받아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건물이나 주식에 대한 증여는 재산 증식뿐 아니라 실제 수익의 귀속이 부모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은 만큼 미성년자 세대생략증여에 대해 증여세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정의당이 세대생략증여 할증 과세를 30%에서 50%로 확대하는 내용의 자체 세법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과 달리 세대생략할증과세를 폐지하거나 오히려 완화해야 한다는 반대 입장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세대생략할증과세의 국제적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세대생략증여 할증이 세계적으로 한국·미국·일본에서만 존재하고 있다”며 “그나마 미국·일본의 경우 공제·특례 등의 배려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한국의 현행 제도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 제도는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다른 상속 관련 제도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자산의 적절한 활용이나 국제 조세경쟁력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469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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