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재산권 침해” 주장… 대한항공·아시아나 “유효기간 충분히 조정”
▎박순장 소비자주권 소비자법률센터 팀장(가운데)이 2월 14일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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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항공기를 타면 마일리지(mileage)가 쌓인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국적기는 물론, 이들 항공사와 제휴를 맺은 외국 항공사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항공 마일리지는 여행 거리와 좌석 등급에 따라 일정 비율로 적립해 주는 일종의 보너스다. 소비자는 마일리지를 적립해 두었다 항공권을 구입하거나 항공사 연계 호텔 등을 이용할 때 현금처럼 쓸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이렇게 쌓였던 마일리지가 1월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10여 년 전 항공사가 약관을 바꿔 예정됐던 일인데, 막상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마일리지가 소멸하기 시작하면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한 시민단체는 최근 마일리지를 돌려 달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본격적으로 마일리지가 소멸하면 집단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자 공정거래위원회는 마일리지와 관련 항공사의 불공정 거래 여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당분간 항공 마일리지 소멸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논란 일자 공정위도 조사 착수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2월 14일 서울남부지법에 소멸한 항공 마일리지를 지급하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측은 “마일리지는 소비자가 경제 활동을 통해 적립한 재산이므로 이를 소멸시키는 것은 소비자의 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고객의 재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한 이후 20여 년 간 운영해오다, 2008년께 약관을 개정하고 각 사의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제한했다. 당시 도입을 추진 중이던 국제회계기준(IFRS)에서는 마일리지가 부채로 잡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2008년 7월 1일,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10월 이후 적립한 마일리지가 올해 1월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법률센터 팀장은 “불공정한 약관을 근거로 소비자가 경제 활동을 통해 적립한 마일리지를 소멸시키는 것은 민법과 약관에 관한 법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의 규정을 위반한 불공정한 행위”라고 주장했다.앞서 지난해 말에는 항공 마일리지와 관련 또 다른 시민단체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박삼구 아시아나항공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2008년 당시 시장 점유율이 90.3%였던 두 항공사가 IFRS를 핑계로 일방적으로 약관을 개정한 것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소비자의 이익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항공권은 제한돼 있고, 항공권 구매 외 영화관이나 마트 등에서 사용할 때는 마일리지의 가치가 확 떨어져 소비자에게 현저히 불리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사에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본사 현장조사를 통해 마일리지 운영과 관련한 회계 자료 등을 확인했다.두 항공사 측은 억울해 한다. 무엇보다 2008년 충분한 조정을 거쳐 유효기간을 설정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제시했고, 아시아나항공은 기본 5년에 우수회원에 대해서는 2년을 연장해 총 7년을 제시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 기간이 짧다고 보고 2010년 두 항공사 측에 개선안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마일리지 유효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약관을 개정할 당시 시민단체와 공정위의 검토, 조정 등을 충분히 거쳐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정한 것”이라며 “유효기간 10년은 세계 항공사 중에서 최장”이라고 말했다. 델타항공처럼 마일리지 유효기간이 없는 항공사도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항공사가 유효기간이 있고 유효기간도 3년 이내로 짧은 편이다.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등은 마일리지 유효기간이 12~18개월에 그친다. 루프트한자와 에미리트항공 등은 3년 정도다.그렇더라도 두 항공사는 마일리지 소멸로 부채탕감이라는 이득을 보면서 소비자 혜택은 줄여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여름 휴가철 등 항공 수요가 집중된 시기에 마일리지 좌석 비중을 줄이거나, 마일리지 공제율을 인상하는 식이다. 당장 아시아나항공은 1월 25일부터 유료좌석 마일리지 공제율을 노선별로 1000~5000마일 인상했다. 예컨대 종전에는 4000마일(동·서남아시아 노선 기준)이면 일반석보다 앞뒤 간격이 10㎝가량 넓은 좌석으로 옮겨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5000마일을 줘야 한다. 이에 대해 항공사들은 “외국 항공사와 유사한 수준으로 현실화한 것”이라며 “마일리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최근 논평을 내고 “소비자의 재산권 실행은 제한적인데 반해 항공사의 이익은 크다”며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의 항공 마일리지 재산권 보호를 위해 실효적 대책 마련과 적극적 관리 감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소멸 미뤄지면 부채비율 상승 불가피관련 업계에서는 최근의 논란으로 마일리지 소멸 시기가 뒤로 미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좌석 수에 의도적으로 제한을 뒀다는 증거가 발견되면 이용자의 사용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항공사의 부채 감소 역시 지연될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말 부채비율이 600%와 500% 수준”이라며 “올해 항공기 리스와 관련한 회계기준도 변경된 마당에 마일리지 관련 부채를 그대로 안고 가면 부채비율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