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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8) 화를 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인 화를 내라 

 

화 표출할 때 적당한 때와 방식 사용해야… 효과적인 화 내는 6가지 룰 기억할 만

▎사진:gettyimagesbank
언젠가 신부님이 운전하는 차를 탄 적이 있다. 어느 행사에 참석했는데 돌아가는 방향이 같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옆 차선에서 깜박이도 켜지 않은 차가 훅 끼어드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얼른 비켰기에 망정이지 사고가 날 뻔했다. 어어 하는 사이 ‘범행차량’은 또 다른 차선을 사뿐사뿐 넘나들며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신부님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 또한 상당히 놀란 터였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아까 뭐라고 하신 것 같은데 제대로 못 들었다”고 하자 “아, 그거요? 그냥 화가 나서 한마디 했다”며 운전대 옆에 붙여 놓은 조그만 종이 쪽지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1-나쁜 자식, 2-진짜 나쁜 자식, 3 그래 지옥에나 가라’ 같은 내용이 10번까지 적혀 있었다. 내가 뭐라고 묻기 전에 그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리는데 아까 했던 거, 다시 한 번 해볼까요?” 하더니 곧바로 시작했다. “이런 이와삼!, 에이 이와삼!” ‘이와삼’’은 ‘2와 3’을 뜻한다. 그러니까 신부는 ‘이 진짜 나쁜 자식, 그래 지옥에나 가라!’라고 한 것이다. 욕은 아니지만 사실상 욕인 ‘대체 욕’이었다.

“에이, 이와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필요한 화를 잘 구사했던 경영자로 꼽힌다. 1980년대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집무실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명색이 신부라 욕은 못 하겠고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하하하. 100%는 아니지만 90% 정도는 효과가 있어요.” 해보니 괜찮다 싶어 둘이서 번갈아 가며 “에이, 이와삼”을 몇번씩 했다. 서로 한참 웃었고 실제로 기분도 좀 풀렸다. “참고 참으면 속에서 쌓이고 쌓여 엉뚱하게 터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풉니다.”

그날 나는 중요한 두 가지를 배웠다. 화를 내는 게 꼭 나쁜 게 아니라는 것과 어떻게 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견디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속에서 욱 하고 솟구쳐 오르는 화(火)를 참는 것이다. 말 그대로 속에서 불이 확 일어나는 화를 참자니 내 속이 타고, 토해내자니 상대가 상처를 입는다. 토해낸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조자룡 헌 칼 쓰듯 걸핏하면 화를 내는 이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보통은 ‘좀 더 참을 걸’ 하는 후회가 막급하게 밀려온다. 더구나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속에서 솟구친다고 그대로 토해냈다가는 금방 ‘핏대’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이고 평판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러면 참아야 할까?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 일은 밀리고 그걸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찬데, 꼭 잊을 만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속을 뒤집어 놓는다. 특히 문제를 숨기고 숨기면서 키울 만큼 키우다가 터지기 직전에서야 내놓는 이들이 있다. 시간이 있을 때 미리미리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는 듯 ‘이거 터질 것 같다’면서 폭발 직전의 폭탄을 내민다. 지금 밀려 있는 일도 하기 바쁜데 그것까지 발등의 불로 떨어질 때는 정말 속에서 불이 난다.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은 심장병에 걸리기 쉽고, 속으로 삭히는 사람은 암에 걸리기 쉽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감정에 관한 것은 정답이 없으니 아무래도 경험이 최고이지 않을까 싶어 지금까지 틈나는 대로 CEO 자리에 5년 이상 재직하고 있거나 했던 분들에게 물어오고 있다. “화를 내는 게 좋을까요, 내지 않는 게 좋을까요?” 지금까지 얼추 100여 명에게서 대답을 들었는데 추려보면 놀라우리 만큼 내용이 비슷하다. “낼 필요가 있다. 단 ‘잘’ 내야 한다.”

화에는 감정적인 화가 있고 이성적인 화가 있는데, 이들이 말하는 화는 이성적인 것이다. 소모적인 화가 아니라 생산적인 화다. 자기 감정을 남에게 쏟아 부어서 상처를 주거나 숨 막히게 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성과를 위한 것이다. 이제는 심리학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쓴 스캇 펙도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복잡한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분노를 표현할 줄 아는 능력뿐만 아니라 표출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화를 처리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화를 표출할 때는 가장 적당한 때와 방식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더 나은 성과 위해 화 내라


▎심리학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쓴 스캇 펙은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화를 처리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화를 표출할 때는 가장 적당한 때와 방식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단 ‘필요할 때’ 그리고 ‘잘’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화를 내야 할 때는 언제이고 화를 잘 내는 법(기술)은 뭘까? 경영자 중에서 필요한 화를 잘 구사했던 사람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인 듯하다. 그가 화내는 모습을 직접 본 이들의 증언이나 기록을 보면 이들은 그의 화를 호통·호령이라고 표현한다.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좀 더 긴장해서 일하라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임직원들이 그를 무서워했던 건 그가 회장이어서라기보다 그의 지적이 온당했기 때문이었다. 힘 없는 약자를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호통을 칠 때는 벼락이 내리치는 것처럼 혼을 냈지만 나중에 잊지 않고 당사자를 불러 왜 화를 냈는지를 말했고 괜찮은지를 물었다고 하는 걸 보면 소모적인 감정 표출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생산적인 화는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있을 때, 더 나아가야 하는데 만족하고 있을 때, 사소한 것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급박한 상황일 때 필요하고 효과가 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화는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아주 공격적인 행위다. 두려움은 생명체가 다가오는 죽음을 감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감정이니, 이런 두려움을 통해 긴장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공격할 때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초능력을 발휘해서 달리 듯 그런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물론 꼭 언성을 높이거나 벼락 천둥이 치는 듯 화를 내야만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다. 묘한 화내기도 있다. 어떤 사장은 화가 나면 비서에게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고서는 찬송가를 크게 튼다. 닫혀 있는 사장실에서 찬송가가 크게 울려 퍼지는 게 의미하는 건 하나다. 저 안의 주인공이 지금 금방이라도 솟구쳐 나올 듯한 화를 참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 당연히 건드리면 큰 일 난다는 걸 모두 다 안다. 어떤 지시나 명령도 없는데 회사는 조용해지고 조용한 가운데 바빠진다. 저런 사장의 곤두선 신경에 거슬리기라도 한다면? 보지 않아도 뻔한 미래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회사는 조용한 가운데 긴장감이 어리고 생산성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 사장은 사장대로 ‘도’를 닦게 되고 회사는 회사 대로 생산성이 높아지니 일거양득이다. 그야말로 필요한 화가 아닌가 싶다.

불은 모든 걸 태워버리기도 하지만 맛있는 요리도 만들어낸다. 화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감정적인 화가 아니라 이성적인 화라면, 그리고 자주가 아니라 가끔 필요할 때 쓴다면 화는 ‘약’이 될 수도 있다(말 그대로 ‘화약’이니 조심해서 써야 한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왜 화를 내는지 상대나 주변 사람들이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왜 저렇게 노발대발 하는지 모르면 사람들은 억측을 하게 마련이고 더러는 되려 짜증을 내거나 상사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주는 심리적 외면을 하게 된다. 이유를 알고 그것이 일을 더 낫게 하려는 것이라는 걸 알면 대부분의 사람은 반성한다. 화를 일종의 격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인다. 화를 이기지 못해 대뜸 화부터 내면 화는 화대로 나고 효과도 없어진다. 당연히 화를 내는 기준이 뚜렷할수록 효과도 좋다. 기준이 명확하게 사람들 기억 속에 입력되면 웬만해서는 그 선을 넘지 않으려 조심하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이유를 자기 입으로 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보면 그가 얼마나 노련한가를 알 수 있다. 일단 자기 입으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사람은 하수다. 장황한 느낌을 주어 일장훈시나 잔소리로 들리기 쉽다. 노련한 CEO들은 잘 참았다가 상황이 모든 것을 드러내 줄 때, 그들의 표현 대로 하자면 ‘결정적일 때’ 버럭 화를 낸다. 상황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으니 공감은 당연한 일, 화를 내는 것도 그럴 만하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수긍하지 않는 화는 생산적인 화가 아니다.

자신이 화 내는 이유 주변 사람이 명확히 알아야

생산적인 화를 위해서는 ‘불’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CEO의 경험을 추려보면 효과적인 화 내기는 6가지로 이루어진다. 이제는 익히 알려진 3가지 룰(rule)과 여기에 다른 3가지를 더한 룰이 그것이다.

익히 알려진 3가지 룰은 일명 ‘111’ 룰이다. 화를 내야 할 일이 일어난 그 자리에서(1분 내에), 1가지만, 1분만 내라는 것이다. ‘저번에는 왜 그랬어?’ 하면서 다 지나간 이야기를 줄줄줄 끄집어내는 건 현장감은 물론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금 가장 생생하게 서로가 알 수 있는, 그러니까 반성하기 좋은 가장 중요한 1가지에만 화를 내야 효과가 높다. 이럴 때는 주어를 상대가 아니라 ‘나’로 하는 게 좋다. ‘I 메시지’라고 하는 이 방법은 ‘너는’이 아니라 ‘나는’이라고 하는 것이다.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느꼈다’는 식으로 하면 상대의 반발이 줄어든다. ‘그랬어야 했구나’라는 생각을 유도한다. 마지막 세 번째 ‘1’은 늘어지지 않도록 1분만 하는 것이다. 불은 태우면 태울수록 더 타오르고 잘못하면 연쇄폭발로 이어지기 쉽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요리를 할 때 적절할 시기에 불을 꺼 주어야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제 때 멈추는 게 필요하다.

CEO들의 경험에서 추린 나머지 3가지 룰은 ‘111’을 한 다음, 후(後)처리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는 111를 끝낸 다음, 그 자리에 있지 말고 떠나라는 것이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상황은 지속되고 불길은 더 큰 불길을 일으키며 연쇄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대체로 상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 꼼짝 못하게 한 다음 ‘무릎을 꿇리는’, 거의 정해진 수순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더라도 강제로 무릎을 꿇리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상대는 모욕감 같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고 깊을수록 그런 상처에 앙금이 깊게 어린다. 앙금은 대개 나중에 앙갚음으로 이어져 악순환의 단초가 되기 쉽다.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게 행동 교정에 가장 좋다(게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그렇듯 몸을 던져 반격을 가할 수도 있다. 노련한 고양이는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쥐를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는다).

생산적인 화는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이기기 위해 내는 것이다. 그러니 해야 할 말을 간단명료하게 한 다음 바람처럼 휙 그 자리를 떠나는 게 좋다. 그래야 상대는 강풍에 휘청한 듯한 기분이 들고, 떠난 여운이 마음에 남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곱씹을 수 있다(더하여 창피함도 적게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져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언젠가 다녀온 적이 있거나 가고 싶은 곳을 담은 사진이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의 활짝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 같은 걸 책상 같은 데 두고 보는 것이다. 보는 순간 기분이 그야말로 샥~ 바뀔 수 있는 그런 물건을 보면 이상하게도 더 이상 불길이 타오르지 않는다. 나는 바닷가에 갈 때마다 아주 매끄러운 조약돌을 몇 개씩 가져오곤 하는데 이걸 책상에 두고 감정이 헝클어질 때마다 만져 보곤 한다.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아는 분들에게도 선물한다. 감정의 전환, 기분전환이 되게끔 말이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화를 낸 일을 과거의 일로 돌리고 ‘원 위치’하는 것이다. 잘 하자고 낸 화이니 앙금을 갖지 않고 당사자를 평소대로 대하는 것이다. 화를 마음에 담아두면 미운 감정이 살아나 갈수록 보기 싫어지는 마음을 만들고, 이게 은연 중 행동으로 드러나 당사자와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고 만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면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상대도 곧 응당한 대응을 한다.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상대가 부하이면 대체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저번에는 죄송했습니다”라는 말을 하게 마련이다. 그럴 때 넓은 품으로 가볍게 품어주면 생산적인 화가 마무리될 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좋아진다.

물론 그런다고 한 번 화 내는 걸로 끝나는 일은 거의 없고, 쳇바퀴 돌 듯 매 번 다시 화를 내야 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척을 지자고 화를 낸 게 아니니 관계를 회복해 놓아야 또 화를 내더라도 효과가 있다. 척 진 상태에서 화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도박의 고수는 시간과 판돈을 정해놓고 게임을 시작한다. 아무리 고수라도 잃을 때가 있기 때문에 판돈을 정해두고, 그걸 잃으면 미련 없이 일어선다. 사실 살아가는 일도 일종의 도박과 같은 속성이 있으니 이렇게 원칙을 정해두고 시작하면 뒤탈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귀 먹고 눈 멀지 않으면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하해(河海)와 같은 마음, 그러니까 커다란 강과 바다 같은 넓은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조직을 이끄는 위치라면 더 그렇다. 중국 속담에 ‘귀 먹고 눈 멀지 않으면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웬만한 일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 참아야 하고 품어야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인재란 인재들이 모두 나오는 삼국지에서 출중한 기량을 지녔던 여포는 이걸 못해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사람들을 자기 부하로 만들기는 했지만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다.

요즘이라고 다를까. 사람들 속에서 산다는 건 언제나 마음속에 이는 거센 풍랑을 이겨내는 일이다. “뛰어난 인재들일수록 사람을 미치게 하는 행동을 하는 편이라 (리더라면 이런 걸) 어느 정도 감내할 필요가 있다.” 미국 MIT대학의 로버트 오스틴, 리처드 놀란 교수의 말이다. 아, 그런데 뛰어난 인재가 아닌데도 사람 미치게 하는 이들까지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수밖에!

1473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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