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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외감법에 재계 ‘회계쇼크’] 박삼구 회장 전격 퇴진으로 불똥 튀어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감사보고서 수정 과정에서 추가 부실 드러나… 사업보고서 제출 미루고 주총 연기하는 상장사도 속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퇴진한 3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금호아시아나 본사앞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점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개정 외부감사법(외감법)의 영향으로 감사보고서 작성이 깐깐해지면서 사업보고서 제출을 법정 시한 이후로 미루거나 정기 주주총회를 4월로 연기하는 상장사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29일 기준으로 7개 상장사가 감사보고서를 확보하지 못해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을 4월 8일까지 연장하겠다고 신고했다. 지난해 주주총회 시즌에 사업보고서 제출 연기를 신청한 상장사는 3개에 불과했다. 특히 이번 주총 시즌 한 달 동안 60개(3월 22일 기준) 기업이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지연 공시를 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제출 지연 공시 기업 수는 21개에 그쳤다.

이런 현상은 올해부터 새로운 외감법이 적용된 영향이 크다. 회계감사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많은 기업이 감사의견으로 비적정 의견을 받거나, 뒤늦게 재무상태를 정비하느라 사업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 사업보고서 제출 연기를 신청한 상장사는 차바이오텍과 경창산업, 청담러닝, MP그룹, 에이앤티앤, KJ프리텍, 동양물산 등 모두 12월 결산 법인이다. 이들은 감사보고서 작성이 지연돼 사업보고서를 법정 제출 기한인 4월 1일까지 제출하기 어려워지자 기한 연장을 신고했다. 자본시장법(제159조)에 따르면 상장사는 감사보고서가 담긴 사업보고서를 각 사업연도 경과 후 90일(올해는 4월 1일) 이내에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제출해야 한다. 거래소 규정상 4월 1일까지 사업보고서를 내지 않은 상장사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며 그 후 10일 이내에(올해는 4월 11일까지) 사업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상장 폐지된다. 다만 제출 기한을 5영업일 이내까지(올해는 4월 8일) 연장하는 신고를 한 후 기간 내에 제출하면 관리종목 지정에서 면제된다.

사업보고서 제출 연장 신고한 기업 7개


사업보고서 제출 지연 공시로 관련 종목의 주가도 춤을 췄다. 코스닥 상장사 디젠스는 사업보고서를 내지 못하다 ‘적정’ 의견으로 지각 제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상한가를기록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3월 22일 기준으로 코스닥 상장사 중에서는 알티캐스트·셀바스AI·에치에프알·이엘케이·경남제약·바이오빌·차바이오텍·청담러닝·에스에프씨 등 40여 기업이 사업보고서를 늦게 제출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도 웅진·삼화전자공업·크라운해태홀딩스·부산주공·동부제철 등 20곳이 사업보고서 제출 날짜에 맞춰 내지 못했다. 주총을 연기하는 기업도 나왔다. 올해 기한 연장을 신청한 7개사 중 에이앤티앤은 당초 3월 27일 정기 주총을 열었다. 그러나 당일까지 감사 절차가 끝나지 않아 재무제표 승인이 불가능해지자 출석 주주 전원의 찬성을 얻어 사업보고서 제출 연장 기한인 4월 8일에 주총을 다시 열기로 했다. 4월 8일 하루에 감사보고서를 담은 사업보고서를 내고 주총까지 열어야 관리 종목 지정을 피할 수 있다.

이번 ‘회계쇼크’ 사태의 최대 관심사는 아시아나항공이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전격 퇴진으로까지 불똥이 튀었기 때문이다. 주총을 하루 앞둔 3월 28일 그룹 회장직과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3월 21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삼일회계법인의 ‘한정’ 의견 감사보고서 제출이 기폭제였다. 아시아나항공은 3월 22일 주식 거래가 정지됐고, 25일 관리 종목으로 지정됐다. 26일 감사 의견을 ‘적정’으로 정정한 감사보고서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하면서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감사의견 ‘한정’ 여파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수정한 최종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부채(연결기준)는 수정 전보다 1400억원 정도 늘었고, 부채 비율은 625%에서 649%로 증가했다. 영구채 발행과 같은 재무개선 작업도 타격을 받으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로 ‘한정 파문’이 확산됐다.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는 아시아나항공이 채무 불이행 사태에 빠지면 그룹이 흔들리는 상황에 빠지기 때문에 박 회장은 사퇴라는 강수로 산업은행의 지원을 끌어내려고 했다는 분석이다. 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3월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로 사내이사직에서 쫓겨난 것과 같은 ‘불명예 퇴진’을 막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박 회장은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2002년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18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온다.

외감법 바뀌고 고의 분식회계 처벌도 대폭 강화

이렇게 상장사들이 ‘회계쇼크’를 겪고 있는 건 2018 회계연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개정 외감법으로 예년보다 회계 감사 집행기준이 깐깐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새 외감법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건을 배경으로 탄생한 만큼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책임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장사나 소유·경영 미분리 대형 비상장 주식회사는 6년 간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한 후 3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해야 하는 주기적 지정 감사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 3월 1일부터 고의 분식회계 처벌이 대폭 강화됐다. 감사인이 기업의 분식회계를 묵인할 경우 최고 10년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벌금도 부당이득의 최대 3배 이하로 증가하는 등 처벌 수위가 대폭 높아졌다. 이렇게 되자 아시아나항공 같은 대기업마저 최근 비적정 감사 의견을 받는 등 회계법인들이 전례 없이 깐깐한 감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감사인은 기업이 해외 자산을 부풀려 신고하든지가, 앞으로 발생할 미실현 이익을 당기에 반영하는 등의 회계처리 방식을 눈감아준 측면이 있다. 구매 계약서나 기업이 가진 모든 자산을 일일이 평가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감사 의견을 내려면 기업이 제출한 회계자료를 믿고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회계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형 회계법인 소속의 한 회계사는 “외감법이 1982년 생긴 이후 현재까지 기업이 제공하는 자료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민감한 자료 제공도 거부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감사보고서에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 대부분은 기업이 제공한 재무정보가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회계법인도 영업 차원에서 이런 문제에 눈감고 관행적으로 ‘봐주기식 감사’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기업으로부터 감사인 지정을 받으려면 기업 입맛에 맞는 감사 결과를 내놔야 해서다. 이에 따라 정부는 회계법인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한편 실제 집행도 엄격하게 한다는 입장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월 25일 ‘회계감리 제재양정기준 운영 방안 간담회’에서 “고의·중과실의 중대 회계부정은 일벌백계할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 등 대규모 분식회계가 계속 발생했지만 미온적 처벌 등으로 중대한 회계부정이 효과적으로 제어되지 않았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실제 2016년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대 회계 분식을 저지른 것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는데, 당시 감사인이던 안진회계법인은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해마다 감사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안진회계법인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리며 비판을 받았다. 검찰은 안진회계법인에는 ‘대우조선의 회계 부정을 묵인, 방조, 지시했다’는 협의로 2017년 3월 ‘12개월 신규감사 업무정지’ 징계를 내렸지만 안진은 이에 불복, 행정소송을 통해 승소했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지는 등 외감법의 실효성이 도마에 오르며 정부도 앞으로는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제공하는 회계자료가 부실한 측면이 있지만, 이에 의존했다가는 자칫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며 “회계사들도 앞으로 감사 눈높이를 높이지 않을 수 없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회계법인들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자 기업의 부실한 회계처리 방식도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한정’ 의견을 받은 감사보고서상 영업이익은 886억원, 당기순손실은 1050억원이다. 그러나 재감사를 통해 ‘적정’ 의견을 받은 보고서의 영업이익은 282억원, 당기순손실은 1958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3분의 1 토막 났고, 당기순손실은 2배 가까이로 늘었다. 동부제철도 사업보고서 제출일을 3월 21일에서 27일로 미뤘는데, 결국 안진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을 받았다. 회수 가능한 자산의 규모와 적정성 등을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안진회계법인은 “유형자산의 회수가능가액과 추정내용연수의 적정성, 이연법인세자산 인식 조건의 충족 여부에 대해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증거를 입수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기업에 비해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감사의견 ‘거절’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감사의견 ‘거절’은 주식거래 정지 및 상장폐지 사유다. 정부는 외감법 강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상장폐지를 1년 간 유예해주기로 했다. 다만 감사의견이 거절되면 채권단의 기한이익상실(EOD) 사유에 해당돼 바로 차입금 회수에 나설 수 있다.

‘회계쇼크’에도 외감법 적용 대상은 확대된다. 자산 120억원 미만, 매출액 100억원 미만, 부채 70억원 미만, 종업원 100인 미만 등 4개 조건 중 3개가 충족되지 않아야 외부감사를 피할 수 있다. 유한회사는 사원(주주) 50인 미만 조건을 포함해 5개 요건 중 3가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야 외부감사에서 면제된다. 주식회사는 전체 법인 26만개 중 3만개(6%)가, 유한회사는 전체 법인 2만5000개 중 1900개(7%)가 외감 대상에 포함된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상장사 가운데 감사의견 적정 비율이 90%가량 나왔다. 자율수행제라는 테두리 안에서 기업이 감사인을 마음대로 바꿨기 때문에 회계사로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웠다”며 “앞으로는 기업들도 회계 역량을 키우고 내부 회계관리제도를 강화해야 하며, 감사 선임에 소액주주 의견도 반영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회계비용 부담 커진다” 우려도

새 외감법이 중소·중견 기업의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의 상장 여탈권을 쥐고 있는 회계법인의 권한이 더욱 강화돼 감사 보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에서다. 코스닥 상장사의 한 임원은 “회계법인이 표준감사시간제를 이유로 추가 보수를 요구하거나, 회사의 자산가치 평가를 회계법인에 맡기지 않으면 인정해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중소기업으로서는 회계법인이 저승사자나 다름없어 이런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회계법인이 기업이 만든 감사보고서를 반려해 재감사를 해야 하는 경우 비용이 20억~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감사보고서 검토가 대기업보다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아 회계법인이 요구하는 자료를 짧은 시간 안에 조사해 제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으로의 집중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인회계사 40명 이상인 회계법인만 상장사 외부감사를 수임할 수 있도록 한 감사인 등록제 접수가 5월 1일부터 시작돼서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밝힌 ‘2018년 외부감사대상 회사 및 감사인 지정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4대 회계법인을 감사로 지정한 기업은 342사(48.9%)로 전년(233사, 42.7%) 대비 6.2% 증가했다.

1478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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