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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빅딜’에 흔들리는 조선협회] 빅딜에서 소외되고 회장도 겨우 뽑아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전임자 임기 만료에도 유임 해프닝… 조선 업계 ‘1강1중’ 재편으로 역할 축소 불가피

▎지난 3월 8일 서울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점에서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이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국내 조선 업계를 대변해온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이하 조선협회)가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 조선협회는 4월 10일 임시총회를 열고 이 사장을 17대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2021년 4월 14일까지 조선협회 회장직을 맡을 예정이다. 조선협회는 이번 회장 선임에 어려움을 겪었다. 협회는 당초 3월 말 새로운 협회장을 선임할 계획이었지만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의 여파로 4월 중순에서야 새 회장을 선임했다. 조선 업계에서는 회장 선임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며 조선협회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자조 섞인 해석까지 나온다.

사상 초유의 회장 선임 지연: 이성근 신임 대우조선 대표이사의 협회장 취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전임 회장인 강환구 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3월 24일 정해진 임기를 마치고도 보름 이상 회장직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간 조선협회 회장이 유임된 적은 있지만 별도의 유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기를 넘겨 재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협회 회장직 선임이 지연된 것이 극히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특히 강환구 전 사장은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협회 회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해 임기 종료까지 회장직을 맡기로 했었다.

조선협회 회장 선임이 지연된 것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추진의 영향이다. 조선협회는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차기 조선협회장으로 정성립 전 대우조선 사장을 낙점했다. 조선협회 회장직은 주요 회원사 대표이사가 돌아가며 맡아왔다. 14대 회장을 현대중공업(김외현 전 대표이사)이, 15대 회장을 삼성중공업(박대영 전 대표이사)이 맡았다. 이어 16대 회장을 다시 현대중공업(강환구 전 대표이사)이 맡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대우조선 대표이사가 회장을 맡을 차례다. 특히 정성립 전 사장은 국내 조선 업계가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을 지난해 업계 유일의 흑자회사로 일궜으며, 조선 업계 사장 중 ‘맏형’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임 협회장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정 전 사장은 조선협회 회장에 내정된 상태였다. 조선 업계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조선협회 측은 지난 1월 초 정성립 사장을 찾아가 17대 협회장에 취임할 것을 권유했고, 정 사장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곧 틀어졌다. 발단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추진, 이른바 ‘조선 빅딜’ 때문이었다. 1월 30일 한 매체의 보도로 현대중공업과 한국산업은행이 빅딜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다음날 현대중공업과 산은은 이를 공식화했다. 당시 대우조선 대표이사직 임기를 2년 이상 남겨뒀던 정 전 사장은 이내 사의를 밝혔다. 이로써 정 전 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려던 조선협회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이성근 사장 선임 됐지만…: 이 사장은 조선협회장 취임 일성으로 “한국 조선 업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관련 회원사들과 함께 협회 차원에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노사 화합, 대·중·소 조선소 상생활동 등을 통해 한국 조선산업이 한층 더 성숙되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성립 사장의 후임인 이 사장이 조선협회 회장직을 맡게 됐지만 업계의 우려는 크다. 우리나라 조선 업계의 지형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현대중공업그룹에 인수될 예정인 대우조선의 대표이사가 조선협회를 이끄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물론 조선 업계에서 이 사장의 능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는 평생을 조선소에서 바친 조선 업계의 대표적 전문가다. 특히 대우조선 경영위기가 시작된 2015년부터 조선소장을 맡아 생산 현장 안정화, 주요 프로젝트의 적기 인도, 효율적 생산 기반 구축, 자구계획 이행 등 경영정상화에 공을 세웠다. 문제는 조선업계의 지형변화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 인수가 완료됐을 때 이 사장이 대우조선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영권을 현대중공업그룹이 쥐는 만큼 현대중공업 출신의 인사가 대우조선 경영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사장은 1979년 대우조선에 입사해 지금까지 일해온 ‘대우맨’이다. 만약 이 사장이 ‘조선 빅딜’ 완료 후 대우조선 대표 이사직을 사임하게 된다면 조선협회는 또 다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관례를 보면 후임 대표이사가 이어서 맡게 되는데, 이 경우 사실상 현대중공업의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할 줄어드는 조선협회: 조선협회는 어렵사리 새 회장을 선출하며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업계에선 조선협회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조선 업계가 기존 3강 체제에서 1강1중 체제로 변화하면서 조선협회의 위상과 역할이 애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77년 ‘한국조선공업협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조선협회는 이른바 ‘빅3’ 체제에서 만들어진 단체다. 조선 업계가 본격 성장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국내 조선 업계는 빅3 체제였다. 협회는 3개 업체와 한진중공업, 이후 만들어진 중견·중소 조선소가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세를 키웠다. 협회를 통해 회원사들은 글로벌 조선 업계의 정보를 공유하고 시장 상황을 예측했으며, 정부에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로 국내 조선 업계가 1강1중 체제로 재편된다면 이런 기능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산하 ‘한국조선해양’이 조선협회 회원사 8곳의 과반에 달하는 4곳을 거느리게 되기 때문이다. 빅3 체제에서 유지됐던 균형은 깨진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의 인적분할로 만들어지는 중간지주회사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을 자회사로 두게 된다. 조선협회 회원사 중 남은 네 곳은 삼성중공업과 한진중공업, 성동조선해양, 대선조선 등인데 규모나 현재 경영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네 곳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업계에선 이번 회장 선임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조선협회의 떨어진 위상이 드러났다고 분석한다. 현대중공업과 산은의 ‘빅딜’ 논의에서 제외된 주체는 정성립 전 사장 뿐만이 아니다. 정 전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하려고 했던 조선협회 역시 이번 빅딜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2016년 조선 업계 구조조정 관련 컨설팅을 조선협회를 통해 의뢰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실제 조선협회 조직 축소도 이어지고 있다. 2016년 말 상근부회장직을 없앴고 최근에는 전무가 사퇴하며 상무가 사무국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조선 업계 시황이 살아나고 있는 데도 조직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은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 빅딜로 사실상 국내 조선 업계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독주체제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업황이 살아나더라도 조선협회의 위상이 예전만큼 커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1480호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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