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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넘어 세계 노리는 한국형 웹툰 플랫폼] 라인·카카오, 디지털 만화 강자로 떠올라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일본 메이저 출판사 밀어내고 1·2·4위 석권… ‘게이미피케이션’에 기반한 생태계 확대 전략

▎국내 유명 IT 업체들은 무료 서비스로 일본 만화 앱 시장을 석권해 나가고 있다. / 사진:각 사
드래곤볼·슬램덩크·원피스…. 일본은 글로벌 만화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일본의 만화 시장 규모는 26억4000만 달러(약 3조원, 2016년 기준)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세계 시장의 40%에 달한다. 2~5위 미국·독일·프랑스·영국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크며, 한국의 10배에 달한다.

콘텐트 생산량 역시 방대하며 수준도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스트인더셀(공각기동대)·알리타배틀엔젤(총몽)·엣지오브투모로우(올유니드이즈킬)·고질라·데스노트 등 일본 만화가 원작인 할리우드 영화도 많다. 이니셜D·진격의거인 등 여러 작품이 게임·드라마로 제작돼 세계적으로 히트했다.

이런 일본 만화 시장에서 최근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 웹툰 시장에서 라인·카카오재팬·NHN재팬 등 한국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 상위권을 석권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만화 앱 1위는 218억엔의 매출을 올린 ‘라인망가(LINEマンガ)’가 차지했다. 2~10위의 매출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1.5배 많다. 라인은 2013년 4월 일찌감치 앱 만화 서비스를 시작해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2위는 카카오재팬의 ‘픽코마(ピッコマ)’로 57억엔의 매출을 기록했다. 픽코마는 ‘고마(·만화 컷을 뜻하는 일본어)를 고르다(pick)’라는 뜻이다. 15억엔의 매출로 4위를 기록한 ‘코미코(コミコ)’는 NHN재팬이 운영하는 서비스다. 일본 만화 출판의 최강자 슈에이샤(集英社)의 ‘소년점프플러스’는 24억엔 매출로 3위, 일본 토종 앱 ‘망가렌타’는 11억엔으로 5위에 각각 올랐다.

한국 업체들이 선전하는 이유는 ‘게이미피케이션(Gami fication)’에 기반을 둔 생태계 확대 전략에 있다. 게이미피케이션이란 관심 유발, 마케팅, 요금 지급 등 IT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게임의 매커니즘을 접목하는 것을 뜻한다. 모바일게임이 대부분 무료지만 게임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처럼 일본에 진출한 국내 웹툰 업체들도 부분 유료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일단 무료로 만화를 볼 수 있게 해 사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인 후 연재 미리보기 등에는 요금을 내야 하는 방식으로 일본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라인망가의 경우 서비스 출시와 함께 100여 개 중소 출판사·레이블을 통해 10만점 이상의 만화를 제공했다. 독자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출판사들은 물론 유명 출판사들도 라인망가 플랫폼에 속속 우군으로 참여했다. 킹덤·프리즌스쿨·신주쿠 스완·스타우트 서바이벌 등 인기작들이 라인망가를 통해 유통됐다. 모바일 게임마냥 매일 접속할 때마다 일정 수의 ‘무료 이용권’을 제공하는 등 독자들의 지속적 방문을 유도했다. 라인은 라인망가가 크게 성공하자 사업부를 ‘라인 디지털 프론티어’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했다. 지난해 7월 878억원을 출자하며 적극적인 마케팅에도 나서고 있다.

시간 지나면 무료 이용권 충전


2016년 4월 뒤늦게 서비스를 시작한 픽코마 역시 무료 서비스로 급성장했다. 고단샤(講談社)·아키타쇼텐(秋田書店) 등 일본의 대형 출판사 115개와 제휴해 출간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작품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를 통해 단숨에 3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라인망가와 차이점이라면 무료 이용권을 작품마다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충성도를 높였다. 기존 만화 앱들은 웹툰의 길이나 인기, 단행본 가격과 상관없이 이용권을 사용하면 ‘1회’ 연재분을 볼 수 있게 했다. 이에 비해 픽코마는 사용자 동향 데이터를 참고해 1회마다 가격을 차등화하고, 무료 이용권의 재충전 시간 등을 다르게 설정했다. 만화의 섬네일도 정기적으로 바꿔 독자의 흥미를 끌어내는 전략도 먹혔다.

NHN엔터테인먼트의 코미코는 월간순이용자수(MAU)는 1~3위권이지만 수익성은 처지는 편이다. 픽코마와 일본 대형 출판사들의 공세로 영향력은 초기보다 줄며, 현재는 수익성 강화 등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ICT 기업들의 마케팅과 생태계 구축 전략에 일본 현재 만화 앱들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일본 최대 출판 만화사 슈에이샤는 소년점프플러스에 드래곤볼·원피스 등 과거 명작을 모두 무료로 풀었지만,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일본의 전자만화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2000억엔 수준으로 성장했고, 올해부터 출판만화 시장을 역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자만화 시장에서는 일본 대형 출판사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전자책 비중이 크다. 그러나 모바일 웹툰 시장이 이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만화 앱 광고 시장은 2015년 41억엔에서 2016년 78억엔, 2017년 100억엔, 2018년 120억엔 등으로 늘었다. 대다수 일본 만화 앱이 인앱 광고를 제한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광고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만화 앱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온라인여론조사기관 ‘마이보이스(My Voice)’가 지난해 1만 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자책 사용자 중 43%가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20대 여성의 경우 80%가, 같은 세대 남성은 60%가 스마트폰으로 웹툰 등 전자책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층은 댓글 등을 통해 작가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웹툰에 매력을 느낀다. 만화책을 볼 때 시선을 ‘Z’자로 돌리는 것보다 스크롤을 밀어 올리는 데 익숙하기도 하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이사는 “끊김 없는 스크롤로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를 전할 수 있다”며 웹툰의 매력을 설명했다. ‘망가’가 출판 만화의 세계 공용어가 된 것처럼 한국형 ‘웹툰’이 디지털 만화의 세계 공용어가 되는 셈이다. 이에 비해 슈에이샤 등 망가의 강자들은 디지털 대응이 늦었다.

망가 강자 슈에이샤, 디지털 대응 늦어

국내 기업들의 일본 웹툰 플랫폼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일본 만화 콘텐트의 주도권 확보로 이어질 가능성도 나온다. 일본의 만화가 등단의 길이 슈에이샤·고단샤 등 일본 대형 출판사에서 웹툰 플랫폼으로 바뀔 수 있어서다. 열린 생태계에서 인기 만화가가 돼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은 이미 한국 웹툰 시장에서 입증됐다. 국내 한 웹툰 작가는 “스타 작가가 되기까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가야 한다”면서도 “좋은 도로가 놓이면 좋은 차들이 다닌다. 일본의 좋은 작가, 콘텐트가 웹툰 플랫폼에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웹툰 업체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태국·대만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영어권 국가, 중남미 지역 등 해외 시장 진출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 2018년 6월 기준 코미코 앱의 글로벌 다운로드 수는 2900만건을 돌파하는 등 세계적으로 웹툰 시장을 새로 개척하고 있다.

1482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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