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변화 물결 거센 미·일 주유소] 인공지능 활용한 셀프 주유소도 등장 

 

급유 규제 심한 일본에서 인건비 절약 차원… 미국에서는 편의점과 동반 성장

#1. 지난해 말 일본 정유사 코스모에너지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셀프 주유소 시험 운영을 시작했다. 주유기마다 장착된 카메라로 운전자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급유를 허가할지 판단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셀프 주유소라 하더라도 안전을 위해 급유 상황을 확인하는 직원이 상주하도록 하고 있어 인건비 절감이 어려웠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인공지능 기술 실용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할 경우 관련 규제를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2. 일본 내 주유소 폐업이 급증하면서 주유소가 한 곳도 없는 지역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본 나라현 가와카미촌(川上村)에서는 인구가 급속이 감소하면서 지난 2017년 마을의 마지막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이에 주민들은 30㎞가량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 주유를 하고 돌아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지역 당국은 폐업 주유소를 넘겨받은 후 지난해부터 연간 90만엔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공공 운영을 시작했다.

주유소의 변화는 국내 주유소만의 고민이 아니다. 한국보다 자동차 산업이 성숙한 일본에서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주유소 감소세가 나타났다. 폐업의 원인은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동차 산업의 환경 변화 속에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주유소는 더 이상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하기 어려워졌다.

전기차 보급으로 주유소 폐업 늘어


일본 주유소 업계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비효율이 10년간 15%가량 개선된다고 보고 있다. 외부 환경 변화가 없더라도 10년에 15%씩 시장 규모가 자연 감소해왔다는 이야기다. 내연기관의 효율과 함께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점도 자동차용 연료 수요 감소 원인이다. 일본 석유연맹에 따르면 일본 내 휘발유·경유 판매량은 지난 2008년 60억 리터를 기록했으나 10년이 지난 2017년에는 52억 리터로 줄었다. 이 때문에 일본 전국석유상업조합연합회에서는 보고서를 통해 “연간 판매량이 50만 리터에 미치지 못하는 주유소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주유 이외의 서비스를 확충해 수익을 낼 활로를 찾고 종합서비스 거점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익 확보가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자 일본 주유소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셀프 주유소를 대거 도입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주유소 이용자 4명 가운데 3명은 셀프 주유소를 이용할 정도로 일반화됐다. 일본 주유소 업계에서는 주유소 한켠에 자동차 정비소를 마련하고 타이어 교환이나 와이퍼 등 관련상품 판매 등으로 수익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그러나 주유소 감소세는 멈추지 않았다. 전기차 상용화는 주유소 폐업을 더욱 부채질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내 주유소는 지난 2017년 말 3만747개로 집계됐다. 정점을 찍었던 지난 1994년 말 6만421개와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이와 달리 같은 기간 전기차 충전소는 급속·일반 충전기를 합쳐 2만9000개 넘게 설치되면서 이미 주유소를 따라잡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에서는 전기차 충전소 건설비용이 주유소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가파른 변화 속에 일본 주유소들은 세차장이나 편의점을 추가하고 있다. 다만 이런 서비스는 주유소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 업체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수익성을 끌어 올리지 못해 폐업을 결정한 주유소 부지는 소규모 중고차 매매 단지나 세차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유소 폐업이 이어지자 주유소가 한 곳도 없는 지역도 발생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서는 주유소가 없는 지방도시나 마을이 3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주유소 과소 지역 대책 협의회를 개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 발생 빈도가 높은 일본에서는 전기 공급이 끊길 경우 주유소가 생존 거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자동차 관련 서비스와 함께 소규모 마트나 우체국을 병설하는 식으로 종합서비스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미국 주유소들은 상황이 다르다. 국토 면적이 넓은 미국에서 주유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급유뿐 아니라 식사를 위한 소규모 식당이나 편의점이 함께 자리 잡으면서 운전자들에게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발전했다. 주유소라고 하면 대형 정유 업체들이 먼저 떠오르는 한국과는 달리 편의점에 가깝다. 실제로 미국 내 편의점 매장 수 15만5000여개 가운데 80%는 주유소와 함께 위치하고 있는 편의점으로 추산된다.

급유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는 주유소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은 미국에서도 동일하다. 대부분의 정유소가 유통 과정을 거쳐 휘발유나 경유를 공급받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또 코스트코나 세븐일레븐 등 유통 업체들이 운영하는 주유소들과 지역 브랜드의 주유소들이 서로 경쟁하는 환경에서 마진은 최소화됐다. 따라서 휘발유나 경유 판매보다는 함께 위치한 편의점에서 상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주유 이외의 분야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미국 주유소들은 서로 다른 특색을 갖는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숙박시설이나 영화관이 설치된 경우도 있다. 또 유통에 방점을 찍고 있는 업체도 많다. 미국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720여 개 주유소를 운영중인 와와(Wawa)는 유제품 배달사업으로 시작한 곳이다. 유제품 판매를 위한 점포 개설을 목적으로 주유소 사업에 뛰어든 후 편의점 형태로 운영했다. 국내에서는 편의점 브랜드로 더 유명한 세븐일레븐과 써클케이 등은 미국에서는 주유소 점포 수 기준으로 항상 상위권에 포함되고 있다.

쉘·쉐브론 등 전기차 충전 장비 설치 늘려

시대 변화에 맞춰 전기차 충전소를 추가하고 있는 주유소도 늘고 있다. 글로벌 정유 업체 쉘은 자사 브랜드의 정유소에 자체적으로 전기차 충전 시설을 시험 중이다. 또 다른 글로벌 정유 업체 쉐브론은 전기차 충전소를 운용 중인 EVgo와 파트너십을 맺고 지난 5월부터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쉐브론 주유소에 충전 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들 업체들은 일단 고객들을 위한 편의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전기차충전소를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495호 (2019.08.0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