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나쁜 일자리’에 갇힌 청년들 

 

최근 신입 직원으로부터 들은 인생 2막의 노인 A씨와 실업급여를 받는 취업준비생 B씨의 이야기다. 올해 67세 A씨는 정부 지원을 받아 바리스타에 도전했다. 지금은 노인들을 고용하는 공공기관에 입점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내린다. 여기 커피가 저렴해 종종 마시러 오는 28세 B씨. 두 달 전 다니던 회사가 폐업해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이번에는 제발 망하지 않을 좀 탄탄한 회사에 취업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쪼개기 ‘알바’ 인생 C씨,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직장인 D씨. 9급 공무원 준비 2년차 29세 C씨는 용돈이라도 벌려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중 사장이 이제는 풀타임으로 고용하지 못하니 근무시간을 줄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식당을 하는 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최저임금이 버겁다며 종업원을 내보낸 후 일이 힘들다며 “허송세월할 거면 서빙이라도 하라”고 잔소리를 하신단다. 대학 동기 중 두 명은 겨우 중소기업에 취업했고, 나머지는 알바를 하거나 취업준비 중이다. 어머니 친구의 공부 잘하던 아들 D씨는 유명 기업에 다니는데, 예전엔 야근 등 일이 많아 힘들다더니 지금은 ‘칼퇴’하면 베트남어를 배운다나. 운동으로 단련하고, 꾸미기도 잘 꾸며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은 비주얼이다.

정부는 최근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일자리 정책 효과로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고 밝히며 올해 연평균 취업자 증가폭을 지난해 말 전망했던 15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상향 조정했다. 통계청이 가장 최근에 발표한 7월 고용동향만 봐도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29만9000명이 늘어 18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고용율도 3개월 연속 상승세다. 적어도 일자리 숫자만 놓고 보자면 고용 개선은 맞는 셈이다.

그런데 왜 자꾸 B씨와 C씨 같은 청년들의 이야기가 들릴까? 물론 청년실업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런데 경제가 악화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졸업 후 미취업 상태인 청년은 154만1000명으로 2007년 이후 최다이며, 취업 포기자는 58만1000명으로 구직한 청년의 3배에 육박한다고 한다. 정작 청년들은 대학 내내 스펙 쌓느라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다고 하는데, 졸업하면 지원이라도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일자리는 안타깝게도 찾기 힘든 실정이다.

정부가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고용 회복세는 정부 재정이 투입된 노인일자리와 단기 일자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높은 취업자 증가폭을 이끈 것도 노인이었다. 60세 이상 취업자가 37만7천명이나 늘어나 전체 취업자 증가 폭을 크게 웃돌았다. 또한 주당 근로시간이 17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근로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8만1천명 증가한 185만3천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는 1982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다. 단시간 근로자가 이렇게 급증하는 이면에는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가 거론되고 있다. 최저임금이 너무 오르고 주52시간 근로제로 일자리 쪼개기가 늘어나다 보니 단시간 알바자리만 늘어나는 것 같다.

노인 일자리 증가도 물론 중요하다. 통계청의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에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 대비 14.2% 넘어서면서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다른 나라보다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노인의 소득 보충과 사회 참여를 통해 길어진 노년기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큰 사회적 과제가 됐다. 그런데 정작 노인 일자리 사업은 정부의 일자리 숫자 늘리기에만 도움이 된 듯하다. 지난 3월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노인의 경우,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시간이 짧고, 낮은 금액 위주의 노인 일자리로는 노인 가구의 소득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경제 허리로 불리는 30대와 40대 일자리는 22개월째 동반 감소 중이다. 제조업 취업자가 16개월째 연속 감소하며, 한참 일해야 하는 3040 일자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제조업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로 꼽히는 금융·보험업 취업자마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자영업자의 상황은 더 나쁘다. 지난해에 정부는 고용의 질이 좋은 근거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증가를 내세운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의 수는 8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특히 7월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만9000명이나 줄어들며,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일률적인 주52시간제 등을 강조하는 정부의 고용정책은 이미 고용된 일부 근로자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다. 경쟁에 취약한 중소기업 근로자를 지켜준다거나 영세한 자영업자를 지켜주는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안정적인 고용망 안에 있는 일부 근로자들만의 보호를 앞세우며, 견고한 벽을 더 높이 세우고 있다. 그 벽은 이미 진입해 있는 자만을 위한 벽이며, 아무나 침입할 수 없는 벽이다. 실업자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지난 7월 실업자는 109만7000명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래 가장 많고 15∼29세 청년층 실업률도 9.8%로 그때 이후 가장 높다. 더구나 그냥 ‘쉬었음’이란 사람들이 209만4000명이나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없는 일자리를 두고 세대 내 승자와 패자 간의 갈등은 물론 세대 간 갈등까지 심각해질 것 같다.

지금의 노동현장은 어느 때보다 잦은 파업과 갈등으로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각종 법령과 해묵은 규제까지 더해져 투자마저 크게 줄어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일자리는 민간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정부는 소외받는 취약계층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주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정부는 지난 6월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을 발표했다. 제조업은 우리 경제의 근간이고 제조업 부흥이 곧 경제 부흥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금 이 시점에서 제조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고용정책 기조로 제조업이 과연 부흥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제조업을 부흥시키려면 일률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이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는 지금의 노동정책으로는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노동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제조업이 부흥하면, 자연스럽게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선순환이 일어난다.

다시 돌아와, 실업급여 받는 B씨와 쪼개기 알바 C씨에게 물어본다. “저녁이 있는 삶, 누리고 싶지 않아요?” 그들의 답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저녁이 있는 삶이요? 이렇게 알바 인생하면 돈도 없는데 점심도 겨우 누리는 삶을 살게 생겼어요.”

-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1499호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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