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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자산시장에 드리우는 불길한 그림자 

 

초초저금리·디플레이션·고령화 현상 심화... 현금 비중 높이고 통화도 분산 투자

▎사진:© gettyimagesbank
현재 자산시장에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매우 희귀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먼저 초저금리를 넘어서는 초초저금리의 등장이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 상당수와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보이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현실적으로는, 다시 말해 실질금리로는 가능하더라도 명목적으론 불가능하다는 게 기존의 통념이었다. 금리보다 물가가 더 높으면 화폐 구매력 측면에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적인 명목금리는 마이너스가 존재할 수 없다. 금리라는 것은 돈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돈의 가격을 말한다.사람들은 미래의 먼 돈보다는 눈앞의 현재의 돈을 선호한다. 내가 현재의 돈을 포기한 대가로 받는 금리는 절대 마이너스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실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를 보노라면 우리나라 금리는 오히려 높아 보일 지경이다.

현실로 존재하는 마이너스 금리

물가하락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역사상 처음으로 8월, 9월 두 달 연속 떨어졌다. 정부 당국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평가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미 디플레이션 구간에 진입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 반대로 물가가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과도한 인플레이션도 경제에는 나쁘지만 디플레이션은 더 치명적이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예외로 한다면 디플레이션이 더 나쁘다.

그 이유는 빈곤해진 세상에서는 불로소득 생활자들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실업을 야기하는 것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장기적으로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수요 위축은 디플레이션을 더 악화시킨다. 물건을 살 사람과 돈이 줄어드는데, 물가가 오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령화는 정부 재정에도 부정적이다. 일본도 본격적인 고령사회에 진입하기 전에는 재정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고령화가 본격화되면서 거의 10년 단위로 재정적자가 두 배씩으로 늘어났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진 정부가 됐다. 우리나라의 재정상황은 현재 위험 수준이 아니고 정부의 시나리오도 낙관적인 편이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정부 재정은 고령화사회의 진척과 더불어 급격히, 큰 폭으로 나빠질 것이다. 공짜 복지는 불가능하므로 정부는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4대 보험료도 올리거나 보장 범위를 줄여야 한다.

재정적자로 인한 통화 리스크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크다. 일본 엔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 대접을 받지만 우리나라 원화는 그렇지 못하다. 같은 재정적자라도 일본에 비해 한국이 더 위험하다고 받아들이는 게 타당하다고 봐야 한다. 투자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통화 분산을 할 필요가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디플레이션이 온다면 자산시장에도 치명타가 될 것이다. 물가가 떨어지면 투자를 하는 것보다 현금을 들고 있는 게 안전해진다. 현금 자체가 투자가 된다. 화폐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채가 많은 사람들은 더 힘들어진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돈의 가치가 떨어져서 부채를 진 사람이 유리해 지지만 디플레이션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대다수의 자산은 주로 예금에 넣어둔다. 정부는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 금리를 낮추고 각종 유인책을 내놓아도 돈은 예금에서 잠을 잔다. 바로 ‘디플레이션 함정’이다. 이것이 1990년 이후 일본이 20여 년 넘게 겪었던 일이다.

또 하나 볼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은 대부분의 자산이 힘을 쓰지 못하는데, 서울 아파트만 유독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도 줄고 경기도 침체되고 수출도 안 되고 주가가 빠지고 세계 경제도 나쁜데 서울 아파트만 독야청청이다. 사실 부동산시장은 경기 상황과 밀접한 편인데, 지금의 서울 아파트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러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최근 두드러진 것 중 하나는 ‘서울지역 아파트=안전자산’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 오를 것 같아서 사기도 하지만 보유자금을 보다 안전한 곳에 굴리고자 하는 이들도 서울 아파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규제로만 서울 집값을 해결할 수 있을까. 향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디플레이션 등이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인지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은 낙관론을, 일부 학자들은 비관론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만일 지금의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것이라면?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1, 2년 단위가 아니라 5년 이상 된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새로운 사고와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투자의 세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게 자산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더라도 크게 손해 볼 일이 없고, 설사 시장이 다시 좋아져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심적 편안함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현금 비중을 조금이라도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 디플레이션이 오면 현금은 그 자체로 투자가 될 뿐만 아니라 가격이 많이 하락한 자산을 사들일 수 있는 종잣돈 역할을 할 수 있다. 부채 관리에도 더 신경을 써 나가야 한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대출 금리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디플레이션이 심화되면, 금리가 낮아져도 부채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일본 기업과 가계가 잃어버린 20년 동안 저금리에도 대출 상환에 나섰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 아는 분야에만 집중 투자해야

투자 대상은 크게 넓히거나 좁게 집중해야 한다. 크게 넓히는 것은 투자 자산을 글로벌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도 채권도 가급적이면 글로벌로 투자하는 상품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이나 대만처럼 저성장에 진입하면서 주식시장이 박스권에 갇혀 버리면, 투자 수익을 높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해외 투자를 할 때는 환헤지를 하기보다는 환을 오픈하는 전략을 통해서 통화도 분산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장기적으로 정부 재정이 나빠질수록 통화 분산은 투자자들 입장에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좁게 집중하는 전략은 소수 집중 투자를 의미한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성장하는 기업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소수 집중 투자는 뛰어난 선구안과 분석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쉬운 방법은 아니다. 소수 집중 투자는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여러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수요가 많은 곳에 보유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 될 것이다. 특히 핵심 도심 주거지의 가치는 시장 변동성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점점 어중간한 전략으로 돈을 벌기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어 가는 듯하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리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05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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