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우리 모두 ‘가식의 탈’을 벗자 

 

소설 [데미안] 등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고향 칼프에서 보낸 1899년 여름, 청춘의 시기와 고향의 풍경을 회상하며 1907년 [아름다워라, 청춘이여]를 발표했다. 성인이 되어 여름휴가를 마치고 첫 직장으로 돌아가는 날, 연인 안나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에 오른다. 사랑의 고백을 시도하지만,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자며 언제까지나 좋은 친구로 남자, 슬픈 생각은 하지 말자고 위로하는 안나의 배웅을 받으며 쏘아 올린 불꽃이 허공에서 사라져가는 모습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청춘의 끝자락에서 자전적 경험이 투영된 한 젊은이의 청년 시절의 기쁨과 희망. 애틋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젊은 시절 읽은 작품 중에서 고향의 풍경을 돌아보면서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옛 생각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10월이면 시·군·구를 포함한 각 지방에서 축제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야말로 전국이 지금 축제 중이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먼저 부산국제영화제가 1996년 9월 이후 올해는 지난 10월 3일 [말 도둑들, 시간의 길] 개봉을 시작으로 아시아영화 부흥에 포커스를 맞춰 부산지역 영상산업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다.

축제는 예부터 묵은 시름을 털어내고 삶을 재충전하는 신명의 장이 되어왔다. 팍팍하기만 한 일상의 무게를 벗어나 공동체로의 삶을 확인시키는 것으로 현대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지방축제가 하나의 문화 내지 관광상품이 되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가치를 바탕에 둔 경제적인 접목일 것이다.

지방마다 전통적인 문화유산을 축제화하고 개성 있는 축제, 생동하는 축제로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지방문화의 총체적 ‘보고’가 되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페스티벌의 경제적 가치와 그 효과를 점검해 볼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경주문화엑스포는 8월부터 10월까지 천년고도 경주가 간직한 풍부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이질적인 문화유산을 직접 접할 기회로 마련되었고 행사마다 주제를 정해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축제 퍼레이드 및 거리 퍼포먼스와 세계민속공연, 세계꼭두극축제, 세계의 음식전, 세계 복식전, 특별영화제, 국제청년문화캠프 등이 다채롭게 열린다.

안동하회마을 탈춤페스티벌은 해마다 10월에 안동시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한국의 술과 떡잔치, 영주인삼축제, 청도소싸움축제 등 전통문화의 전승에 힘을 쏟고 하회별신굿탈놀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전주비빔밥축제는 전주한옥마을과 향교일대서 다양한 비빔밥과 특별한 음식을 맛보고 즐길 수 있는 한바탕 축제로 이어지고 소리문화축제도 열려 판소리 근간을 알리고 세계 음악이 만나는 예술축제이다.

태풍 링링으로 연기되었던 남산 ‘한국의 맛’ 축제는 11월 3일까지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요리 명인들의 솜씨 자랑과 전국맛집 등 풍성한 먹거리가 선을 보이고 한복패션쇼도 볼거리로 인기를 끌 것이다. 충북 영동·청원에서는 대한민국 와인 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영동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40여 개의 농가에서 직접 만든 와인을 소개하고 함께 즐기는 행사를 마련했다. 와인 시음을 비롯해 와인과 어울리는 마리아 찾기 등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난계국악축제도 뜻깊었다.

수원의 대표적 문화행사는 조선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쌓은 성곽을 행차하는 화성행차 행사가 유네스코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거행된다. 이 밖에도 각 지방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지역 특성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치러지고 있으며 10월의 마지막 날에는 미국에서 전해진 할로윈데이가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받는 축제로 등장하고 있다. 고대 켈트족이 죽음과 유령을 찬양하며 벌인 서우인(Samhain) 축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리스도교 축일인 만성절(萬聖節) 전날 미국에서 다양한 복장을 하고 벌이는 축제이다.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음식을 마련해 신에게 제의를 올려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할로윈 분장문화의 원형이 된 것이다.

오늘날 흔히 떠올리는 할로윈 파티의 모습이 처음 형성된 곳은 미국이다. 아일랜드계의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고도로 상업화된 놀이가 되고 세계적으로 퍼져있다. 할로윈 무렵에 아이들은 악마·괴물·마녀 등 사악해 보이는 존재로 코스프레를 하고 이집 저집 드나들며 “Trick or Trat(장난을 당하기 싫으면 과자 주세요)”라고 외친다. 미국의 대표적인 어린이 축제로 유령이나 괴물 분장을 하고 집집이 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는 축제의 날인 것이다. 어른들도 파티를 열고 코스프레 대회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등 재미있게 즐기는 분위기이며 지역 차원에서 할로윈 행사를 동네잔치처럼 여는 경우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할로윈 분장문화도 바뀌고 있으며 공포나 몬스터와 상관없는 재미있는 코스프레 경연대회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평소에 좋아하던 게임 캐릭터로 분장하고 돌아다니는 등 다양한 복장을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도 할로윈과 비슷한 나례(儺禮)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매해 섣달 그믐날 밤, 가면을 쓰고 주문을 외우며 민가와 궁중에서 잡귀를 쫓는 의식을 말한다. 고려시대 중국에서 들여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왔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온 사신들도 나례를 보는 것을 즐겼다고 하며, 세종대왕은 이러한 의식을 거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과다하다고 하여 좋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최근의 한국 사회는 기괴한 분장을 하지 않으면 어색하리만치 갈등과 증오로 가득 찬 몰골이다. 무엇이 진실이며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인지 분간이 어려운 지경이다. 축제의 10월이라지만 경제는 곤두박질,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모두가 가식의 탈을 벗고 순수한 본연의 마음가짐을 기대해 본다. 시인 신동엽이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에서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라고 역설하는 까닭을 정부 지도자들은 가슴 깊이 되새겼으면 한다.

- 김지용 칼럼니스트 (시인, 전 문화일보 부국장)

1506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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