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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공허한 ‘동반성장’ 구호] ‘조선업계 최초’ 홍보에 ‘액션일 뿐’ 의심도 

 

구조조정 칼자루 인물이 초대 동반성장실장... ‘하도급법 위반 논란’ 해결 의지 보여야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 사진:현대중공업
지난 3월 18일 현대중공업은 “대표이사 직속 ‘동반성장실’을 신설하고, 협력사와의 새로운 상생모델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어려운 조선업황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협력사를 돕겠다는 내용으로, 특히 현대중 측은 “대표이사 직속은 조선업계 최초”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은 동반성장실을 통해 협력사의 인력수급과 기술지원 등을 지원해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동반성장 구호’에 대한 재계 안팎의 반응엔 온도차가 드러난다. 협력사와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 것은 박수 받을 일이지만, 현시점에서 동반성장을 내세운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하도급법 위반으로 소송에 얽혀 있는데, 이런 이슈를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신임 동반성장실장에 대해서도 ‘동반성장’의 진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동반성장실’ 이면엔 하도급 기술유용·갑질 논란 산적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갑작스레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업이 바닥을 찍은 후 조금씩 살아나는데, 함께 성장해야 할 협력사들은 여전히 어려움이 크다”며 “이를 개선하고자 기존 조선사업본부 내에 있던 조직을 격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노조와 일부 협력사들은 현대중공업이 ‘협력사 기술탈취 의혹’ 등과 관련한 이슈를 무마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조치가 아니냐고 의심한다.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는 “동반성장실이 현대중공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관행을 개선하려고 만들어 진 것이라면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구체적인 추진 내용을 보면 인력양성, 기술지원 등만 언급하고 있다”며 “사실상 하도급 불공정거래 이슈를 덮으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다양한 하도급 불공정 거래로 행정처분을 받았으며, 재판에도 연루돼 있다. 현대중공업과 소송전을 진행 중인 업체들은 앞서 이뤄진 기술탈취와 하도급법 위반 등에 대한 반성과 개선은 없이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현대중공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기술탈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삼영기계가 대표적이다. 삼영기계는 현대중공업이 자사 기술을 탈취해 제 3업체에 양산하게 하고 삼영기계에는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며 거래를 끊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법인과 임직원 3명을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법인에는 벌금 1억원을, 임직원 3명에게는 벌금 300만~1000만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현대중공업이 2015~2016년 선박 엔진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인 피스톤·실린더 관련 기술자료를 하도급업체인 삼영기계에 9차례에 걸쳐 부당하게 요구했고, 그 결과 넘겨받은 기술자료를 다른 하도급업체에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전지검은 같은 사건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삼영기계는 재정신청을 한 상태다. 한국현 삼영기계 대표는 “검찰은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삼영기계의 기술인 것을 모른 채 기술을 유출했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는데, 이를 이해할 수 없어 재정신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중소 협력사들이 무슨 기술력이 있다고 기술 탈취를 주장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현대중공업이 엔진 개발에 나서기 훨씬 전부터 핵심부품인 피스톤 헤드라이너를 국내 유일하게 개발해 글로벌 업체에 납품한 회사”라며 “현대중공업에서 선박엔진 국산화 개발을 요청했고 이에 응해 개발을 해줬는데 기술까지 탈취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삼영기계는 선박용 엔진 글로벌 1위 업체인 독일 만(MAN)사의 협력업체로, 글로벌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지난해 말엔 중소기업벤처부가 선정하는 ‘강소기업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 불공정하도급거래와 조사방해 행위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업체들에게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위탁하면서 사전에 계약서를 발급하지 않고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행위에 대해 2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한 공정위의 현장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한국조선해양법인과 임직원 2명에 각각 과징금 1억원, 2500만원을 부과했다.

이 같은 문제는 3월 24일, 25일 각각 열린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지주 주주총회에서도 언급됐다.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인 가삼현 사장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것과 관련해 노조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동을 걸고 나선 것. 김종훈 국회의원(민중당)과 노조는 “가삼현 사장은 현대중공업대표이사로서 하도급업체 기술자료 유용 사건에 관련됐고 공정위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해 추가로 1억원의 과태료를 받고 고발조치 된 인물”이라며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이사 선임건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도 물러나겠단 약속에 희망퇴직 했는데…”

현대중공업의 동반성장실에 대한 의구심은 초대 실장으로 임명된 김숙현 부사장의 자격논란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2018년 현대중공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칼자루를 쥐었던 인물이다. 당시 일감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던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사업부는 구조조정을 실시해, 2018년 2분기 말 기준 3296명에 달했던 정규직 직원은 같은 해 연말 2585명으로 줄었다. 당시 해양플랜드사업부 대표를 맡았던 김 부사장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진행되던 나스르(NASR) 프로젝트를 끝내는 대로 회사를 떠나겠다고 밝히며 희망퇴직 실시의 명분을 내세웠다. 그는 2018년 8월 발표한 담화문에서 “일이 없는 만큼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인력감축을 위한 희망퇴직을 실시하겠다. 저 역시 현재 진행 중인 나스르 공사의 아부다비 해상작업과 과다 공사비 문제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책임지고 물러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사업부에선 많은 감원이 이뤄졌고, 김 부사장은 그해 연말 인사에서 나스르 프로젝트 대표로 발령났다. ‘나스르 공사를 마무리하고 물러나겠다’던 약속이 지켜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1년 반여가 지나 김 부사장은 컴백했다. 그것도 협력사와 동반성장을 책임지는 ‘동반성장실’ 수장 자리를 맡았다.

이를 두고 일선현장에선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는 “회사를 생존시켜 미래 세대에게 일자리를 남겨주자는 김 부사장의 말에 희망퇴직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 일 없었던 듯 회사로 돌아와 ‘동반성장’을 말하는 게 이치에 맞느냐”며 “게다가 김 부사장은 해양 플랜트 부문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았는데, 조선 분야가 다수인 협력사를 지원하는 조직을 맡는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현대중공업 측은 “김 부사장의 동반성장실장 임명은 회사의 인사 프로세스에 따른 것으로, 김 부사장의 성과 등을 공정히 평가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반성장실은 조선분야 협력사 뿐 아니라 해양플랜트 분야의 협력사 지원도 모두 총괄하는 부서”라고 설명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29호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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