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김준태의 세기의 담판(20) 자공, 상대의 욕망을 흔들다] 반면교사의 독(毒)과 약(藥)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상대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라

▎‘공자 춘추전국시대’ 영화의 한 장면. / 사진:네이버영화
사마천에 따르면 공자에게서 배웠던 사람은 모두 3000명이며, 주요 제자들만 해도 77명(70명이란 기록도 있다)에 이른다. 공자가 각 분야의 뛰어난 제자 10명을 거론한 것을 가지고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이 모든 제자를 통틀어 안회·자로·자공 세 사람이 공자의 수제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논어에 언급되는 숫자만 해도 이들이 압도적이다.

이 중에서 안회는 ‘인(仁)’을 상징하며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평가 받는다. 공자에게서 칭찬만 들었던 유일무이한 제자로, 유교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하고 있다. ‘용(勇)’을 대표하는 제자 자로는 친구 같은 제자였다. 성격이 급하고 불 같아서 공자로부터 타박을 많이 받았지만, 공자에게 직접 따져 묻고 대들 수 있는 제자는 자로가 유일했다. 마지막으로 자공(子貢)은 ‘지(智)’를 상징한다. 머리가 매우 좋았고 각 나라의 군주들이 대등한 예로 대우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공자와 공자 학원의 생활비는 이 자공이 책임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공은 말솜씨도 뛰어났는데 그가 한 번 움직이자 열국의 판도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바로 이번 화에서 소개할 이야기다.

어느 날 제나라의 실력자 전상이 군대를 일으켜 노나라를 치려고 했다. 노나라 군주는 급히 다른 나라에 가 있던 공자에게 도움을 청했고, 공자는 즉시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가 노나라를 떠나와 있긴 하지만, 노나라는 우리 조상들이 잠들어계신 부모의 나라다. 지금 노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으니 구하러 가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나서겠는가?” 이에 자로가 자원하자 공자는 안 된다며 제지했다. 다시 자장과 자석이라는 제자가 나섰지만, 공자는 고개를 저었다. 자공이 손을 들자 그제야 공자가 허락했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공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동격서로 무너뜨리는 계략

자공은 곧바로 제나라로 건너갔다. 전상을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노나라를 치려고 하시는데 크게 잘못하는 겁니다. 노나라는 성벽이 부실하고 해자가 얕으며, 임금이 어질지 못합니다. 신하들은 무능하고 병사들은 용감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오나라를 치십시오. 오나라는 성벽이 튼튼하고 해자가 깊으며, 무기가 날카롭고 병사들이 용감합니다. 더구나 현명한 신하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 이런 나라를 치셔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자공의 말대로라면 노나라가 훨씬 도모하기 쉽지 않은가? 전상도 화를 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 말대로라면 오나라를 공격해서는 안 되고, 노나라를 쳐야 하는 것 아니요?”

자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무릇 나라 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강한 적을 공격하고, 나라 밖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약한 적을 공격하는 법입니다. 지금 당신의 골칫거리는 나라 안에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노나라를 친다고 가정합시다. 노나라를 공격해 제나라의 땅을 넓히게 된다면 제나라 임금은 교만해질 것이고 다른 신하들도 의기양양할 겁니다. 쉬운 일이니 당신의 공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오나라를 치라는 겁니다. 오나라를 공격하다 실패하면 제나라 임금은 백성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정적들의 힘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전상은 라이벌 가문인 고씨·국씨·포씨·안씨의 힘을 약화 시키기 위해 노나라를 공격해 영토를 확장하자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들 집안의 사병을 모아 군사를 일으켰다. 자공은 이와 같은 전상의 의도를 파악하고 약소국인 노나라가 아니라 강국인 오나라를 쳐야 그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전상이 아차하며 “그렇군요. 그런데 이미 우리 군대가 노나라를 향해 출병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갑자기 군대를 오나라로 돌리면 대신들이 나를 의심할 것 아니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자공이 말했다. “잠시 진군을 지연시키시지요. 제가 오나라로 가서, 오나라가 노나라를 구원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때 오나라와 맞서 싸우시면 됩니다.” 그리곤 자공은 오나라로 건너 간다.

오나라에 도착해 임금을 만난 자공은 “오나라는 제나라와 천하를 놓고 겨루는 중 입니다. 지금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려하는데, 노나라를 구원해주십시오. 망해가는 노나라를 존속시켜줌으로써 다른 제후들의 인심을 얻으실 것이며 제나라도 곤경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남쪽 변방 국가에 불과했던 오나라는 당시 강대국으로 부상하며 중원의 패권을 노리고 있었다. 자공은 이러한 오나라 군주의 욕망을 정확히 건드린 것이다. 자공의 말을 들은 오나라 임금은 깊은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한 가지 우려를 이야기했다.

“좋은 말씀이오. 다만 문제가 있소. 내가 일찍이 월나라와 전쟁을 벌여 무릎을 꿇린 바 있소. 그 일로 월나라는 나에게 복수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는 중이오. 그러니 우선 월나라를 완전히 정벌한 다음 그대의 말을 따르겠소.” 월나라가 배후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출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공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월나라는 오나라의 상대가 못됩니다. 그리고 왕께서 월나라를 친다면 그동안 제나라는 노나라를 모두 집어삼킬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부디 월나라를 그대로 둠으로써 제후들에게 왕의 어짊을 보여주십시오. 노나라를 구원하여 왕의 위엄을 펼치십시오. 그리 되면 각 제후들은 앞다투어 임금께 고개를 숙일 것이니, 패업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정 월나라가 마음에 걸리신다면 제가 월나라 왕을 만나 임금께서 노나라를 구원하러 가는 길에 지원병을 내도록 설득하겠습니다. 그러면 월나라를 걱정하실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오나라 왕은 크게 기뻐하며 자공에게 연신 잘 부탁한다며 고마워했다.

앞에서 안심시키고 뒤에서 공격


▎사진:위키피디아
자, 이제는 월나라다. 월나라 임금을 만난 자공은 무슨 말을 했을까?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오나라 왕을 만나서 노나라를 도와 제나라와 맞서라고 조언했습니다. 오나라 왕은 동의하면서도 월나라가 복수를 노리고 있다며, 먼저 월나라를 친 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니 아마도 오나라가 월나라를 공격할 듯합니다. 공격은 상대방이 대비하지 못해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오나라에서는 월나라가 복수전을 펼치리라는 것을 뻔히 예상하고 있으니, 오히려 월나라가 위태롭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월나라 임금이 놀라며 물었다. “오나라에 대한 제 원한은 뼈에 사무칠 정도입니다. 어떻게 해야 복수를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자공이 말했다. “오나라 왕은 사람됨이 잔인하고 모질어서 신하들이 버티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명재상 오자서는 간언을 올리다 죽었고 간신 백비가 전횡을 휘두르며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왕께서는 오나라에 군대를 보내 노나라를 구원하는 일을 돕겠다고 말씀하십시오. 자신을 한껏 낮추시고 귀한 보물을 바쳐 저들의 환심을 사십시오. 그리하면 오나라는 필시 안심하고 제나라와 싸울 것입니다. 만약 오나라가 싸움에서 지면 그것은 왕께 큰 복이 될 것이오, 설령 오나라가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제나라와의 전투에서 힘을 소진할 것이니 왕께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이제 제가 진(晉)나라로 가서 오나라와 맞서게 만들 것입니다. 왕께서 그 틈을 이용하여 오나라를 도모한다면 분명 뜻을 이루지 않으시겠습니까?” 월나라 임금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복수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여기서 잠깐, 자공이 어떻게 가는 나라마다 쉽게 임금을 만났는지 궁금할 텐데,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자공은 각 제후국 군주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했을 정도로 엄청난 부자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한국에 와서 대통령과 접견을 요청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자공은 이어서 진나라로 향한다. 진나라 군주를 만난 자공은 “이제 곧 제나라와 오나라가 격돌할 것입니다. 만약 오나라가 진다면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겠지만, 오나라가 제나라를 이긴다면, 오나라 군대의 창끝은 진나라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오나라 왕은 패자가 되고 싶어 하는데, 제와 진을 꺾어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 임금이 두려워하며 “우리가 어찌해야 좋겠소?”라고 묻자 자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군대를 잘 정비한 후 병사를 쉬게 하고 기다리십시오.” 이 진나라 방문을 끝으로 자공은 공자에게 돌아온다.

상대가 내 욕망을 건드리면 경계

그러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오나라는 노나라를 구원하겠다며 제나라 군대를 공격했고, 제나라 군대는 노나라로 향하던 방향을 돌려 오나라와 맞섰다. 오나라와 제나라의 대전은 오나라의 승리로 끝났는데, 오나라 군대는 회군하지 않고 곧바로 진나라를 들이친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던 진나라 군대에게 대패하였고, 이틈을 노린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해왔다. 그리고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만다. 자공이 각 나라들을 한번 순회하고 나니, 노나라가 보존되었고, 제나라의 국력이 약화되었으며, 오나라가 멸망했고, 월나라와 진나라가 강성해진 것이다.

이상 자공의 방식이 적절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공자는 자공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노나라를 지켰으니 목적은 달성했으나 다른 나라들까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너무 지나쳤다는 것이다. 이후 공자는 자공을 엄하게 교육시켰는데, 그가 뛰어난 머리만 믿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판단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독자들에게 맡긴다.

자공이 각 나라 임금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우리는 담판에서 유용한 기술을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상대방의 욕망,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것을 건드려 그 마음을 흔들라는 것이다. 자공은 어느 임금에게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단지 그들의 욕망을 건드려 원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거기에 현혹되게 만든 것이다. 이는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담판의 상대방이 내 욕망을 건드려올 때, 흔들리지 않도록 정신을 꽉 붙들어 매야 하는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529호 (2020.04.1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