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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기대 높던 ‘퀴비’의 저조한 성적은 왜? 

 

스마트폰을 모바일 기능보다 퍼스널 기기로 인식… 경험 공유 콘텐트 채워야

▎숏폼 OTT 서비스 퀴비 / 사진:퀴비
‘인어공주’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성공시키고 영화사 드림웍스를 설립한 할리우드 거물, e베이와 HP CEO를 지낸 실리콘밸리 대표 경영자. 이 둘이 함께 만든 인터넷 영상 서비스는 어떤 모습일까? 할리우드의 창의성과 실리콘밸리의 기술이 만나 넷플릭스를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이것이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 ‘퀴비’에 건 기대다. 퀴비는 스마트폰으로만 볼 수 있는 모바일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표방한다. 넷플릭스나 디즈니가 최근 새로 선보인 디즈니플러스가 TV와 PC, 스마트폰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것과 대조된다.

콘텐트를 시즌 단위로 한 번에 풀어 몰아보기, 이른바 ‘빈지워칭’을 유도하는 넷플릭스와 달리 퀴비는 10분 안팎 분량의 짧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제공한다. 이른바 ‘숏폼’ 콘텐트다. 출퇴근길 등 스마트폰 사용자의 자투리 시간을 공략한다. 퀴비는 연말까지 175개의 오리지널 콘텐트를 공개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환경에 맞는 영상 스토리텔링도 고민했다. 스마트폰 방향을 가로, 세로로 바꿀 때마다 다른 영상이 보이는 ‘턴스타일’이 대표적이다. 같은 상황에서 세로로 보면 인물의 표정이 클로즈업되고, 가로로 돌리면 배경을 폭넓게 보여준다.

월트디즈니스튜디오 회장과 드림웍스 CEO를 지낸 설립자 제프리 카젠버그,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여걸 CEO 맥 휘트먼의 이름은 기대감을 높였다. 서비스 시작도 전에 디즈니와 워너미디어, 구글, 알리바바 등 쟁쟁한 곳들이 17억7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1억5000만 달러 상당의 광고를 이미 확보했고 스티븐 스필버그, 제니퍼 로페즈 등 스타들도 참여했다.

4월 6일 첫 선을 보였으나 현재로선 기대에 미치지 못 한다는 평가다. 모바일앱 데이터 조사회사 센서타워에 따르면, 퀴비 론칭 첫날 다운로드는 30만 건 정도다.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디즈니플러스 첫날 다운로드 400만 건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출시 초기 반짝했던 관심은 빠르게 식어 지금 퀴비 앱은 미국 애플 앱스토어 순위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 특별히 화제가 되는 콘텐트도 없는 형편이다. 3개월의 무료체험 기간이 끝나는 7월부터 진짜 성적이 드러날 전망이다.

1급 창작자와 스타, 콘텐트 산업과 IT 산업을 이해하는 일류 경영진, 변화한 환경을 겨냥한 새로운 접근법과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왜 퀴비는 뜨뜻미지근한 반응만 얻었을까?

우선 코로나19 영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줄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거실 TV를 통한 콘텐트 소비가 늘었다. 1분기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가 1600만명으로 전기 대비 2배 늘어날 동안 ‘모바일 온리’를 외친 퀴비는 동력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모바일 환경에서 시청자가 어떻게 콘텐트를 소비하는지 아직 우리가 충분히 알지 못 한다는 점도 한 이유일 것이다. 퀴비는 스마트폰 환경에 맞는 영상 문법으로 턴스타일을 제시했지만, 시청자가 기꺼이 이런 방식으로 영상을 볼지는 미지수다. 수동적으로 편안하게 영상의 흐름에 빠져들기 원하는 대부분 시청자는 굳이 몰입을 깨 가며, 폰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는 수고를 하지 않을 터다. 시리즈를 한 번에 모두 공개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모바일 환경에서 사람들은 TV를 볼 때와는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영상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스마트폰의 기술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이유가 스마트폰 만의 기술적 특성 때문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피처폰 시절 모바일 방송 DMB가 약간의 힌트가 될지 모르겠다. 당시 DMB 사업자들도 휴대폰에 맞는 콘텐트를 고민했다. 가설도 비슷했다.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 짬짬이 보기 좋은 짧고 완결성 있는 콘텐트를 원할 것으로 보았다. 모바일 기술로 인터랙티브 요소도 시도했다.

현실은 달랐다. 사람들은 휴대폰으로도 1시간짜리 지상파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단지 지하철이나 방에서 휴대폰을 들고 혼자 보았을 뿐이다. 휴대폰은 모바일기기가 아니라 퍼스널기기였던 것이다. ‘라면 먹고 갈래요?’에 해당한다는 영어권 유행어 ‘같이 넷플릭스 볼래요?(Netflix and chill)’라는 말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PC 같은 휴대형기기가 콘텐트를 보는 기술이 아니라 콘텐트를 보는 환경을 규정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숏폼 영상’ 형식을 만들어낸 틱톡

그럼에도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영상 콘텐트 시청 습관을 바꿔가고 있음은 명백하다. 최근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틱톡은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숏폼 영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틱톡은 15초에서 1분 사이의 짧은 영상을 만들어 공유하는 모바일 소셜 동영상 앱이다. 촬영과 편집이 쉬워졌다 해도 영상 제작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여전히 부담스럽다. 틱톡은 영상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음악 라이선스를 많이 확보하고, 다른 사람 영상에 쓰인 음악을 쉽게 가져와 자기 영상에 쓸 수 있게 했다.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춤 동작이나 미션을 따라하는 각종 ‘챌린지’를 지원해 사람들이 영상을 만들고 친구들과 공유하게 했다. 가수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도 틱톡에서 시작됐다.

틱톡은 영상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사용자 참여와 공유를 바탕으로 세계의 10대들을 사로잡았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어 많은 영상이 쏟아져 나왔고, 이중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영상이 다른 사용자를 끌어들였다. 이런 영상은 편리한 공유 기능을 타고 확산되었고, 이를 본 사용자가 다시 스스로 영상을 만드는 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틱톡은 글로벌 히트 상품이 된 거의 첫 중국 인터넷 서비스다. 누적 다운로드는 19억 건에 이르며, 최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1년에는 미국 사용자만 5000만명이 넘을 전망이다.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의 기업가치는 약 87조원으로, 세계 스타트업 중 가장 높다.

페이스북이 틱톡을 심각한 경쟁상대로 간주하며 비슷한 동영상 앱을 내놓는가 하면, 유튜브도 올해 안에 틱톡과 같은 ‘쇼트’라는 기능을 유튜브에 추가할 계획이란 보도도 나왔다. 국내에선 카카오가 콘텐트 자회사 카카오M에 방송계 스타 PD들을 영입해 숏폼 콘텐트 제작에 나섰다. 네이버는 간편하게 숏폼 영상을 만들어 블로그에 넣는 ‘모먼트’를 내놓았다.

반면 퀴비의 숏폼은 사용자 참여나 공유 등 소셜 요소가 배제된 채 할리우드 전문 창작자들이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영상 형식이다. 사용자 참여 콘텐트와 차별되는 전문 콘텐트를 모바일에서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하지만 시청자가 원하는 숏폼 형식은 무엇인지 계속 찾아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이 열쇠를 찾지 못 하면 당분간 틱톡 같은 테크 플랫폼에 주도권을 내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1534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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