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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부부의 세계, 각자의 세계 

 

이태오의 삶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고... 지선우는 옳고 바르기만 할까?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끝났다. 이 드라마의 소재인 ‘불륜’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익숙한 주제다. 그렇게 오래된 소재로 다시 새롭게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나는 그 비결이 불륜을 다루되 거기서 벗어났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지선우(김희애)와 이태오(박해준)가 살아가는 심리적 세계의 격차를 기초로 모든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문제의 남자 이태오의 세계를 보자. 그는 마치 여러 개의 평행 우주를 살아가는 것 같다. 그에게 각각의 우주는 자기 완결성이 있다. 아내인 지선우와 아들과 함께 꾸리는 우주에서 그는 자상하고 성실한 가장이다. 반면에 여다경(한소희)과의 우주에서는 잃어버린 열정을 그녀 덕분에 되찾은, 사랑에 미친 예술가다. 그는 그 외에도 제작사 대표로서 갑인 투자자 앞에서 을이 되는 우주, 신의가 돈독한 나머지 불륜까지 숨겨주는 친구들과의 우주 등 수많은 우주를 거느리고 있다. 그는 이 서로 다른 우주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자아가 모두 그에겐 진심이다.

이 드라마에서 화제가 된 대사들은 모두 그런 진심의 결과물이다. “나는 지선우와 여다경을 둘 다 사랑한다”라는 그의 말은 진심이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지선우와의 우주에서는 지선우를, 여다경과의 우주에서는 여다경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지선우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여긴다. 그의 관점에서는 여다경과의 우주가 지선우와의 우주와 만나지만 않았으면 둘 다 행복하게 잘 유지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그만 지선우가 이 두 우주를 충돌시켜버렸고, 그 결과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 그가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항변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의 원인은 자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했어야 할 평행우주를 교차시킨 지선우에게 있었던 거다.

반면에 지선우의 세계는 직렬적이다. 아내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의사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병원에서의 그가 집에서의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원칙을 따르기에 예측이 가능하며 믿을 수 있다. 그녀는 서양철학에서 제시한 이성적인 인간의 조건인 일관성과 정합성(integrity)을 모두 갖춘 성숙한 사람이다. 물론 그 때문에 이 원칙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한국사회에서 가끔은 유연하지 못한 면도 보이고, 부당하게 모난 사람 대우를 받기도 한다. 그녀는 언제나 꼿꼿하고 당당하다.

이렇게 보자면, 지선우와 이태오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였지만 애초부터 완전히 극과 극으로 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건, 함께 부부로 지낼 때는 이런 격차가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로 유지되었지만, 지선우가 남편의 외도를 깨닫고 복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서로의 세계가 비슷해진다는 점이었다. 지선우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유지되던 정합성이 깨지고 일종의 다중 자아가 생겨난다. 반면에 이태오는 어쩔 수 없이 충돌하는 자신의 우주들을 통합하거나 정리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내뿜는 긴장감은 불륜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악재들 보다는 이 서로 다른 차원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이태오의 삶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고 지선우는 옳고 바르기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 사실상 우리들 모두는 어느 정도는 이태오처럼 살고, 어떤 면에서는 지선우처럼 살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우리의 삶이 결국은 이런 저런 무대에서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라고 봤다. ‘무대분석’이라고 불리는 그의 이론은 우리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친구들 앞’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친구라는 역할과 그 역할에 주어진 대본에 따라 행동한다. ‘직장’이라는 무대에서는 직원이나 팀원, 상사나 부하라는 역할을 연기하며, ‘가족’이나 ‘연인’ 앞에서는 역시 그 역할에 해당하는 대본을 연기한다. 적절한 복장의 기준으로 TPO(Time, Place, Occasion)가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며 접하는 모든 상황에는 그 상황 속 각각의 인물들에게 주어진 역할들이 있다.

이태오는 이런 역할 연기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내면은 이기적인 어린아이일지라도 겉은 온전히 철든 사회인이라 하겠다. 문제는 그가 연기하는 무대들이 연속성이 없고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극단적인 분리는 최근 사회적인 공분을 자아낸 ‘n번방’ 범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현실 속 우리는 이태오와 지선우의 중간쯤

그럼에도 정신건강의 회복탄력성, 흔히 말하는 멘탈의 강도 면에서 보자면 이태오가 유리한 면이 많다. 이태오를 이루는 우주들은 평행우주라서 한 우주에서의 타격이 다른 우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가 투자자나 채권자 앞에서 비루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집에 와서는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실제로 우리들도 그렇지 않던가. 이 험난한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가 정신건강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는 각각의 무대에서 연기하던 자아들을 분리해서 그 무대에 남겨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손상된 자존감을 가족이나 친구들 앞에까지 가지고 간다면 우리 삶은 아주 쉽게 망가질 것이다. 지선우의 취약점도 여기에 있다. 지선우의 자아는 평소에는 완전한 정합성을 이루고 있지만, 만약에 그 자아를 이루는 세계 중 일부에게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가 나머지 전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지선우는 내적인 완결성과 성숙함을 갖추고 있으나 유연한 역할 변경에는 미숙하다고 할 수도 있다.

현실 속의 우리들은 대부분 이태오와 지선우의 중간쯤에 있다. 우리는 여러 무대에서 각자의 대본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들이지만, 그 다양한 역할들을 한데 묶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야 하는 개인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보면서 생경함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이런 위치 덕분이었을 것이다. 정상적이고 모나지 않게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정신건강과 자아정체성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살다가 가끔씩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어쩌면 ‘힐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36호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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