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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의 IT 사회학] 필수 노동이 ‘스트리밍’ 되는 날 

 

거대 플랫폼이 통제하는 고용 현장... ‘대면 노동’의 가치 깨우쳐야

▎독일 묀헨글라트바흐의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물류 노동자들. / 사진:EPA=연합뉴스
단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근래 ‘필수 노동(Essential Work)’이라는 말이 세계적으로 빈출 단어가 되고 있다. 일말의 미안함이 녹아 있는 단어다. 필수 노동에는 현장의료진이라는 최전선 부대와 더불어 이 전투의 또 다른 생명선인 병참, 바로 물류노동자들이 포함된다.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의 유행은 두 부류의 노동을 드러낸다. 보호막 뒤에서 원격 조작을 할 수 있는 이들은 그 신호를 받아 일하는 이의 존재를 잊곤 한다. 평온한 일상도 누군가가 현장에서 땀을 흘렸기 때문에 유지되는 일이다. 이 사실을 필수 노동이라는 단어는 일깨운다. 장기전이 되어갈수록 모두들 지쳐가고 있지만 지치는 속도와 정도가 사실 균등하지는 않다.

병참기지가 되어 준 온라인 쇼핑은 수요가 폭증하자, 물들어올 때 노 젓기 위해 가동률을 높였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탓에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쇼핑 물류센터를 둘러싼 사건 사고가 그치지 않고,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아마존만 해도 40만명의 블루컬러 노동자 중 1000여 명이 감염, 8명이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친족이 옮아 사망하자 참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회사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에서는 노사 협의 이전에는 진짜 필수품만 배송하도록 제한하는 판결이 났다.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하는 일은 의료뿐만 아니라 물류에도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사측이 욕심 부리지 않고 적절히 준비했다면 집단 감염을 막을 수도 있었는데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는 않았다는 호소들이다.

위태로운 물류 노동

삶의 현장은 사실 친절하지 않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아마존식 물류센터의 혁신이란 저숙련 노동자들을 높은 회전률로 고용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소수의 ‘인솔자’들이 대체 가능한, 그렇기에 연속적이지 않은 노동력을 대규모로 통솔할 수 있도록, 연수나 교육 없이 즉각 활용될 수 있도록 구조화하고 자동화한 시스템이었다.

국내에서도 예컨대 쿠팡 물류 센터알바 일거리가 ‘덕쿠(덕평 쿠팡)’, ‘부쿠(부천 쿠팡)’ 등으로 불리며 그날그날의 현금을 원하는 노동자를 불러 모아 각 지역별로 배치된 셔틀버스로 실어 나른다. 이들 현장 노동력을 수집하고 동원하는 건 스마트폰이지만, 일하는 동안은 스마트폰 휴대는 금지. 인력의 도구화에는 다 노하우가 있다.

노동력이 스마트폰 하나로 수시로 접속과 분리를 반복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일종의 리모트 컨트롤러는 제각각의 사정과 상황이 있는 모두를 불러 모아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일한다. 어차피 금방 헤어질 사이. 그 선택 또한 자기 책임인 이 쿨한 고용 관계에서는 마스크와 같은 기본적 보호구조차 제공하거나 강요하는 일은 번잡한 일이었으리라. 더 나은 일이 생기면 누구나 미련 없이 떠날 작업을 영속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제도화된 곳의 풍경이다.

필요할 때만 바로 즐기고 소유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초 만에 넘겨 버린다. 언제나 시작할 수 있지만 언제나 끝낼 수 있는 스트리밍. 고용은 스트리밍이 되고 있다. 고용의 흐름을 거대 플랫폼만이 통제하고, 소수의 인솔자 이외에는 모두 단기 계약의 고용 관계가 되는 플랫폼 노동은 다양한 업계로 파급되고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던 네트워크가 끊길 때 스트리밍이 위태로워지듯, 당연한 일상이 흔들릴 때 스트리밍 고용은 문제를 드러낸다.

사실 거대 기업이 등장해 생업이 흔들리는 일은 IT 이전부터 늘 있어 왔다. 이익집단이 경계하는 일은 결국 이런 일이었다. 또 다른 필수 노동인 의료계가 물류 노동의 처지와 달랐던 두 가지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이처럼 스스로의 권익을 지키는 이익집단을 형성했다는 데 있다.

이익집단은 입법부에 영향을 주고 아예 직접 진출해 자신을 보호하는 법률을 만든다. 내 이익이 침해되면 체포할 수 있는 강력한 직업을 만드는 일. 그것이 ‘사’자 직업들의 본질이다. 의사와 약사가 충돌했고, 간호사 단독법이 추진되려는 것도 모두 이처럼 법에 의해 보호되는 강력한 직업 집단만이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일을 막을 수 있음을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의료를 제외한 많은 필수 노동은 현재 그 첫 단계인 산별노조조차 완성하고 있지 못하다. 장기간의 직능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만들어버린 덕에 매일 새로운 인력이 유입될 수 있으니 조합이 무서울 리 없다.

기피되는 노동은 외주와 하청을 거쳐 결국 기계에게 넘겨지곤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절대로 없어질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1대 1로 대면하는 일이다. 의료의 두 번째 차별점이다.

대면, 얼굴 좀 보는 일의 가치. 내 귀한 시간을 타자에게 온전히 할애하는 일. 의사가 임상(臨床), 즉 병상에 임하는 일의 가치를 숭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환자가 와도 늘 1대 1의 전력투구. 그 가치만큼은 플랫폼에 의해 스케일아웃(수평확장)될 수 없다. 미래가 모든 고용을 스트리밍화해 버려도 내 몸에 칼을 대고 붕대를 감는 이 결정적 대면 노동만큼은 어쩔 수 없다. 최종적 필수 노동이란 바로 곧 대면 노동이었다.

고용을 지키는 일에 대해 의사에게 배울 점

노령화와 만성질환 위주로 의료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의사협회 등이 원격 의료에 극단적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플랫폼이 될 수 있는 대형병원과 대기업에 의한 스트리밍화가 두려워서다. 하지만 정작 외과·응급의학과·산부인과처럼 당장 생명의 순간과 1대 1로 대면해야 하는 일들은 기피 학과로 미달이 되고 있는 일도 동시 진행 중이다. 대면 노동의 가치가 충분히 평가된다면 플랫폼화도 두렵지 않을 텐데 안타까운 답보는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와 플랫폼화가 멈출 리 없다. 비대면의 모든 일은 곧 디지털화 안건이다. 자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추진할 것이다. 라스트 마일의 배송마저 요즘처럼 얼굴 마주치기도 싫어한다면 다른 생각이 들 것이다. 친절한 쿠팡맨 대신 원격 조종되는 드론이 던져 놓고 가도 그만이다.

‘언택트’라는 근본 없는 콩글리쉬가 동원되며 비대면을 트렌드화하는 데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얼굴을 보며 살아왔고, 그 고마움에 값을 치르며 살아왔음이 기억나 버렸다. 소비자와 시민으로서의 우리가 대면의 가치를 얼마로 매기냐에 따라 결국 내일의 고용도 바뀐다.

난관을 통해 배우기도 하는 것이 기업이다. 때로는 전략을 점검하기 위해 진군을 쉬는 것도 좋다. 아마존은 급증하는 수요를 처리하기 위해 긴급 고용한 17만5000명의 임시 근로자 중 70%에게 정규직 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라 밝혔다. 아마존의 임원들을 대거 스카우트하며 많은 것을 모방한 쿠팡, 아마존이 미리 겪었던 물류센터 감염의 시련은 스터디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조치의 의미는 눈여겨봐야 할지 모르겠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1539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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