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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애플, 사용자 경험 완벽 통합 노린다 

 

반도체도 자체 개발 본격화... ‘독점·단일화’ 이번에도 성공할까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애플 월드와이드 디벨로퍼 컨퍼런스에서 맥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하드웨어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애플이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의 아이디어를 훔쳐온(?)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센터(PARC)의 핵심 인력이었던 컴퓨터공학자 케이 앨런의 말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이 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애플의 비즈니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훌륭하게 통합된 개인용 ‘컴퓨팅 기기’의 제조 판매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DNA인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터넷기업 구글과는 성격이 다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고 통제해 최선의 사용자 경험을 주는데 중점을 둔다. 이런 애플이 가장 많이 신경 쓰면서도 외부에 가장 많이 의존해야 했던 것이 반도체, 특히 중앙연산장치(CPU)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컴퓨터 성능과 소프트웨어 최적화에 영향을 미치지만, 개발과 제조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기에 극소수 전문기업이 독과점한 시장이다.

모바일 반도체 숨은 강자 애플, CPU도 자체 개발

하지만 애플의 반도체 외부 의존이 조만간 끝날 듯하다. 애플은 지난 6월 22일(현지시각) 온라인으로 열린 연례 개발자회의(WWDC)에서 향후 2년 간 맥 컴퓨터 CPU를 현재의 인텔 제품에서 자체 개발한 ARM 기반 프로세서 ‘애플실리콘’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ARM은 다른 기업이 반도체를 디자인할 수 있도록 기본 설계도를 제공하는 회사다.

애플은 맥의 운영체계(OS)와 서비스, 앱스토어 등 소프트웨어 영역을 통제하고 있고, 하드웨어도 직접 설계하고 만든다. 이제 CPU까지 자체 제품을 써 컴퓨터의 거의 모든 영역을 제어할 수 있게 됐다. PC를 만드는 삼성전자와 CPU를 만드는 인텔, 윈도 OS를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나로 합쳐진 모습이 애플이다.

애플은 자사 컴퓨터의 프로세서를 그간 몇 차례 바꿨다. 초기에는 MOS테크놀로지와 시너텍의 CPU를 썼고, 1984년 모토로라 68000 계열 CPU를 쓰기 시작했다. 1994년 IBM의 파워PC 프로세서로 전환했으나 결국 2006년 인텔의 x86 계열 반도체를 채택한다. 애플이 원하는 성능 개선이나 기술 로드맵에 반도체 제조사가 맞춰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토로라는 휴대폰 사업에 집중하면서 반도체를 소홀히 했고, 파워PC는 인텔의 성능 향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인텔도 최근 미세공정 기술 개발 경쟁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모바일 시대에 맞는 저전력 제품을 원한 애플의 요구를 맞추지 못했다. 결국 애플은 CPU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애플이 아이폰 등 모바일 기기 CPU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자체 개발하면서 그동안 충분한 역량을 쌓았다는 자신감도 이번 결정의 요인이다. 애플은 10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모바일 반도체 기술 내재화를 실행에 옮겨왔다. 2008년 저전력 설계에 강한 반도체 기업 PA세미를 2억78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 회사에는 AMD 라이젠 프로세서 아키텍처를 설계한 스타 개발자도 있었다. 2010년에는 프로세서 디자인 회사 인트린시티를 인수했다.

이들의 기술은 인텔과 달리 저전력 설계에 적합한 ARM의 디자인과 결합, 2010년 출시된 아이패드와 아이폰4의 AP인 A4 칩이 됐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쓰이는 ‘A 시리즈’ AP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성능이 30~40% 향상됐다. 이제 아이폰 AP는 증강현실이나 고해상도 사진 처리를 위한 머신 러닝을 돌릴 정도로 강력하다. 애플은 2018년 출시된 아이패드 프로의 A12X 바이오닉 칩이 그 즈음 출시된 세계 모든 휴대형 컴퓨터의 92%보다 빠르다고 자랑한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애플은 2019년 세계 태블릿 및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매출점유율 44%와 24%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모바일 AP 분야에선 자체 제품만으로 이미 굴지의 반도체 기업이 된 것이다. 애플은 플래시 메모리 컨트롤러를 만드는 아노빗과 저전력 블루투스 칩 제조사 파시프 세미컨덕터도 인수했다.

모바일·데스크톱 아우르는 컴퓨팅 생태계 통합 지향

모바일 기기에 이어 컴퓨터까지 자체 개발한 ARM 기반 프로세서를 쓰게 되면 애플은 모든 제품의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거의 완전히 수직계열화 하게 된다. 다른 기업의 개발 속도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로드맵에 따라 필요한 때 신제품을 낼 수 있다. 또 아이폰과 아이패드 앱을 맥에서도 쓸 수 있어 앱 생태계가 더 풍성해지고 사용자 선택권이 넓어진다. 모바일과 PC 환경을 아우르는 완벽한 통합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애플의 모험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WWDC에서 실물을 보여주지 않았고, 성능을 짐작할 만한 지표도 공개하지 않았다. ARM 기반 반도체는 전력 소모가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반 노트북PC에서 강력한 성능을 낼 수 있을지 아직 의구심이 크다.

다만 애플이 과거 모토로라와 파워PC, x86 칩 환경으로 여러 번 전환한 경험이 있고, 그간 모바일 AP를 자체 개발하며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은 기대감을 높인다. 애플은 인텔 프로세서 기반으로 만든 앱을 쉽게 ARM 기반 프로세서가 탑재된 새 맥에서도 쓸 수 있게 쉽게 변환하는 도구도 제공한다.

나아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바일과 PC를 통합하고 사용자 경험을 전적으로 통제하려는 애플의 전략이 계속 먹힐 지도 관심사다. 업무나 게임 등으로 용도가 제한되는 PC와 달리 사람의 모든 일상에 밀착해 있는 스마트폰은 더 자연스럽고 유려한 사용자 경험에 대한 요구가 크고, 이는 애플이 강점을 가진 분야다. 또 개발과 제조의 글로벌 분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대규모 제조 라인 관리가 예전보다 수월해졌다. 애플은 자체 생산 시설 없이 폭스콘 같은 회사에 연간 2억대의 아이폰을 맡긴다. 팀 쿡 CEO는 이런 공급망 관리의 전문가다. TSMC 같은 반도체 위탁 제조사는 최첨단 공정기술 반도체를 대량 공급해 준다.

맥과 아이폰의 사용자 경험이 통합되고 소비자가 애플 서비스 생태계에 묶일수록 애플 생산 인프라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이는 애플이 단일 기업으로서 강력한 글로벌 생태계를 끌고 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기 영역에 충실하던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서피스 랩탑과 픽셀 스마트폰 등 레퍼런스 제품을 내는 것도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애플 같은 단일 회사의 지배력이 커져가는 환경에서, 삼성 같은 회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플랫폼이라 할 테크 기업을 갖지 못한 미국과 중국 이외 모든 나라, 모든 기업의 공통의 숙제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1542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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