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수도권 쏠림’에 거점 국립대 위상 하락그러나 학생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불러온 폐해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의 인구 비율은 1980년 기준 35.5%에서 2015년 49.5%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초중고 학생 비율은 수도권에서 급격히 증가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1965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 시도별 초중고 학생 수를 비교 분석한 결과 1990년대 1기 신도시, 2000년대 2기 신도시 개발 후 ‘서울의 도심 팽창과 수도권 지역 쏠림’ 현상이 가속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수도권 초중고 학생 수 비율은 31.8% 수준이었지만, 2015년엔 48.6%로 늘었다.전문가들은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토연구원과 국회미래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50년의 수도권 집중도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청이 2017년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인구의 수도권 집중도는 2045년 5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됐다.문제는 최근 급격한 출산율 하락 문제와 수도권 쏠림 현상이 겹쳐지면서 지역발전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에 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지역 대학들의 위기를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8월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전년 0.98명보다 6%가량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차정인 부산대학교 총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하는 시기에 ‘인 서울’ 쏠림 현상이 급격하게 진행된다”며 “지역 명문대학을 육성해야 국가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해외에선 지역 명문대학들이 산학협력 활성화를 통해 지역발전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3년부터 지역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력을 돕는 대학기업촉진지구(University Enterprise Zone)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리버풀 대학, 브래드포드대학, 노팅엄대학, 브리스톨대학이 있는 4개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시작한 후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 뉴욕의 코넬테크는 캠퍼스의 모든 강의실과 건물을 개방형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 건물에 대학 연구실과 민간기업이 입주해 유기적인 산학협력이 이루어지게 돕고 있다. 각종 세금 혜택도 있다. 코넬테크 캠퍼스에 입주한 기업에 신규 채용된 근로자는 근로소득세도 감면받는다. 기업은 인재를 모집하는데 수월하다는 장점과 대학 캠퍼스의 지리적 이점에 더해 금전적인 이익도 누리는 셈이다.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 등 보완 필요우리나라에서도 인재들의 지역 분산과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공공기관 채용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은 신입사원 채용 시 일정 비율만큼 해당 지역에 있는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뽑도록 한다. 공공기관 취업 혜택을 통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지역 대학에 진학하도록 유인한다. 다만 지역발전을 위해 공공 이관 채용 할당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차정인 총장은 “지역할당제는 유지하면서 공공기관이 비수도권 지역 학생들을 지역에 관계없이 추가로 선발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예를 들면 경남지역에 있는 공공기관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선발인원의 25%는 경남 출신 학생을 선발하고, 25%는 수도권을 제외한 강원, 충청, 전라도 지역 학생들에게 할당하는 방식이다. 차 총장은 “비율은 정치권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 공기업은 지역 인재 모집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고, 각 지역 학생들의 취업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거점 국립대학들도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거점 국립대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인재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거점 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는 지난 8월 비공개회의를 열고 ‘고등교육 제도 변화를 위한 방안’, ‘4차산업혁명 시대 인재양성을 위한 재정 확대 방안’, ‘대학 간 학생 교류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거점 국립대 네트워크는 일종의 ‘연합대학’ 성격을 갖는다. 소속 대학들이 교육과정과 학점, 교수 등을 교류하는 방안도 담겨있다.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부산에 사는 학생이 부산에서 서울대 수업을 듣고, 전주에 사는 학생이 자기 지역에서 강원대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사업 ‘지지부진’ 상태
거점 국립대 지원 ‘미흡’ 해결해야거점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의 주요 사업 대학 재정 지원 현황에 따르면 9개 거점 국립대 가운데 부산대와 경북대를 제외한 7개 대학의 지난해 대학 재정 지원 규모는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9개 거점 국립대가 80억~100억원 가량을 국립대학 육성사업을 통해 지원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 상위 사립대와 비교해 대학 재정 지원 규모가 턱없이 작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점 국립대 특화 지원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정부 지원 사업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육부의 대표적 대학 지원 사업인 BK21(Brain Korea21)플러스 지원액을 보면,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모두 지난해 200억원 이상을 받았으나, 9개 거점 국립대 중 지원액이 200억원을 넘긴 대학은 없었다. 9개 거점 국립대 중 재정 지원 규모가 가장 작은 제주대의 경우 지원액은 12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정부가 거점 국립대 육성과 별개로 한국전력공과대, 공영형 사립대 설립 등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거점 국립대 육성 동력이 분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계에선 한전공대 설립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미 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포항공과대학교(POSTECH) 등 지역 중심의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5곳이나 있는 상황에서 기존 특성화 대학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한전공대 설립에 1조원 이상을 쏟아 붓는 과정에서 기존 이공계 특성화 대학과 거점 국립대 등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거점 국립대의 특화 학문 분야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점 국립대를 활용해 에너지 분야 인재를 육성해도 충분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공영형 사립대 논란도 여전하다. 공영형 사립대는 국가가 대학 운영비 50% 이상을 충당하면 학교를 운영하는 이 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는 대학을 말한다. 일종의 ‘半 국립’ 형태의 대학인 셈이다. 공영형 사립대 설립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지역 대학을 지원해 공영 사립대로 육성하고 궁극적으로 지역 대학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교육계에선 경쟁력 약화로 재정 악화를 겪고 있는 사립대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재정 낭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