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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의 보험업계, GA의 명암] 보험사-GA ‘이상한 공생’에 소비자만 피해 

 

몸집 커지며 보험사에도 ‘갑’… 규제에 변화 불가피

▎사진:© gettyimagesbank
보험은 어렵다. 일반 소비자가 보험에 대한 모든 내용을 알고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프라인보다 저렴한 ‘다이렉트’ 보험이 있더라도 설계사를 통해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이 여전히 대다수인 이유다.

소비자 입장에선 설계사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부분 지인이나 지인을 통해 추천 받은 설계사를 통해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이 어느 회사 소속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보험에 가입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은 ◇◇생명, ○○손보 등 보험회사가 아니라 보험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회사에 소속된 설계사를 만난 경우다. 이런 전문 판매 회사들을 ‘GA(General Agency)’라고 부른다.

GA ‘갑질’, 보험사 튕겨 결국 소비자에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험설계사는 보험사에 소속된 ‘전속설계사’ 중심이었다. 그러나 2002년 약 3만명으로 국내 전체 보험설계사의 10% 미만이었던 GA 소속 설계사는 2016년 말 20만8462명으로 늘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전속설계사 수의 합계를 넘어섰고, 지난해 말엔 23만2770명까지 규모가 커졌다. 같은 기간 전속설계사(18만6922명)보다 25% 많다. 보험업계에선 설계사 구도의 변화가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다.

GA 시대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은 GA의 동업자인 보험업계다. “GA 채널의 입김이 강해지며 보험회사에 ‘갑질’을 일삼는다”는 불만이 보험회사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불편한 동업자’ GA가 보험회사의 ‘갑’이 된 것은 영업력에서 GA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GA가 해당 회사의 제품을 팔지 않으면 이 회사의 보험판매 실적은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다.

실제 보험업계에서 GA가 판매하는 신계약 비중은 절대적이다. 특히 손해보험사의 경우 절반이 넘는 신계약을 GA에 의존하는 회사가 많다. 이 때문에 보험사는 시장 확대를 위해선 울며 겨자 먹기 격으로 GA에 높은 수수료를 제공하거나 시책(판매 수수료 외 별도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GA들은 특히 몸집을 불려 협상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별도 법인으로 설립된 법인대리점이 연합해 만든 ‘지사형 GA’들의 ‘공룡화’가 눈에 띈다. GA들이 지사형으로 뭉치는 이유는 오로지 수수료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소속 설계사가 많을수록 판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수수료와 시책 등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소속 설계사 수가 100명이 넘는 중·대형 GA는 190개로 전년 말 대비 12개 증가했고, 소속설계사는 18만9395명으로 전년 말 대비 8649명 늘었다. 이는 소형 대리점 소속 설계사 수가 줄어들고 있는 점과 대비된다.

GA가 받는 수당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형 GA가 체결한 신계약 건수는 1461만 건으로 전년(1278만 건)에 비해 14.3% 늘어났다. 그런데 수수료 수입 증가폭은 더 컸다. 수수료 수입은 7조4324억원으로 전년(6조1537억원) 대비 20.8%나 증가했다. 수수료 수입을 신계약 건수로 나눠보면 계약 한 건당 수수료는 지난해 48만1500원, 올해 50만8700원이다. 단순화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계약 한 건당 2만7000원가량, 약 5%의 수수료를 지난해보다 더 받았다는 얘기다. 이는 결국 보험사의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을 자초한 건 보험업계다. 외환위기 이후 보험회사들이 구조개편을 위해 설계사 수를 줄이는 와중에 GA가 이 설계사들을 끌어들여 몸집을 불렸다는 게 보험업계의 분석이다. 구조조정을 위해 스스로 영업력을 포기한 셈이다.

이어 2000년대 한국에 진입한 외국계 보험사들이 GA를 활용해 높은 매출을 거두자, 국내 보험사도 GA 채널 활용을 늘리며 주도권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손해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보험업은 그간 규제로 인해 보험사가 상품에 차별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판매채널이 경쟁력이었다”며 “GA에 수수료를 줘서라도 신규고객을 유치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적 문제도 크다”고 지적했다.

한 번 내준 주도권은 돌이키기 어려웠다. 전속설계사보다 GA로서 계약을 했을 때 지급받는 수수료가 더 많아지자 능력 있는 전속설계사들이 대거 GA로 옮겨가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문제는 보험사와 GA의 이상한 공생이 결국 소비자의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보험회사의 경영 악화는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GA로의 판매채널 변화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점은 또 있다. GA의 영향력 확대와 경쟁과열에 따라 과도하게 많은 수수료와 시책비 등을 지급하는 게 불완전판매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책에 눈이 먼 GA가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 등에 대한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허위로 안내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보험 모집 과정에서 모집인에게 지급하는 판매촉진비의 급격한 증가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GA의 불완전판매는 소비자에게 해가될 뿐 아니라 이 책임이 보험사로 전가돼 사업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된다.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GA가 모집을 하면서 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도 보험사가 1차적 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험사가 GA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지만, 갑의 위치에 오른 GA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게 쉽지 않다.

김창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GA 소속 설계사들이 수수료가 높은 상품 위주로 계약 체결을 권유하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수수료 1200% 제한에 인력이탈 심화할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국과 국회 등에서 GA에 대한 규제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다. 먼저 금융위원회는 계약 첫해 모집수수료를 월 납입 보험료의 1200% 이내로 제한하는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보험사 전속설계사 뿐 아니라 GA 소속 설계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시책 등 직·간접적으로 귀속되는 모든 비용이 포함된다. 현재 GA가 받는 수수료가 많게는 1500~1600%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규제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전속 설계사대비 높은 수수료로 설계사 규모를 키워 온 기존의 덩치 키우기 방식이 더 이상은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에 GA업계는 반발한다. GA는 보험사로부터 받는 수수료 안에 설계사 수수료 외에 운영에 필요한 임차료, 전산 설비, 법률비용 등 추가 경비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보험사 전속설계사들이 조직 운영비를 쓰며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달리 GA는 모든 비용을 설계사 개인이 지출한다. 국내 한 대형 GA 관계자는 “현재 법인이 1600%를 받으면 실제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1200% 정도”라며 “1200%가 법인에 들어오면 실제 GA 설계사들은 많아야 800~900%의 수익밖에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회에서도 GA에 대한 규제 내용이 담긴 법안이 발의 됐다.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7월 말 GA에게도 불완전판매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GA 소속 설계사가 보험 모집 시 금융소비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1차적인 배상책임을 부여하고 손해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법안도 있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GA(중개업자)가 소비자에 상품을 판매할 때 판매업자(보험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보수와 그 밖의 대가의 내용 등을 표기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손해액을 추정하기 쉽게 하기 위함인데, 일선 설계사들이 영업활동을 하기에 큰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GA 업계는 자정작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규제가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GA협회에 따르면 GA 모집계약 중 불완전판매 비율은 최근 5년 동안 낮아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GA의 모집계약 건수 825만2277건 중 불완전판매 건수는 1만1689건으로, 비율은 0.14%다. 중·대형 GA의 불완전판매비율은 0.08%에 불과하다. GA협회는 올 초 자정결의 및 실천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전문성 높여야 생존 가능

보험업계에선 GA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에 GA 업계도 변화에 나서고 있다. 보험회사에서도 하지 못한 ‘정규직 실험’이 대표적이다. 피플라이프와 리치앤코는 각각 ‘보험클리닉’과 ‘굿리치라운지’라는 고객 내방형 점포의 보험설계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운영 중이다. 이들 GA가 채용한 정규직 보험설계사는 기본급과 4대 보험이 적용된다. 여기에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정규직 고용을 통해 설계사의 전문성을 높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직 사업성이 검증되진 않았지만 각 사의 보험을 비교분석해 현명한 선택을 하려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GA의 본분’에 걸맞는 사업모델이라는 평가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빅테크 기업을 통한 보험 영업이 시작되면 대면 GA 채널은 결국 ‘자문 중심 채널’로 발전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선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소비자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52호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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