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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한가위’ 11인의 시선 | 김준태-평정심] 코로나 시대에 더욱 절실한 ‘마음공부’ 

 

마음의 공정성·일관성 확보… 내 판단·결정 올바른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올해 초만 해도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 있을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금기되어버릴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상, 마음 편히 극장을 가지 못하고, 식당에서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도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적응하면 괜찮아질까? 싶다가도, 하루아침에 확진자가 폭증하고 자가 격리로 약속이 취소되고 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코로나19를 극복한다고 해도 끝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22, 코로나25가 생겨나 우리를 또다시 괴롭힐지 모를 일이다.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일상뿐 아니라 업무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정보가 모자란 데다,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니 숙고할 시간도 부족하다. 현재의 역량으로 감당하기가 벅찰 지경이다. 그러니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헤쳐갈 수 있도록 평소에 전문지식과 소양을 쌓아야 하고, 폭넓은 안목을 길러야 하고, 깊이 있는 사고력과 올바른 판단력을 배양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공부하고 훈련시켜놓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이 마음공부다. 불확실성으로 인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꼭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이 ‘마음’으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자세와 직결되어 있다.

개인 자유 보호 VS 공동체 안전 위한 통제

무릇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울수록 더더욱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냉정하게 행동해야 하는 법이다. 요즘 보면 사람들이 많이 예민해져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생계가 힘들어진 탓일 것이다. 화를 참지 못해 난동을 부리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기사도 자주 눈에 띈다. 그 심정이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면 잘못된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 차분히 앞날에 대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대학(大學)] 7장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이른바 몸을 수양한다는 것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일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고, 두려움이 있으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으며, 좋아함이 있으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고,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분노·두려움·좋아함·걱정 이 네 가지 감정은 인간 마음의 대표적인 작용들이다. 이것이 ‘마음에 있으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일로 인하여, 혹은 누군가 때문에 내가 화가 났다고 하자. 이내 감정이 격해지고 말이 거칠어진다. 인지능력과 판단력이 저하되어 상황을 왜곡하고 후회하게 될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애꿎은 사람들에게도 분노한 감정을 쏟아낸다. 누구나 상사가 화가 났을 때는 보고하러 들어가길 꺼려하지 않는가? 나한테도 불똥이 튈까 봐.

그렇다고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분노라는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유학(儒學)에서는 그와 같은 감정이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났다면’, 그리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다면’ 올바르다고 말한다. 즉, 분노할 만한 일이 있으면 분노해도 된다. 의롭지 못한 일을 봤는데 분노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분노의 감정이 지나쳐서 스스로 눈과 귀를 가리고, 그릇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에서 ‘마음에 있으면(有)’이라고 하였는데, 이때의 ‘유’는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생겨난 때가 아니라, 그 감정이 치우쳐서 나쁜 영향을 주게 되는 때라는 뜻이다. 감정이 적절하게 표출되지 못하고 지나쳐서 나쁜 영향을 주게 되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되면 설령 분노하게 되더라도 적절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음공부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지금은 ‘평상(平常)’의 시대가 아니다. 능동적인 ‘변칙(變則)’이 필요한 시대다. 원칙을 고수하고 기존 방식을 유지하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변수도 많다. 또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불확실성’은 무엇을 우선하고 무엇을 유보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으니, 무엇이 옳은 선택일지 고심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문제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통제하는 문제가 충돌하고 있다. 이때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어떤 식으로 비중을 둘 것인가? 매뉴얼이라든가 참고할만한 과거 사례도 없다. 물론 상황의 엄중한 정도, 주변 환경 등 ‘상황적합성’을 면밀히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결정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지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잠시 흔들릴지라도 최선의 길을 찾아내야

그래서 유학에서는 무엇보다 행위자의 마음 수양을 강조한다. 변칙을 행사하는 것을 유학에서는 ‘권도(權道)’라고 부른다. 권도는 때와 상황에 따라 원칙을 지킬 수 없을 때 ‘부득이’ 사용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공공의 질서가 위협받을 때는 일정 부분 그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권도다. 지휘체계에 따라 업무를 진행해야 하지만 상황이 급박할 때는 ‘선조치 후보고’ 하는 것이 권도다.

그런데 이 권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과연 권도를 사용해야 할 상황인가? 지금 사용하는 권도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권도를 사용해야 하며, 반드시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의적인 판단이 남용되고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마음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고, 나의 판단과 결정이 올바른 것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일찍이 삼봉 정도전은 ‘중추가(中秋歌)’라는 시에서 “작년이나 올해나 이 몸은 그대로요 밝은 달도 다르지 않건만, 사람의 정은 때에 따라 달리 느껴지도다”라고 노래했다. 작년 추석은 즐겁고 행복했는데 올해 추석은 힘들게 보내는 것에 대한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마치 오늘 우리의 이야기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부환경에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을 강하게 만들자. 부득이 선택한 권(權)을 도(道)에 합치시키듯,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다. 잠시 흔들릴지라도 반드시 최선의 길을 찾아낼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553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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