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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한가위’ 11인의 시선 | 백석현-환율] 연준의 방어벽 덕에 차분해진 외환시장 

 

글로벌 경제 선순환 나타나야 의미 있는 달러화 하락 가능

원달러 환율은 올 여름을 전후로 한주간 10원 이상 움직이는 모습이 손에 꼽을 정도로 위아래가 꽉 막힌 양상이다. 10원 이상 움직인 주간에도, 변동폭이 크지 못했다. 원달러 환율은 7월에 1200원 밑으로 내려선 이후, 1200원 레벨은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지난 3월 1300원선을 턱 밑까지 차올랐던 때가 벌써 아득해졌다. 9월 들어 마찰음이 들리는 와중에도 외환시장 반응은 아직까지 미적지근할 뿐이다.

쉼 없이 내달리던 미국 주식시장 특히 NASDAQ(나스닥)이 들쭉날쭉하고, 뇌리에서 지워졌던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 합의 없는 EU 탈퇴)의 망령도 느닷없이 영국이 기존의 EU 탈퇴 합의를 건드리면서 재소환되었지만 환율의 반응은 둔했다. 외환시장이 이렇게 차분해진 배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만 꼽으라면 단연 미국 연방준비제도 덕이다. 연준이 전폭적인 유동성 공급 의지로 무장하며 모든 악재들을 덮어버렸다.

금융시장 및 환율 안정을 뒷받침하고 있는 연준의 방어벽을 뚫어 내고 다른 변수가 외환시장을 뒤흔들기에는 다소 벽이 높아 보인다. 물론, 역병으로 생긴 미국 경제의 상처들이 아물고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연준도 서서히 발을 빼겠지만, 그 시점이 까마득할 뿐 더러 그들 역시도 낮은 인플레이션이 일상화 된 미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절대 서두르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선진국 추격하던 신흥국의 동력은 약화

코로나19 이후는 어떨까. 환율은 어렵다고들 한다.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많을 뿐 아니라 그때그때 견인차도 달라진다. 그 다음은 결국 글로벌 경제의 양상이 외환시장을 좌우할 텐데, 이 과정에서 코로나19가 재촉한 사회경제적인 변화는 외환시장에 어떠한 여파를 미칠까.

코로나19는 이미 진행되고 있던 디지털 사회 전환을 가속화하면서 우리 사회 내에 세대간 격차를 만들어냈고, 더불어 디지털 소외 계층이 부각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술이 진화하는 트렌드는 한편으로 기술 부국과 빈국간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후발 주자인 신흥국들은 세계화 시대에 저렴한 임금과 지대(地代)를 지렛대로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고, 산업의 발전과 양질의 일자리 증가 수혜를 누려 왔다. 그런데 이러한 신흥국 모델도 이제 한계에 직면한 듯 하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 및 선진국의 공급망 내재화 등으로 인해 이미 기술을 선점한 선진국과 후발 신흥국간 격차가 다시 확대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각광받는 베트남도 아직까지는 세계 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가령, 베트남의 수출에서 외국인 투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만 해도 토종 기업들과 대등한 수준이었으나 최근 5년간에는 2배에 달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외투기업과 토종기업 간의 연계가 미약하여 로컬 기업의 경쟁력 상승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사실이 신흥국 통화 가치가 계속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를 떨쳐 내고 경기사이클상 향후 세계 경제의 선순환이 시작되면, 신흥국 자산의 저가 매력이 더해져 자본 유입과 함께 신흥국 통화의 가치가 한동안 강세를 보이는 기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흥국을 뜯어보면 그 안에서도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와중에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기업들의 탈(脫) 중국 행렬이 주로 베트남 등 아시아 주변국을 향하다 보니 그나마 아시아 지역은 선방하는 편이다. 중국 성장의 수혜도 주로 아시아에 집중되면서, 유럽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신흥국과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남미 신흥국들에 비해 형편이 낫다.

아시아 신흥국이라면 인도를 빼 놓을 수 없다. 이제 명목 GDP 기준으로 인도의 경제규모는 독일 다음으로 세계 5위이며 한국 경제규모의 2배에 육박한다. 자생적으로 꽃핀 IT 기술의 발전은 최근 다소 주춤해졌다 하더라도, 우수한 인적 자본이 뒷받침되는 이 IT 강국의 미래를 여전히 기대하게 만든다.

중국의 잠재력은 말할 것도 없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지닌 중국은 사활을 걸고 미국의 견제를 받아내며 전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볼 때, 미국 등 선진국의 기술력이 신흥국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양상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아시아는 신흥국 내에서도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신흥국과 선진국의 중간지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위상이 업그레이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신흥국으로 간주된다. 글로벌 자본이 가장 많이 추종하고 활용하는 글로벌 증시의 벤치마크 사업자 MSCI(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가 한국을 신흥국으로 분류하는 영향이 크다.

신흥국 범주에서 아시아는 선전

미국계 투자자 대다수가 MSCI 기준을 따르는데 한국 주식시장에 미국계 자본의 영향력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MSCI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한국의 원화가 역외 외환시장에서는 자유롭게 거래되지 않기 때문인데, 정부가 원화의 국제화를 추진할 계획이 희박한 만큼 MSCI가 기준 자체를 완화하지 않는 한 한국은 금융시장에서 신흥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에는 달러화 움직임이 훨씬 더 중요하다. 글로벌 자본의 움직임은 달러화를 통해 파급되고 결국 원달러 환율을 좌우한다. 그런데,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화의 금 태환 중단을 선언한 이후, 굴곡이 있었던 달러화가 현재는 2011년 이래 시작된 3차 달러 강세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지 모른다. 1차, 2차 달러 강세기에 비해 금번 강세기는 기간이 길어진 데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경상적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다보니 시장에는 달러화 약세 가능성을 의식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달러화 약세가 고작 몇 달에 그치지 않고 지속성을 띠며 3차 달러 강세기의 종언을 고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글로벌 경제의 선순환이 나타나면서 달러화 이외의 투자 대안이 많아지는 시점이 될 것이다. 즉, 달러화 자산 외에 유로화, 위안화 또는 한국 원화 자산에서 매력적인 수익 기회가 늘어나는 시점이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53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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