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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왕의 공부' 저자] ‘공부 잘한 왕’이 전성기 이끌었다… “공부는 평생해야” 

 

세종·정조 등 조선 왕의 공부법 소개… 최고의 공부는 자기반성과 경청

▎ 사진:신인섭 기자
조선시대 왕은 스스로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어진 성군이 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매일 공부하는 것이었다. 나랏일을 보면서도 수많은 유학 경전과 역사서·실용서를 탐독했다. 국정을 배우면서도 경연을 통해 끊임없이 배움의 수준을 시험받고 능력을 검증받았다.

신간 [왕의 공부]는 조선 왕이 왜 이토록 공부에 매진하고, 또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저자인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본지에서 역사적 인물의 라이벌 관계를 다룬 칼럼 ‘호적수’를 연재 중이다. 저자는 “왕의 공부에 있어서 핵심은 자기반성과 경청이었다”고 말했다. 책 출간 며칠 후 그를 만났다.

왕의 공부에 주목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왕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이라고 하면 나와는 먼 존재라고 여기지만 누구나 스스로가 ‘인생의 왕’이지 않나. 왕의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부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왕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가장 체계적이면서도 풍부하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왕에게 있어서 공부는 곧 의무라고 했는데.

“왕은 결정하고, 판단하는 자리다. 모든 전문지식까지 다 갖출 순 없지만 왕의 사소한 선택이 국가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왕이 감정에 휘둘리면 신하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다. 사실 왕이 어떤 사안에 구체적으로 개입해 결정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왕이 깊숙이 개입하는 것 자체가 조정에 혼란을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왕이 할 일은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데, 부단히 공부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조선에는 ‘경연’제도가 있었다. 왕과 신하들이 모여 유학 경서와 역사서를 강론하고, 그와 관련된 정치 문제, 정책 현안을 논의한 자리다. 이 시간에는 정식 회의보다 훨씬 자유롭고 진솔한 의견이 오고 갔다. 경연을 통해 왕은 자신을 반성하고 신하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려 했다. 예를 들어 세종은 “경연에 임어했다”는 표현이 2000건 이상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수시로 경연을 진행했다.

모든 왕이 공부를 잘한 건 아니지 않나.

“물론이다. 왕의 공부가 경연이라면 세자 시절에는 서연에 참여했다. 그런데 세자 수업을 착실히 들었다고 반드시 공부를 잘한 것은 아니었다. 세종은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충녕대군 시절 세자 수업을 받지 못했다. 연산군은 세자교육 기간이 누구보다 길었지만 즉위 후에는 경연에 아예 참여를 안 할 정도로 공부에 소홀했다. 왕은 하루 세 번의 경연을 한다고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왕들은 국정을 살피기 바빠 경연을 열지 않거나 시간이 생겨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빠지기 일쑤였다.”

공부 잘한 왕이 곧 성군(聖君)이 됐나.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경연에 참여한 왕일수록 전성기를 이끈 것은 사실이다. 세종과 정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모범생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종과 광해는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이지만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고, 개인적으로 정조는 명군이었으나 성군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왕이 엇나간 사례는 드물다. 연산군을 흔히 폭군이라고 하는데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은 정석대로 철저히 교육 받은 인물이다. 본인이 그 과정이 힘들어서였는지 아들에겐 자유를 많이 줬다. 그게 폐단이 아니었을까.”

왕과 신하가 경연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게 실제로 가능했나.

“그래서 왕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대에서도 조직의 리더가 의견을 잘 듣고 수용해야 토론이 활발하지 않나. 조선시대 왕의 첫 번째 덕목은 경청이다. 어떤 말이든 잘 들어야 한다. 신하는 그런 왕을 위해 목숨을 걸고서라도 옳은 말을 하는 게 의무이자 진정한 선비정신이었다. 왕권이 강력했던 시대에도 신랄한 비판을 담은 상소를 올리는 게 가능했다. 유교적으로 바른 말을 한 사람에게 죄를 물을 수 없었기에 왕이 속으로는 미워할지언정 대놓고 옳은 말하는 신하를 벌할 순 없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점이 이처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유교적 가치 가운데 좋은 점마저 왜곡되고, 잊혀져간다는 사실이다.”

왕은 존귀한 자리다. 권력에 취해 오만해질 수도, 신하의 복종에 횡포를 부릴 수도 있다. 이를 경계하며 세종은 “임금은 포용을 도량으로 삼아야 한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도 반드시 경청하여 그 말이 옳으면 채택하여 받아들이고, 비록 맞지 않더라도 죄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이는 임금이 백성의 사정을 알고 자신의 총명을 넓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라고 했다.

왕은 경청에 힘써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검증받고 발전시켜 새로운 것을 이끌고, 만물을 교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신(日新)’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공부하면서 제대로 수양하고, 실천하고, 고쳤는지를 살필 때 자신도 새롭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이어서 완벽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기 위해 노력이 훌륭한 왕을 만들었다.

‘조직의 왕’이라고 불리는 리더들은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공자는 환갑 나이를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예순이면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뜻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나이가 들수록 편견에 사로잡혀 남의 말을 듣기 쉽지 않기 때문에 나온 말 같다. 왕이 승계에 의해 올라간 자리라면, 현대의 리더는 말단 직원부터 단계를 밟아 나이가 들어 요직에 오른다. 그만큼 본인의 경험이 쌓여 무조건 내 방식이 맞다는 선입관이 생기기가 쉽다. 리더가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선 선입관을 배제하고, 상황을 올바르게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왕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도록 수양을 우선시 했듯 리더 역시 때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잘 들을 자세를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왕의 공부가 현 세대에 주는 교훈은.

“왕은 평생을 공부해 모범을 보였다. 영조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책을 보며 ‘오늘도 새롭게 깨달은 바가 있다’고 탄복했다. 요즘도 흔히 공부는 평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부가 학창시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업무 능력이든, 인격이든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모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선 왕처럼 부단히 배우고, 수양해 평생 성장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566호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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