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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 투자 마인드 리셋] “편안한 투자가 가장 좋은 투자” 

 

종목·타이밍보다 자산배분·적립에 중점을

지난 해 여름쯤 투자 고수급에 오른 후배와 맥주 한 잔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앞으로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화제가 자연스레 모아졌다. 당시 의견 일치를 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제조업으로 먹고 살았다.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할까. 반도체, 2차 전지와 전기차, 바이오산업이 잘 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는 것 아닌가. 지금 이 세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배팅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 후배는 이들 분야의 기업들을 더 집중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속 회사가 자산운용사인지라 기업 분석을 열심히 해도 주식을 매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테마형 주식형 펀드를 찾아서 투자하는 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ETF(상장지수펀드)라는 새로운 수단(Tool)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투자를 위한 기업 분석 혼자선 어려워

투자 성과를 결정짓는 세 가지 변수는 마켓 타이밍, 종목 선택 그리고 자산배분이다. 개인적으로 이중 가장 어려운 것이 마켓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00년대 초 주가 급등기에 수많은 스타급 개인투자자들이 등장했다. 당시 투자분야 초년병 기자였던 필자는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결코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의 일과를 듣고는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였다. 당시 상한가 따라잡기, 데이 트레이딩과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번 이들은 하루 종일 시세판에 매달려 전투하듯 일상을 보냈다. 돈을 많이 벌 수는 있겠지만 하루의 삶이 너무 고단해 보였다. 돈을 위해 자신의 일상을 저당 잡힌 격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저당 잡힌 인생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면 좋았겠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 그들의 말로는 비극이었다. 그것도 참혹한 비극이었다.

레버리지를 이용해 빨리 부자가 됐던 이들은 부자가 된 속도만큼 빠르게 돈을 잃었다. 선물 투자로 대박을 쳐서 전국구 스타가 됐던 이도, 파생상품 시장의 큰 손으로 군림했던 이도, 요즘 말로 표현하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을 정도로) ‘빚투’(빚내서 투자할 정도)로 단타를 쳐 돈을 벌었던 데이 트레이딩 스타도 지금은 잊혀진 존재가 됐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권력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듯하다.

종목 선택도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투자자 세스 클라먼 같은 이는 투자를 ‘고도의 고된 지적 노동’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좋은 투자자가 되려면,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종목선택을 위해서는 기업분석을 해야 하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산업 분석도 해야 하고, 재무제표도 들여다봐야 한다. 필요하면 기업 탐방도 해야 하고, 실제 시장에 나가 그 기업의 제품이 잘 팔리는지 여부도 살펴야 한다. 더 깊이 기업을 알기 위해 경쟁 업체를 조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매입을 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처음 투자 판단과 맞았는지 추적 관찰도 해야 한다. 이것이 모두 너무 재미있고 적성이 맞으면 상관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필자는 그렇지 못하다.

자산배분도 엄격하게 들여다보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지만 마켓 타이밍이나 종목 선택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앞의 후배와의 대화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반도체, 2차 전지, 바이오는 엄청난 경제 지식이 없더라도 현 시대에 구조적 성장을 하는 분야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도 거의 매일 경제 뉴스에 등장을 했고,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귀에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속한 기업들의 실적(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 볼 수 있다)을 살펴보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기업 분석 단계로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작업과 고민이 많아진다. 2차 전지 기업 중에서 대형주를 사야 할지, 성장성이 높은 중소형주를 사야 할지부터, 국내 기업을 사는 게 좋을지, 아니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중 하나인 중국의 주식을 사야 할지, 아니면 신계(神界) 주식에 진입한 테슬라를 사야 할지 등등. 이런 고민을 깊게 하기는 싫고(?), 또 분석 능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개별 종목만큼의 대박 수익은 나지 않더라도 달콤한 과실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바로 ETF(상장지수펀드)를 활용하면 된다. 전기차나 2차 전지 관련 ETF는 미국·중국·한국에 모두 상장돼 있고, 누구나 살 수 있다.

만일 투자 시점이 고민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립식으로 매수하는 것이 가장 쉽고 편안한 방법이다. 성장의 방향은 정해져 있는데, 시간과 변동성이 문제인 경우, 적립식만큼 강력한 투자 방법은 드물다. 투자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데, 방향은 올바르더라도 가는 길에는 수많은 협곡과 험산이 놓여 있는 법이다. 미래를 알려주는 정확한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협곡과 험산을 피해 목적지에 갈 수 있으련만 투자 세계에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 성과를 결정짓는 변수 3가지, 마켓 타이밍, 종목 선택, 자산배분을 놓고 보면 투자의 세계라는 게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앞의 두 가지에 목을 맨다. 하지만 투자 이론가들의 연구 결과는 마켓 타이밍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종목 선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게다가 자산배분이 마켓 타이밍과 종목 선택 보다 더 투자 수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편안하게 꾸준하게 투자하는 법 찾아야

투자자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마켓 타이밍이나 종목 선택이 아니라 자산배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이다. 자산배분을 하려면 투자 정책을 잘 세워야 한다. 이 돈의 용도는 무엇이며, 내가 투자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인지, 시간 지평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투자 방법에 있어서도 요즘 유행하는 레이 달리오의 올웨더 투자전략처럼 여러 자산에 분산해 놓고 리밸런싱을 해 나갈지, 아니면 주요 섹터를 설정한 후 적립식으로 해 나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개인투자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산배분 전략이라고는 주식과 채권 그리고 해외투자 비중 정도였다. 성장 섹터나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예를 들어 배당주)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기업 분석에 많을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고된 지적 노동을 덜 하고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할 수 있는 수단, 즉 ETF가 우리 곁에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ETF가 성장한다면, ETF는 지금도 그렇지만 더더욱 투자 필수 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투자자들은 투자대상도 중요하지만 투자 방법도 그에 못지않다는 점을 잘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적립식 투자법은 단순하지만 투자자들에게 심리적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심리적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투자는 오래갈 수 없다. “투자는 편안해야 해. 어렵고 힘들면 안 돼. 일은 어렵고 힘들게 해도 돼. 끝나면 보람이 있어. 그러나 투자가 매번 어렵고 힘들다면 어떻게 견디겠니? 결과를 본인이 확신할 수도 없는데…그래서 편안해야 해.” 필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한 선배의 얘기이다.

※ 필자는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69호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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