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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째 방치된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처벌 미약한 현행법이 부동산 투기·범죄 키웠다 

 

김영란법 중 ‘이해충돌 방지’는 빠져… 목소리뿐, 논의 미루다 모두 자동 폐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과 장충모 한국토지주택공사 권한대행 등이 LH 임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현장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다. 몇몇 직원의 개인적 일탈을 넘어 뿌리 깊은 구조적 부패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지난 3월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자회견을 열고 “토지대장 등에서 LH 직원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눠 땅을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며 LH 직원 10여 명이 광명·시흥 3기 신도시 선정 이전에 토지 7000평을 사들인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단순투자가 아니라 신도시 개발 사전정보를 이용해 투기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하루 동안 일부 필지만 조사해 내놓은 결과여서 드러나지 않은 투기 문제가 더 크게 드러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문제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LH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에 대해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LH 직원 사태는 우리 공직사회가 심각하게 돌아 보아야 할 중대사안”이라며 사과했다.

문제는 현행법으로 공직자나 공기업 직원들의 투기를 막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등 관련 기관 종사자가 내부 정보를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누설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부패방지법’에도 공직자가 업무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물·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상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얻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이를 밝히더라도 그 이익을 강제로 환수할 방법이 없어 처벌 강도가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까도까도 나오는 LH 임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


과거 1·2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도 대규모 부동산 투기와 땅값 폭등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그런데도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된 것은 이 같은 이유라는 지적이다. 1기 신도시 개발은 1989년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했다.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등 5개 지역이 후보지로 선정됐다. 이후 부동산 투기 문제가 터졌고 검찰은 이듬해부터 2년 동안 부동산 투기 사범 1만3000여 명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987명을 구속됐다. 금품수수, 문서위조 등에 연루돼 구속된 공직자는 131명으로 집계됐다.

2기 신도시 개발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때였다. 경기 김포(한강), 인천 검단, 화성 동탄, 성남 판교, 서울 송파(위례), 파주 운정 등 수도권 10개 지역과 충청권 2개 지역(아산·도안) 등 총 12곳이 후보지였다. 이때도 투기 문제는 어김없이 재현됐다. 검찰은 2005년 7월 부동산 투기 사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투기꾼들을 잡아들였다. 검찰이 솎아낸 부동산 투기 사범 가운데 공무원 27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기획부동산 업체·전문 투기꾼들에게 개발제한구역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투기 세력과 공모해 허위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무원은 직무상 알게 된 개발 예정지 정보를 이용해 단체로 땅을 매입한 뒤 형질을 불법 변경하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올렸다. 최근 벌어진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방식과 꼭 닮은 형태다.

의원님 ‘밥그릇 걱정’에 뒤로 밀린 이해충돌 방지법


▎3월 2일 민변·참여연대 관계자들이 땅 투기 의혹을 받는 LH공사 직원의 명단과 토지 위치를 공개했다. / 사진:연합뉴스
공직자들이 업무상 얻은 정보를 이용해 부당 이익을 얻는 범죄를 막기 위해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이 거론되고 있지만, 국회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2013년 이후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충돌 방지법은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핵심 조항 중 하나였다. 공직자가 지위를 남용해 가족을 특별채용하거나 공사를 몰아주는 등 사익을 추구하는 일을 막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영란법과 마찬가지로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과 이들의 배우자, 직계존비속까지 적용대상에 포함했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장·차관, 판·검사 등 고위 공직자도 대상이다. 만약 이 법이 시행됐다면 공공기관 임직원도 무겁게 처벌할 수 있어 이번과 같은 신도시 투기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이해충돌 방지에 관한 내용을 삭제했다. 공직자의 부패 문제를 막을 수 있었던 차단막이 세워지지 못한 것이다. 19대·20대 국회에서도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차일피일 논의를 미루다 모두 자동으로 폐기됐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 스스로 이 조항에 저촉될 우려가 커 법 제정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영란법을 주도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이해충돌 방지 규정은 반부패정책의 핵심인데 빠져서 아쉽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국회의원들의 부정과 이해충돌 관련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9년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었을 당시 목포 도시재생 사업을 미리 파악하고 이 정보를 이용해 차명으로 부동산을 사들인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8월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박성규 부장판사는 손 전 의원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박 부장판사는 “직무상 엄격한 도덕성과 청렴성을 유지해야 할 국회의원과 보좌관이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시가의 상승 등을 예상하고 명의신탁을 통해 부동산을 취득했다”며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한 이 사건 범행은 청렴한 공직사회의 건설을 통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시정돼야 할 중대한 비리”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을 탈당한 박덕흠 의원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본인과 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들이 국토교통부와 산하기관 등으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일감 등을 수주하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토부와 산하기관은 국토위 피감기관이어서 이해충돌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박 의원은 국토위에서 환경노동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기고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김홍걸 의원은 남북경협 테마주를 보유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해당 주식을 처분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으로 일하면서 현대로템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외교통일위원회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먼저 보고받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 또 현대로템은 실적과는 별개로 남북관계의 호전·악화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우가 많아 테마주로 분류된다. 논란이 일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9월 비례대표 출신이었던 김 의원을 제명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해충돌 방지법의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월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안 정부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배진교 정의당 국회의원은 회의에서 “지난해 권익위에서 제출한 이해충돌법안이 상정됐는데, 상정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이미 일부 의원들의 이해충돌 문제가 연이어 발생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국민들께서는 국회가 기득권을 여전히 지키려고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최근 불거진 LH 임직원의 신도시 투기 문제만이라도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셀프조사에 이은 늑장수사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LH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부각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LH와 국토교통부 직원, 청와대 근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를 지시했지만, 정작 조사 주체에 대형 경제·비리 사건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은 제외됐다. 그러면서도 정부 합동조사단에 국토교통부를 포함했다.

셀프조사, 늑장수사 등에 부실수사 우려도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번 사건 10건 중 9건이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LH 사장이던 시절에 발생했다. 이쯤 되면 기획부동산 LH의 전 대표로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LH 사태 진상(眞想)조사를 요구했는데, 정권에 바치는 진상(進上)조사를 하려 한다”며 감사원 감사·검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점을 비판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당장 국토부와 LH가 국민의 불신을 받는 상황이니 조사단에서 국토부는 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이번 투기 의혹이 일부 직원만의 문제인 듯 치부해 논란을 키웠다. 변 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것은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같다”고 밝혔다. 3월 9일에는 국회에서 “주무 부처 장관, LH 전 기관장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다. 규정을 총동원해서 부당 이익을 환수하겠다”고 사과하면서도 “투기 억제를 위해 지속해서 노력했는데 일부의 일탈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이에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LH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 불능으로 추락했다. 변 장관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심사숙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9일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경남 진주 LH 본사와 직원들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기자회견(2일) 통해 투기 의혹을 폭로한 지 일주일 만에 진행된 강제수사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핵심 증거를 인멸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부실 수사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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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6호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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