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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법, 불공정거래 엄벌하지만 범죄는 여전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3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들의 사전 투기 의혹과 관련해 이번 사태가 다시 발생하면 안 된다”며 공공주택 사업 투기 행위 근절을 위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50억원 이상의 투기이익을 얻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보유출 책임자에 중요정보 수신자를 포함하고 정기적으로 정보 누설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이익 금액의 3~5배 이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취득재산을 몰수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했다.이런 법안이 잇따라 나오는 건 현행법으로 불공정 거래나 투기로 얻은 이익을 환수하기 어렵고, 처벌도 미약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공주택사업자, 국토교통부 등 공공기관에서 종사하는 사람이 업무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에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그렇다면 처벌 강화를 통해 LH 직원 등 공직자의 투기 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의 영향을 받는 주식시장을 참고하면 처벌 강화로 범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실제 자본시장법은 내부자거래, 시세조종 행위 등 불공정거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무겁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공정거래 행위가 적발되면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그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회피한 손실액의 3~5배에 상당하는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이나 회피한 손실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했다. 불공정거래 행위를 통해 취득한 재산은 몰수하거나 그 가액을 추징한다.특정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주식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규정도 따로 뒀다. 금융위원회 소속 공무원이나 금융감독원 임직원은 주식 거래 시 증권사 1곳의 계좌 1개로만 거래를 해야 한다. 분기별로 사고판 주식 종목을 감사 부서에 신고하도록 하는 규정도 있다. 한 분기를 기준으로 주식 매매를 20번 넘게 할 수 없고 4급 이상 고위급 직원은 아예 개별 종목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했다. 한국거래소, 금융위원회, 대검찰청 임직원도 주식 거래가 제한된다. 강력한 처벌과 사전 통제로 부당하게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방지책을 세운 것이다.이런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서 불공정거래와 관련한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에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선행매매’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선행매매란 특정 종목 기업분석보고서(리포트) 출고 전 주식을 미리 사뒀다가 리포트 출고 후 주가가 오르면 팔아 이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애널리스트 A씨는 2015~2019년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 추천 보고서를 내기 전에 공범을 이용해 차명으로 주식을 사도록 한 뒤, 보고서 공표 이후 주가가 오르면 되팔게 해 수 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로 기소됐다.법원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로 인해 애널리스트와 이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작성한 조사분석 자료, 금융투자 회사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훼손됐고 그 결과 자본시장 공정성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게 됐다”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했다.2017년 감사원 감사에서는 장모, 처형 등의 계좌로 몰래 주식을 거래한 금감원 직원들이 적발된 사례도 있다. 팀장급 직원 B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국장급 C씨 등 4명에게는 벌금 300만∼2500만원이 선고됐다.
LH가 개발 정보 독점하면 ‘영끌 투기’ 계속이런 사례를 미뤄볼 때 자본시장법과 비슷한 수준으로 부동산 LH 투기 방지법을 강화하더라도 원천적으로 투기 범죄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금지하더라도 일부 직원은 친구나 먼 친척 명의로 주식을 거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LH가 점유하는 독점적 개발정보와 강제 토지 수용 권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본지와 통화에서 “신도시 후보지 정보를 계획 과정부터 공개하면 투기 문제를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협의 과정에서 주민들과의 이해가 맞지 않아 계획이 무산될 우려도 있지만 반대로 이 점 때문에 ‘영끌’ 투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이다.심 교수는 지금처럼 LH가 신도시 개발지역을 결정하고 강제로 땅을 수용하면 내부 정보를 알고 있는 LH 직원들은 실패할 수 없는 ‘안전한 투기’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투기나 범죄를 100%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처벌을 강화하고 독점 정보 이용이나 무소불위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