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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격차’ 기술 주도할 10인]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 

글로벌 반도체 설계 플랫폼 

반도체도 ‘맞춤형’ 시대다. 기존 반도체로는 2% 부족한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 5G통신 등 새로운 분야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예 반도체를 직접 만들겠다는 기업도 나왔다. 세미파이브는 기업이 반도체를 몰라도 필요한 반도체를 만들어주겠노라 선언했다.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는 “반도체 설계 플랫폼을 이용하면 보통 1년 걸리던 반도체 주문 설계 기간이 4분의 1 수준으로 줄고, 비용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다”며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반도체를 가장 빠르고 싸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아무나 만들 수 없다. 통상 반도체 전문 기업이 반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력 50여 명이 투입되고, 비용도 제품 하나당 100억~200억원이 넘는다. 이렇게 1년을 매달려야 반도체 하나가 나온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도 삼성전자나 인텔 같은 곳이 사업성 없이 개발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달라진 건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팹(반도체 생산 공장)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개념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반도체 회사라면 무조건 팹이 있어야 했다.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공장 건설에 막대한 자금이 들자 대만 TSMC가 팹 자체를 플랫폼화했다. 설계도를 들고 가면 만들어준다. 하지만 발주량이 적은 회사는 언감생심이다.

“‘반도체 설계도 TSMC처럼 플랫폼화할 수 없을까?’ ‘고객이 요구한 기능만 담을 수는 없나?’ 이런 생각에서 세미파이브를 창업했습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기본 인프라를 갖추는 데 정말 돈이 많이 듭니다. 데이터가 오가는 큰 구조와 기본 설계는 같은데, 어느 기업이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기본 설계부터 새로 해야 한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우리는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 주문하면 자체 반도체 설계 플랫폼으로 맞춤형 반도체를 설계하고 파운드리(위탁 생산)에 연결 후 테스트까지 해줍니다.”

지난 2월 9일 경기도 분당 코리아디자인센터 내 세미파이브 본사에서 만난 조명현(41)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보통 1년 걸리던 반도체 주문 설계 기간이 4분의 1 수준으로 단축됐고, 비용도 절반 이하로 낮췄다”며 “회사 철학도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반도체를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맞춤형 반도체’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맞닿아 있다.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MIT 대학원에서 반도체 설계 분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 대표는 반도체 제조사로 가는 일반적인 길 대신 글로벌 컨설팅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행을 택했고, 많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전체 시장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조 대표는 아예 창업에 나섰다. 지난 2018년 오픈소스 방식의 리스크 파이브(RISC-V)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 사이파이브(SiFive)에서 출자를 받아 차린 반도체 설계 플랫폼 업체가 바로 세미파이브(SemiFive)다. 투자자들도 반도체 설계 ‘플랫폼’이 나타나자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9년 5월 설립하고 불과 한 달 만에 91억원 규모의 초기 투자금을 유치했고, 지난해 3월에는 34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창업 2년 만에 총 400억원 넘는 자금이 세미파이브에 몰린 셈이다.

세미파이브도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9년 삼성전자 파운드리 설계 솔루션 파트너(DSP) 기업인 세솔반도체를 인수했고, 해외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웠다. 반도체 성능 검증과 레이아웃 작업은 파키스탄에 구축하였고, 반도체 선행 기술 개발 분야는 미국에 R&D센터를 추진 중이다. 계약도 이어졌다. 지난해 14나노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시스템온칩(SoC) 프로젝트와 8나노 5G 모뎀 주문형 반도체(ASIC)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지금까지 세미파이브가 맺은 CPU 설계자산(IP) 라이선스 계약만 25건에 달한다. 조 대표는 ‘무어의 법칙’을 꺼내며 설명을 이어갔다.

‘무어의 법칙’이 깨졌다고 했다.

그렇다. 무어의 법칙이란 1965년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가 18개월마다 컴퓨터의 집적도가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걸 말한다. 실제 50년 동안 반도체 공정기술은 끊임없이 혁신해왔다. 공정혁신이 시장 성장을 주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5나노, 7나노급 미세공정 경쟁에 돌입하면 설계·생산 비용이 뛰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이 법칙이 끝났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실제 시스템 반도체 업계도 제조와 공정에서 설계와 최적화(맞춤형)로 축을 옮겨가고 있다.

‘리스크파이브(RISC-V)’ 얘기도 나왔다.

리스크파이브는 사이파이브에서 주도하고 있는, 효율적인 반도체 설계를 위한 오픈소스 기술이다. 시장을 살펴보면 AI 디바이스 같은 곳에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 IP는 영국 ARM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2015년 UC버클리대 크리스테 아사노비치 교수와 앤드루 워터백, 이윤섭 박사가 창업한 미국 스타트업 사이파이브가 ARM에 도전장을 냈다. 이 회사는 오픈소스 방식으로 최적화가 자유로운 RISC-V 명령어 집합구조(ISA)를 개발했다. 삼성전자, 구글, 퀄컴, 엔비디아, IBM 등 240여 개 기업이 RISC-V협회에 가입했다. 시장이 반도체 최적화에 관심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스크파이브 이후 ARM과 같은 기존 기술도 최적화에 많은 비중을 두고 발전하고 있다.

세미파이브 말고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세미파이브는 지난해 14나노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시스템온칩(SoC) 프로젝트와 8나노 5G 모뎀 주문형 반도체(ASIC)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지금까지 세미파이브가 맺은 CPU 설계자산(IP) 라이선스 계약만 25건에 달한다.
그렇다. 오픈소스지만 완성형 반도체를 설계하는 요소를 다 엮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미파이브 플랫폼은 사이파이브의 맞춤형 중앙처리장치(CPU) 뿐 아니라 제품에 필요한 다른 다양한 상용 기술을 융합한 반도체 설계를 만들 수 있다. 세미파이브는 사이파이브 한국지사에서 별도 법인으로 독립해 반도체 IP를 넘어 설계·생산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을 목표로 한다.

반도체 업계에서 오픈소스는 적용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반도체 공정 자체에 막대한 자금이 들고, 오픈소스화된 반도체 IP를 바로 가져다 쓰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PC용은 인텔이, 모바일용 기기에 쓰이는 AP는 ARM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5G통신이 나오면서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고성능 반도체의 용도가 다양해졌고, 수요도 폭증했다. 기존 반도체 업체에 주문하면 최소 1년 이상은 기다리라고 하니 자체 반도체가 필요한 기업들이 오픈소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미파이브로 완전히 독립한 배경인가.

그렇다. 한국 반도체 업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기존 반도체 IP 독점 체제에서 기를 못 펴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칩이 필요한 세상이 왔지만, 비싼 개발 비용과 넘기 어려운 기술 장벽에 앞에 자신만의 반도체를 만드는 걸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플랫폼 안에 들어오면 세미파이브가 용도에 맞게 만든 아키텍처와 IP를 활용해 독자적인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붙어 설계를 지원하고, 생산까지 연결해준다. 현재 14나노 기반 데이터센터용 시스템온칩(SoC)과 24나노 기반 인공지능 사물인터넷(AIoT) SoC 설계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생산은 파운드리에 맡기나.

그렇다. 하지만 턴키(설계·생산 일괄 입찰) 방식으로 주문형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 과정도 면밀하게 붙어 관리한다. 데이터센터용 주문형 반도체를 설계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도면을 파운드리에 보낸다고 반도체 완제품이 나오는 게 아니다. 팹리스도 말이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이지, 반도체 설계 노하우나 지식이 없으면 생산관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 유통까지 통합해 관리하는 게 어려운 이유다.

미세공정으로 가면 갈수록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떨어진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자체 설계를 통해 가치를 극대화한 사례로 테슬라를 보자.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FSD)을 위한 AI 반도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고 독자 플랫폼을 상용화한 유일한 완성차 기업이다. 2019년 독자적으로 14나노 3세대 자율주행 반도체를 만들기 전에는 엔비디아의 12나노 자율주행 반도체 ‘드라이브 자비에르(DRIVE Xavier)’를 검토했다.엔비디아 양산 제품의 성능 효율은 최고 수준이었지만, 테슬라는 원하는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 반도체 설계를 통한 최적화를 택했다. 정밀한 최적화로 가격과 성능을 잡은 것은 물론 정보 노출을 원천적으로 막은 것은 덤이다.

‘자기만의’ 반도체를 더 쉽게 만들 수 있어야겠다.

그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지금 전 세계 그래픽 처리장치(GPU)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도 그랬다. GPU가 널리 쓰인 건 쿠다(CUDA)라는 소프트웨어 개발도구 덕분이다. 개발자들이 쿠다를 써서 엔비디아 GPU를 가동하면 병렬 연산을 CPU보다 빨리 처리할 수 있다. 압도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진 이유도 있지만, ‘쓰기 쉬운 신기술’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나 쉽게’라고 내건 기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창업 후 상당히 빠른 시기에 인력과 자금을 확보했다.

시장의 이해도와 공감대가 커진 덕분이다. 혁신적인 반도체가 나오려면 이제 하나의 칩을 대량 생산하는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칩을 더 빨리 더 싸게 설계해서 생산하는 플랫폼이 더 절실해졌다는 증거다. 세미파이브가 반도체 개발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엔지니어를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반도체 성능과 기능을 결정하는 SoC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부터 선단 공정 경험이 풍부한 백엔드(Back-end, 후공정-웨이퍼를 각각의 칩으로 절단하는 과정과 그 이후 모든 공정) 레이아웃 엔지니어 팀도 있다. 우리가 소프트웨어, 패키지, 평가 보드, 테스트, 각종 시뮬레이션 등 반도체 개발이 끝난 후에도 지원할 수 있는 이유다. 2019년 박성호 전 삼성전자 부사장, 대기업 반도체를 설계했던 이진언 최고기술책임자(CTO), 미국 지사를 책임지는 켈빈 로 지사장도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컨설팅사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함께했던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기술적인 차별화, 혁신적인 반도체, 앞으로 가져야 할 역량, 부족한 역량 등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했다. 어쩌면 이들의 고민을 푸는 데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2017년 인텔도 지능형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 전용 반도체를 만드는 모빌아이를 17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기존 범용 반도체보다 절반 이하 가격으로 같은 성능을 냈다. 시장의 욕구는 ‘효율성’에서 ‘나도 만들고 싶다’는 다양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가 집중하는 건 타깃 고객의 요구 조건에 초점을 둔 빠른 개발, 이른바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이다. 변혁은 벌써 시작됐다. 플랫폼사인 우리는 고객사와 IP사 등 다양한 스테이크 홀더(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갈 준비가 돼 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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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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