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특별대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 

“사드배치 비용은 미국이 부담해야”_ 반기문
“미국은 북한에 대화 제의하라”_ 보겔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톤=김동현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
1980년대 초부터 맺은 사제관계 40년 가까이 이어져…“한국과 미국 새 정부의 동맹 리더십 새롭게 구축해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동아시아 분야 세계적 석학 에즈라 보겔(87)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만나 한반도 외교 안보 위기의 해법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두 사람은 평화를 위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를 통한 위기 해소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5월 2일 오전(미국 현지시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대담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 사진제공·Paul Huang
5월 2일 오전(미국 현지 시간) 반기문(73)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동아시아 분야 세계적 석학 에즈라 보겔(87) 하버드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월간중앙이 기획한 특별대담을 통해서다. 보겔 교수는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한중일 3국의 정치와 경제를 독특한 시각으로 깊이 연구했다.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그의 혜안은 정평이 나 있다.

반 전 총장과는 1980년대 초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사제의 연을 맺었다. 외교부 연수생 신분으로 하버드에 유학 온 반 전 총장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한다. “반기문처럼 매일 꾸준히, 오랜 시간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보겔 교수의 회고다.

“반기문은 나를 능가한 청출어람”


반 전 총장의 하버드대 직함은 앙겔로풀로스 펠로우(Angelopoulos Global Public Leaders Fellow)다.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 후 하버드에 머물면서 연구, 강연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멕시코, 핀란드의 전직 대통령도 앙겔로풀로스 펠로우로 하버드에 머문 바 있다. 그는 4월 8일 하버드에 도착한 이후 바쁜 일정을 보냈다. 지난 3주간 에즈라 보겔, 조지프 나이, 그라함 앨리슨 같은 하버드의 뛰어난 교수들과 만났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는 로버트 스타빈스(Robert N. Stavins) 하버드대 교수와 공동으로 미국의 파리기후변화 협약 준수를 촉구하는 기고문을 냈다. 두 사람은 위기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정세, 트럼프 시대의 한미일 동맹, 북핵과 사드배치 문제 등 현안을 중심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반 전 총장은 당사국인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보겔 교수는 북한의 공포심에 대한 이해와 진지한 대화 제의를 각각 강조했다.

두 분의 인연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계기로 만남이 이뤄졌고, 그 관계는 어떻게 지속되었는가?

에즈라 보겔 교수(이하 보겔) _ 1980년대 초 나는 당시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생(외교부 연수생)인 반기문을 처음 만났다. 1년으로 정해진 학업을 마친 후 반기문은 추가로 1년을 더 공부하고 싶어 했다. 내가 하버드대 미일 관계 프로그램의 소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대다수 연구원은 미국과 일본 출신이었다. 반기문은 미일 관계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당시에도 반기문은 이미 능력이 있고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1년 연장을 희망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반기문처럼 매일매일 꾸준히 오랜 시간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또한 당시 반기문은 시야가 넓어 큰 그림을 보는 데 익숙했다. 중국, 일본인과 함께 일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하 반) _ 보겔 교수와 함께 대담을 갖게 되어 큰 영광이며, 감사드린다. 오랜 스승인 보겔 교수는 나에게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이 어떻게 상호 교류해야 하는지에 관해 통찰력 있는 강의와 다양한 시각을 제공했다.

보겔 _ 중국의 고사성어 중에 청출어람이란 말이 있다. 반 전 총장이야말로 그런 존재다.

반 _ 보겔 교수의 추천을 받아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1년간 학업을 마치고 미일 관계 프로그램에 1년 더 머물 수 있어 영광이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중국·일본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보겔 교수는 <일등국가 일본>의 저자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었고,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그 책은 필독서이기도 했다.

보겔 _ 한국에 관해 요약된 글을 쓴 적이 있었지만 출판한 적은 없다. 몇몇 한국 친구가 번역까지 해주었으나, 출판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반 _ 지난 33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내가 노신영 국무총리의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보겔 교수는 노 총리를 비롯해 한국의 많은 고위 정부관료와 재계 인사를 만났다.

보겔 _ 노신영 국무총리를 비롯해 한국의 외교관과 정부 관료를 다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1993년 반 전 총장이 주미대사관 공사를 지낼 때 다시 만났다. 당시 그는 지식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 상당한 인맥을 갖고 있었고 그들에게 우정과 신뢰를 얻고 있었다. 반 전 총장은 유명해진 이후에도 우리 두 사람 간의 우정을 소중히 했다. 그를 알게 된 것, 그와의 우정에 대해 감사한다.

칼빈슨 항모의 전개, 북한의 미사일 실험 등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현재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봐야 하나?

반 _ 북한은 21세기에 핵실험을 한 유일한 국가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탈퇴한 최초의 국가다. 21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규범 파괴자’라 할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핵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의 정치 리더십이 공백상태라는 점이다. 새 대통령이 빨리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미-중 회담이 상호 협력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보겔 _ 중국은 자신의 대북정책이 좋은 정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과 일본이 전역(戰域) 미사일 방어체계를 개발하는 등 한미일 3국은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식인의 관점에서 지난 미국 대선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트럼프의 조심성 없는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행정부 내에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매티스 국방장관, 틸러슨 국무장관 같이 국제관계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극단적인 생각을 저지하며 진정한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미국을 이끌어갈 이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트럼프가 잘하고 있는 것도 있다. 정책에 상관없이 국가지도자들을 만난다는 점이다. 지식인들은 이 점을 간과해왔다. 트럼프는 아베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시진핑과 좋은 회담을 했다. 미국에 부정적인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도 만날 의지를 보인다. 정상 간의 좋은 개인적 관계와 행정부 고위 관료의 합리성을 조합한다면, 결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중 회담에서 시진핑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수천 가지가 있으나 그렇지 않을 이유는 한 가지도 없다”고 발언한 것은 고무적이다.

미국은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노력 부족


국제사회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단결해야 하는가? 한미일과 중국의 역할은?

반 _ 전문가들과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북한은 핵 프로그램, 무기화, 소형화의 마지막 단계에 가까워졌다. 북한은 30차례 넘게 탄도미사일을 시험했고, 실패했던 경우에도 매 시험마다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통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 것은 몹시 우려할 만한 일이다. 역사상 어떤 핵 보유국도 자신의 핵능력을 이런 식으로 오만하게 과시한 적이 없었다.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통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우선 모든 국제사회가 완전히 단결하여 북한에 분명하고 엄중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협조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협조다. 중국이 얼마나 성실하게 관련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이행하느냐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과 2321은 국제사회를 향해 내가 항상 인용해온 중요한 결의안들이다. 북한 문제를 다뤄온 내 경험에 비춰볼 때 두 결의안, 특히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21은 가장 포괄적이고 완전한 제재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북한의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직접적인 당사국으로서 한국 정부는 새 대통령이 모든 외교적, 정치적 자원을 동원해 북핵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 북핵 문제는 새로운 한국 대통령과 정권의 최우선 순위이며 미국, 중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보겔 _ 우리는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노력이 부족했다. 상대방의 우려를 이해해야 한다. 북한은 자국에 대한 미국의 공격 가능성에 겁을 먹고 있으며 핵무기를 통해서만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오직 핵무기만이 한국에 비해 약한 경제력과 군사력에 대응할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의 입장에서 미국을 바라보자면, 미국은 과거 경수로를 비롯해 모든 약속과 책임을 이행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이전 정권에서 약속한 제네바 합의가 조지 W. 부시 정부에 의해 이행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북한은 미국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가능한 해법을 생각할 때, 군사적 해결책이 가능한가 의문이다. 군사적 해결책은 서울, 도쿄와 베이징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 중국의 대북 석유수출 감축, 압박 증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은 오랜 기간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은 북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장기간 지속된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그래서 군사적 해결책은 위험하다. 피해야 한다. 대화를 시도하기 전에 북한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쉬운 해답은 없다. 반 전 총장의 조언대로 강력한 유엔 제재에 미국과 중국이 협조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관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이러한 수준의 긴장은 없었다”


▎2016년 9월 4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만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전직 유엔사무총장, 외교부장관으로서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가?

반 _ 나는 1990년대 북핵 문제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북핵 문제를 다뤄왔다. 5인의 정부 대표단 중 한 명으로 1991년 12월 31일 채택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적이 있다. 당시 협상에 참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 협정은 1992년 2월 한국 국회에서 비준됐다.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힘입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JNCC, Joint Nuclear Control Committee)가 구성됐다. 나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구성된 작은 협상팀인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부의장직을 맡았다. 안타깝게도 북한이 사찰 방식을 반대했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한국은 강제사찰(challenge inspection)을 주장한 반면, 북한은 합의된 일시와 장소에서 진행하는 사찰을 주장했다. 우리 측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다. 전직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북핵 문제의 시발점부터 관여해왔으며, 대한민국 정부와 차기 대통령으로부터 도움을 요청 받는다면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나의 모든 경험, 비전과 노력을 다할 것이며 미국, 중국, 일본과 같은 중요 파트너와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다.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반 _ 외과수술식 북한 핵시설 타격, 미 칼빈슨 항모 침몰 등의 수사(rhetoric)와 한반도의 고조된 긴장, 대다수 한국민의 우려 등을 지켜볼 때 과거에 이러한 수준의 긴장은 없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1969년 미 해군 전자정찰기 EC-121는 국제공역에서 비행하던 중 북한에 의해 격추당했으며 31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당시 북미 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었다. 기밀해제된 공식 문건에 의하면 당시 닉슨 대통령은 북한에 보복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인 중에 또 다른 전쟁을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금의 위기가 외교적 수단을 통한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외교적인 수단 및 대화가 단순히 대화를 위한 것만이어선 안 된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관련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하고 핵프로그램을 폐기하며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정치적인 의지와 한국민의 통합된 힘 등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 북핵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대선 출마를 고려했을 당시 나의 최우선 과제는 한국 사회 전반의 통합이었다. 국가에 일치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정치·경제·사회·민간 분야의 지도자들을 만나 소통하며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야만 더 강한 역량과 힘을 가질 수 있다.

보겔 _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을 개방하고자 했다. 차기 대통령이 햇볕정책과 유사한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반 _ 햇볕정책의 기조는 상호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교류협력을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햇볕정책의 목표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 간의 역사적인 두 차례의 정상회담,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6자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은 경제 원조와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을 받고 핵무기와 핵 시설을 폐기하고 어떠한 핵과 미사일 개발도 중단할 것에 공개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그런 합의는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됐다. 따라서 상호간의 신뢰에 의문이 발생했다. 나는 대화를 지지하는 사람이며 어느 누구도 대화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남북, 북미, 6자회담 등 당사자 간 수많은 대화가 있었다. 대화의 메커니즘이나 창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대화 채널과 메커니즘은 분명 존재한다. 결국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보겔 _ 북한이 가까운 미래에 모든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가까운 미래에 북핵을 관리하기 위한 사찰 등 관련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반 _ 1994년 제네바 합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JNCC, Joint Nuclear Control Committee)을 포함해 많은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 포괄적인 접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합의도 이행되지 않았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모든 규범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몹시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규범과 합의가 준수되도록 촉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화 매커니즘이나 창구가 부족한 건 아니다


▎5월 5일 서해 최전방인 장재도 방어대를 시찰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 사진제공·노동신문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배치 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과연 그런가?

보겔 _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비용 분담에 대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매티스 국방장관은 다행스럽게도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학자들은 소위 ‘성인의 감독(adult supervision)’이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경험과 지혜가 많은 이들이 주도권을 잡았다. 안타깝게도 현 시점에 미국은 중요한 위치에 필요한 사람들을 모두 임명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는 미국에 신뢰감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경험과 경륜이 많은 이들이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믿는다.

아시아 국가와 관련해서는 궁금증이 남아 있다. 트럼프 정권이 이전 정권만큼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가 보다 독립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한국과 일본도 미국과 느슨한 동맹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상황을 살펴보면, 중국은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에 비해 미국의 군사력은 장기적으로 안보를 제공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안정적이다. 장기적으로 현재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다면, 한국과 미국은 상호의존할 수 있는 강력한 동맹으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반 _ 평화와 안보에 있어 한국민들은 미국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한국전쟁 당시 약 3만3000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유엔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이끌어낸 미국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2년에서 1993년까지 나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한국 대표직을 맡았다. 그 이후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과 관련된 일정 비용을 부담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미국이 100%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그 당시 우리는 자급자족할 역량이 없었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미국 정부는 일정 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청했다. 소파 협정의 미국 측 대표는 미7공군 사령관이었는데, 당시 기본 합의는 전력 전개와 운영, 유지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고 한국 정부는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사드를 예로 들자면, 한국 정부는 사드의 부지를 제공하고 시설과 관련된 일정 수준의 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한다. 하지만 실제 작전 운용과 사드 포대 자체는 미국 정부의 부담이다. 1990년 초 이후 소파 협정에 관여한 바는 없지만,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협정이다.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를 재확인했다. 이 같은 문제로 양국 간 오해가 빚어져서는 안 된다.

결론삼아 한국을 둘러싼 정세를 고려할 때 새로운 대통령의 바람직한 외교안보 전략은 어떤 목표를 지향해야 하나?

보겔 _ 새로운 한국 정부의 출범, 중국의 부상, 새로운 미국 정부로 인해 불확실한 시기가 도래했다. 반기문과 같이 경험이 있는 사람과 미국 정부 인사 중 과거 상황의 전개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교감하며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정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다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한국의 새 대통령이 안정된 정책을 마련하게 되기를 바란다. 현 시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국가 리더십이 공고한 것은 행운이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다가올 몇 달 동안 이들과 협력하여 일관성 있는 외교 안보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분단 이래 한반도에 절대적 평화의 시기는 없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보겔 교수는 “한국과 미국은 무력 사용보다 강력한 외교 수단과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제공·Paul Huang
반 _ 지난 10년간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전 세계의 시민·지도자를 만나고 교류해왔다. 유엔은 단결할 때 성공한다. 더 강력한 힘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비극적인 분단이 시작된 이래 한반도에 절대적인 평화의 시기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전 세계의 모델이 되는 국가로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유일한 국가다. 한국 국민들이 통합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통합을 이룰 때 전례 없는 안보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다.

동시에 나는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글로벌 리더십을 기대한다. 어려운 국내적 문제가 있겠지만, 유엔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기후변화와 같은 국제적인 문제에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트럼프 정부가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지킬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자 한다. 4년 혹은 8년의 대통령 임기를 넘어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결정하는 문제다. 미국이 이러한 문제들을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이 개발, 기후 변화, 안보 문제에 더 많은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톤=김동현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

201706호 (2017.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