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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의 ‘동서고금 좌충우돌’(2)] ‘햇볕’과 ‘달빛’ 헷갈리지 마라 

대북 압박·강경정책이 오히려 적화통일·남침야욕 ‘부채질’… 북한 비위 맞추는 유화정책 벗어나 강·온 양면책 병행해야 

대담·정리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군자는 싸우지 않아야 한다. 전쟁하게 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안보(security)는 풍요(affluence)보다 중요하다. 대북정책에서도 전쟁은 어떻게든 피해야 하지만, 도발하면 반드시 격퇴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공맹의 사상에서부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까지…. 동서양의 사상을 온통 헤집어 오늘날 우리에게 면도날 같은 깨우침을 주는 한 참여적 철학자의 일침.

▎탄핵당한 옛 새누리당 세력이 재집권할 것에 대한 국민의 공포심이 문재인을 당선시켰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총리와 비서실장 등 인사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선 이야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여섯 차례의 대통령 후보 간 토론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공감의 철학자’ 황태연(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이번 대선과 문 대통령 취임을 어떻게 볼까? “국민이 대북정책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며 햇볕정책과 달빛정책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빛정책이라는 말은 그가 이미 2004년 10월 ‘대북 달빛정책’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고에서 쓴 용어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Moonshine Era’ 라는 제목의 영국 언론인 칼럼이 실려 주목받았다. 이 영국 언론인은 단순히 문 대통령의 성을 따 그런 제목을 붙였지만, 황 교수의 기고 이후 14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달빛정책의 의미를 다시 부각시켰다. 햇볕정책과 달빛정책은 어떻게 다를까?

공감의 관점에서 이번 대선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탄핵당한 옛 새누리당 세력이 재집권할 것에 대한 국민의 공포심이 제일 컸다고 봅니다. 안철수 같은 중도세력을 생각할 마음의 여력이 없었을 겁니다. 구체적인 정책을 따져보기 보다 그들의 재집권을 우려한 것이죠. 이번 대선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국민혁명이 일단락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 이번 대선 결과에 상당수 공감하고 한동안 허니문을 이뤄갈 수 있을 듯합니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문재인 후보를 바짝 추격하면서 상승세를 타다 TV 토론에서 스스로 점수를 깎아먹은 것 아닌가요?

“안철수의 잘못보다 홍준표가 너무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심해졌어요. 될 사람을 밀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안철수가 토론을 좀 더 잘했다 하더라도 이기기 어려운 양자택일 국면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월간중앙 5월호 기고에서 나는 안철수에 대해 ‘연합에 실패하면 지지 않을 가능성조차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결과적으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안철수의 돌파구는 다양한 정치세력과 연합하고 동맹을 맺는 것인데, 스스로도 별로 생각이 없었고 뒤늦게 시도했을 때는 상대방인 유승민 후보도 시큰둥하거나 거부했습니다. 김종인의 참여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의미가 없었습니다. 양자택일 국면에서는 동맹정책을 구사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보수·진보의 양자택일 상황은 분단국가의 숙명일까요?

“큰 배경으로는 그게 있지만, 탄핵국면이 워낙 직접적이었고 또 탄핵받은 세력이 재집권할 것을 국민이 두려워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안철수 20% 지지’는 국민이 아껴둔 ‘석과(碩果)’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이 아니다. 햇볕의 목표는 북한의 정치군사적 무장해제다. 나아가 군사도발을 억제하고 남침야욕을 해소하는 것이다.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도정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에 안철수가 20%대 초반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씨를 말리지는 않고 다음을 위해 아껴둔 ‘석과(碩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과’는 <주역(周易)> 박괘(剝卦)의 ‘석과불식(碩果不食)’에서 따온 말이다. 과실나무에 달린 과일을 모두 따먹지 않고 다음해 쓸 종자로 남겨두는 것을 의미한다. <실증주역>의 저자이기도 한 황 교수는 한국에서 중도정당의 회생 가능성을 그 석과에 비유한 것이다.

“국민이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슷하게는 표를 주었죠.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이긴 것이 성과이고, 국민의당은 자유한국당과 비슷한 것이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과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때쯤이면 국민이 아마 균형과 견제 심리를 보일 것입니다.”

동·서양 정치사상을 종횡으로 꿰뚫는 작업을 해온 그는 <실증주역>(전2권, 2008) <중도개혁주의 정치철학>(2008, 이상 청계출판사) 같은 책을 펴낸 바 있고 또 실제 정치에 참여해보기도 했다. 1997년 DJP연합을 제안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브레인으로 활약했기에 그의 정치비평은 남다른 데가 있다.

국민의당이 분해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고 보시는군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더 큰 정당으로 빨려들 수 있습니다. 석과불식의 민의를 잘 해석해야 합니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제3당을 만들어줬죠. 총선과 대선에서의 두 가지 민의를 잘 이해하면 마구 흡수되지는 않을 겁니다. 흡수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고 국민의당 내부에도 그에 동조하는 이가 있겠지만, 큰 민의를 어기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쳐 60석 정도 되면 또 다른 한 길이 열릴 텐데, 그건 적극적인 움직임의 길입니다.”

국내외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인수위 기간도 없이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뭐라고 보시나요?

“복지정책은 많이 준비된 것 같습니다. 세세하게 잘할 수 있을 듯해요. 그런데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재원의 뒷받침이 중요한데, 공약에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후보 간 토론회에서도 재원 만드는 방식이 잘 보이지 않았죠. 다섯 후보 중 어느 한 사람도 경제성장을 더 해서 세수를 늘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정책이 세율을 늘리기보다 경제성장률을 높여 세수와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인데, 대여섯 번의 토론에서 한 번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말이 왜 안 나왔을까요?

“유승민은 경제학자임에도 그런 말을 안 한 것을 보면 편향된 경제교육을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증세 없는 복지 없다’는 구호에 갇혀서인지 성장을 통한 복지 이야기는 입 밖에도 내지 않았어요. 그러면 자기가 틀린 말을 한 셈이 되니 그렇지 않았을까요?”

성장의 성과로 복지를 증대하자는 이야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계속해온 주장인데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 아닙니까?

“1990년대 영국과 독일 등 유럽에서 ‘제3의 길’이 등장할 때 복지를 위한 세금을 높이느냐 마느냐로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전통적 좌파는 세율을 높여 복지를 늘리자는 것이었죠. 이런 주장을 유승민이 대변했습니다. 기업의 법인세는 낮추는 대신 성장률을 높여 복지를 늘리자는 것이 우파의 주장이죠. 유럽에서 ‘제3의 길’은 법인세를 낮추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인 경제정책과 성장을 통해 복지를 늘려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제3의 길>을 쓴 앤서니 기든스의 조세정책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제3의 길이 지금도 유효한가요?

“복지를 늘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그중 가장 유력하고 효과적 방식은 여전히 성장을 늘리는 것인데 그런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마치 세금 더 걷는 것만이 정답인양 토론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조세 정책에 대해서는 아예 고민도 안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 경제성장률이 2.3% 정도인데 2.9% 정도만 성장해도 늘어난 세수로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복지가 가능할 것입니다.”

“증세보다 성장을 통한 복지라야”


▎안철수는 다음해 종자로 쓰기 위해 남겨둔 ‘석과(碩果)’일 수 있다. 5월 8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럼 트럼프의 조세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트럼프는 법인세를 35%에서 15%로 낮췄습니다. 우리의 19%와 비슷해졌죠. 기업의 활동성이 높아져 성장이 늘고 세율도 높아진다는 신념이 깔려있습니다. 세금을 낮추는 것만 보면 신자유주의와 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는 아마 세율을 더 낮추자고 할 것입니다. 그간 민주당 정부는 많은 미국기업이 해외로 달아날 정도로 세율을 너무 높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낮춰진 세율이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하니 우리로 치면 세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셈입니다. 또 다른 제3의 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중요한 실험이죠. 전 세계가 지켜봐야 합니다. 유럽 구좌파의 길이 옳은지, 신자유주의가 옳은지, 트럼프의 실험이 옳은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또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한국경제의 기본 동력인 중후장대산업을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에 대한 토론이 전혀 없이 지나가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중후장대산업을 첨단 IT 기술과 접목해 살릴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걸 토론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한국경제의 49%를 차지하는 국영기업의 축소문제도 전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에 자유와 활력을 주고 서민의 일자리를 늘린다는 홍준표 후보의 공약이 거기에 좀 가까운 것 아닌가요?

“기업에 자유를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적극적 성장정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게 없잖아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효율적 국영기업을 줄이고 중후장대산업을 살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토론에서 후보들이 주장했듯 복지정책만 경제정책이라고 하고 적극적 성장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 우려됩니다. 심상정 후보가 ‘복지가 성장’이라고 그러더군요. 그것은 반절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북한 핵과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어떤가요?

“전통적으로 남한의 정치세력들은 대북 압박·강경정책으로 적화통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외교국방을 튼튼히 한다는 점에서는 옳지만 이 정책이 오히려 북한의 적화통일·남침야욕을 ‘부채질’했습니다. 옛 새누리당이 대변한 것은 이 정책이죠. 북한이 엉뚱한 짓을 할 때는 이게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대북 강경정책과 정반대인 온건정책이 어떤 것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대북 온건정책은 유화정책인데, 영어로는 ‘어피스먼트 폴리시(appeasement policy)’라고 합니다. 일각에서 ‘햇볕정책’을 유화정책으로 잘못 말해왔지만, 햇볕정책은 달빛정책과 다릅니다.”

달빛정책은 햇볕정책과 어떻게 다른가요?

“달빛정책은 유화정책 일변도로 가는 것입니다. 북한에 비위 맞추고 아부하는 정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습니다. 대북 경계의식과 안보 메커니즘이 해체, 이완될 우려가 있습니다. 달빛정책은 거꾸로 적화통일 야욕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 햇볕정책은 강·온책을 상황에 맞게 쓰는 것이죠. DJ가 썼던 대북정책이 바로 그 햇볕정책입니다. 햇볕의 목표는 북한의 정치군사적 무장해제였죠. 군사도발을 억제하고 남침 야욕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햇볕정책의 3대 원칙을 보면 분명합니다. 튼튼한 국방안보, 흡수통일 배제, 남북 교류협력 확대 입니다. 그리고 궁극의 목표는 북한사람들이 남한체제를 좋아해 통일에 이르는 ‘귀순통일’입니다. ‘귀순통일’이란 말은 삼켰습니다. 북이 들으니까. 그것은 궁극적 비밀 목표죠.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달빛정책을 햇볕정책의 이름으로 이어받는 것이 우려됩니다.”

“햇볕정책 당시 북한 인권에는 소홀”


▎이미 배치된 사드는 한·미동맹의 신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하되 우리의 군사 개발을 묶어놓은 틀을 푸는 방향으로 교섭해야 한다. 지난 3월 6일 오후 10시 주한미군이 C-17 수송기에 싣고 온 사드 체계의 미사일 발사대 등을 오산공군기지에 내리고 있다. / 사진제공·주한미군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문재인 대통령이 계승하는 것 아닌가요? 비슷한 햇볕정책 아니었습니까?

“저는 2004년 10월 ‘대북 달빛정책’이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에서 당시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Moonshine Era’라는 제목의 영국 언론인 칼럼이 실렸어요. 번역하면 ‘달빛시대’인데 ‘달빛정책시대’라고 표현됩니다. 문 대통령 성의 영문을 단순히 활용한 표기이고, 내가 오랫동안 해온 주장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어쨌든 공교롭습니다. 우연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을 14년 전 내가 했던 주장과 비교해 해석하면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도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달빛정책’으로 갈 것을 우려하며 비아냥거린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금 다시 와서 대북정책을 편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DJ가 다시 태어나면 그렇게 안 할 겁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햇볕정책의 3대 원칙 중 제1원칙인 ‘튼튼한 국방안보’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강·온책을 병행하는 것이 햇볕정책인데, 핵실험·미사일 발사 등의 군사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제1원칙이 그 진가를 보여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의 핵문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 아닌가요?

“DJ의 기대에 반해 북한이 몰래 미사일·핵무기를 개발했죠. DJ가 알았다면 튼튼한 국방안보에 더 역점을 뒀을 겁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에 퍼준 70억 달러가 핵무기가 되어 돌아온 것 아닌가요?

“모두 핵무기가 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것은 북한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도움을 준 것을 너무 무시하는 말입니다. 정확한 액수까지는 모르지만 더 많은 액수가 북한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쓰였다고 봅니다. 이것이 대북지원기금(남북협력기금)의 원래 목적 아닙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햇볕정책을 이 시대에 계승할 때 DJ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 시대에는 ‘인도적 대북정책’이 맞다고 봐요.”

‘인도적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의 일부잖습니까?

“햇볕정책 시행 당시 북한 인권을 소홀히 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 인권상황이 악화한 지금은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인도적 대북정책’은 강·온책을 겸용하는 햇볕정책의 취지를 이 시대에 맞춰 계승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북한 사람들에게 재난이 닥쳤을 때 즉각적 구호를 정치·군사적 고려 없이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북한에 수재가 났을 때 박근혜 정부가 안 도와줬는데, 그러지 말자는 거죠. 그런 재난 때는 군사 전용이 불가능하도록 금방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밥·라면·빵·떡이나 아기 옷가지 같은 현물로 도와줘야 합니다.

둘째는 북한정권의 인권침해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고모부를 쏴 죽인다거나 공개 총살할 때 남한 정부가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계속 비판해야 합니다. 그러면 북한은 100번 침해할 것을 80번이나 그 이하로 줄일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남한정부가 북한에 대해 최소한의 통제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셋째,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인도적 개입’의 길을 여는 것입니다. 인도적 문제로 인한 군사개입은 국제적으로 합법입니다. 그것은 국제법상 ‘휴머니테이리언 인터벤션(Humanitarian intervention)’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도적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지키면 인도주의와 인권을 근거로 북한에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토(NATO)의 세르비아 폭격, 미군의 시리아 폭격과 같은 것으로 ‘침략’이 아닙니다.

넷째는 중국이 탈북자를 계속 북송하는데, 유엔 인권난민 기구들과 협력해 중국과 외교를 잘해 북송을 막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햇볕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도적 대북정책’은 온건한 듯하면서 강하고, 강한 듯하면서 온건한 강·온 양면정책입니다. 이런 것들을 문 대통령이 고려하는지 궁금합니다. 계속 ‘문샤인 폴리시’라고 조롱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토론에서 문제되었는데요. 그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한반도는 현재 법적으로는 전시상태입니다. 북한 선박만은 지금도 제주해협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군사 블로케이드가 지금도 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휴전이 길어지면서 한반도는 전시가 아닌 ‘평시’처럼 여겨지고 있죠. 이 ‘사실상의 평시’를 일부러 ‘실전적 전시’로 전환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반 인도적 행동일 것입니다. 따라서 평시에 도발적인 ‘주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부적(副敵)’의 존재를 전제하는 ‘주적’이라는 말도 우습지만, 미국을 포함해 어떤 나라도 국방백서에 ‘적’이나 ‘주적’이라는 도발적 개념을 쓰지 않습니다. 평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사적 위협(military threat)’이라는 표현은 많은 나라에서 쓰죠. 현재 <국방백서>에는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표현을 ‘군사적 위협’으로 바꿔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적’이란 표현을 쓰지 못하겠다는 말만 반복했지, 다른 대안을 제시해 국민을 계몽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라도 ‘군사적 위협’이라는 말은 얼마든지 쓸 수 있고, 이 표현은 공격적·도발적이지 않고 방어적이어서 정치군사적 ‘격조’도 있다고 봅니다.”

<공자와 세계>(전5권, 2011)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전2권, 2015)은 황 교수의 대표 저서다. 그동안 철학계에서 무시돼온 ‘감정’과 ‘공감’을 중심으로 동·서양 사상을 새롭게 해석해냈다. <패치워크문명의 이론>(2016, 이상 청계출판사)이라는 단행본으로 그의 독창적 시도를 간략히 설명해내기도 했다. 그가 새롭게 주창하는 ‘공감철학’의 원조는 공자와 맹자이고, 이를 18세기 서양에서 수입해 발전시켜왔다고 본다.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공감철학의 원조인 공자와 맹자는 안보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나요?

“공자·맹자의 사상이 비슷한데 일단 전쟁을 하지 않는 반전론의 처지에 서있습니다. <논어> ‘팔일편’에서 “군자무소쟁(君子無所爭: 군자는 싸우지 않아야 한다)”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적이 공격해도 안 싸우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맹자> ‘공손추’ 하편에서 “군자는 전쟁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전쟁하게 되면 반드시 이긴다(君子有不戰 戰必勝也)”고 했습니다. 전제조건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죠. <서경>에서 공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입니다. 공격받았을 때 막아낼 능력을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는 겁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군자는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 존립했을 때 망할 것을 잊지 않는다. 다스려질 때 어지러워질 것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자신을 안전하게 하고 국가가 보존될 수 있다(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합니다. 공자 하면 군사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오늘날 널리 애용되는 ‘유비무환’이라는 구호는 공자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국부론>으로 유명한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1729~90)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안보(security)는 풍요(affluence)보다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국부론>에서 한 말입니다. 스미스는 공자를 엄청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돌려 적용해보면 대북정책에서 전쟁은 어떻게든 피해야 하지만, 그들이 도발하면 반드시 격퇴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드배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미 배치됐으니 여기서부터 이어가야 합니다.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한미동맹의 신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한다면 또 다른 무기체제 개발과 배치의 군사적 득을 얻어내야 합니다. 사드 주둔을 전제로 미국이 우리의 군사 개발을 묶어놓은 틀을 푸는 방향으로 충분히 교섭 가능합니다. 우리 미사일의 사거리도 늘려야 합니다. 일본이 토마호크 미사일을 배치한다는데 사정거리가 4000∼5000㎞잖아요. 미국이 지난번 시리아를 공격할 때 가까이 가지도 않고 함상에서 이 미사일을 쏘았습니다. 중국이 사드 문제로 경제보복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중 FTA 원칙을 바탕으로 당당하고 끈질기게 중국의 위법을 지적해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때 쓰지 않는다면 ‘자유무역협정’은 어디에 쓰는 것입니까?”

트럼프가 사드 비용을 내라는 것은요?

“아마 그러다 말 겁니다. 트럼프도 미국 국민에게 공약했으니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잖아요? 돈은 돈 줄 사람 마음대로 아닌가요?”

그런데 애덤 스미스가 공자를 잘 알았습니까?

“공자를 잘 알고 존중했죠.”

어떻게 알게 됐죠?

“열두 살 고향 선배가 경험론 철학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흄(1711~76)입니다. 영국의 ‘전라도’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출신이죠. 막역하고 각별한 관계였어요. 흄은 공자를 잘 알고 중국도 잘 알았습니다. 흄은 직접 공자를 여러 번 언급했죠.”

영국 경험론의 대표적 철학자 흄은 주저 <인성론>에서 맹자가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누구나 측은지심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던 것과 유사한 비유를 들어 도덕성을 ‘인간의 본성’ 차원에 위치시켰다. 흄의 영향을 받아 애덤 스미스가 쓴 책이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이다. 서양철학자들이 중국의 공맹철학을 어떻게 수용해 왔는지 치밀하게 규명한 책이 황태연의 <공자와 세계>다.

애덤 스미스는 종교재판 회부를 두려워해 ‘공자’라는 이름을 공개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국부론>에서 중국을 거듭 언급한다. 유럽에서 가장 잘사는 지역보다 중국의 곡물가가 더 싸고, 중국이 그런 지역보다 훨씬 더 잘산다는 말을 <국부론>에서 세 번이나 했다.

“FTA 정신은 ‘정경분리원칙’”


▎‘사실상의 평시’를 일부러 ‘실전적 전시’로 전환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반인도적 행동이다. 어떤 나라도 국방백서에 ‘적’이나 ‘주적’이라는 도발적 개념을 쓰지 않는다. 지난해 7월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전 세계 재외동포 청소년 447명이 참가한 DMZ 자전거 평화대행진에 참가한 학생들이 민통선을 따라 걷고 있다.
“<국부론>은 어떻게 하면 영국도 중국처럼 잘살 수 있을까를 연구한 책이고, 영국이 잘사는 방법은 영국도 중국과 같은 자유(無爲·무위)시장경제의 구축이라고 주장한 것이 그 책의 요지입니다. 중국처럼 시장이 다 알아서 하는 ‘자유시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 거죠. 시장의 ‘자연적 지혜(natural wisdom)’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정책상 ‘최선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스미스의 ‘자연적 지혜’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은 공맹의 무위(無爲)시장 이념을 계승·대변한 사마천이 <사기> ‘화식열전’에서 말한 ‘자연지험(自然之驗)’이라는 말의 영국 버전입니다. 그리고 그의 <도덕감정론>은 공맹의 공감철학과 사단지심론(四端之心論)을 그의 논리로 대변한 책입니다. 그래서 <도덕감정론>은 많은 내용이 공맹의 도덕철학과 중첩됩니다. 17세기 중반부터 공맹철학을 받아들인 서양은 그 사상적 동력으로 18세기 계몽주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20세기 내내 서양 배우기에 급급했던 우리는 이런 세계사의 진실을 잘 모릅니다.”

미국·중국·일본과 외교현안도 많아 첩첩산중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너무 세게 제기해 일본과 관계개선에 어려움이 보입니다. ‘재협상’한다고 했는데, 일본은 그런 거 없다고 했잖아요. 대선 공약인데 안 할 수도 없고, 한다면 대일외교가 막힐 수 있고. 유엔에서 ‘한·일 위안부 문제 재협상’ 권고가 발표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는 따로 갈 수 있는데, 그럴 경우 궁극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코리아 패싱’입니다. 문 대통령의 대북자세를 문제삼아 미국·일본·중국 셋이 협의해 한반도 문제를 처리하고 우리에겐 사후 통보하는 식이면 정말 큰일납니다.”

중국과의 외교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중국과는 무역마찰을 이유로 너무 유화적으로 나갈 것이 우려됩니다. 3년 전 발효된 한·중 FTA 정신에 따라 정당하게 항의해야 합니다. FTA 정신은 ‘정경분리원칙’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자유무역협정의 정신에 따르면 원래 어떤 정치·군사적 긴장이 있더라도 통관과 무역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마치 사정하는 식으로 중국과 무역마찰을 풀려고 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정당한 법적 권리와 중국의 의무를 따지는 식으로 정치·군사문제와 경제문제를 분리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 대담·정리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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