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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 

세계화에 조응하는 ‘세계질서 2.0’이 필요하다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한·미, 한반도 문제 넘어서 ‘역내 파트너’ ‘글로벌 파트너’로 발전해야 북한이 핵·미사일 동결에 나서도록 무엇을 제공할지 결정해야 할 때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통일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은 미국의 바람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떠밀려’ 패권국가가 된 측면도 있다. 준비가 미흡했던 미국에 세계운영 방략을 제공한 주요 기관으로 미국외교협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를 꼽을 수 있다.

1921년 창립된 CFR의 뿌리는 미국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에게 ‘14개조 평화원칙’의 기초를 제공한 ‘인콰이어러(The Inquiry)’라는 학자 150여 명의 연구 모임이었다. 1921년 창립 이후 초당파·비영리 기관인 CFR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교·안보 싱크탱크로서 봉쇄·핵억지·무기통제·핵비확산·미중 수교를 비롯한 주요 미국 외교정책의 산실 구실을 해왔다. 또한 CFR은 고위 관료·학자·언론인·법률가·기업인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한다. 일부 음모론자는 CFR이 일루미나티(비밀결사조직)를 계승한 세계정부 추진 조직이라고 주장한다. CFR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하기에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2003년부터 CFR을 이끌고 있는 리처드 하스 회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대외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Foreign Policy Begins at Home)] [미국 외교정책의 대반격(Opportunity: America’s Moment to Alter History’s Course)]을 비롯해 13권의 책을 저술 혹은 편집했다. 아직 우리말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A World in Disarray(혼란에 빠진 세계)]에서 그는 다른 나라에 대한 의무를 주권 개념에 포함시키는 ‘세계질서 2.0’을 주창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에 국무부 정책기획국장(2001~2003년)으로 일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국무장관·부국장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트럼프는 대선후보 시절 “나는 리처드 하스를 존경한다. 그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다. 리처드 하스 박사(옥스퍼드대)에게서 학자의 솔직함과 외교관의 신중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최근 한국을 방문해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강연(6월 20일)을 했고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만났다. 어떤 말을 주로 했나?

“미국 외교정책의 대요(大要)를 말했다. 상당한 시간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데 할애했다.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공동의 정책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허용하는 경우

6월 2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만났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나?

“문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예상한 대로였다. 한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고 지도자로 당선되는 인물들은 정치적인 스킬(skill)이 탁월하다. 문 대통령 또한 타고난 정치 지도자였다. 그는 열린 대화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같은 사안에서도 국내 민주적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그러한 문 대통령의 입장을 인정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한·미 양국이 사드 전개를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북한이 한국 국민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에는 사드배치 문제로 한·미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나는 ‘걱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 문 대통령이 미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우려는 양국 정상 간의 만남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한·미 관계는 미국에 중요하다. 북한이 미사일·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 강국’과 ‘글로벌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특별히 중요한 시기다. 한·미 양국은 영어 표현 ‘on the same page’대로 최대한 합심해서 공동의 이해에 도달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기존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트럼프 시대에 어떤 전략으로 바뀔 것인가?

“모르겠다. 지난 20년간 지속돼온 전략적 인내 정책이 수명을 다한 것은 맞다. 우리의 인내는 보상받지 못했고 북한은 아마도 핵탄두 12개와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을 확보했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전략적 인내를 뭔가 다른 것으로 바꿀 때가 됐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더라도 대북(對北)정책 수정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선택은, 가만히 물러서서 북한이 핵무기 수를 늘리고 보다 정확하고 보다 긴 사거리의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허용(allow)’하는 가운데 우리의 미사일방어(MD)와 억지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둘째 선택은 군사력 사용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최대한 파괴하기 위해 ‘제한된 타격(limited strike)’을 가하는 것이다. 셋째 선택은 협상으로 결과를 내는 것이다. 협상의 첫 단계에서는 북한 미사일·핵 능력에 대해 입증 가능한 동결을 부과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장기적인 목표는 북한의 탈핵·탈미사일이 돼야 한다. 원칙적으로 미국·한국과 다른 나라들은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상한선(ceiling)이나 동결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당연히 그다음 문제는 북한이 동결에 동의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북한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제공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중국이 참여하는 가운데 군사적 위협 같은 압력과 다양한 제재, 어느 정도 북한을 정치적으로 더 인정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섞는 게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흔한 오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를 평가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흔한 오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안 선다. 그는 아웃사이더다. 사업가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 무대로 들어와 현재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 과정을 헤쳐 나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나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도움이 됐던 자신의 스킬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반드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고 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가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궤도를 수정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다. ‘그는 중도 수정(mid-course corrections)을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겠다.”

“트럼프는 고립주의자가 아니다”

너무 이른 질문이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남길 정치적 유산(legacy)은 무엇이 될까?

“당신이 말한 대로 아직 너무 이르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반 년도 안 됐다. 하지만 이미 몇 가지 유산이 있다. 그중 하나는 과거와의 ‘단절’이다. 그는 미국이 세계무역체제에 헌신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미국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미국을 탈퇴시켰다. 그는 미국의 동맹관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내가 보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나 냉전 이후에 미국에 지침이 됐던 기본적·근본적 원칙을 문제 삼은 게 트럼프의 주요 외교정책 유산이다. 현재로서 국내 유산은 새 연방대법관을 임명한 것이다.”

고립주의적으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의 글로벌리즘과 고립주의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보나?

“꼭 그렇지는 않다. 그는 고립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중동에서 미군 병력을 유지하고 있고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고립주의자는 아니지만, 기존의 여러 미국 외교정책의 구조를 미국이 존중해야 할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게 트럼프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들이 다른 점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트럼프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상설적 관계(standing relationship)보다는 개별적인 각각의 거래(individual transactions)를 더 중시한다. 이러한 트럼프의 국제관계 관념은, 미국의 국제적 관여와 국제 리더십이 미국에 주는 이익에 대한 회의를 반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에서 미국이 하는 일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 돈을 미국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나는 트럼프의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상황을 걱정한다. 통일한국이 스위스처럼 영세중립국이 되는 것은 어떨까. 통일한국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덜어줘야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종료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중국은 한반도 통일보다는 한반도 분단을 선호한다. 물론 중국은 지금보다 덜 까다로운 북한,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따르는 북한을 바란다. 한반도 통일은 중요한 주제다. 나는 통일이 언젠가는 이뤄지기를 바란다. 우선 미국과 한국이 통일에 대해 솔직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미 양국은 비핵화 등 통일한국의 조건에 대해 중국과도 논의해야 한다. 나는 통일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통일한국에서 미군이 계속 주둔할 것인지, 주둔한다면 어디에 병력을 배치할 것인지다. 예를 들면 통일한국에서 미군이 38선 가까이 주둔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군은 그보다 남쪽 혹은 해안선에 주둔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한국에 미군이 남는다면 그 존재 이유는 한반도보다는 역내(域內)의 ‘만일의 긴급 상황(contingency)’이 될 것이다. 그러한 문제는 워싱턴과 서울 사이, 더 나아가서는 중국과도 정당한 대화와 협의의 대상이다. 우리 모두 중국이 북한에 더 많은 압력을 넣기를 바란다. 우리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깬 상황이 중국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할 것이라고 중국을 안심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한·미 관계의 파이를 키우자”


▎6월 20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국고등 교육재단에서 특강 중인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 / 사진:연합뉴스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군사력을 사용해 국경을 바꾸거나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면 안 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아이디어는 내가 ‘세계질서(World Order) 1.0’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반이다. 주권이 국제관계의 기초이며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에 한 일을 우리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내가 최근에 발간한 [World in Disarray(혼란에 빠진 세계)]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주권의 존중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세계질서 2.0’이 필요하다. 과거와 달리 오늘과 내일의 세계에서 주권 국가들은 서로에 대한 의무(obligations)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집단적으로 세계화의 도전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다. 세계화의 도전에는 기후변화·핵 확산·테러·무역, 전염병의 확산, 사이버공간의 규칙 같은 게 포함된다. 수백 년간 유지된 ‘세계질서 1.0’의 기본적인 접근법도 유지돼야 하지만, 세계화와 관련된 점증하는 도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결국 다당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될 거라고 보는가?

“가까운 미래에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많은 중국인이 통합된 사회와 효율적인 경제를 위해 공산당이건 무엇이건 강한 집행기관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세계의 다른 나라와 이들 나라의 국민에 비해 한국과 한국민은 ‘지나치게(too)’ 친미적(pro-American)인 것 아닌가?

“(웃음) 나는 미국인으로서 지나치게 친미적인 게 가능한지를 생각하는 게 어렵다. 내가 보기에 한국은 오랫동안 미국의 좋은 동맹국이었다. 한국은 여러 분쟁에서 미국과 같은 편에서 싸웠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공 스토리다. 굳건한 민주국가가 됐다. 경제 규모상으로는 세계 10위권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것은 한·미관계가 한반도를 넘어보다 광범위한 목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어느 정도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 내부의 안보 도전을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 양국 관계는 점점 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트너를 넘어서, ‘역내 파트너’ ‘글로벌 파트너’로 발전해야 한다.”

한·미 관계의 발전을 위해 한국민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한·미 관계의 파이(pie)가 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투자와 무역이 커져야 하고 개인 차원에서는 보다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또 미국으로 관광이나 유학을 떠나야 한다. 많은 한국 학생이 미국으로 온다. 앞으로는 보다 많은 미국 학생이 한국으로 가야 한다. 경제적인 유대나 공적인 유대 못지않게 개인적인 유대도 양국 관계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 외교협회(CFR)에 가장 중요한 미션은 무엇인가?

“CFR은 독립적인 기관이다. 우리는 당파성이 없다. CFR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존재했다. 우리의 미션은 미국이 세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한 대화와 토론의 수준을 높이는데 공헌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나 단행본, 교육용 문헌을 발간한다. 우리는 보다 많은 미국인이 세계를 이해하기 바라며 그들이 세계 속 미국의 선택에는 어떤 게 있는지 알기를 바란다.”

-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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