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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인터뷰] 원자력 ‘세계적 권위’ 매튜 번 하버드大 교수의 고언(苦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은 산업 전략의 오류”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턴=김동현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
한국 내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공급의 작은 부분만 담당할 뿐…원전 건설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 줄여야 ‘기후 변화’에도 대응

우리 사회는 원자력 발전의 존치(存置) 여부를 놓고 매우 큰 주제의 토론을 벌이고 있다. 원전이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명제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 시기와 방법, 국가별 산업적 차이를 고려한 신중한 결단이 필요하다. 매튜 번 하버드대 교수는 “원전은 100% 선하지도, 100% 악하지도 않다”고 보는 전문가다. 그에게 한국 원전의 미래를 관리하는 지혜와 전략을 물었다.


▎사진·Joan R. Harvard University
“안전 없이 안보 없다.”

이 명제는 매튜 번(Matthew Bunn) 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교수의 지론이며 그의 학문적 성취의 핵심 경구(警句)라 할 수 있다.

원자력과 핵 안보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인 그가 두 분야를 통합해 인식한 학문적 에센스(essence)이기도 하다. 실상 핵 안보와 안전의 문제는 동전의 양면적 요소다. 두 분야 모두 전 세계인의 인명과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11월 12일 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이뤄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안보 없이 안전 없고, 안전 없이 안보 없다”는 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매튜 번 교수의 연구 분야는 핵 테러리즘, 핵 확산 및 통제, 원전의 미래, 에너지 기술 혁신 정책 등이다. 1994∼1996년 사이 그는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과학기술정책보좌관을 지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25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고, 최근에 쓴 책이 관련 국제 학계의 큰 화제가 됐던 <내부자의 위협(Insider Threat)>이다. 원전 등의 주요 시설의 내부자 위협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저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이 핵물질 관련 시설 내부자들을 이용해 어떻게 핵물질을 얻어내려고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매튜 번 교수는 이 인터뷰를 통해 세계적 차원의 원전 효용성을 진단했다. 그는 “천연가스 가격 경쟁력이 강한 미국의 원전은 경쟁력이 부족하나, 중국과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고 분석했다. 원자력 발전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원전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 우려가 점증했다”면서 “과거의 실수에서 배워 규제·안전·작동의 과정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봤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그리 현명한 선택으로 보지 않았다. 한국의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탈원전과 동시에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그는 원전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농축 우라늄과 재처리 플루토늄이 테러 집단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생에너지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았다. 신생 에너지 분야가 지난 10∼15년간 많은 성취를 이뤘지만, 그 에너지원이 기존 전력망으로 통합될 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라고 봤다. 원전의 미래에 대해서는 그는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원전의 도움 없이 기후 변화에 결코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과학적 신념이다. 다만 원전의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제고하고, 이를 대중에게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그는 북핵의 현주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북핵 프로그램에 대해 정확한 추정은 어려우나 수소탄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북한이 8년간이나 핵 프로그램을 동결했던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결국 그가 제안하는 북핵 해법은 “비핵화를 장기 목표로 두고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을 단기 목표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불인정이 미국의 정책적 신뢰도를 하락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한일 핵무장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부정적이었다. 핵무장에 필요한 모든 기술과 시설을 갖추고 있는 일본, 시설은 없지만 기술을 갖춘 한국에 모두 “핵무장은 양국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략적 오류”라는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매튜 번 교수와 나눈 주요 문답이다.

미국과 한국, 원전 환경이 달라


▎경북 경주의 월성 원전 1호기 모습. 1982년 가동을 시작했고 설계수명은 30년이었다. 하지만 2015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재가동 결정으로 2022년 11월까지 운영된다. 이에 반발한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제기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조망할 때 원전의 효용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가별로 원전의 효용성은 다르다. 현 시점에서의 원전은 거대하고 복잡하며 건설·설계·운영 및 규제에 뛰어난 관리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지속적이고 뛰어난 수준의 관리는 10년을 넘기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국같이 뛰어난 국가도 절반 이상의 원전이 부품의 안전기준을 오(誤)인증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내에서는 미래 원전의 방향을 놓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원전의 역할은 국가가 처한 상황, 대체에너지 공급원의 유무·비용 등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을 예로 들면 전기료 규제가 약하기 때문에 전력산업들은 구매 당시 가장 저렴한 것을 선택한다. 낮은 가격의 천연가스를 고려해보면 새로운 원전 건설은 경제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에서는 기존의 투자비용을 회수한 원전도 저렴한 천연가스 가격으로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천연가스 비용이 저렴하지 않고 재생에너지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한국은 다른 상황이다. 한국은 원자로를 예산과 기한에 맞게 성공적으로 건설할 수 있는 역량을 증명해 보였다. 반면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미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유일한 원전은 예산도 증가하고 기한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상업적으로 경쟁적인 시장에서 원전의 자금을 조달할 때 투자자들은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이윤을 기대한다. 기존 투자비용과 투자자에게 지불하는 금액을 고려할 때, 미국에서의 원전 건설은 중국이나 한국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도 원전의 안전성은 늘 문제가 된다. 비용의 문제를 넘어선 난제 아닌가?

“원전은 설계·공사·운영 및 규제에 뛰어난 관리를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많은 국가들이 목표치로 설정해온 연간 원전 유출 확률 0.001%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로 지켜지지 못했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충분히 배울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나는 원전이 미래의 안전성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30년 간 원전의 안전성을 개선시켜왔고,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을 더욱 개선하고 있다. 차기 원전 사고가 일어 날 확률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각 국가는 스스로의 규제를 강화하고, 안전 문화와 운영 능력의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통상 원전의 위치는 유사 시 오염과 피해를 고려해서 선정된다. 한국의 원전이 서울 근처에 없는 것, 중국의 원전이 베이징이나 상하이 근처에 없는 것이 그런 이치를 반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정책적 노력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한국과 독일같이 거대한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는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탈원전과 동시에 화석 연료 수요를 줄이는 것은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 내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공급의 작은 부분만을 담당한다. 재생에너지의 성장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간헐성(intermittency)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태양은 구름에 가리기도 하고, 바람은 불지 않기도 한다. 원전은 필요 시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장기적으로 신에너지 분야가 전력과 열 저장에 있어 간헐성 문제의 일부를 해결할 수도 있다. 전력망과 전력 저장이 연결돼 전기자동차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먼 미래의 일이다.”

2050년까지 1000기 이상의 대규모 원전 필요


▎아랍에미리트에 건설 중인 원전 1·2호기. 아직까지 원전은 ‘지구온난화를 막는 유력한 에너지원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전의 미래를 낙관하는 것인가? 과연 원전의 수요가 지금보다 증가할 것으로 보나?

“미래에는 더 많은 원전을 보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증가하느냐다. 물론 또 다른 원전 사고가 일어난다면 원전 수요는 감소할 수도 있다. 현재 중국은 빠른 속도로 원전을 건설 중이며, 인도는 중국보다는 그 속도가 다소 느리다. 러시아 또한 원전을 건설 중이다. 알려진 것보다 실제로 원전을 처음으로 도입하는 국가들은 많지 않다. 현 시점에서 원전을 처음으로 도입하고 실제로 운영 중인 국가는 이란이다. 아랍에미리트(UAE)가 곧 이란의 뒤를 이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를 따낸 바 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원자력 발전소 제작 업체 간의 긴밀한 협조 관계로 미국 업체도 한수원을 통해 아랍에미리트 프로젝트를 돕게 됐다.

원전의 수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를 방지하려면 원전은 급격하게 증가해야 한다. 이는 원전만의 경우가 아니며 태양열과 풍력에도 해당된다. 수조 달러의 투자가 이뤄지는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을 바꿔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기후 변화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 2050년까지 1000기 이상의 대규모 원전을 건설해야 21세기 후반부의 이산화탄소(CO2) 배출 곡선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기후 변화를 일정 수준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원전이 안전하고 깨끗하며 저렴하고 핵무기 확산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어떤 기술이 가장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것인가의 경쟁이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수많은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 혹은 ‘원전이 필요하지 않다’는 양측의 주장 모두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원전의 성장을 막아온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원전의 도움 없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중에게 원전의 안전성을 설득하려면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가?

“현 시점의 원전 안전성은 뛰어난 인적 관리와 집중을 필요로 한다. 원전을 운영하는 이들의 안전 문화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중요하다. 주요 원전을 관리하는 기관들이 확고하게 안전수칙을 지키고 정부가 적절하게 이를 컨트롤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독립적인 원전 규제 담당자는 안전 상황을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원전의 사보타주(sabotage)를 예방하고, 핵 관련 물질이 테러리스트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은 고농축 우라늄과 재처리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테러리스트의 핵 관련 물질 절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국가로의 핵무기 확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핵연료 사이클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가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시설·전문성을 돕기 때문이다. 관련 기술의 확산을 막는다면 원전 분야를 통한 핵무기 확산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한국은 핵연료 재처리 혹은 농축 관련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농축은 공급이 지나치게 많은 시장이며 이윤이 거의 창출되지 않는다. 한국이 이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재생에너지는 지난 10∼15년간 많은 변화를 보였다. 태양열과 풍력 에너지의 가격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풍력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태양열 에너지는 그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전송과 높은 비용이 문제로 남아 있다. 재생에너지는 전 세계적으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보였다. 매년 풍력과 태양열은 상당한 수준의 진보를 거듭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대다수 국가의 전력망은 점증하는 재생에너지의 공급을 보게 될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간헐적인 에너지를 전력망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가 중요한 일로 대두했다. 미국의 몇몇 전력망에서는 이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연구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이를 관리해낼 것이다. 저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전력과 열을 전력망에 통합·관리하는 잠재력도 커질 것이다.”

협상 무산되자 북한 핵 도발과 실험 시작돼


▎지난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장 앞에서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선진국의 책임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제공·환경운동연합
북한 핵의 역량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 것으로 평가하나?

“‘북한 핵탄두 소형화 성공’ 등의 주장은 실질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는 한계가 따른다. 우리는 발생한 지진의 강도를 확인할 수 있고, 북한이 공개하기로 결정한 사진을 살펴볼 수 있으며, 북한이 선택해서 전달하는 단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미사일 기술 측면에서는 역설계·사진·잔해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현재 12기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최근 핵실험이 상당한 폭발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어떤 종류의 핵무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이 수소탄 실험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해 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까? 그 답을 나는 알지 못한다. 신중하게 답변하자면 곧 그렇게 될 것으로 나는 추정한다. 북한은 이미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고 있고, 당장 혹은 조만간 미 본토를 위협하게 될 것이며 이는 매우 중대한 상황이다. 현재 트럼프와 김정은이 주고받는 말 폭탄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고도의 긴장 상태에서 작은 실수가 통제의 수준을 벗어나 큰 충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가 된 지 20년이 넘었다. 왜 우리는 아직까지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책적인 실수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 내에는 어떻게든 핵 개발을 해내겠다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로 돌아가 미국 정책의 실수를 개선한다고 해도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100% 장담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하고자 했을 때 북한의 도발과 실험이 줄어들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북한은 8년 간 핵 프로그램을 동결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하긴 했지만 8년 간 플루토늄 생산도 없었고 핵 실험도 없었으며 NPT(핵확산금지조약) 검사관들의 입국도 허용했다. 정반대의 8년보다는 훨씬 나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제재와 고립의 정책은 제네바 합의의 무산으로 이어졌다. 2004∼2006년 즈음 다시 협상이 시작됐을 때 영변 냉각탑 폭파와 재처리 중단, 1만8000장에 달하는 핵 원자로 운영 데이터를 건네 받기도 했다. 협상이 무산되자 도발과 실험이 재개됐다.

현 시점에서 북한은 자발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상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위협이나 인센티브는 없다.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표로 두고, 단기적으로는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목표로 해야 한다. 동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변이 유일한 핵 농축 시설이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현재는 적어도 1개 이상의 핵 농축 시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신뢰할만한 동결을 위해서는 신고된 시설 이외에 다른 핵 농축 시설이 없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김정은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란 핵 협상의 불인정이 북한과의 미래 협상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당근과 채찍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른 국가에게 납득시킬 때 채찍과 더불어 당근 또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가 이란 핵 협상에 보이는 태도처럼 당근을 주기로 했다가 이를 번복하면 새로운 협상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가 몹시 어려워진다. 2012년 이란 최고 지도자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경제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미국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의 이란 핵 협상 불인정이 점차 이란 최고 지도자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핵개발은 한·미동맹의 파탄 가져와


▎일본 후쿠시마현의 나라하에서 인부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 나뭇잎, 쓰레기 등 폐기물을 옮기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나?

“기술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원자력에서 앞선 국가이다. 한국은 원자로를 기한과 예산에 맞게 생산할 수 있음을 증명해 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민간 원자력 기술에 앞서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고농축 우라늄과 재처리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으며 농축, 재처리 시설과 상당한 우주 관련 기술을 갖추고 있다. 높은 수준의 로켓 기술을 보유한 일본은 기술적으로 핵무장에 필요한 모든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필요한 기술적 전문성은 보유하고 있지만 관련 물질과 세부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는 오래 걸리거나 어려운 과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이 NPT에 남아 있는 것이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양국 중한 국가라도 독자적 핵무장을 하는 것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위협하고 중국과의 긴장을 높이며 현존하는 북한과의 긴장을 더욱 심화할 것이다. 비핵화 목표에 동의하는 국가들과의 관계도 틀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혹시 존재할까?

“동맹을 신뢰할 수 없다는 위기감과 극도로 민족주의적인 정권의 집권은 독자적 핵무장이라는 선택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신뢰할만한 동맹으로 남아 있고, 한국과 일본이 국제사회의 안보체제에 통합되길 바란다. 나아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안보체제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미국은 이를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왔고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서 만족을 느껴왔다.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과 더불어 미국 본토가 위협받는다는 일각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미 본토를 위협하는 러시아에 맞서 유럽을 보호해왔다.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독자적 핵무장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유다. 미국은 또한·미 본토를 위협하는 중국에 맞서 한국과 일본을 보호해왔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새로운 차원이긴 하나, 미국의 핵 억지력은 매우 강력하고도 단호한 것이다. 김정은의 공격성과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핵 억지력을 작동해온 것이다.”

미국의 핵 억지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ICBM 개발과 미 본토 타격 역량이 한미, 미·일동맹에 균열을 가져온다는 우려가 있는데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의 주요 요소는 단순한 핵 억제만이 아니다. 확장 억제는 재래식 전력을 포함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과의 합동 재래식 전력이 북한의 저강도 도발에 대응하기에 충분하다. 향후 5∼10년간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되, 위기 확대 (crisis escalation)를 피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냉전시대의 교훈은 전쟁과 위기의 위험성은 항상 병존한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위기 확대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며, 북한의 도발을 대규모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 수준에서 억지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향후 몇 년간 북핵 동결뿐만 아니라 핫라인을 비롯한 여러 방법을 통해 단순한 실수가 대규모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기까지 미국의 대(對)유럽 전략의 중대한 목표는 소규모 대치를 대규모 충돌로 이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턴=김동현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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