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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칼날 위에 선 권력’과 21대 국회 과제 

공동체 미래비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문제 해결과 성과 창출의 정치’가 해답이며 핵심은 경제
집권여당인 민주당, 행정부 감시·감독하는 의회 역할 우선시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대한민국 선거는 역동적이다. 이때 역동적이라는 건 선거 결과가 대부분의 예상이나 기존 설명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2004년 ‘탄핵 역풍의 선거’에서 창당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열린우리당은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한다. 그때 나온 말. “우리나라 총선에서 어느 쪽이든 단독으로 의회 과반을 확보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2008년, 2012년 그리고 2020년 총선에서 단독과반의 정당이 탄생했다. 2004년 이후 치러진 4번의 선거에서 세 번 있었던 일이다.

지난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정부여당에 불리하다는 ‘대통령과 집권여당 중간평가의 총선’이라는 대부분의 예상과 기존 설명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20 총선은 코로나의 세계적 재난상황에 대비한 ‘공동체 위기극복의 선거’였다. 예상과 예측을 넘어서는 변화와 속도의 정치적 역동성과 ‘다이내믹 코리아’는 변화하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요구를 말한다.

민주당 지역구 의석만으로 국회 단독 과반, 더불어민주당 계열로는 180석, 범진보로는 190석+. 국회선진화법은 현실적으로 의미 없고 개헌 말고는 모든 게 가능한 ‘꿈의 의석’이자 ‘절대 의석’이다. 민주당이 차지한 수도권 의석수가 미래통합당 계열 전체 의석수와 같다는 건 ‘역대급’ 민주당 총선 승리의 상징이다.

민주당 단독 과반 또는 범여진보연합 190석+는 ‘촛불정신을 담은 국회’의 정치적 모멘텀이 되기에 충분하다. 총선 승리의 정치적 위임(mandate)은 민주당 또는 범여진보연합의 정책의제 실현을 위한 입법화의 시작이자 구체적 정책화를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3주년 기념 연설을 통해 “촛불의 염원을 항상 가슴에 담고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공정과 정의, 혁신과 포용, 평화와 번영의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라고 지난 3년을 평가했다. 따라서 총선 압승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권력의 ‘촛불 염원’ 완성으로 향한다.

선거라는 점검과 반성의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 총선 결과를 문재인 민주당 정부의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의 정치적 신임으로 간주하면 위험하다는 말이다. 선거 과정에서 있었을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최저임금 그리고 남북관계 등 주요정책에 대한 다양한 논란은 정책 목표와 수단의 적실성을 높인다. 잘한 건 잘한 대로, 못한 건 못한 대로 정리하여 필요하면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선거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성과다


▎5월 11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신청, 취업 지원 등 상담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다는 통하지 않는다. 국민의 기대가 대단히 높다. 특히 민생 분야에서 국민은 삶의 변화가 체감될 정도로 정부의 성과를 기대한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두려움을 갖고 유능해지고 도덕성을 갖추고 겸손해져야 한다.” 2018년 지방선거 후에 있었던 문 대통령의 언급이다.

“국민께서 선거를 통해 보여주신 것은 간절함이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겠다. 결코 자만하지 않고 더 겸허하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 4·15 총선 직후 나온 대통령의 언급이다.

취임 3주년 기념연설에서도 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바이러스와 힘겨운 전쟁을 치르며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재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따르고 싶었던 나라들이 우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표준이 되고 우리가 세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더 큰 도전이 남아 있습니다. 정부는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겠습니다. 위기를 가장 빠르게 극복한 나라가 되겠습니다. 세계의 모범이 되고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겠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겠습니다. 임기 마지막까지 위대한 국민과 함께 담대하게 나아가겠습니다.”

2년 사이 두 번의 기회, 두 번의 다짐이다. 흔치 않은 권력의 기회다.

권력의 성과를 위해 남은 2년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문제 해결과 성과 창출의 정치’가 답이고 핵심은 경제다. 특히 일자리가 중요하다. 3월 한 달에 이미 일자리 19만5000여 개가 사라졌다고 한다. 문 대통령도 취임 3주년 기념연설에서 “고용충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실직의 공포가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일용직을 넘어 정규직과 중견기업, 대기업 종사자들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음을 자인했다. 그는 현시점을 ‘경제 전시상황’이라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벼랑 끝에 선 국민의 손을 잡겠습니다. 국민의 삶과 일자리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겠습니다. 실직과 생계 위협으로부터 국민 모두의 삶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경제 성과, 특히 일자리는 국민 체감의 지표다. 대통령 집무실의 일자리 상황판에 바로 나타난다.

정부는 이미 GDP의 10%가 넘는 245조원을 기업 지원과 일자리 대책에 투입했다. 1, 2차 추경에 이어 3차 추경도 준비 중이다. 취임 3주년 연설을 통해 문 대통령은 나아가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며 근본적 대안을 제시한다.

대상은 우선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이다. 자영업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도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대통령의 계획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인 국민취업 지원제도’와 함께한다. 국민취업제도는 저소득층, 청년, 영세 자영업자 등에 대해 직업훈련 등 ‘맞춤형 취업’을 지원하며 구직 촉진 수당 등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합의를 거친 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1차 고용 안전망이라면, 국민취업지원제도는 2차 안전망인 셈이다.

“고용안전망 확충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래서 나온 게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의 국가 프로젝트 추진이다. 정부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말이다.

일자리 창출은 지속 가능성이 중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5월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택배 노동자 진짜 사장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을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위한 ‘미래선점 투자’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5G 인프라 조기 구축과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된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교육·유통 등 비대면 산업의 집중 육성과 국가기반시설에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디지털 경제의 스마트화를 통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다가올 충격 대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 활력의 창출이다. 정부가 “고용창출 효과가 큰 대규모 국가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단지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혁신성장의 지속을 위한 토대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돈 받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는데 ‘돈 내는’ 사람들이 계속 줄어들거나 제자리라면 경제 활력의 지속 가능성은 약화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지키는 건 물론 지속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게 핵심이라는 뜻이다.

“세계 최고의 재정 건전성을 갖고 있어 빚을 더 늘려도 괜찮다”거나 “국가부채비율이 60%를 넘어도 상관없다”는 말로 지금은 국채발행을 통해 대응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임시방편이다. 정말로 급할 때 쓰는 방식을 항상 언제나 쓸 수는 없다는 말이다.

벌써부터 “국가부채비율이 2023년 46%까지 높아지면 국가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의 경고가 나온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은 45% 선을 넘는다고 한다. 재원의 장기적 수급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세 차례에 걸친 추경은 ‘단기처방’이다. 소비와 생산을 회복시키고 고용을 안정시키는 게 우선 목표다. 국민적 체감을 위해 당장 효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생활형 SOC’라 이름 붙였지만 ‘건설 경기 부양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플랫폼 사업에서 대기업의 장악력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비대면 산업 육성에 의료 민영화 논란이 뒤따르는 건 원격의료와 교육 등의 신자유주의적 단기처방과 사회적 경제와 공공성 확대의 상충하는 요구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한국형 뉴딜’은 이전에도 있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사용한 적이 있다. 당시 건설산업을 통한 경기부양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게 ‘한국형 뉴딜’이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문재인 뉴딜’은 ‘한국형’이 ‘한국판’으로 바뀐 거 이상이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미국의 뉴딜도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토목사업 이상이었다. 연금보험제, 노사관계 개선, 최저임금제, 최고한계의 소득세율제, 미배당이윤의 중과세, 공공임대주택, 토지개혁 등의 사회경제적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대형 토건의 경기부양책과 함께 미국 뉴딜의 성공을 가져왔다는 게 일반적 설명이다.

뉴딜 당시 ‘사회주의라는 비판’과 위헌 시비와 판결 등도 있었지만 지금 사용되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보호를 위한 노동과 복지 등의 주요 제도가 이때 미국에 자리를 잡았다. 글자 그대로 ‘새로운 사회정치적 거래의 조건’을 마련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공동체를 지키는 게 가능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출발은 공동체의 미래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였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미래의 불시착


▎이태원 클럽에서 비롯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는 가운데 5월 11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더 큰 정부’의 역할을 요구한다. 유능한 더 큰 정부의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권력의 정치적 기반은 확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4년 차 1분기 국정 지지도가 60% 이상을 기록한 첫 우리나라 대통령이다. 레임덕 없는 ‘마이티 덕’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총선 압승의 1등 공신은 ‘역대급’ 대통령 지지도였고, 높은 대통령 지지도는 ‘코로나 크레디트’에서 왔다. 지금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긍정평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외적으로 우려된다는 ‘2차 대 유행’에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대통령 지지도의 단기적 분기점이다. 그다음은 올 후반기부터 본격화될 거로 예상되는 경제 충격파의 영향이다. 경제 위기가 실제 현실화되었을 때도 과연 지금과 같은 대통령 지지도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일자리의 경제 성과 창출과 정치사회적 의제 실현 압력 간 균형과 조화다. 전자는 국민적 요구이고 후자는 특히 지지그룹에서 온다. 이상적 아이디어(정책과제)를 현실화시키는 능력이 정치력의 핵심이다. 특히 대통령과 여당의 정치력은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사회적 합의의 정치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이다. ‘문재인 뉴딜’ 성공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 정치적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뜻이다. 정치적 문제 해결 능력의 핵심은 우선순위와 강약(완급) 조절이다.

사회적 합의의 정치적 기초는 궁극적으로 제도화를 통해 완성된다. ‘정치 개혁과 개헌의 정치’로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물론 정부 형태, 나아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어울리는 헌정체제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현 정부 임기 내에 어떤 결론을 내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1998년 IMF 위기 때의 ‘노사정 모델’과 같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공존과 공영의 협력 틀이 권력의 정치력에 의해 현실화된다. 여기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최종 목적지로 하면서 중간 단계로 ‘소득을 바탕으로 한 고용보험’ 등의 한국적 현실의 대안 검토가 필요하다. 그래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한국적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재난사회보험이라든지 청년연금보험, 자영업자와 비정규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정규노동보험 등 새로운 형태의 사회보험을 신설하는 게 더 쉽고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빨라진 ‘비정형 노동’ 등의 확대 추세를 반영하여 궁극적으로 조세기반 제도를 지향하며 소득파악률을 높이려는 노력도 장기적으로 요구된다. ‘착한 임대인 운동’처럼 그때그때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게 아니라 ‘건물주+임차인+정부와 사회’의 공동체 모델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가 함께 논의되었어야 했는데”라는 과거의 후회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전 국민 고용보험제와 함께 고용의 유연성도 동시에 실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균형과 현실 감각이다. 그래야 ‘정의와 공정의 시대정신’이 구현된다.

“집권세력 내부 분열과 독선이 있었고, 분파적 행태를 보이거나 계몽주의적 태도로 정책을 추진했다”는 노무현 시대의 반성이 주목받는 이유다. 당장의 성과 만들기에 집착한다면 좋은 방향의 정책이라도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에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임기 내 성과 내기에 집착하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국회의 신속한 협조를 부탁드린다”, “국회의 공감과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국회가 조속히 처리해주시길 바란다”고 입법부의 협조를 구했다.

누가 말한 건지 가린다면 세 언급은 논평자의 전형적인 말이다. 현실 정치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지금부터 문 대통령은 국회가 ‘신속하게 협조’하고 ‘조속히 처리’하도록 만들고 유도하는 주체여야 한다. 그게 정치력이다. 미국 뉴딜 성공의 조건 중 하나는 대통령의 실용주의 정치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은 최대의 자원과 다양한 수단을 가진 최고의 정치인이다.

미국 뉴딜 성공 조건: 대통령의 실용주의 정치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기념공원에 위치한 루스벨트 조각상. 어린 방문객들이 조각상에 기대 놀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미국의 뉴딜 때 주요 입법은 대통령 취임 100일 내에 대부분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21대 국회 첫 100일, 정기국회가 주목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사실상 1년 남짓이다. 그래서 김태년 원내대표의 “당정청이 원팀이 돼 위기극복에 힘을 모으겠다”는 언급은 적절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문재인 청와대당’ 압도의 유혹이 존재한다. 이번 총선에서 청와대 이력을 내걸고 출마한 30명 중 19명이 당선됐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서로 오해하지 않도록 청와대 출신 당선인들이 소통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한 당선자의 언급을 차치하더라도 당청 일체화는 현재 여권 내 권력구조의 대세다. ‘청(靑)정(政)당(黨)’의 순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문재인 정부가 책임을 지고서 국난을 극복하고 사회개혁을 완수하라는 뜻이 투표로 드러났는데, 협치내각이 이런 민심과 궤를 같이하는 건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책임정치’다. 법사위원장을 누가 차지할 것이냐는 논란은 그 출발점이다. 국회법상 상임위원장은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기 때문에 여당과 여권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은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는 ‘개원협상’이라는 말이 있다. 국회 개원을 언제 어떻게 진행하며 국회직을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교섭단체 협의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관행이자 제도로 확립된 ‘합의 지향의 국회 운영’이다. 합의와 협의의 국회 운영은 협치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대립과 교착의 의회정치를 낳기도 했다. 다수결 원칙에 입각한 책임정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때 책임정치는 ‘의회정치의 정상화’를 전제로 한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의 내각제적 운용과 정당집단주의에 따른 교착과 대립의 의회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의 정치’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민주당은 집권여당이지만 행정부 감시와 감독의 의회 역할을 우선해야 한다. 민주당이 정치권력의 액셀러레이터이자 브레이크 역할이다. 지금의 ‘청정당’이라는 권력구조가 언젠가는 김 원내대표의 말처럼 ‘당정청’의 순으로 재정립된다.

나아가 교섭단체 중심의 국회 운영 관행과 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별적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자율성과 책임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심화될 수 있는 ‘경제의 정치 예속화’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도 의회정치가 정상화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총선 결과는 책임정치라 썼지만 국민적 요구는 협치로 읽는다. 대통령과 민주당의 딜레마다. 정치적 명분과 힘은 충분한데 협치의 정치적 모양새를 만들어야 하는, 사실상 동시에 만족하게 할 수 없는 이중적 요구에 문 대통령과 여당은 직면한다. 균형과 현실적 접근의 정치적 문제 해결 능력이 드러날 거다.

당장 출발은 분위기 쇄신용 인사 때의 협치내각 구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총선이 지나고 야당인사 가운데서도 내각에 함께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함께하는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전·현직 의원이 현실적 고려 대상인데 무엇보다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선언적이거나 구색 맞추기여서는 곤란하다.

“자리에서 쫓겨나도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5월 14일 국회에서 취임 후 첫 회동을 갖고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일정을 협의했다.
최종적으로 협치의 정치는 제도화돼야 한다. 국회의 각료 또는 총리 추천도 하려면 당장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총리의 국회 선출제를 목표로 시간표를 정해놓고 가장 낮은 수준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민적 통합의 상징과 구심점 역할에 충실하고 일상적 국정 운영은 총리 중심으로 진행하는 거다. 총리의 국회 복수 추천과 대통령의 지명 그리고 비례성이 강화된 선거제도의 빅딜이 출발의 계기일 수 있다. 문제는 권력의 의지와 정치권의 공공성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다.

권력은 인사로 표상된다. 프로야구 NC의 양의지 선수는 역대 포수 최고액인 4년 125억원을 받고 이적했다. 양의지 사례는 어정쩡하게 돈을 쓰느니 확실한 실력만 있다면 거액을 집중 투자해서라도 잡아야 할 선수는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가 현존하는 완벽에 가장 가까운 포수이기 때문이다.

양의지 선수의 최고 장점은 투수 리드다. 그는 패턴을 수시로 바꿔가며 타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한다고 한다. 그와 함께한 투수들은 “양의지 선수와 호흡이 잘 맞아 위기를 잘 넘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단다. 외국인 투수들조차 “상대 타자에 대해 미리 공부를 많이 했지만 양의지 선수가 나보다 상대를 더 잘 알고 있기에 믿고 던졌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포수다. 투수가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타자에게 적절하게 투구할 수 있도록 돕듯이 대통령은 그 시점의 과제에 가장 적합한 인사를 통해 팀으로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게 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이다. 대통령은 흐름을 관리하며 타이밍을 잡아 미션을 부여하며 인사를 통해 이를 컨트롤하는 거다.

최종 책임은 대통령의 몫이다. 대통령 판단과 선택의 최종 기준은 국익이다. 독일 사회민주당 당수로서 노동과 연금개혁의 업적을 만들어낸 슈뢰더는 “진정한 리더는 선거에서 지거나 자리에서 쫓겨나도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국익의 최종 수호자는 대통령이다. 남은 2년 임기의 문재인 대통령, 칼날 위에 선 권력이다.

-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 mpark@dongguk.edu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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