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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김정은 건강 이상설의 파장과 과제 

깜깜이 대북 정보에 놀아난 지구촌, 국정원이 글로벌 체계를 세워라 

김정은 유고설 세계에 확산되자 대북 정보력 비웃듯 건재 과시
미확인 정보로 인한 사회적 파장 줄이는 것도 국정원의 역할


▎지난 4월 건강 이상설로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나타났다. / 사진:조선중앙TV 캡처
지난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즈음이다. 여름 무더위가 가시기 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풍(stroke)을 맞았다. 당시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이던 필자는 김정일의 건강 상태와 파급 영향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본부의 정보와 함께 자매연구기관인 중국 안전부 산하의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을 비롯한 중국 정보 소스 및 미국의 싱크탱크 등을 총동원해 그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심증적인 정보는 많았으나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신호정보(SIGINT, signal intelligence, 시긴트)’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특히 ‘인간정보(HUMINT, human intelligence, 휴민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며 일부 획득한 정보도 신뢰성을 부여하는 데 확신이 없었다.

한국의 대북 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은 사실상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하락세를 그리며 추락했다. 특히 정권이 교체되면서 400명이 넘는 베테랑 요원들이 적폐 청산 차원에서 새로 입주한 내곡동 청사를 떠났다. 이후 대북 정보에 대한 인적 인프라의 토대가 무너졌다. 특히 휴민트라는 인간정보 수집 기능은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았다. 누구도 중국의 동북 3성을 무대로 한 위험한 스파이 활동에 자리를 걸지 않았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지휘부 역시 북한 내부 권력의 동향 파악에 소극적이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때까지 상층부의 주된 관심은 평양의 확실한 라인을 잡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하는 것이었다.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교류와 협력 기조하에 장·차관급 회담을 비롯해 정상회담 개최가 핵심 키워드였다. 국정원의 업무도 북한 내부의 동향 파악보다는 제3국에서 북한 실세를 만나 회담 의제를 개발하는 것과 함께 고위급 인사들의 상호 방문과 이벤트 개최 등에 주력했다.

국정원의 대북 정보 기능, DJ·참여정부에서 무너져


▎2008년 건강이상설에 휘말렸던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은 모습을 감춘 지 56일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현지 군부대를 시찰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10월 4일 무리하게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다양한 부작용을 낳았다. 17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임박해 있는 상황에서 김만복 국정원장이 주도한 정상회담은 각종 대북 지원을 언약함으로써 차기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 갈등의 씨앗이 됐다. 휴민트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고 그나마 유지되던 통신정보나 영상정보도 초라한 수준이었다.

특히 한·미 간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커지면서 정보 공유가 미흡했다.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민족주의 분위기가 고조됐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고는 반미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이후 한·미 간에 북한 인식을 둘러싸고 미묘한 괴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한·미 간에 공조된 대북 정보가 평양으로 흘러간다는 의심이 깊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2007년 말까지 지속했다.

10년에 걸친 교류협력 기조를 주도했던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기능은 2008년 정권교체 이후 방향을 전환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 번 균열이 생긴 정보공유 프레임은 인맥 형성 등으로 회복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대북 정보 공유에 대한 결정적인 조율의 계기는 역설적으로 김정일의 중풍이었다. 이명박 정부 임기 첫해인 2008년 8월에 김정일이 쓰러졌으나 실시간으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 최초 일주일 동안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자국 의료진의 치료에 불안감을 느낀 북한이 프랑스 당국에 의사 지원을 요청했다. 평양은 김정일의 뇌 사진을 파리로 보냈고 비밀리에 프랑스 의사들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서서히 외부에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 표면화했다.

프랑스 정보당국(DGSE, DST)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관련 정보 협조를 했다. 우리 정보당국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신변의 이상 징후를 미국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8월 29일이었다. 프랑스 뇌신경외과 전문가가 8월 중순 평양을 방문했다는 첩보였다. 9월 4일 들어 김성호 국정원장은 국방·외교·통일부 등 안보부처 장관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청와대 회의를 소집했다. 참석자들에게 안건도 사전 배포하지 않은 최고등급 보안 회의였다. 회의 직후만 해도 일부 안보부처 핵심의 분위기는 김정일의 건강 이상에 관련해서 정보 부재로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MB 정부가 출범했지만, 대북 정보 수집 기능이 단숨에 복구되지는 않아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에 대해 ‘깜깜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정원장의 요청으로 회의를 시작했지만, 국무위원들조차 다들 정보 부재로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외교·안보 부처의 장관들은 대북 정보 부족으로 일반인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확실한 정보를 갖고 국정원장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당시 회의 분위기였다. 여름을 넘기면서 여의도와 청와대 주변을 떠돌던 ‘김성호 교체설(說)’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지적도 있었다.

그나마 국정원장이 밀어붙일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미국 CIA의 정보 공유였다. 9월 6일 [조선일보]가 내곡동의 정보를 근거로 김정일 건강 이상설을 치고 나가면서 상황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9월 9일 북한 정권 창설 60주년 기념행사장에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낼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공연한 호들갑이었는지 아니면 정확한 사전 예측이었는지, ‘국정원의 실력’을 판가름할 특이한 기회였다. 마침내 9월 9일 행사장에 김 위원장이 불참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날 저녁 국정원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후문이다.

이튿날인 9월 1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김성호 원장은 신중한 입장이라는 미국 측 브리핑과는 달리 그간 수집한 정보사항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김 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일이 지난 8월 14일 이후 순환기 계통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았고 현재 호전된 상태라고 보고했다. 구체적인 병명에 대해 “뇌졸중 또는 뇌내출혈로 보이나 하나로 특정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보고했다. 특히 외국 의료진에게 수술을 받은 김 위원장의 현재 몸 상태에 대해 “언어에는 전혀 장애가 없으며,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그가 양치질하는 수준이라는, 문제의 ‘양치질 발언’이 흘러나왔다. 김정일 위원장을 옆에서 지켜본 ‘휴민트’의 존재를 암시한 듯한 정보 노출 수위가 언론의 질타를 받았고, 김성호 원장의 보고사항을 ‘생중계’하다시피 했던 국회 정보위원들조차 이를 꾸중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김정일 건강 이상 징후 눈치 못 채


▎2011년 12월 20일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전한 북한 [노동신문].
필자가 2008년 김정일 건강 이상설의 막전 막후 정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당시 결코 휴민트는 없었고 실시간으로 첩보 수집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프랑스와 미국, 미국과 한국 간 정보 공유로 김정일의 건강 이상을 파악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한편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당시의 첩보 수집 능력과 상황도 2008년과 별반 차이가 없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51시간 만에 이 사실을 발표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와 비교하면 17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 평양 기온이 영하 12도를 기록한 날 특별열차 편으로 현지지도에 나선 김 위원장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심장 쇼크까지 겹치면서 결국 아침 8시 반쯤 사망했다. 당시 후계자 김정은은 특별 열차에 함께 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곧바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경희 경공업부장 등 인척 후견 그룹들이 모여 지도체제 문제 등 수습방안을 논의했다.

다음 날인 18일 새벽 1시쯤 북한 국경 경비대에 국경을 봉쇄하라는 특별 지시가 하달되었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사망 당일 북한이 중국 측에 중대 사건이 일어났음을 통보했다는 전언이다. 사망 하루 뒤, 사망을 둘러싼 억측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부검이 실시되었다. 조선중앙TV는 “2011년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 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런 조치들이 모두 끝나고,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이 51시간30분 만에 발표되었다. 장의위원 232명의 명단과 영결식 일정까지 함께 발표할 만큼, 철저한 준비를 마친 뒤였다.

한·미 정보 당국의 시긴트와 휴민트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공식 발표가 34시간 만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17시간 반이나 더 걸렸다. 국가정보원 등 정보당국이 김정일의 사망을 북한 측 공식 발표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다음 날인 12월 20일 알려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김정일 사망 소식을 뉴스를 보고 인지하는 상황이었다. 이날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각각 국회 정보위와 국방위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북한 발표 이후에 알게 됐다고 인정했다. 당시 한미연합사 미군 사령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무너진 휴민트, “김정일 사망 뉴스 보고 알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30여 년간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한 경력 외에 특별한 정보업무 경험이 없다.
오히려 사전에 감지했다면 의아스러운 상황이었으며 당연한 결과였다. MB정부 들어 동북 3성에서 활동을 시작한 국정원 요원들이 중국 정보당국에 의해 심양의 어두운 감옥에서 장기간 무단 구금당하고, 가족들이 탄원을 내도 해결을 못 하는 수준이니 휴민트는 언감생심이었다. 사실 MB정부 들어서도 대북 정보 네트워크의 부활은 신통치가 않았다. 30년 서울시 공무원 경력의 원세훈 국정원장은 정보업무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인사 실패는 정보 수집 업무 실패로 연결됐다.

2008년 8월 중풍 발생 이후 80일 만에 김정일이 공식 석상에 등장한 이후 필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의 고유 업무로서 그의 사망 가능성과 후계자 시나리오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2009년 정월 들어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 작업이 시작되며 그의 향후 통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그와 접촉했던 인물들을 파악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동시에 김정일의 ‘서든 데스(sudden death)’ 시점을 파악하는 데도 노력했다.

2009년 가을 평양 주재 영국대사이던 피터 휴즈(Peter John Huges)가 서울을 방문해 필자와 만난 미공개 미팅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전임 에버라드(John Everard) 대사 후임으로 부임한 그는 6개월에 한 번씩 평양에서 서울로 내려왔다. 필자는 그가 서울에 올 때마다 김정일을 최근에 언제 봤으며 건강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서든 데스 가능성을 토론했다. 필자와 그는 김정일이 이승을 떠나는 시점을 ‘less than 3~5 years’라고 예상했다. 다만 지도자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의사라도 ‘족집게’처럼 예측하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나고 그는 이승과 하직했다. 김정일은 1980년 6차 노동당대회부터 1994년 아버지 김일성이 가족력인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때까지 이인자로서 24년, 2011년 12월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일인자로서 17년간 한반도 북쪽의 독재자로서 권좌를 지켰다.

김정은의 건강과 관련해서 장황하게 ‘흘러간 스토리’를 언급하는 이유는 2020년 4월을 2008년 8월이나 2011년 12월 상황과 비교해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히기 위해서다. 지난 5월 1일 김정은은 20일 만에 비료공장 준공식에 전격 등장했다. 3주간 코로나바이러스 뉴스 못지않게 한반도는 물론 지구촌을 달구었던 그의 잠행은 일단락됐다.

과거 아버지 김정일이 중풍 이후 탔던 전동카트를 이용해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장을 이동하고 얼굴에 부기가 있고 걸음걸이가 예전 같지 않더라도 일단 외관상으로 큰 문제는 없다. 특히 팔뚝에 반점 사진이 주삿바늘 자국인지 아닌지 분명치는 않지만 사라진 기간에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다는 설이 있었던 김 위원장이 공장을 시찰하며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태양절 행사에 전례 없이 불참하는 등 지난 20일간의 행적이 미스터리일지라도 그건 그들의 내부 사정이다. 그동안 초미의 관심사가 스스로 보행이 가능한지 여부였던 만큼 비료공장에 들어서는 동영상을 본 이상 그의 건재를 의심할 수는 없다.

필자는 CNN의 김정은 건강 이상 가능성 보도 직후인 4월 22일 한 신문 칼럼에서 그의 건강이 요주의 대상이지만 ‘2020년 4월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시절인 2008년 8월 중순 김정일이 심근경색(stroke)이 왔을 때 평양 권력 내부의 스토리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경험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물증 없이 단정하는 것은 ‘가짜 뉴스’에 다가서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소극적인 국정원 태도, 국민 불안 잠재우지 못해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촉발했던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전 주석 생일) 참배 장면. 김정은은 이날 불참했다.
170㎝ 키에 몸무게 130㎏인 고도비만에 애연가로 살아가는 이상 세월이 갈수록 그의 가족력이 발병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의 건강은 평양 김정은 일가의 문제이고 그가 수술을 받았는지는 정보당국의 관찰 사항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그의 건강 이상 유무보다는 권력 공백에 따른 혼란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더욱 중요하다.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어려워진 한국 경제에 북한 변수마저 악재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서 유포된 김정은의 유고설이 우리 사회에 주었던 파장은 향후 언제든지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남겼다.

우선 정보당국은 평양 지도자의 안위에 관해 적절한 사항을 적절한 기회를 이용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의 전용 열차가 원산에 정차되어 있다는 인공위성 사진만으로 ‘특이 동향 없다’는 브리핑에 국민이 납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특히 국민은 1%의 가능성이라도 김정은의 사망이 가져올 다양한 파장과 시나리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분단체제의 특성상 평양의 이상 유무는 통치권 공백에 따른 대량난민 발생을 야기할 수 있고, 증권시장 등 경제에 주는 충격도 간단치 않다. 북한 김정은이 심장 수술 후 회복이 안 되고 있다는 뉴스 기사가 CNN 방송을 통해 나오면서 4월 21일 오전장 단 30분 만에 종합주가지수는 전일 대비 -3%p 가까이 하락, 코스닥지수는 -5.6%p 급락했다. 증시 충격이 작지 않았다.

2008년 8월 김정일의 중풍 이후 그의 사망설 뉴스는 6개월 간격으로 증권가를 급습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인 필자에게 확인 관련 문의가 적지 않았다. 외부의 혼란을 이용해 증시가 급락한 다음 주식을 내다 파는 공매도 세력들의 작전이었다. 주로 단시간에 확인이 어려운 외신 등을 증시에 유포한다. 사실관계가 확인돼 루머로 판명 나는 데 3~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여튼 북측 지도자의 안위가 증시의 주가 하락과 상승의 재료로 활용되는 사실에 증권가 작전 세력들의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다만 북한 변수는 시간이 지나면 주가가 회복되는 V자형 커브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결국 증시 안정을 위해서도 정확한 대북 정보에 대한 서비스는 정보당국의 임무다.

신호정보와 인간정보 등 대북 정보 수집의 소스를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의구심에 대해 정보당국이 국회 정보위에서 보고해야 한다. 북한을 자극할 우려나 판단 실패를 염려해 소극적 입장을 취할 경우 평양이 스스로 행보를 공개할 때까지 억측과 관심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발단도 우선 그가 4월 15일 태양절 행사에 불참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초유의 사건으로서 그의 부재는 뉴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스스로 보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심야에 개최되는 태양절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행사는 최소 한 시간 이상 기립해 있어야 한다. 어떤 이유인지 현장에 불참하거나 신체적으로 이 행사를 주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심증을 둘 수밖에 없다. 경호원이나 주변 인물의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서 평양을 떠났는지는 후순위의 추론이다.

다음은 그의 전용 열차가 원산역에 정차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북전문 연구소인 ‘3·8 노스’의 인공위성 사진이 확인한 시긴트의 결과물이다. 다만 길이 250m인 전용 열차가 4월 21일과 23일에 이어 29일에도 정차되어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순천인비료공장 행사 참석이 5월 1일이라면 최소 4월 30일에 기차가 원산에서 출발해 평양에 도착했을 것이다. 언제 이 열차가 도착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과거 사진과 비교해 전용 열차인 것은 분명하다.

3대 걸쳐 번번이 실패했던 북 지도자 유고설


▎2019년 6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위성사진은 연속 촬영이 아니어서 결국 ‘전후(Before and After)’를 비교해야만 구체적인 시점을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1회 촬영에 최소 3000만~5000만원이 소요되는 민간상업용 사진을 실시간으로 찍어댈 수는 없다. 원산항에 정박해 있는 요트가 사진에 잡혔다고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을 잠재울 수는 없다. 국정원이 CNN이 보도한 시점 직후 청와대에 김정은 원산 체류설을 보고한 근거도 전용 열차 사진과 통신 정보량의 증가 여부 및 북·중 국경의 봉쇄 여부 등이다.

그가 지난 3주 동안 태양절 참배행사에 불참하고 무엇을 했는지는 미스터리다. 각종 추론만이 가능할 뿐이다. 우선 단순 건강 이상이다. 아무리 37살이지만 키 170㎝에 몸무게 130㎏으로 고도비만인 김정은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의과대학 교과서와 맞지 않는다. 비만과 음주 등으로 좁아진 혈관의 활로를 내는 스텐트(stent) 삽입 수술은 합병증이 없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빠르면 2일, 늦어도 일주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다. 다만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요양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스텐트까지 했다면 심장 기능은 예전만 못할 것이다. 향후 심장 관련 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다른 가능성은 코로나 자가 격리를 위해 3주간 원산 특각 휴양소에 체류하는 시나리오다. 핵심인물들이 동반 잠적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스토리다. 과거 청나라 황제들은 천연두가 확산하면 북경을 떠나 잠잠해질 때까지 열하에 체류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일반인이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에서는 한반도 분단체제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지 않을 경우 각종 ‘설’이 수습되지 않는다. 1994년 7월 묘향산 별장에서 김일성의 급사, 2008년 8월 김정일의 중풍 발병,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등 국민은 정보당국이 최고 지도자의 유고를 예상하는 데 실패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대만 국가안전국(NSB) 국장이 5월 1일 세계 정보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대만 의회에서 “김정은에게 병이 있다[有病]”고 언급했다. 중국 내 미국에 버금가는 휴민트(HUMINT)를 보유한 대만 정보기관장의 와병설 언급은 간과하기에는 무게가 간단치 않았다. 유병(有病)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파악하는 데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김 위원장이 지난 2014년 9월 다리 부상으로 40일 동안 모습을 감추었던 당시와는 판이하다. 2014년은 집권 초기에 3대 세습 지도자라는 인물이 북한 통치에 나섰다는 평가 정도였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전격 처형한 이후라 공포의 지도자이기는 하지만 아직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은 미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 하노이 및 판문점을 오가며 세기적인 정상회담을 3차례 가졌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는 5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으로 브로맨스 관계로 발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3차례 정상회담 이후에는 아베 일본 총리로부터도 러브콜을 받는 국제적인 거물이 되었다. 그의 유고(有故)설이 구체화할 경우 결국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후계체제로 논의가 모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대북 정보 70%는 서울발


▎4월 21일 CNN이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긴급뉴스로 전한 뒤 사망설 등 각종 소문이 확산했다. / 사진:CNN 뉴스 캡처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격 회동 당시 숨을 몰아쉬며 이동하던 김정은의 건강 행보는 현재는 물론 미래의 요주의 관측 대상이다. 2008년 김정일이 풍을 맞았을 때는 김정철과 김정은이 이미 20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세습의 기반이 구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장 김정은에게 유고가 발생한다면 스토리는 달라진다. 일단 김여정이 이인자로 등장하겠지만 냉혹한 사회주의의 독재 권력을 오빠 없이 유지하기는 어렵다. 결국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과도기 집단지도 체제가 등장하며 권력 내부에 소용돌이가 몰아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재야 내각(shadow cabinet)’ 등의 시나리오가 등장할 것이다. 2010년 황장엽 전 비서는 필자에게 북한 지도자의 유고에 대비해 중국은 물밑에서 지속해서 재야 내각과 후계자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정은의 건강은 세월이 갈수록 동북아 국제정치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련 시나리오의 구체적인 대비책에 대한 정부 설명도 불가피하다. 특히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에 3대 세습체제를 넘어 4대 지도자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북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해외 이전 등 엄중한 문제와 연관돼 있다. 북한과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과 함께 급변사태에 대한 ‘비상대책(contingency plan)’도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대북 정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과 관리가 필요하다. 작금의 사태는 기사 출처가 미흡한 외신과 함께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성급한 예단으로 국민의 판단이 용이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CNN 기자는 미국 고위관리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grave danger)에 빠진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의 동선이 공개되지 않자 탈북자들과 북·중 국경 간의 삼각 통화로 각종 미확인 첩보가 퍼졌다.

전 세계에 보도 및 유포되는 북한 정보는 70% 이상이 서울발이다. 국내 언론이나 탈북자들의 미확인 주장이 외신에서 각색되면서 갑자기 무게가 실리며 다시 서울에서 보도된다. 북한 정보가 국내외를 넘나들며 자가발전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스마트폰이 600만 대가 사용되지만 완벽하게 주민들을 통제하는 평양의 폐쇄 시스템 덕분에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주기적으로 건강 이상과 사망설에 시달린다.

평양의 인사이드 스토리는 정부도, 언론도, 전문가도 속단할 경우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다. 폐쇄사회의 독재체제를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오류는 기정사실로 변한다. 평양을 감시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지만 지도자가 갑자기 사망해 한반도에 통일이 산사태처럼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보다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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