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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연구] 北 노동자 해외 파견 변천史 

외교 수단(김일성)→단순 노동(김정일) 거쳐 전문 인력(김정은)으로 ‘업그레이드’ 

1940년대 우호국 소련 파견이 시초… 사회주의 동맹의 일환
최근 경제제재 등 돈줄 막히자 고급 인력까지 전방위 송출


▎북한 노동자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공사현장에서 건설 자재를 옮기고 있다.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북한의 핵실험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경제제재 조치가 강화됐고, 동시에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송금 차단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북한이 처음 해외로 노동자를 파견한 건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일성 정권은 1948년 소련에 노동자를 처음 파견했다. 이들은 주로 생선처리가공 공장에서 근무했다. 이때 근로자의 수는 가족을 포함해 약 2만5000명 정도였다 한다. 이후 1967년 소련과 상호우호협정을 맺은 북한은 탈선 청소년과 범죄자들을 중심으로 벌목공 1만5000여 명을 소련에 파견했다. 이를 시작으로 노동자들의 외국 파견은 확대됐다. 전통적 우방국인 소련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는 데 대한 반대급부 차원이었다.

소련의 원조로 경제가 발달하자 파견 범위는 아프리카까지 확대됐다. 1970년대 북한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대통령궁,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의사당 건물 등을 건설했다. 반미 감정이 있는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대통령궁 등을 무상으로 지어주면서 이 나라들과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동맹관계를 형성해나가려는 의도였다.

이때부터 범죄자가 아닌 북한 정권에서 직접 선발한 노동자들을 파견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는 국가가 직접 했고,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대부분은 북한 정권에 귀속됐다. 1990년대 푸틴 정권 시대에는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러시아 업체에 귀속됐다. 러시아에 대한 채무 탕감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이 들어서자 노동자 해외 파견 목적은 외화벌이로 달라졌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동유럽 사회주의 동맹국들의 체제 전환을 시작으로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산권 국가들로부터 받던 지원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 물자를 얻기 위해선 외화가 절실해졌고 돌파구는 노동자 해외 파견으로 인한 외화 획득이었다.

북한은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은 물론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 지속해서 벌목공을 파견했다. 또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 제3국 등으로도 인력을 내보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폴란드 등 무려 45개 국가에 4만 명 이상을 보냈다.

파견 분야도 다양해졌다. 기존의 벌목과 건설 분야에서 요식·수산·봉제·호텔업·IT·의료 등 가용 가능한 모든 인적 자원을 해외로 보냈다. 파견 규모가 확대되면서 노동자 선발 기준 또한 점차 낮아졌고, 이 당시부터 뇌물 등의 로비를 통해 파견 노동자로 선발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산발적으로 진행돼온 노동자 파견은 2011년 12월, 김정일의 급작스러운 사망 이후 중요 국가 추진 사업으로 변모했다. 과거에는 정부 주도의 느슨한 관리였다면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고부터 정부 산하기관 각각의 개별 주도로 바뀌었다. 성과를 내기 위해 기관 간 경쟁을 시키려는 의도인 셈이다.

“한두 놈 도망가도 좋으니 최대한 많이 보내라”


▎지난해 12월 22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 간부들에게 “한두 놈 탈북해도 상관없으니 외화벌이 노동자를 최대한 파견하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파견 규모를 늘리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은 전에 없던 태권도 교관, 군 관리 업무자, 디자인 전문가 등 전문 인력도 송출하기 시작했다.

탈북도 개의치 않는 노동자 해외 파견의 배경으로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강화로 인한 정상적인 외화 획득이 불가능하며 ▷5·24 조치, 개성공단 폐쇄로 남한으로부터 외화 획득이 어렵게 됐고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 개발로 인한 저렴한 북한 노동자 수요 등이 꼽힌다.

실제로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김정일 집권보다 김정은 집권 때 더 많이 증가했다. 접경 지역이므로 지리적으로 볼 때 북한 노동자 파견이 제일 쉬우며 육로 이동이 가능한 것이 큰 장점이다. 아울러 북한 노동자가 탈북했을 경우 중국 공안이 직접 개입해 탈북자들을 색출·강제 북송한다는 점도 중국에 많은 노동자를 보내는 요인 중 하나다.

러시아 역시 지리적 인접성·전통적 우방국·극동개발의 이유로 북한 노동자를 대규모 고용해왔다. 특히 혹한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라는 악조건으로 제3국 노동자의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임금이 저렴하고 통제가 용이하며 양질의 노동력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북한 노동자에 대한 러시아의 선호도는 높다.

건설 노동력 수요가 많은 중동지역에도 북한 노동자가 파견돼 있다. 2015~2016년에는 약 1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카타르·오만 등의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아시아에서는 몽골 파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몽골은 북한 정부수립 이후 수교국이었으며 북한과는 전통적인 우호 국가다. 2014년에는 북한과 3000명 규모의 노동자 파견계약을 맺기도 했다.

앙골라·리비아·나이지리아·알제리·에티오피아·적도기니·짐바브웨·모잠비크·수단 등의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북한 노동자를 볼 수 있다. 과거 북한 노동자들이 파견됐거나 여전히 활동 중인 해당 국가들은 2014년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기권이나 반대를 표명한 바 있다.

지난해 연말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 정부의 대북제재 대상인 북한 ‘만수대 해외 프로젝트그룹(MOP)’이 2017년 6월부터 ‘코르만 컨스트럭션(CCCSSS)’로 이름만 바꾼 채 여전히 세네갈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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