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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北核 국제사회 제재와 북한의 대응 

인력 송출 막힌 北, 3개월 교대 파견으로 돌파구 찾다 

5년 노동 비자 대신 관광·학생 등 단기 방문 비자 편법 활용
김정은 숨통 조이려다 ‘러시안 드림’ 노동자 희망 사라져


▎지난해 1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모인 북한 노동자들. / 사진:이애리아 교수 연구팀
2019년 12월 22일. 유엔에서 해외 북한 노동자들을 모두 본국으로 송환시키도록 정한 시한이다. 앞서 2년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화성-15형’ 발사에 대한 응징으로 북한 노동자 송환이 포함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한 바 있다.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규모는 약 10만 명. 이 가운데 러시아에만 3만 명이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로 활동 중이었다. 이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이애리아 와세다대 교수 연구팀의 현지 조사 결과, 2019년 12월 기준으로 러시아에 남아 있는 북한 노동자의 숫자는 약 1000명 미만으로 확인됐다. 전원 송환은 아니지만, 러시아가 제재 이행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러시아의 제재 실행에 놀란 쪽은 북한일 것이다. 유력한 외화벌이 창구가 막히자 북한은 일종의 편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노동 비자가 아닌 다른 비자를 활용한 ‘사각지대 파견’이 그것이다. 이애리아 교수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3개월 단기 교대 파견’이 대표적인 우회로로 활용되고 있다.

이애리아 교수 연구팀은 2014년부터 연 2~3회 러시아 현지 조사를 통해 연해주·사할린·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현황과 인권 실태를 연구해오고 있다. 현재는 러시아 동쪽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아르쫌 등 연해주 지역이 집중 조사·분석 대상이다.

연해주는 최근 수년간 러시아 연방정부의 극동개발정책 추진의 핵심지역으로 떠오르며 노동자 수요도 증가한 지역이다. 연구팀은 북한 노동자 송환 조치가 포함된 유엔 안보리 제재 제2397호가 결의된 2017년 12월 22일 이후인 2018년과 2019년 총 다섯 차례 연해주를 방문했다. 특히 2019년 12월에는 연해주에 체류하며 송환 진행 상황을 지켜봤다.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연해주 현지에서 목격한 북한 노동자 송환 모습은 상당히 긴박했다. 보통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왕복 항공편은 월요일과 금요일 각각 1편 등 일주일에 2편 정기 운행된다. 하지만 송환 마감을 앞둔 시점에는 운항편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연구팀은 “평소 평양 순안국제공항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을 주 2회 오갔던 고려항공 비행편 수가 송환 마감이 임박한 11월 말부터는 주 6회에서 10회까지 증가했다. 송환 마감일인 2019년 12월 22일이 다가오자 월·화·수·목·금 주5일 내내 평양에서 하루 2~3편의 비행기가 뜨기도 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송환 마감 시점이 지난 12월 말까지 ‘평양-블라디보스토크’ 비행편은 월·금 하루 2~3편 총 4~6회씩 운항했다고 한다.

“2018년 송환 시작한 北, 현재 1000명도 없을 듯”


▎2019년 12월 18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전광판에 안내된 고려항공의 JS-371·471편. / 사진:이애리아 교수 연구팀
북한 노동자 귀국에는 항공편 이외에 기차·버스도 동원됐다. 이애리아 교수는 “연해주 우수리스크 기차역에 집결해 러시아 국경 역인 하산역을 거쳐 두만강 역으로 이동하는 방법, 버스로 중국 훈춘을 경유해 북한 나선으로 들어가는 방법 등 다양한 육로 귀국이 시행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극동 우수리스크역 및 국경 역인 하산역과 북한의 국경 역인 두만강역까지 운행하는 열차 승차권이 올해(2019년) 말 기간까지 완전히 동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북·중·러 접경 지역인 중국 훈춘을 경유하는 방법까지 활용했던 것을 보면 중국 비자를 받지 않은 북한 노동자 귀국에 중국 당국도 협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봤을 때 현재 러시아에 노동 비자를 가진 북한 주민은 1000명 미만으로 추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판단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2019년 10월 초, 연해주 지역의 북한 노동자 규모가 약 6000명 수준으로 추정됐는데 2개월 동안 항공 1편당 120~160여 명의 노동자를 데려갔고 육로 귀국도 시행됐기 때문에 러시아 잔류 노동자는 1000명 이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의 분석과 일치하는 보도도 나왔다. 올 1월 23일,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러시아를 떠났으며, 1000명가량 남은 북한인은 모두 노동허가 기간이 만료돼 러시아에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알렌산드르 마체고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 역시 2월 8일 러시아 국영 통신사인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러시아에는 유효한 노동 비자를 가진 북한인이 1명도 남아 있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러시아가 벼락치기 송환이 아니라 꾸준히 북한 노동자들을 되돌려 보냈다고 판단한다. 연구팀 관계자는 “2018년 4월경부터 귀국 행렬이 본격화됐다”며 “해외에 오랫동안 파견 나가 있는 인원을 먼저 북한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시점부터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역 근처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단체로 목격되기 시작했고, 이들이 평양행 국제열차 한 칸에 따로 탑승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 같은 광경들이 지속해서 포착됐다고 한다. 러시아의 제재 이행 움직임이 급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라는 뜻이다.

연해주 노동시장서 北 입지 급격히 위축


▎북한 평양과 러시아 하바롭스크를 오가는 국제열차. / 사진:이애리아 교수 연구팀
연해주에서는 북한 노동자 송환을 저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2018년 초, 안드레이 타라센코 전 연해주 지사가 연해주에 북한 노동자들이 잔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모스크바 중앙정부에 요청했다. 2019년에는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9000명의 북한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 연방 당국에 노동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두 시도 모두 거부당했다. 이처럼 북한 노동자 철수는 현지에서도 매우 아쉬운 조치로 받아들여지는 실정인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송환이 본격화되자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연해주에서 러시아 기업에 북한 인력을 공급했던 현지인의 얘기다.

“소개하는 우리나 건설현장에서는 일 잘하는 북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 제일 좋다. 일자리도 얼마든지 찾아봐줄 수 있다. 그러나 제재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가령 50명이 필요한 공사장에 그만한 규모의 북한 노동자를 보낸다는 보장이 없다. 인력 수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인원을 채우려 우즈베크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인력난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러다 나중에는 북한 노동자의 씨가 마르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돈다.”

현지에서는 노동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러시아 건설업자들의 불만이 고조된다는 소문도 나도는 형편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건 현지에서 일하고 있던 북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연구팀이 접촉한 현지 소식통의 얘기다.

“2018년 봄 귀국이 시작되면서 2~3개월 후에는 다시 파견될 수 있다는 러시아 현지 북한 회사 간부의 말을 믿고 노동 비자 만료 시한이 남아 있던 노동자들도 귀국했다. 이들 대부분이 다시 나오지 못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노동자 집단 내부에서 동요가 있었다 한다. 노동자들 중에는 북한 관리자가 아닌 현지인을 통해 노동 비자 연장 가능 여부를 파악하는가 하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이 작업장을 이탈하는 일도 생겨났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파견 나오기 전 북한에서 진 빚을 해결할 돈을 마련하고자 소속 회사를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극히 일부는 탈북을 시도하지만, 이는 주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관리자와의 갈등이 주된 이유”라고 풀이한다.

러시아의 송환 조치는 북한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구팀은 러시아의 일방적인 조치는 아니라고 본다. 양국 간의 의견 조율을 거치지 않고서는 대대적인 송환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오래 체류한 노동자들부터 먼저 귀국시켰다. 그리곤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파견 노동자들을 물갈이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노동자 송환이 포함된 대북 제재 국면을 나름 위기 관리의 한 방편으로 활용한다는 말이다.

북한 당국이 해외 인력 물갈이를 진행한다면 주로 다음과 같은 동기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북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되고 체제에 대한 충성심도 느슨해질 공산이 크다. 이들의 마음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게 개인과 공동체에 모두 이롭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 ‘뇌물’이 한 변수로 거론된다. 보통 해외 파견을 나가기 위해서는 북한 파견 담당 간부에게 일정 금액의 뇌물을 바쳐야 한다. 해외에 오래 머문 사람은 들어오게 하고 새로운 노동자들을 많이 송출해야 뇌물을 챙길 기회가 보장된다. 이애리아 교수는 “노동자 송환이라는 제재를 북한 내부에서 나름대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방문·학생 비자 급증… “현실적 제약 많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역에서 두만강에 인접한 러시아 국경 하산으로 가는 버스에 짐을 싣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 사진:이애리아 교수 연구팀
연구팀은 북한 노동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단기 비자를 통해 연해주로 유입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북한 당국이 로테이션 파견 시스템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지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그렇다. 예컨대 러시아 현지에 파견된 북한 회사별로 일정 규모의 팀을 꾸려 3개월 비자로 연해주로 내보낸 뒤, 비자 기간이 끝나기 한 달 전에 북한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팀이 들어와 교대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인력 수급이 이뤄지면 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건설 현장별로 공사 진행의 연속성을 유지하고자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2017년 12월 제재 시작 이후 24개월 동안 4회(12개월)에 걸쳐 연해주 파견을 나온 노동자도 있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애리아 교수는 “단기 비자로 연해주로 나와 돈을 벌고 북한에 들어가 1~2개월 기다리고 다시 나오는 방식”이라며 “범죄자가 아닌 이상 전자 비자를 활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전자 비자는 2017년 8월 러시아가 취한 비자 간소화 제도의 일환이다. 당시 러시아는 1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전자 비자를 간편하게 발급하는 조치를 취했다. 18개 국가에는 북한도 포함돼 있다. 당시 러시아 언론은 “사실상 비자 면제라고 볼 수 있는 해당 조치로 북한 노동자들의 유입이 가속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내·외 언론 및 전문가들은 방문 및 학생 비자를 받고 러시아에 입국한 북한 국적 소지자 상당수가 불법 취업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 주요 정책 관련 분석을 제공하는 미 의회조사국(CRS)이 올 1월 22일 공개한 ‘북한과 외교: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가 2019년 말까지 이행해야 하는 북한 노동자 송환 문제를 회피하면서 북한에 관광·교육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가 유엔 결의안을 지키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스티븐 노퍼 코리아소사이어티 선임연구원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학생 및 관광 비자를 소지한 러시아 내 북한 국적자 1만 명 이상이 앞으로 비자 기간을 연장하게 될 경우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와 충돌을 빚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러시아가 북한 주민에게 발급한 관광·학생 비자 건수는 최근 급증했다. 러시아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주민에 대한 관광 비자 발급 건수는 1만6613건, 학생 비자는 1만345건에 달했다. 2018년 관광비자 2035건, 학생 비자 2610건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노동 비자 발급과 연장이 중단된 상태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관광·학생 비자가 노동 비자의 효과를 대신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연구팀 시각이다. “관광 목적의 전자 비자로 체류 가능한 기간은 기본적으로 8일에 불과하다. 다른 대안 비자 역시 통상 3개월마다 외국에 다녀와야 하는 등 노동 비자가 아니면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학업 비자의 경우는 러시아 학술기관에 적을 둬야 하고 학비는 최소 연 4000달러 이상에 노동 수입을 갖지 못한다는 제한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인들은 노동을 위해 입국한다고 봐야 한다. 혹여 불법 노동이 러시아 경찰에 적발되면 추방되거나 이를 무마하기 위해 뇌물을 줘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2019년 3월 당시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북한 노동자 송환 중간보고서’에 “유효 노동허가를 소지한 북한 노동자가 2018년 3만23명에서 1만1490명으로 축소됐다”고 공개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자하로바 러시아 대변인이 밝힌 것처럼 현재 러시아에 남아 있는 북한 노동자의 수가 1000명 수준이라면 9개월 사이 1만 명이 넘는 인원을 돌려보냈다고 할 수 있다. 송환 숫자를 비공개로 하는 중국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러시아, 성실한 제재 이행…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


▎사할린의 북한 노동자 숙소. / 사진:이애리아 교수 연구팀
러시아의 제재 이행 의지를 알 수 있는 사례도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2018~2019학년도에 50명에 달하는 북한인이 학생 신분을 내세워 극동연방대학의 예비학부 러시아어 과정에 등록했다. 이 가운데 불법 노동에 나선 일부가 러시아 당국에 적발됐고, 지난해 12월 말에는 6명이 북으로 강제 추방 당했다. 북·러 관계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치로서 감시 수준도 강화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의 외화벌이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노동자 송환에 러시아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대외적 명분이나 실리 측면에서 북한 노동자를 품어주는 게 러시아의 두드러진 국익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앞서 2017년 12월, 유엔 안보리는 북한 핵 개발 프로그램에 필요한 자금원을 끊는다는 목적으로 북한 노동자 송환이 포함된 추가 대북 제재 결의안 제2397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유엔 안보리에 올라온 결의안은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가운데 한 국가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부결된다. 합의를 통해 통과시킨 사안에 대해 러시아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러시아 내부적인 고민도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같은 해 가을에 시작된 경제제재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북한 노동자 송환 이행을 등한시할 경우 제재가 다시 강화될 상황을 의식한 결과로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9월의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북한으로의 수출은 약 2495만 달러다. 극동 지역 총 수출량(215억 달러)의 0.1% 수준이다. 북한으로부터 수입한 규모는 2만 달러에 그쳤다. 연구팀은 “이런 통계는 러시아 극동 경제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비중이 사실상 무시할 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제재의 풍선효과… 러시안 드림 사라진 北 노동자


▎2018년 봄, 북한 노동자가 연해주로 돌아오겠다며 러시아 현지인에게 맡긴 휴대전화. 2019년 12월까지 휴대전화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 사진:이애리아 교수 연구팀
연해주가 러시아에서는 북한 노동자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고, 현지의 북한 노동력 수요도 꾸준하다. 그렇다고 북한 노동자의 경제활동이 얼마만큼의 러시아 정부 세수로 이어지거나 유·무형의 이익을 가져다주는가는 따로 환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로 현금 결제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까닭에 통계 자료 또한 부실하다는 게 현지의 평가다.

이애리아 교수 연구팀은 적극적인 송환 움직임이 러시아의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유엔이 결의한 노동자 송환을 거부하는 방식보다 국제사회에 북한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냄으로써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이후 북한 노동자 퇴출이 일반 북한인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를 중국과 함께 내고 있다. 제재가 과도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러시아는 향후 대북제재 완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자국이 유엔 제재를 성실히 이행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유엔 제재 조치가 불확실성을 키우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고 연구팀 관계자는 말한다. “제재 이전에는 5년 노동 비자를 받은 송출 인원 쿼터를 통해 러시아 체류 북한 노동력의 추산이 가능했지만, 노동 비자 발급이 중단된 현 상황에서는 다른 비자로 연해주로 들어와 일하게 될 경우 파악할 방법이 없다.”

제재의 목표는 북한 정권이지만 그 피해가 북한 주민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북한에서 100달러면 4개월 동안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년 동안 러시아에서 일하다 귀국한 노동자는 북한에서 집을 사기도 했다. “이들에게 연해주는 ‘러시안 드림’을 이룰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이애리아 교수는 “북한 건설노동자의 80% 이상이 평양 출신이었음을 고려하면 러시아로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이행 경제를 학습한 이들로서 북한 경제의 개혁 개방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적 자원”이라고 본다. 향후 북한에 진출하는 해외 기업과 북한 당국 간의 중간 역할을 담당할 인재풀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 노동자를 이행 경제의 인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임금 체불이나 도난 등을 방지할 수 있는 계좌 개설 등 착취 방지책을 마련해 이들의 안정적인 노동 활동을 돕는 방안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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