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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한·미정상회담 앞둔 남·북·미 전략 

대북 속도 조절 나선 미국에 한국 정부 속은 타들어 간다 

바이든 취임 100일 연설에서 ‘외교와 억제’ 대북정책 원칙 천명
한·미정상회담 계기로 미·북 관계 회복 꾀하지만 북한은 어깃장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3월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드디어 막이 오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이해 하원에서 연설했다. 연설의 키워드는 백신, 핵억제 그리고 중국 세 가지로 압축됐다. 지지율 53%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나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슬리피 조(sleepy Joe)’라는 별명과 달리 1조8000억 달러의 화끈한 경기부양안을 발표했다. 1인당 3000달러를 저소득층에게 단순히 무상 지급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국 빈부 격차 구조의 판을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transformational reform)’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36년간의 상원 의원 생활과 8년간의 부통령 시절을 거치며 쌓아온 경륜과 차원이 다른 공감 능력으로 단숨에 워싱턴 정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70%에 육박하는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을 공언하면서 국제정치 무대에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표현이 등장했다. 대학에 재직하는 필자에게 가장 눈에 띄는 워싱턴 뉴스는 미국 대학의 2학기 수업은 백신만 접종하면 대면 수업 참가가 가능하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경우 벌써 2학기 대면 수업도 물 건너갔다는 견해가 대세다.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와 학생 입장에서 온라인 수업은 한계가 있다. 마치 대면과 비대면 수업 효과가 동일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을 위장하는 데 불과하다. 필자가 바이든의 미국을 언급하는 것은 그의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맞추어 남북한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4월 28일 100일 연설에서 북핵을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외교와 엄중한 억지(stern de terrence)”로 북한을 대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4월 30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을 통해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북정책의 근간을 내놨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정상 간 빅딜’이나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결이 다른 ‘제3의 길(the third way)’을 가겠다는 입장이다. 외형적으로는 외교를 통한 단계적 해법이 핵심이라고 포장했으나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군사 도발로 대응할 경우 ‘강력한 억지’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강온전략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평가된다. 이후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무리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신대북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발언은 런던에서 나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5월 3일 영국 런던에서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 장관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영 외교장관 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북정책 검토를 마무리했으며, 이제 우리는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법(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이라고 부르는 정책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블링컨은 “북한이 외교적으로 관여할 기회를 잡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기를 바란다”며 “우리는 다가올 수일, 그리고 수개월 동안 북한이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는 것까지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외교에 초점을 맞춘 매우 명쾌한 정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기초 위에서 관여하기를 원하는지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여기서 관여(engage)란 북한이 협상에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외유내강’ 천명한 바이든의 대북정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취임 100일을 맞이해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CNN 캡처
한편 블링컨은 “먼저 북핵 문제가 매우 어렵고,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 행정부를 거치면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접근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이 효과가 있었고 무엇이 효과가 없었는지 감안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효과적인 정책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숙고했다”고 밝혔다. 결국 미·북 협상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요청하는 동시에, 북한이 대미 외교에 나서는지 혹은 추가 도발을 하는지에 따라 제재·압박의 강도를 조절하겠다는 뜻이다. 블링컨은 정확한 측정으로 저울의 눈금을 맞춘다는 의미의 ‘조정된(calibrated)’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했다. 바이든의 정책은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 스왓(SWOT: strong, weak, opportunity and threat) 분석을 통해 상당히 정교하게 정책을 준비했다는 의미다.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며 위협을 감안하면서 기회를 살리겠다는 복안이다.

블링컨 장관은 런던에서 일본의 모테기 토시미쓰(茂木敏充) 외상, 정의용 외교부 장관 순으로 양자 회담을 하면서 북한문제에 대해 동맹과 추가적인 조율에도 나섰다. 정 장관은 블링컨 장관의 요청으로 영국 방문을 앞당겼다. 블링컨 장관은 정 장관과 회담에서 자신들의 신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미국은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한국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는 모양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다만 각론에서는 대북제재 완화 및 인도적 지원, 종전선언, 북한 인권문제 등에서 한·미 간 추가 조율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 장관은 블링컨을 상대로 북·미 간에 조속한 대화 재개와 함께 수명이 다해가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살리는 데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블링컨과 모테기 장관은 대북제재의 차질 없는 이행을 강조해 3자가 모였지만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동상이몽을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15개월 만에 한·미·일 외교장관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각국의 발표문이 삼인삼색이었다. 동일한 주제로 회의를 했지만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만 발표하다 보니 키워드가 달랐다. 미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한·미·일 외교장관이 한자리에서 언론용 사진을 찍고 동맹을 복원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한·일 외교장관은 블링컨의 강권으로 마지못해 자리를 함께했으나 20분 만에 각자 할 말을 하고 악수도 하지 않고 헤어졌다.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동맹 복원에서 한·일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북핵 해결만큼이나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한자리에 모인 한·미·일 외교 수장들의 동상이몽


▎ 사진:연합뉴스
북한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5월 들어서자마자 한·미 양국을 겨냥해 하루에 성명 세 개를 쏟아냈다. 북한 외무성과 김여정은 대북 전단 살포와 미국의 북한 인권 지적 등을 거론하며 대남(對南)·대미 비방 담화를 동시다발적으로 발표했다. 외무성은 대북 억지를 강조한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서도 “대단히 큰 실수”라고 비난했다. 특히 “미국 집권자가 첫 시정연설에서 대(對)조선 입장을 이런 식으로 밝힌 데 대해서는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구태의연하게 추구하겠다는 의미”라며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겠다고 반발했다. 따라서 북한은 향후 대응전술을 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희망과 달리 평양은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도발할지 혹은 이후에 도발할지 시점을 잡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김여정 부부장 역시 “남조선 당국은 탈북자 놈들의 무분별한 망동을 또다시 방치해두고 저지시키지 않았다”며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한국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김여정은 “우리는 이미 쓰레기 같은 것들의 망동을 묵인한 남조선 당국의 그릇된 처사가 북남관계에 미칠 후과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즉각 김창룡 경찰청장은 대북 전단을 살포한 박상학 대표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지시했다. 한국의 치안총수인 경찰청장이 언제부터 청와대 못지않게 평양 발언에 신경을 쓰게 됐는지, 1946년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임기 말로 치닫고 있어 정책 추진의 초조함이 평양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청와대는 우선 한·미정상회담 날짜를 확정하며 백악관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청와대는 미국 방문에 앞서 사전 정지 작업에 나섰으나 조준 방향이 엉뚱해 파편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떨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하루빨리 (북미가) 마주 앉는 것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실제적·불가역적 진전을 이룬 역사적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워싱턴 방문 전에 모범답안 수준이었으나 결국 탈선 발언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변죽만 울렸을 뿐 완전한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He beat around the bush and failed to pull it through)”고 평가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플로리다에서 골프를 치다가 소식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발끈했다. 즉시 “문재인은 협상가로 약했다”며 “가장 힘든 시기에 알게 된 (그리고 좋아하게 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었다”며 문 대통령을 깎아내렸다. 또 “한국을 향한 (북한의) 공격을 막은 것은 언제나 나였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더는 거기에 있지 않다”면서 한반도 평화를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웠다.

트럼프 평가절하한 文 “변죽만 울려” 발언은 결례


▎문재인 대통령이 4월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뉴욕타임스] 보도 이후 워싱턴의 전문가들이 문 대통령의 한국어 표현이 무엇인지 필자에게 문의해왔다. [뉴욕타임스] 최상훈 지국장이 한국어는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워딩이 무엇인지는 필자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협상을 시작했을 뿐 실질적인 성과가 없었다는 의미는 분명했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회고록에서나 할 이야기를 현직에서 세계 제일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유력 언론을 대상으로 제기함으로써 치명적인 외교 결례를 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신속한 북·미회담(kick-start negotiation)을 시작하라고 채근하려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전·현직 미국 대통령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상회담 출발 전부터 미국에 대한 압박을 시작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정확한 임기 만료일을 둘러싸고 다소 이견이 있지만 하여튼 1년 이내로 들어왔다. 내년 3월 선거를 고려하면 10개월로 줄어든다. 단임 대통령제 임기 말은 복잡하다. 하산이 시작된다. 청와대를 지키던 어공(낙하산 공무원)과 늘공(직업 공무원)의 심중은 복잡하다. 순장조에 포함됐지만 내심 하산 길에서 제 살길을 찾느라 암중모색에 여념이 없다. 9월 가을바람과 함께 여·야의 차기 대선후보가 정해지면 정책은 급속하게 표류하고 공직사회는 복지부동할 것이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수십 년간 반복해온 청와대와 관가의 분위기다. 여기에 더해 부화뇌동하는 또 하나의 그룹은 평양 수뇌부다. 지난 3월 16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족집게처럼 임기 말 남북관계를 거론했다. 그녀는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4월 말~5월 초 한국갤럽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마지노선인 30%가 붕괴됐다. 주요 분야별 평가에서 대북정책은 ‘잘 못한다’가 57%로 나타나 ‘잘한다’ 24%를 크게 앞섰다. 부정 평가 분야에서 대북정책은 부동산, 공직자 인사, 경제정책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전례 없는 세 차례 정상회담에다 문 대통령이 평양 15만 군중 앞에서 연설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백두산 등정도 했는데 국민은 왜 대북정책에 압도적으로 부정적일까?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서 ‘할 만큼 했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얼리티 쇼인지 여부에 상관없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남북 정상이 한반도의 미래를 이야기했다는데 누가 성과를 못 냈다고 비판하겠는가? 비록 용두사미로 끝났지만 그래도 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지는 않는다. 국민이 문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부정평가의 실마리는 청와대의 일편단심 저자세인 향북(向北)정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작년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예고 시점부터 대남 독설의 달인으로 부상한 김여정의 폭언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렵다. 정부에 대해 “태생적인 바보”, “떼떼(말더듬이)”, “미친개” 등 막말도 쏟아냈다. 또 3월 30일 담화에서는 문 대통령을 향해 ‘뻔뻔스러움의 극치’, ‘그 철면피함’, ‘미국 앵무새’ 등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대통령은 국격의 상징인데 왜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할까? 국내 반문세력에게는 문자폭탄 등 가차 없는 압박을 가하는 온라인 ‘문빠’들은 어디로 갔을까? 할 말은 하면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평양발 막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부와 여당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틀에 걸친 2차 회담에서 미·북 양측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 사진:연합뉴스
참모들은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을 리바이벌해야 하는데 맞대응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막말은 대화를 촉구하는 표현이라고 아전인수 격 해석까지 추가한다. 공정과 공평을 내세우는 MZ세대는 물론이고 중장년층도 북한의 막장 행태에 침묵하는 청와대에 모욕감과 울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당국 간 회담을 하고 비핵화와 평화를 논의하다가 이견으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국민은 21세기 한반도 냉전에 따른 분단 구조를 한두 번의 정상 만남으로 풀 수 있다고 절대 믿지 않는다. 전쟁이 없어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지 않았던 동서독의 경우도 수십 년간의 협상과 대화가 필요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해 말 김여정의 독설로 대북전단방지법이 통과됐다. 막말의 여왕으로 등극한 그녀의 행태에 대해 청와대의 지속적인 초지일관 벙어리 자세는 OECD 가입국으로서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혹시나 하는 미망으로 다시 손을 내밀지 않을까라고 평양을 오판한다면 임기 말 부정 평가는 고조될 것이다. 임기 말의 초조감을 빌미로 남측을 흔드는 북측의 조폭 같은 자세에 대해 따끔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대북 불쾌감을 달래는 첩경이다. 김여정의 막말과 청와대의 저자세가 지속되면 대북정책이 부정평가 1순위로 올라가는 것도 시간문제다.

왜 평양 권부에 대해 한마디도 지적하지 못하고 플로리다에서 퇴임 후 골프를 즐기는 전임 미국 대통령에 대해 변죽만 울리고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해 긁어 부스럼을 내는지 구중궁궐 밖에서는 알 수가 없다. 5월 21일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문 대통령이 평양만 감싸고 든다면 이것 역시 불공정행위다.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어록이 대북정책에서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해 국민의 실망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2007년 10월과 같이 무리한 임기 말 남북 정상 이벤트는 이제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가능하지도, 가능할 수도 없다.

지난 1994년 1차 위기로 시작된 북핵 사태는 사반세기가 지나고 있지만 여섯 차례 핵실험으로 실전 배치 상태에 이르렀다. 국제정치의 팽창주의를 막는 수단은 무력을 제외하고는 대화와 외교뿐이다. 오바마 정부가 북핵을 제쳐놓고 이란 핵 협상 타결에 주력했던 이유는 역시 성공 가능성 때문이었다. 사실 대화와 외교 방식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변죽만 울렸는지는 모르지만, 대화만큼은 나름 할 만큼 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김정은 위원장과 전례 없는 두 차례 정상회담으로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 수준까지 진도를 나갔다. 하지만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에서 북핵의 50% 수준 이하인 영변 핵 포기로 전체 11건의 유엔 대북제재 중에서 5건의 금융제재 해제를 시도했다. 트럼프는 전체 제재를 무력화하면서 절반의 비핵화만 달성하는 결과는 수용 불가라며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협상할 자세가 돼 있지 않다고 선언하고 전용기에 탑승했다. 한국전쟁 이후 70년간의 북·미 관계에서 하노이 회담보다 구체적인 협상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향후 4년간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와 협상, 강력한 억지라는 키워드가 평양과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5월 초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 장관회의 공동성명에는 블링컨의 주도로 ‘CVIA’라는 다소 생소한 비핵화 용어가 등장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포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Abandonment)’다. 통상적으로 사용해온 CVID(Complete Verifiable Ir reversible Denuclearization)에서 ‘D’를 지우고 ‘포기(Ab andonment)’를 뜻하는 ‘A’를 사용했다. ‘D’는 ‘비핵화(De nuclearization)’ 혹은 ‘폐기(Dismantlement)’를 뜻한다.

북핵에서 대만으로 미국 동북아정책 무게중심 이동


▎지난 4월 중국 샤먼 해변에 ‘일국양제 통일중국’이라고 쓰인 대형 선전용 입간판 앞으로 행인이 지나고 있다. 샤먼은 대만의 섬 진먼다오(金門島)와 지척에 있어 양안 관계의 상징적 장소로 꼽힌다. / 사진:연합뉴스
일부에서는 포기가 폐기보다 자발적인 개념이고 기술적으로 차이가 있어 북한과의 협상을 고려한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앞의 CVI 세 단어가 같은 상황에서 D와 A의 용어 차이는 무의미해진다. 특히 평양 입장에서는 결국 미국과 정확한 주고받기 정책을 해야 하는데 과거 트럼프 행정부의 단계적 해법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또 서울과 평양이 선호하는 부분 비핵화와 일부 제재 완화를 의미하는 ‘스몰 딜(small deal)’을 워싱턴이 협상에서 수용할 것인가가 최종 쟁점이 될 것이다. 사실 북한 비핵화 용어는 정책의 포장지에 불과하다. 트럼프와 세 차례 정상 간 만남을 추진한 김정은 입장에서 정책의 네이밍(naming)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통 큰 게임(grand bargaining)’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북한에 전달하려고 접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5월 6일 [워싱턴 포스트(WP)]의 보도대로 평양이 바이든 행정부의 로드맵에 맞춰주진 않을 것이다.

특히 북·미 협상이 조기에 진도를 나가기 어려운 이유는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면서 동북아 국제정치의 역학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대 동북아 관심 주제가 북한이었다면 바이든 시대에는 대만이 급부상하고 있다. 북한 문제가 안보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대만 문제는 반도체와 미·중 갈등을 토대로 경제와 안보가 혼합돼 양측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핵심 이슈다.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군사적으로 방어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은 바이든 정부의 제일 과제다. 필립 데이비스 인도태평양사령관은 3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경고했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한 외교 전문가들은 대만 문제가 미·중 간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4월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크리스 도드 전 상원의원이 이끄는 비공식 대표단을 대만에 보냈다. 그만큼 대만이 미·중 경쟁 구도에서 지정학적 주요 변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4월 16일 워싱턴을 방문한 스가 일본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미·일 공동성명에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당초 미국은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에 대한 무기 제공을 규정한 ‘대만 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거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은 4월 21일 보도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 발맞춰 대만에 무기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며 일본이 난색을 보여 실제 성명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5월 방미는 한·미관계 복원할 마지막 기회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한 직후인 1979년 4월 10일 제정한 대만관계법은 대만 방어를 위해 미국이 무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나 대만의 안전에 관한 위협에 미국이 대항조치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40년이 지나며 미·중 갈등으로 해묵은 대만관계법이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볼 때 국제정치의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고 세상은 유전(流轉)한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대만 관련 문구가 포함된 미·일 공동성명은 대표적 외교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막판까지 대만 문구를 삽입하는 부분에 대해 고심이 컸으나 결국은 미국의 요청을 들어줬다는 후문이다. 일본은 중국과의 경제 통상 관계를 염두에 두고 끝까지 고심했으나 결국은 미국의 대중 전선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가장 확실한 동맹국임을 보여줬다.

정의용 장관은 영국 방문을 마치며 미국이 현재 공석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임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사라지고 대만이 급부상함에 따라 북한통인 성 김 인도네시아 대사 대신 중국통인 다니엘 크리튼 브링크 주베트남 미국 대사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 임명되는 바이든 국무부의 인사이드 스토리를 파악하지 못한 발언이다. 워싱턴의 흐름과 동떨어진 발언의 배경은 오매불망 평양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지난해 바이든 당선 직후 전화통화에서 약속한 바와 같이 양 정상이 눈을 맞대고 대화를 한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내년 3월 대선 전에 다시 워싱턴을 방문하는 일정을 잡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마지막 방미 일정이다. 동맹 정상의 면전에서 [뉴욕타임스] 회견과 같은 발언이 튀어나온다면 가뜩이나 이류 동맹으로 격하되는 한·미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제발 5월 백악관 회담에서는 평양을 잠시 잊어버리라는 제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인 한·미관계를 강조하면서 백신만 충분히 확보하고 귀국해도 국민은 문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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