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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기로에 선 한·미 동맹의 行路 

미국과 엇박자 내는 대중·대북 정책 추진은 위험천만 

■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은 오바마식과 트럼프식의 절충형
■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 복원은 한·미 동맹 미래와 직결
■ 워싱턴 일각 제기되는 한국에 대한 불신은 풀어야 할 숙제
■ 중국·북한과 우호 관계 만들려면 한·미 동맹부터 굳건해야


▎4월 22일 미국이 주최한 화상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5월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간의 첫 한·미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렸다. 지난 4년 동안 9차례나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매우 어려운 여건에서 성사됐을 뿐 아니라 의제도 난제들이어서 한·미 동맹이 기로에 선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 이 불안한 변곡점은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도 공통으로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보다 근본적인 자기 성찰부터 시작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재검토해보고 대응 정책과 전략을 제시해볼 필요가 있다.

1. 한·미 관계의 특수성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AP 연합뉴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계기로 1953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쌍무 동맹을 맺기까지,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은 3단계에 걸쳐 역사적 소명을 자임한 특수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1단계는 태평양전쟁 승전국으로서 우리를 일제에서 해방한 민족 해방자(liberator)이고, 2단계는 대한민국 건국을 유엔의 이름으로 도운 정체의 창립자(creator)이며, 3단계는 이 신생 독립국을 공산 침략에서 지켜준 군사적 보호자(protector) 역할의 자임이 바로 그것이다.

독일인의 철저한 국익 현실주의 타산지석 삼아야

미국이 힘으로 일제를 패망시켰기에 우리가 해방된 것이고, 소련이 38선 이북을 공산화했기에 남쪽만이라도 자유민주국가로서 독립시켜야 했다. 또 미국은 소련과 중공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무력 침략에 대응해 군사적 보호자임을 자임하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트루먼 당시 미 대통령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책임의식”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이러한 3단계의 역사적 역할은 오늘날 한국이 국제사회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서는 데 근본적 토대를 제공했고,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한 다른 어떠한 신생국들 사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경우다.

지난 70여 년간 진행됐던 모든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각자 정권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이 같은 특수한 혈맹관계와 국민적 연대의식 바탕 위에서 현안을 다루고 갈등을 조정해왔다.

소위 진보좌파 정부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대북 햇볕정책이건 북핵 문제이건 기본적으로 미국의 협력과 미국이 이끄는 국제 공조체제의 지원 없이는 아무것도 진전시킬 수 없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았다. 그래서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작전체제의 강력한 대북 전쟁 억제력을 바탕으로 남북 정상회담과 대북 포용정책을 시도했으며, 이라크전과 아프간전 파병, 그리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도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성패 여부도 이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독일 통일의 산 경험은 미국의 보호막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를 너무나 잘 증명해준다. 한마디로 독일은 미국이 강력한 힘과 의지로 소련을 설득한 덕분에 통일된 것이다. 즉 서독의 대(對)동독 햇볕정책인 동방정책(Ostpolitik)이 주효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게 아니라,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이 장벽의 문을 열라”는 지속적인 대소련 압박과 개입이 냉전체제를 와해시키자 마침내 통일의 문까지 열리게 된 것이다.

오늘날 독일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과 떨어지지 말고 미국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고 때로는 의지하는 전략적 지혜를 발휘하라.” 그렇지 않으면 통일은커녕 안보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된 마당에 아직도 주독(駐獨) 미군을 붙잡고 있는 독일인의 철저한 국익 현실주의를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이유다.

김일성·김정일 때부터 북한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대외 정책의 초점을 시종일관 한·미 안보관계 이간질에 맞춰왔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작금의 중국이 우리를 거칠게 대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일본이 우리를 감정적으로만 접근하는 데도 일정한 선이 있는 것은 한·미 관계의 특수성과 안보동맹의 실존적 가치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일부 측근은 미국과의 ‘동맹 중독증’ 운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임의로 파트너십을 택할 수도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이는 단순한 개별적 일탈 행위라기보다는 이 정권의 좌충우돌식 무능한 외교력 한계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미 카터 행정부 당시 추진했던 주한미군 철수 정책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때 거론했던 한·미 안보동맹 무용론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 공약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시대 조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동맹의 권리와 의무가 상호 국익 개념상 균형을 잃으면 안보정책의 우선순위는 바뀌기 마련이다.

따라서 만약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FOIP)과 쿼드(QUAD) 공동협력체(미·일·인도·호주)에서 계속 국외자(局外者)로 남아 미국과 엇박자를 내는, 이율배반적인 대중·대북 정책을 추진한다면 어떠한 형태이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것이 냉엄한 국제 정치 현실이고 또 우리가 처한 위기의 한반도 현주소다.

2. 동맹의 권리와 의무: 난제와 숙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노동신문
애당초 한·미 안보동맹의 출발점이 북으로부터 도발과 위협의 억제에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관한 공동 인식이 전제돼야 동맹의 실효성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이 적인 동시에 동족이지만, 미국에는 당면 최대의 안보 위협 요인이다. 미국에 북한은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설복 혹은 굴복시켜야 할 ‘불량국가’다.

하노이 회담 이후 제기된 文 정부에 대한 의구심

북한은 이미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대륙간탄도탄(ICBM)과 신형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그리고 한·미 연합군의 절멸(絶滅)을 노리는 전술핵 무기용 3종 세트인 중·단거리 미사일과 초대구경 방사포 등을 열병식에서 과시했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안보와 통일 양면성을 지닌, 다분히 이중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안보 우선주의로 당근과 채찍이 균형을 이루는 보다 현실주의적 대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한·미 정상회담은 어떻게 하면 이 이원적 접근법을 조화시켜 공조의 우선순위를 정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왔다. 김대중·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정권은 “대화가 곧 안보”라는 다소 감상적인 햇볕론에 젖어 대북 포용정책에 매달렸다면, 박근혜 정부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추상적 관념론에 빠져 전략 현실주의적 사고를 소홀히 했다.

핵무장을 한 북한과의 대화는 결코 안보를 대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통일은 혼돈의 천하 대란 과정이지 결코 그냥 주어지는 대박이 될 수 없다는 적대적 분단 현실을 무시한 모두 희망사항에서 나온 착각들이다. 북한 지도부가 올해 초부터 전략·전술핵 개발 완료를 호언장담하고, 핵무기로 무력통일까지 장담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이 평화 프로세스이고 또 무엇이 대박이란 말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 간의 선언적 의미의 정책(declaratory), 정책과 실제적 대응책(actual)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5월 21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 안팎에서 나왔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트럼프 행정부)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한국 정부가 북의 비핵화 의지를 의도적이건 착오적이건 과대평가해 미국을 오도한(misled) 것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2019년 2월) 실패 원인이었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노이 회담 이후부터 미 행정부와 의회 안팎에서는 도대체 문재인 정권이 왜 그리고 무엇을 믿고 북·미 간의 중재역을 자처하고 나섰는지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선순환론은 북의 대남 공식 접촉 완전 차단과 대미 단독 협상 재개 거부를 통해 환상임이 드러났다. 이제 북의 비핵화건 한반도 비핵화건 한·미 간 그리고 한·미·일 간에 공통분모를 도출해야 할 중대한 분기점에 도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정부가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남북관계를 위해 소위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려고 하는 한 한·미 간에 심각한 신뢰성의 위기는 피할 수 없다.

나아가 이 정부의 북·중·러 북방 3각에 기우는 듯한 탈(脫)한·미·일 남방 3각의 대북 유화책이 궁극적으로 대북 제재에 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공조체제를 흔들고 있다는 판단이 확산하면, 한·미 간의 신뢰와 소통의 문제는 총체적인 안보 동맹 위기로 비화할지도 모른다.

중국이 한·미 안보동맹 대체할 순 없어


▎2013년 12월 당시 미국 부통령 자격으로 중국을 찾은 바이든(왼쪽)이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이고 경제적으로 상생 관계에 있음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한·미 안보동맹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의 집단안보체제가 아닌 한,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정치·외교·경제적 공동 전선인 쿼드 참여를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중국의 도전을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는 미국이 한국에 동맹의 권리와 의무 차원에서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에 굴복해 이른바 ‘3불’, 즉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의 광역 미사일망(MD) 참여 불가, 그리고 한·미·일 안보연합체 결성 불가를 중국 측에 약속했다. 이는 북한의 요구에 응해 한미연합훈련을 포기한 트럼프-문재인 담합적 오판과 겹쳐 앞으로 한·미 안보동맹연합자산의 실효성 유지에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새롭게 대북정책 기조를 밝힌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파악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도 아니고, 트럼프식 일괄타결 시도도 아닌 균형 잡힌 실용적 접근을 하겠다는 바이든표 대북정책은 절충형에 가깝다. 전략적 인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만큼, 단계적 방법이라도 찾기 위해 트럼프식 이벤트성 접근이 아닌 실무협상으로 제재일부 해제와 북핵 능력을 일시 봉합하는 타협적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라도 시도해보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능력이 갈수록 증강되고 위협이 노골화되면 최악의 경우 비핵화 시간표와 도발 한계선인 레드 라인을 설정할 수 있다는 미국의 독자 행동인 우발 계획도(Contingency Plan) 물론 포함돼 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김정은을 깡패·폭군으로 지칭하며, 비핵화 없는 대북 협상은 없다고 천명한 데서 잘 나타나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인식과는 사실상 정반대 입장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같은 입장과 인식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바이든은 이처럼 곤혹스러운 상황을 고려해 북핵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 원칙을 일본 스가 총리와의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확고히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과 마주 앉고, 중국과 협력하라”는 ‘훈수’로 응답했다.

한·미 동맹은 심각한 소통 위기와 신뢰성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대로 가면 이 딜레마는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가 북핵 위협의 최대 당사자이자 피해자인데도 마치 제3자인 것처럼 중재역을 자임하고 나서면서부터 북핵 문제가 ‘남북평화’ 명분에 막혀 우선순위에서도 뒤로 밀리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과연 상호방위 조약상 동맹국이 맞는지,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북의 대변인이 아니냐는 극단적인 비아냥까지 나왔다.

한·미 간 신뢰성부터 회복해야

단언컨대 바이든은 트럼프식 TV 쇼용(用) 김정은과의 브로맨십은 하지 않는다. 또 북한이 계속 실무 접촉은 거부한 채 오히려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강행한다면,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는 더 강력해지고 그만큼 미·중, 북·미 그리고 한·미 간의 갈등과 남북 간의 긴장도 고조될 것이다.

북 지도부는 핵무장에 관한 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이제 다리마저 끊어버린 상태임이 국제 정보공동체의 공통된 판단이다. 북·미 양자건 6자 회담 형식이건 설령 협상이 재개된다 해도 결국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더욱 견고해진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은 국내외 전략정보 전문가는 거의 없다. 핵 문제에 관한 한 시간은 북한 편이 돼가고 있는 국면이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도 우리 정부는 무엇이 당장 해야 할 일이고, 무엇이 시간을 두고 신중히 검토해야 할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 또 독자적으로 풀 수 있는 일과 반드시 미국과 협력해서 국제 공조로 추진해야 할 일 등에 관해 전략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한·미 간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다룰 때 가급적 달래가며 외교력을 통해 협상하는 기존의 리스크 어보이딩(Risk-Avoiding) 전략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긴장 고조를 각오하고서라도 북에 힘과 의지를 과시하는 일종의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접근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임기 초인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란 핵 해법 제시와 더불어 과거와 다른 용기와 희망을 미국민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할 중압감을 느낄 것이다.

3. 대책과 전망: 터널의 끝인가, 막다른 벽인가


우리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 한·미 동맹의 기본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각론 차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총론적인 기본 정신이 흔들려서는 양국 국익에 모두 치명적인 손실을 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핵무장을 한 북한은 체제 수호의 명분으로 핵 카드를 한·미 양측에 위협적으로 사용하는 전형적인 불량국가 형태를 보인다. 이제는 정상적인 정치·외교적 방법만으로는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의 핵심들은 이를 모두 ‘미국 책임’으로 돌리면서 북한이 아닌 미국이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하고, 우선 제재를 풀어가면서 종전 선언이나 평화 협정부터 논의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이벤트나 과거 수없이 써먹었던 선언·성명 같은 것을 다시 내놓으면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위기는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가?

위기가 심화할수록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 위기관리의 요체가 시간 관리에 있다면, 윈스턴 처칠의 지적대로 전략적 지혜를 발휘해 이 관리를 장기적으로 ‘위장된 축복’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처칠이 2차 대전 초 고립무원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안으로는 국민적 용기와 희망을 북돋우며 밖으로는 미국의 개입을 끌어냈다. 이는 전략 현실주의적인 위대한 리더십의 발휘였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도 이 같은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강력한 생존력은 이러한 리더십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포위의식(Siege Mentality)에서도 늘 철저한 전략 현실주의로 무장해 전쟁과 평화 문제를 균형 잡아왔다. 그래서 협상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분명히 구분해, 전자는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끌어냈고 후자는 이라크와 이란 및 시리아의 잠재적 핵무장 위협에 대해 강력한 예방적 억제 조치를 행사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 미국의 협력과 보호막이 거의 절대적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바이든표 대북정책, 단계적 접근 방법 선호


▎한·미 외교·국방 장관이 참여하는 ‘2+2 회의’가 열린 3월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한 시민단체가 ‘쿼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의 회고대로 “주변국이 우리를 핵과 테러 위협을 가하려는 한, 그들은 더는 정상적인 협상 상대가 아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안보 환경이 비슷한 우리 입장에서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산 경험이다.

이렇듯 안보 문제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돼 있고, 그 반대의 접근은 오히려 위협의 장기화와 우발 사태의 위험만 키울 뿐이다. 자칫 터널의 끝이 아닌 막다른 벽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점은 오늘의 한반도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무엇보다도 북핵 위협 대응에서 외교적 협상 원칙과 군사적 억제·방어 논리의 균형에 동맹의 미래가 달려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한미연합작전 체제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한미연합훈련의 무기한 중단 혹은 완전 폐지는 한·미 안보동맹이 거의 형해화(形骸化)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쇼맨십 대가로 중단했다고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요구에 따라 아예 완전 폐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지적대로 군사적 측면에서 동맹이 거의 무용지물이 돼가고 있다.

또 말이 좋아 핵우산 격인 확장적 억제력(Extended Deterrence) 제공이지 이미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기한 상태에서 무슨 실효성이 있단 말인가. 북핵 억제와 방어에 한국군의 단독 대응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전시작전권을 문 대통령 임기 내에 서둘러 환수하겠다는 것은 북핵 인질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한미연합훈련이 없어지고 전작권마저 조기 환수되면,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 명분이 절로 생길 수밖에 없다. 전작권을 단독 행사할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이 같은 홀로서기식 ‘자주국방’은 사실상 무장해제나 마찬가지라는 안팎의 경고가 더는 새롭지도 않다.

설사 북·미 핵 협상이 재개된다고 가정해보자. 바이든표 실용적 대북정책은 앞서 밝힌 대로 단계적 접근 방법을 선호하는 것이고, 이는 일차적으로 북핵 동결 협상 시작을 예고한다. 동결이란 문자 그대로 현 상태에서 봉합을 말하며,

이는 기존의 북핵 보유량은 그대로 둔 채 양적 확대나 질적 향상만 억제한다는 뜻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했던 일종의 핵 군축 협상의 패턴을 따라가는 것으로, 정확하게 지금 북 지도부가 원하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는 북핵 무장을 특정 범위 내에서 인정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는 최악의 방식이 될 수 있다. 혹자는 이를 차선책이라고 호도하지만 북이 이미 남한 전체를 핵무기로 절멸할 전략 및 전술핵 개발을 완성하고, 실전 배치를 예고한 상황에서 그것이 어떻게 추가 협상을 위한 차선적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이나 SLBM만 중단시킬 수 있다면 한국민 전체를 인질로 잡는 약 100여 기의 전술핵은 그냥 ‘동결’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지난 3월 한·미 양국 외교·국방 장관 회담(2+2)에서 문 정부의 요청으로 북 비핵화 문제에 대한 CVID 원칙의 단호한 표명은 빠진 것인가. 그렇다면 이 점을 분명히 한 하노이 회담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편이 차라리 낫다. 자칫 북의 함정에 빠질 수 있었던 그 회담이 결렬된 것은 돌이켜보면 한·미 안보동맹 유지에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美에 할 말 하겠다면 北·中에도 하라


▎2020년 6월 9일 대구 미군기지 캠프 워커에서 열린 미19지원사령부 지휘관 이취임식에 참석한 한·미 장병들. / 사진:연합뉴스
우리의 단독 핵무장론은 사실상 한·미 동맹을 깨는 일이니 현실성이 없고 NATO식 핵 공유 문제도 집단안보체제가 아닌 한·미 쌍무동맹 여건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과거 철수한 주한미군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문제를 보다 실질적인 대안으로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우리의 독자 핵무장은 결국 북한과 비핵화 협상의 최후 담판에서나 쓸 수 있는 비장의 마지막 바기닝(bargaining) 카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의 복원과 강화는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한·일 관계 개선 차원이 아닌 한·미 동맹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다. 문 정부가 2019년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시도하고 중국과는 ‘운명공동체’라고 선언하자 미국이 오히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공동운명체가 돼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했음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그만큼 미국에 대한 안보공약은 큰 틀에서 일본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북핵 포기에 대한 대가로 응분의 보상이 필요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 해체 같은 극단적인 북의 요구는 일축해야 한다. 그 대신 북의 자강적 자립을 위한 중국식 ‘주체조선’의 길 개척을 도울 구상도 검토해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북의 핵 포기에 대한 보상으로 주체조선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중국식 개혁·개방을 자원하며, 우리는 이를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 과정으로 협력해 궁극적으로 통일의 초석을 쌓아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윈-윈 게임이 된다. 북이 핵 공갈·협박으로 동북아의 게임 체인저가 되려고 하는 데는 엄연한 한계가 있고 또 미국과의 정면 대결식 치킨게임도 승산이 거의 없다면,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실효적인 빅딜 아닌 뉴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평화는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 정부가 지금처럼 거의 굴종적인 대중·대북 자세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구한다면 결국 평화도 잃고 미국과의 혈맹관계도 저버리는 고립무원에 처할 수 있다.

작금의 워싱턴 조야(朝野) 일각에서 문 정부의 외교안보 팀은 미국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 최악의 팀이라는 혹평과 함께 과연 한국이 동맹국이 맞느냐 하는 불신이 팽배하고 있다. 모든 일은 예고 없이 닥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사전에 징조와 징험이 있기 마련이고, 안보 문제는 위기가 바로 닥치기 전에는 결코 그 비용을 미리 계산해주지 않는 법이다. 한 민족은 국가 리더십의 무능과 오판으로 철저히 낙오될 수 있고 또 그로 인한 내부 분열과 외부 혼돈으로 스스로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게 역사의 경험이다.

중국과 호혜적 상생 관계를 유지·발전시키고 북한과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싶거든 먼저 한·미 동맹부터 굳건히 하라는 조언과 경고가 그래서 나왔다. 미국에 할 말은 한다는 용기가 있다면, 중국과 북한에도 할 말은 반드시 하겠다고 각오해야 한다. 그 정도 각오 없이 진정한 신뢰와 평화는 없다.

나아가 한·미 동맹은 포괄적인 가치 동맹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협의의 안보가 아닌 광의의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경제·사회 모든 부문에서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공유해야 한다. 당장 북한 인권 문제와 코로나 팬데믹, 반도체 위기 등에 관해서 정책 공조가 필수불가결한 글로벌 거버넌스 동맹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미 동맹의 기본정신, 그 초심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답을 얻을 것이다.

-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전 캐나다 대사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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