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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혐한·반일로 꼬인 한·일 관계 풀려면 

국가 전략상 반드시 챙겨야 할 이웃으로 생각하라 

중국·북한 상대하기엔 너무 부담, 적으로 삼기에 적당히 ‘만만한’ 한·일
한국은 일본 두려워할 필요 없고, 일본은 한국이 방파제란 사실 알아야


▎도쿄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신오쿠보 상점가에 한·일 양국 국기가 사이 좋게 걸려 있다.
일본과 조선은 영국과 캐나다의 관계처럼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内原忠雄) 도쿄제국대 식민학 교수의 말이다. 그는 스승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와 함께 1910년의 조선 병합에 반대했고, 이후에도 일본의 식민정책을 계속해서 비판했다. 그런 탓에 그는 1937년 도쿄제국대에서 쫓겨나게 됐다.

야나이하라는 조선처럼 문명이 있는 나라를 억압하고 일본에 일방적으로 동화시키려는 식민정책은 어차피 실패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원망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일본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전후(戰後), 반성하지 않는 일본은 ‘혐한’을, 원망하는 한국은 ‘반일’을 기조로 대립해왔는데, 최근엔 더 악화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한·일 교류는 해가 다르게 심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실내에 머무는 날이 많았던 2020년, 많은 일본인은 [사랑의 불시착]이나 [이태원클라쓰]를 보면서 열광했는데, 일본 넷플릭스 2020년 연간 시청률 1위가 [사랑의 불시착]이었고, 톱10의 절반이 한국 드라마였다. 젊은 여학생들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이 깊어져 패션이나 화장법에서 한국식을 따라 하고, 과거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던 하라주쿠를 버리고 코리아타운 신오쿠보로 몰려들었다. 신오쿠보는 지방에서 도쿄로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이 꼭 들러야 하는 ‘성지’가 됐다.

몇 년 전 트위터 등에 일본어로 ‘#韓国人になりたい(한국인이 되고 싶어)’가 유행했다. 몇 달간 수천 건이 넘게 올라왔을 정도였고, 일본 방송 인터뷰에서 일본 여고생이 실제 “한국인이 되고 싶어요”라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일도 있다. 최소한 요즘의 일본 젊은이들은 이제 한국을 낮잡아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련된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일본 문화에 대한 거리감이나 적대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집결지인 서울 ‘홍대 거리’에 가보면 아예 일본어로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일본 에도 시대풍 선술집이 즐비하다. 서울 어디에 가더라도 이젠 돈가스집이나 우동·라멘집이 일본어 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이다.

현재 도쿄에는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취업해 있고, 일부는 아예 현지인과 결혼해 자리 잡고 있다. 근년에는 한국인의 일본 취업 증가율이 매해 15% 내외로 급증하고 있다. 서울에는 일본보다 세련된 카페에서 한국식 커피를 배우기 위해 건너온 일본 젊은이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또 K팝 기획사들에서 일본인 연습생을 만나는 것은 이젠 낯선 일이 아니다.

한국 체류 일본인 수가 지난 20년간 1만5000명(2000년)에서 4만5000명(2020년)으로 300% 증가했다. 아직 일본이 경쟁력을 가진 대중문화 분야가 많지만, 대중음악·영화·드라마·카페 산업을 포함한 여러 대중문화 분야에서 이젠 한국이 한 수 위라는 것이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민간에서의 교류 심화와는 반대로 정치적으로 반목을 거듭하는 한·일 관계,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내부 단결’에 도움 되는 ‘적대적 공생’ 관계


▎서울 홍익대 앞 ‘롯폰기 홍대’. 4~5층 건물 전체에 일본식 이자카야가 들어서 있다.
정치적 기술에는 저급한 것도 있고 고급인 것도 있다. 과거 로마제국·중화제국·몽골제국·오스만제국처럼 수억 명 주민을 평화롭게 통치하던 나라도 있고, 900개 종족으로 나뉘어 900가지 서로 안 통하는 언어를 쓰는 파푸아뉴기니 같은 나라도 있다. 정치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기술 또는 지혜라고 할 때 적은 수보다 많은 수의 사람을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고급인 정치술(Political Art), 정치적 지혜라고 하겠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기초적인 정치술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를 단결시키기’일 것이다. 이른바 칼 슈미트(독일의 정치학자)식의 정치인데, 문제는 현재의 일본과 한국 모두 칼 슈미트식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정치술로는 두 나라 모두 내부를 단결시키기 위해 외부의 적이 꼭 필요한데, 양국이 서로에게 가장 만만한 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항상 북한을 적(敵)으로 삼아 때리기를 좋아했는데, 최근 양국 모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북한 때리기는 자제하게 됐고, 또 중국은 적으로 삼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만한 대상으로 한국은 일본을, 일본은 한국을 택하게 됐다.

게다가 양국 관계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엮여 있고, 또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미 깊게 연결되어 있어서 때려도 좀처럼 관계가 파탄 날 위험성도 적다. 마치 축구나 야구의 ‘한·일전’처럼 서로 티격태격 싸우는 것만으로도 각국의 ‘내부 단결’에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이 현재의 한·일 관계에 꼭 들어맞는다. 양국 정권은 어쩌면 혐한과 반일에 나서주는 상대방 정부가 고마울 것이다.

일본의 혐한과 한국의 반일을 좀 비교해보면, 격렬함은 한국의 반일이 일본의 혐한보다 강하다. 그런데 그 뿌리는 일본의 혐한이 한국의 반일보다 깊다. 그것은 양국의 정치·사회 구조와 관련이 있다. 한국은 유교적 요소가 강한 나라인데, 일본은 유교적 요소가 약한 나라다. 과거 중국이 진(秦)·한(漢) 이후 거대한 제국을 이뤘을 때, 위협적인 외부의 적이 없이도 수많은 사람을 통치할 원리로 유교(유학)를 받아들였다.

이 통치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민들에게 따뜻한 가정생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끈끈한 인간적 유대를 통해 시민사회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려면 가족과 시민사회가 자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관료조직, 특히 경찰력이 너무 많이 필요하게 돼 제국이 그 행정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할 텐데 일본인들을 만나보면 한국의 가족이 얼마나 따뜻하고, 친구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알게 된다. 유교의 뿌리가 얕긴 했지만 메이지 유신 이전인 에도 시대에는 그래도 최소한 일본 서민들 사이에 따뜻한 가족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 정부가 제국주의 시대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전 국민의 사무라이화’를 추진하면서, 가족의 정을 없애는 가족법을 만들게 됐다.

그러자 일본에서 가족은 부부간, 부자간의 정이 약한 말단의 국가기관이 돼버렸고, 가족의 정에 굶주린 사람들은 일본 전체가 천황을 종가로 하는 거대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즉 ‘가족국가(家族國家)’ 이데올로기를 믿으며 정의 굶주림, 외로움을 이 상상의 가족 속에서 풀고자 했다. 인간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경우 국가에도 맞설 수 있는 당당함, 즉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

가족과 시민사회가 약한 일본의 치명적 결함


▎2017년 11월 14일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 기념촬영을 위해 나란히 서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서 군주인 삼촌의 엄명에 맞서 오빠의 시신을 거두려 하는 주인공 안티고네의 용기는 역시 가족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없을 때 인간은 국가에서 쫓겨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다.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멤버십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국가의 멤버십, 회사의 멤버십, 그리고 국가와 회사에서 받는 ‘인정’에 집착하는 것은 가족의 정, 가족생활의 즐거움, 친구들과의 우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부자유친(父子有親)’,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잘 모른다. 부자는 서로 ‘친해야’ 하고, 붕우는 서로 믿어야 한다는 것인데, 한국이나 중국 같은 유교사회는 이러한 규범을 통해 가족과 시민사회의 유대를 만들었고, 이로써 전쟁하는 국가가 아닌 평화를 즐기는 평천하의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가족과 시민사회가 약한 일본에서는 앞으로도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를 단결시킨다’는 칼 슈미트적 국가주의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반면, 한국의 ‘반일’은 이웃 나라에 의해 식민화됐다는 경험에서 나온 열패감이 그 원인이어서 일본의 혐한보다는 뿌리가 깊지 않다. 러·일전쟁 직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던 을사조약, 그리고 1910년의 병합을 거치면서 조선인들의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커졌다. 오랫동안 문명의 위계에서 우리보다 낮다고 생각했던 일본에 의해 식민지가 됐다는 것이 한국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식민통치는 내무성을 중심으로 문화통치를 했던 대만과 달리 죠슈(長州) 육군 군벌이 중심이 돼 강압적으로 무단 통치했다는 차이도 있었다. 해방 후 한국인들의 최대 과제는 ‘극일’이 됐다. 어떻게든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벗어던지고 일본을 이겨야겠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합의된 목표가 됐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패감은 한국이 여러 부문에서 일본을 앞서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많은 일본인이 한국을 존중하기 시작하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가족과 시민사회가 강한 나라여서 개인들이 국가적 영광에 자신을 그(일본) 정도까지 일체화하지는 않는다. 우리와 남을 구분하기 좋아하고, 이른바 ‘인정투쟁(認定鬪爭)’에서 이기겠다는 경쟁심이 유달리 강할 수밖에 없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가족과 시민사회의 일상을 즐기기 좋아하는 나라다.

일본 우익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한국 서점에 ‘반일’ 서적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 서점이나 편의점 가판대에는 여기저기에 ‘혐한’ 서적이 보인다. 여러 부문에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고 앞지르기 시작하게 되면 한국인들의 ‘반일’은 더더욱 에너지를 잃을 것이다. 더는 일본에 대한 열패감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전략에서 꼭 챙겨야 하는 전략적 카드


▎2019년 10월 일본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 인근 한인타운을 찾은 일본인들이 한류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반면, 경쟁심이 강한 일본인들의 ‘혐한’은 좀 더 심해질 우려는 있다. 일본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혐한’을 일종의 비관세 장벽으로 세우려 할 가능성도 있고, 또한 정치적 차원에서 한류라는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유입되는 민주주의·페미니즘 등에 대한 경계심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똑같이 민주주의를 한다고는 하지만 한국은 좀 더 민중적 성격이 강하고, 일본은 좀 더 귀족적·엘리트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식 민주주의가 유입되는 것이 일본 엘리트들의 헤게모니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경계심이 발동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린 ‘소녀시대’라는 한국 걸그룹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소녀시대’ 팬층이 한국에서는 주로 남성이었던 데 반해 일본에서는 주로 여성들이었다. 보수적인 일본 남성들이 보기에 ‘소녀시대’는 ‘가와이’(귀엽다)보다는 ‘각꼬이’(멋지다)였고, 일본 남성들은 이런 ‘각꼬이’가 좀 공격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고슈진’(주인)이 되는 일본 남성 중에는 멋지고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 스타일의 여성들이 부담스럽다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걸그룹이 일본 소녀들에게 환영받는 것은 한국 대중문화가 지닌 페미니즘적 요소 때문이기도 하다.

한류 드라마가 남녀의 정, 가족의 정을 주로 일본에 수출하는 것처럼 K팝은 일본에 페미니즘을 은밀히 수출하고 있다. 일본의 주류가 여기에 경계심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문화상품은 정치적 성격이 강한 상품이다.

이렇게 서로 관심도 많고 미워도 하는 한국과 일본이지만, 이웃이라는 지리적 숙명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경우 한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일본에, 중국이 동네 이웃이라면 한국은 담장 바로 너머의 이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상대방의 국가 전략에서 꼭 챙겨야 하는 전략적 카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카드를 마치 ‘버린 카드’처럼 여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다.

국제정치에 매우 단순한 정치술이 하나 있다. ‘힘의 균형’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경우 일본은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저울추다. 물론, 우리에게는 한·미 동맹이 있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에 하나, 미국이 자신들의 국익 계산에 의해 1950년 1월의 애치슨 선언에서 그랬듯이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 밖이라고 판단해버린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몇 년 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옛 그루지아)는 한때 EU(유럽연합)와 미국의 안보 약속을 너무 쉽게 믿어버린 나머지 스스로 군사적 대비도 철저히 하지 않고서는 반러적 외교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별다른 저항 없이 무력으로 점령해버렸고, 조지아 수도로 탱크를 몰고 들어가 반러정책을 추진하던 대통령을 간단히 제거해버렸다.

한국이 튼튼해질수록 일본이 평화로워져


▎[가깝지만 먼 게 좋은 일본과 한국] 등 혐한 서적을 모아놓은 일본의 한 서점.
싫든 좋든 이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힘이 우선인 국제정치 속에서 우리의 독립과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웃의 일본이라는 카드는 버리지 말고 잘 챙겨둬야 한다.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경제는 정체돼 있고, 인구는 노령화하고 있는 일본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적으로 약체화될 수밖에 없는 나라다.

더구나 일본은 바다 건너에 있다. 한국 해군의 잠수함 세력과 공군의 대함 공격 능력만 어느 정도로 유지되면 일본군이 현해탄을 건너기는 어렵고, 일본의 약한 육군은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해도 짧은 시간 안에 무력화된다.

그렇다면, 일본에 한국은 왜 중요한가? 그것은 몽골의 일본 침략을 떠올리면 잘 알 수 있다.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은 고려를 침략했고, 고려군은 28년간 몽골군에 맞서 싸웠는데, 고려가 패배하자 몽골은 곧이어 바다를 건너 일본을 침략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일본 쪽 전설은 ‘신의 바람’(神風, 가미카제)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고려가 몽골군의 공세를 ‘흡수’하지 못했다면, 즉 28년간의 저항을 통해 몽골군의 힘을 빼지 못했다면 몽골의 일본 침공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역사는 대륙 제국의 침략과 이에 대한 저항의 역사였는데, 한반도라는 방파제가 없었다면 대륙의 파도는 고스란히 일본열도를 덮쳤을 것이다. 이 방파제가 강할수록 일본은 평화로워진다. 그렇다고 강한 한국이 일본에 위협이 될 가능성은 없다. 그런 역사적 사례도 없고, 또 한국의 경제와 인구 규모를 보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없다.

게다가 양국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막강한 일본 해군을 두고 한국 육군이 바다를 건널 수는 없다. 물론, 일본 역시 미국에만 의존해 안보를 추구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세계 전략은 예측불허이고, 반면 방파제 붕괴의 영향은 명약관화하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은 한국이라는 방파제를 튼튼히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튼튼해질수록 일본이 평화로워지기 때문이다.

- 김동규 21세기공화주의클럽 정책위원장·전 외교관 peace4eastas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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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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