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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윤석열 정부 발등의 불, 다시 문제는 경제야!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풍랑이 몰아친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尹 정부, 물가 잡으려다 경기 침체 우려… 자산시장 하락장 돌입
인플레이션 속 부동산 공급대책 모호, 친기업 행보로 돌파 노려


▎2022년 5월 13일 윤석열(뒷줄 왼쪽 셋째) 대통령은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등을 불러 거시경제금융 점검 회의를 열었다. 경제에 중점을 두겠다는 윤 대통령의 강한 의도가 담겨 있다. / 사진:대통령실 사진기자단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에 사는 40대 정미경(가명)씨는 지금까지 원하는 물건이라면 손에 넣는 게 당연한 줄 아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에 다녔고, 전문직 남편도 억대 연봉자였다. 아이 둘을 강남에서 키우는 데 돈이 들었지만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빚도 없었고,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세컨드 하우스도 사놨다. 이런 그녀가 2022년 5월 생소한 경험을 겪었다. 마음에 뒀던 까르띠에 금장시계를 부담스러워서 못 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지인의 권유로 미국 바이오 회사와 성장주에 가용 자금을 몰아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원금 대비 80%까지 급락한 종목이 나오자 손절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제 존버’ 상황에 처하자 정씨는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까르띠에는 5월 9일 6~13%에 달하는 가격 인상을 단행해 그녀의 마음을 더 쓰라리게 했다. 주식, 코인 등 자산시장에서 곡소리가 들리고 있는데 정작 명품 가격은 천장을 뚫어버리는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녀는 난감하다.

정씨 같은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체감 차이만 있을 뿐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물가는 치솟는데 내 계좌는 쪼그라드는’ 번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치킨부터 속옷까지 가격이 안 오른 게 없다. 일례로 신라호텔 애플망고 빙수는 “비싸지만 (재료를 아끼지 않기 때문에) 파는 쪽도 거의 남는 게 없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이 빙수 가격이 1년 만에 6만4000원에서 8만3000원으로 올랐다. 반면 2021년 6월 3300포인트를 돌파했던 코스피지수는 2022년 5월 16일 2600포인트 아래까지 내려갔다. 지난해 1월 9일 9만9000원을 찍었던 삼성전자 주가는 6만6300원(5월 16일 종가)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스태그플레이션이 빚어낸 풍경들이다.

돈 복사기에서 돈 파쇄기로 전락한 나스닥


▎2022년 5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0.5% 금리 인상 빅스텝을 밟았다. 물가 상승과 경제 침체 사이에서 파월은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과 불황)이고, 미국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 확정”이라며 “향후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갈지 지켜봐야 한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코로나19 직후까지만 해도 디플레이션(불황)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던 글로벌 경제가 어쩌다 이렇게 뒤집힌 것일까. 그 원인을 따라가 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배신’이 자리한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에 따르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13년여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투자의 황금기였다. 강 회장은 “이 기간 중국은 싼 제품(저임금으로 인한 낮은 생산단가)을 전 세계에 공급했고, 아마존·쿠팡 등의 유통 혁명이 있었으며, (WTO로 상징되는 자유무역 체제에서) 글로벌 기업은 중국이나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옮겼다”며 “그로 인해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인플레이션이 작동하지 않는 금융 확장의 시대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준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오판했다. 그 결과 낙관에 취한 채 세계 경제는 2022년 대비도 없이 ‘수축의 시대’를 맞이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5월 13일(한국시각) 연임을 확정한 날 ‘반성문’을 읽어야 했다. “아마도 기준금리를 조금 더 빨리 인상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며 “향후 경제가 연착륙할지는 Fed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인플레 파이터’로 변모한 연준은 5월 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 올렸다. ‘빅스텝’을 선택하며 긴축을 개시한 것이다. 동시에 “6월부터 양적긴축(QT)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6월부터 3개월 동안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475억 달러를 매달 줄여나갈 것이고, 이후 9월부터는 그 규모를 900억 달러까지 늘린다.

‘연준에 맞서지 말라’는 투자의 불문율이다. 연준은 향후 금리를 0.75%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까지 고려하고 있다. ‘나스닥은 돈 복사기’라고 추앙했던 미국 주식 불패신화는 속절없이 깨지고 있다. 2021년 말 1만6000포인트를 웃돌았던 나스닥지수는 불과 6개월 만에 1만1800 선(5월 15일 기준)까지 내리꽂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S&P500지수나 다우지수도 비슷한 추세다. 특히 넷플릭스(700달러 이상→200달러 이하), 아마존(3700달러 이상→2300달러 이하) 같은 성장주들은 나락 수준으로 급락했다. 나스닥과 연동하는 암호화폐 시장도 비트코인이 3만 달러, 이더리움이 2000달러 지지선이 깨지는 등 현기증 나는 변동성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덧 ‘돈 파쇄기’가 돼버린 미국 증시는 곧 미국 경제의 선반영일 수 있다. 이럴수록 미 연준의 의중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미 연준이 미국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다. 성태윤 교수는 “두 가지 목표 중에서 미 연준은 물가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실제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동월 대비 8.3% 상승을 기록하며 예상을 웃돌았다. 4월 생산자물가지수(PMI)도 11.0% 증가했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올 만한 수치다. 5월 9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전승절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될 것임을 선언했다.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꺾일 시그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미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으로 강하게 대응하면 경제가 침체될 가능성이 올라간다. 그렇다고 빅스텝으로 온건하게 나가면 물가를 못 잡을 수 있다. 어느 시나리오로 해석하든 자산시장에는 악재인 셈이다.

환율 올라도 대응 망설이는 한국은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속에서 유가 불안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딜레마는 고스란히 한국 경제로 옮겨간다. 일례로 2022년 3월 한국의 유력 경제신문사가 실전 투자대회를 개최했다. 국내 유수의 증권사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수익률 경쟁을 벌이는 이벤트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5월 중순 시점에 1등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회에 참가한 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2등을 달릴 수 있었다.

주식을 안 하는 게 돈 버는 것처럼 돼버린 가장 큰 이유로 환율 폭등을 꼽을 수 있다. 5월 12일 원·달러 환율은 1291.5원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달러당 1240원은 속절없이 뚫렸다.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 투자가가 한국 증시에서 돈을 빼가는 것은 공식처럼 통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 환율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자이언트스텝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주 실장은 “한·미통화 스와프가 바이든 방한 의제로 들어갈 수 있다”며 “통화 스와프는 시장의 심리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데도 한국은행은 별다른 시그널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럴수록 시장은 2022년 4월 21일 취임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고(高)물가·고(高)금리·고(高)환율 상황이지만, 이 총재는 4월 25일 “아직까지 원화의 절하 폭이 엔화 등 다른 국가 통화에 비해 심한 편은 아니다”라며 “환율 움직임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있지만, 환율을 타깃으로 삼아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했다. 환율과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올렸다간 가계부채(2021년 말 기준 1862조1000억원)가 악화하고, 2%대 저성장을 면치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지 않다가 한·미 금리 역전이 발생하면 달러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 게다가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동월 대비 4.8%나 올랐다. 이는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다. 석유류(34.4%), 가공식품(7.2%)을 비롯해 치약(10.4%), 비누(14.1%), 국수(29.1%), 식용유(22%) 등 줄줄이 올랐다. 전기 요금 상승률도 전년 대비 11% 올랐고, 가스·수도 요금도 인상이 불가피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4일 만인 5월 13일, 재정 정책 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통화 정책 수장인 이창용 총재를 한곳에 불러 모았다.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국정 운영 동력을 임기 초부터 상실할 것이란 위기감이 배어 있다. 이미 3~4월 한국의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50.1%에 달하는 국가채무(1075조7000억원)에서 알 수 있듯 재정 건전성도 상당 부분 훼손돼 있다. 윤 대통령은 “소상공인에 대한 손실 보상(1인당 최대 1000만원)과 민생 안정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59조원)을 편성했지만, 국민이 실제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시험대 오른 부동산 불패신화


▎2022년 5월 10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 외빈 초청 만찬에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칼둔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과 만났다. / 사진:대통령실 사진기자단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도래한 시국에서 한국 부동산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부동산도 자산에 속하는 이상, 시차를 두고 주식이나 코인처럼 하락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주장과 “인플레이션으로 자재비, 인건비가 다 올랐는데 어떻게 집값만 내려간다고 생각하나?”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투자 상품이자 필수재인 부동산의 독특한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한 배경에는 유주택자와 무주택자를 편 가르는 부동산 정책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집권한 윤 정부를 향한 국민의 부동산시장 안정화 기대감이 강렬하다. 그러나 윤 정부는 당초 인수위원회에서 하기로 했던 부동산 정책 발표를 보류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내정했을 뿐 재건축·재개발 등 공급 정책, 각종 규제와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통합 등 세제 완화, 임대차3법 개정 등에 관한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윤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으로선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것저것 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게 나은 상황”이라고 봤다.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가 ‘국민의힘이 집값을 올렸다’는 민주당의 역공을 아예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이 연구원은 “재개발·재건축은 순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왜냐하면 어떤 인프라는 돈으로도 빨리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교육이 그렇다. 건물, 전기, 상·하수도는 속도전으로 지을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교사 충원이나 학급당 학생 숫자 등은 행정과 연관된 사안이다.

아무리 주택 공급이 시급하다고 해도 재개발·재건축을 통개발로 시도하면 대란이 일어날 것이 자명하다. 멸실 주택이 급증할 터이고, 이는 전세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셋값이 올라가면 매매 가격을 밀어 올린다. 이 연구원은 “목동 14단지를 예로 들어보자. 3단지로 나눠서 1사이클당 3년씩 잡아도(재건축 마무리까지) 15년이 걸린다. 이런 곳이 목동뿐이겠는가?”라며 “윤 정부는 재건축·재개발의 순번을 짜는 데만도 시간이 빠듯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게다가 재건축·재개발의 특성상, 추가 분담금 문제 등으로 발생하는 조합원 간 갈등은 필연적이다. 갈등은 시간을 잡아먹고, 시간은 곧 돈이다. 결국 어떻게 포장하든 윤 정부의 공급 대책은 장기 플랜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집값은 공급 부족과 유동성 폭증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 가운데 유동성은 이제 줄어들 일만 남았다. 윤석열 정부는 LTV(주택담보 인정비율) 대출 규제는 완화했지만,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대출 규제는 건드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7월로 예정된 DSR 규제 강화는 문 정부의 방향성이었지만, 윤 정부도 계승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는 가계대출이 2억원을 넘을 때부터 DSR 규제 적용을 받지만, 7월부터는 한도가 1억원으로 낮아진다. 그러나 서울 요지의 주택 공급 부족은 여전하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은 조합원과 시공사의 갈등으로 사업이 멈춘 지 한 달이 흘렀다. 1만2000가구에 해당하는 분양 지연이 불가피한 상태다. 유동성 파티가 끝난 자리에는 인플레이션이 들어왔다. 건설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은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에서도 화폐 가치는 하락한다. 무주택자 서민층일수록 더 힘겨워지는 구조다.

中·日과 초격차 벌릴 한국의 마지막 기회

인구 추세를 고려할 때. 한국 경제의 전성기를 2030년까지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면초가 경제 상황에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중국·일본보다는 환경이 양호하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와 코로나19 봉쇄에 묶여 있다. 일본은 엔저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상대국의 불행은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치고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윤 정부는 6G 통신, 2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방산 항공우주산업, 차세대 원전, 수소산업, 스마트농업, 인공지능(AI), 문화 콘텐트 등을 ‘미래 먹거리신성장 산업’으로 채택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길게 보고 집중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자원이 빈약한 한국은 무역에 나라의 명운을 걸어야 산다. 여기에서 반도체만 바라보는 현실을 탈피하겠다는 발상이다.

윤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는 5월 10일 취임식부터 드러났다. 대기업 총수들을 ‘정책 파트너’로 생각한다는 구애를 보냈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복권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부회장은 7월 29일 가석방 형기가 만료되지만, 5년간의 취업 제한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의 형 집행이 끝나기 전, 윤 대통령이 특별 사면·복권을 해줘야 5년 취업 제한이 풀릴 수 있다.

윤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사에서 “도약과 빠른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IMF 외환위기, 세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열악한 난관을 기업의 활력으로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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