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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尹 대통령 은사’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본 ‘검찰과 정치’ 

“팬덤에 기대지 않는 대통령이라 성공할 것”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과거사 똑 부러지게 처리한 이들이 미래 방향 설정도 잘해”
“윤 대통령, 사법 시스템의 칼끝이 어디를 향할 때 말릴 사람 아니다”


▎송상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검찰 출신 중용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갓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검찰 인맥이 핵심으로 작용하는 정부다. 청와대·총리실·법무부·국가정보원·금융감독원 등 정부 요직에 서울대 법대 출신 혹은 검찰 출신 인사들이 전진 배치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적재적소의 인사”라고 설명하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검찰 공화국 선전포고”라고 반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더 이상의 검찰 출신은 글쎄”라며 여론의 눈치를 살핀다.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중심적인 판단 근거로 흔히 ‘그가 어떤 직업에 종사했느냐’를 들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검사라는 직분이 주는 운명은 늘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이미 일어났거나, 시도했으나 무산된 미수(未遂)의 사건을 평생 처리해온 조직이 검찰이고 그 구성원이 검사인 셈이다.

문제는 국정이라는 게 ‘과거’ 외에도 ‘현재진행형’과 ‘미래’의 일들도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해야 하고, 답 없는 것에서 답을 찾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게 국정의 본령일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이고 핵심 인사로 분류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20년 이상을 검사로 살아왔다. 검사라는 직업에 내포된 이 과거지향적 속성과 한계가 앞으로 국정을 이끌 이들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송상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에게 이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는 윤 대통령과 한 법무장관, 여타 서울대 법대 출신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대학 은사다. 특히 윤 대통령과는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지도교수이고, 한 법무장관과는 결혼식 주례로도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대학 제자들의 인성과 역량을 두루 가늠할 수 있는 인물이 송 교수인 셈이다. 송 교수는 “과거의 문제를 투명하게 처리한 이들일수록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의 문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송 교수와의 인터뷰는 6월 7일 서울 마포구 서강로에 자리한 유니세프한국위원회 12층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에 검찰 인사 다수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정수석실 폐지에 따라 인사검증 업무가 법무부로 이관되면서 한동훈 법무장관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알다시피 윤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초고속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빚을 진 사람도 없고 의존할 사람도 없으니 인사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가까이서 쓸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사람일 수밖에 없지요.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윤 대통령이나 한 법무장관이나 20년 이상을 검찰에 몸담아왔기에 ‘과거의 일’을 합리적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데 최적화한 전문가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운영이란 동시다발적인 현재의 일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과제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창의력도 요구된다고 해요.

“역으로 20년 이상 수많은 정치적·비정치적 사건을 깊이 있게 다룬 경험은 소중합니다. 이른바 ‘칼잡이(특수통 검사)’로서 그렇게 많은 일을 철저하게 처리하고 경험을 쌓은 이들도 검찰 내에서도 그렇게 흔치는 않을 겁니다. 검사 직분을 수행하면서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불합리한 관행을 다수 접했을 것이고, 이를 바로잡아야 나라가 잘된다는 의지를 다졌을 겁니다. 일 처리가 합리적이고 똑 부러지는 사람일수록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의 방향 설정도 훌륭하고 정확하게 해내겠지요.”

“윤석열 검사는 기계적인 법조인 아니었다”

그런 믿음을 주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주 우수한 학생들이 온다는 서울대 법대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훌륭한 자질에 견줘 인문학적 소양이나 외국어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학창시절부터 좀 달랐어요. 대학 4년 학부 시절 인문사회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었죠. 저를 찾아와서 수강 과목을 상담하기도 했어요. 경제·철학·정치 등 인간과 세상에 관한 이해를 많이 쌓아가는 학생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윤 대통령이 법조인 중에서 인문사회학적 소양이 탄탄한 편이라 평가합니다. 사실 법을 적용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정책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죠. 윤 대통령은 이런 면에서 균형감각을 갖췄다고 하겠습니다. ‘죄지은 사람 잡아 족치고 벌주는’ 기계적인 법조인은 아닌 것이죠. 그와 사귀다 보면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겁니다. 사법시험을 9수 했다고 해서 역량이 떨어진다? 그것도 아닙니다. 대학 입학 동기 중에는 가장 빨리 대학 3학년 때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윤 대통령이니까요. 지적 역량은 훌륭한데 관심사가 다양하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통에 합격이 늦은 겁니다. 좌중을 압도하는 입담을 가진 데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고시생이랄까요. 정해진 틀에 상대방을 욱여넣어 내 편, 네 편으로 가를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법시험 9수를 했으니 검찰 입문도 나이에 비해 많이 늦은편이죠. 그런 그가 검찰 내에서 생존한 것도 특이한 현상이기는 합니다.

“기수 서열이 엄격한 검찰 조직에서 늦깎이 검사가 20여 년을 잘나가는 특수통 검사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그의 성품과 적응력을 말해줍니다. 윤 대통령은 대단한 보스 기질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그가 자기보다 훨씬 나이 어린 학교 후배를 상관으로 모시고 지시를 받는 일을 잘 참아낸 것이죠. 조직 내에서 자신을 정립하는 방법을 안다고 하겠습니다. 나아가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고 자기가 적극적으로 나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계를 풀어나간 것입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그의 타고난 활달함에다 학창 시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고 인간사의 경험을 쌓은 덕을 본 것 아닐까요.”

“주례 본 한동훈은 검사로서의 도덕관념 확고”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역시 법대의 제자인 한동훈 법무장관과의 인연도 있다면서요?

“한동훈 검사의 결혼식 주례를 제가 봤어요. 한 장관 부부가 모두 제 제자니까요. 한 장관과 부인 진은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캠퍼스 커플입니다. 진 변호사의 부친은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이지요. 검사 한동훈은 굉장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머리가 좋은 데다 검사가 기초적으로 가져야 할 도덕적 관념도 확고하지요. 말도 편안하고 간결하게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왜 그리 한 장관을 조명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간에서는 그를 ‘왕장관’, ‘소통령’이라 부르고 차기 대선 주자군에 포함하기도 합니다.

“그렇긴 하군요. 한 5년 동안 법무장관으로 윤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하면 그럴 순 있겠지요. 그런데 보통 장관직은 1, 2년 하다가 나가는 자리 아닌가요? 결국 윤 대통령과의 여러 가지 관계로 인해 한동훈이라는 사람이 두드러진 것 같아요. 한 장관이 잘되기를 바라는 입장이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죠.”

윤 대통령이 제자 중에 첫 대통령이겠지요. 당선되던 순간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저도 투표 당일 개표 상황을 보느라 새벽 5시까지 잠을 못 잤죠. 당선이 확실시됐을 때 아주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멍한 느낌이 들더군요. 제가 길러낸 수많은 제자 중에 대통령이 나왔으니 감격스럽긴 하죠.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어요. 우리나라가 어디 보통 나라인가요. 그 막중한 책임을 안고 5년 동안 생고생하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걱정이 앞서더군요. 윤 대통령이 사람 좋고, 놀기 좋아하고, 쾌활한 친구인데 구중궁궐에 갇혀 5년간 고사(枯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같은 것 말이죠. 내가 아는 윤석열은 똑똑하고 깔끔한 사람이니까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교차했어요.”

윤 대통령이 평소에도 인사를 왔나요?

“제가 윤 대통령 석사 학위 논문 지도를 했고 사회에 나가서도 연락을 해왔으니 비교적 잘 아는 사람축에 들어갈 겁니다. 윤 대통령이 결혼하고 나서는 그가 그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사기도 했고, 부인은 유명한 전시회에 우리 부부를 미리 초청하여 조리 있고 간결하게 일일이 작품을 설명해준 적도 있지요.”

석사 논문 지도 과정에서 접한 학생 윤석열을 설명하자면?

“사실 제게서 석사 공부를 한 학생이 족히 수백 명, 아니 그 이상을 헤아릴 겁니다. 사람을 죄다 기억할 수 없지요. 개인 윤석열은 익히 알지만, 윤석열 학생 석사 논문 지도한 사실은 기억에 흐릿했어요. 그게 한 30여 년 전 일이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언론사 기자한테 들었어요. 윤석열 총장의 석사 논문 지도교수가 저라고 말이죠. 저도 다시 기억을 더듬게 됐지요. 당시 윤석열 학생이 석사 논문 지도를 부탁하기에 ‘테마에 관한 아이디어를 2000~3000자 정도로 정리해오라’고 주문한 기억이 나요. 나중에 ’집단소송(Class action)‘에 관한 계획서를 가져왔더군요. 처음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어요. 그 무렵 석사 논문이라는 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논문이나 제도 같은 걸 하나 번역해 요약하거나 짜깁기하는 수준에 그치기 십상이거든요. 윤석열 학생도 집단소송이라는 생소한 주제로 원고지를 메워 학위나 받아가는 축에 들 거라 예단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진지함이 남달랐어요. 집단소송이라는 게 몇몇이 전체의 권한을 위임받아 소송의 당사자로 나서는 제도인데 그중에서도 ’대표성‘에 관한 논문을 집중적으로 쓰고 싶다고 하더군요. 제가 당시 상법과 민사소송법 강의를 했는데 집단소송이 상법과 민소법 양쪽에 다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판단해줄 분이 양쪽 강의를 하는 저밖에 없다고 이유를 대는 겁니다. 논문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을 가진 학생이었지요.”

“팬덤 아닌 전문가 집단 지성이 국정 뒷받침해야”

윤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역대 대통령의 그것에 비해 취약하다는 평가다. 역대 대통령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고유한 팬덤(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현상)을 형성했고 그 팬덤이 위기의 순간에서도 국정 동력을 복원해주는 안전판 역할을 했다는 해석을 낳는다. 윤 대통령에게는 팬덤 지지층이 존재하지 않거나 있어도 미약하다는 게 정치권 일반의 정서이기도 하다. 국민이 처음부터 특정 정치 지도자를 대통령을 상정하고 지지하고 밀어주는 것과는 다른 경로로 대통령이 된 이가 바로 윤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님은 대선 후 언론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87년 체제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확신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윤 대통령을 한 30년 겪어봐서 알기에 그렇습니다. 절대로 남을 배신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고 믿을 만한 인물이니까요. 사람을 품을 줄도 압니다. 윤 대통령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천하(天下)에 자기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거나 악감정을 품은 사람일지라도 막걸리 한잔하면서 충분히 많은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스타일이지요. 인간관계를 그저 적과 동지로 양분하거나 어떤 틀에다 집어넣어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식의 사고를 할 사람은 아닙니다. 포용력이 굉장합니다. 국정을 성공적으로 잘 운용하리라는 기대를 갖는 배경입니다.”

강성(强性) 지지층의 부재가 윤석열 정부의 리스크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정치가 점점 후퇴하고 있습니다. 멋이 사라지고 이념적으로 갈라치기해서 상대방을 흡사 적(敵)이나 원수(怨讐) 보듯이 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 같아요.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않고 동지와 적만 구분하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머릿속으로 한 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인정하지 않아요. 상대방이 말하는 충정 같은 것은 안중에 없고 한사코 잘했다고 우깁니다. 이게 바로 팬덤 정치가 낳은 폐해지요. 흔히들 윤 대통령에게 팬덤이 없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 정치를 잘하는 데는 차라리 팬덤이 없고, 있어도 기대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정치인이 명백히 잘못된 길로 가는데도 댓글 부대 수 천 명이 옳다고 와글와글 부추기면 정치인도 헷갈리는 겁니다.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이지만 ‘유행하지 않는 것은 스러지지 않는다’는 금언이 있더군요. 이를 뒤집어 보면 ‘유행하는 것의 숙명은 시대가 바뀌면 사라진다는 것’이라는 말이 되지요. 팬덤은 감정에 기반한 호불호(好不好)의 산물이라 어떤 때는 순식간에 소멸하기도 합니다. 저는 팬덤보다는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이 국정을 뒷받침하는 게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봐요. 전문가라는 건 자기 분야에서 정통한 사람입니다. 그들이 정부의 모자란 점을 지적해주고 대안을 얘기하면 국정 담당자들이 그걸 이성적으로 반추하고 논리적으로 수렴하는 시스템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 모임인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출범식에서 ‘국제질서의 변동과 우리의 과제’를 주제로 강연 중인 송상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사진:연합뉴스
“집권 기반 취약할수록 명분 바로세워야”

여권발(發) 중대한 실책이나 권력형 게이트가 나오면 정권이 한순간에 위태로워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환경이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습니다. 과한 추측일까요?

“현 정부의 집권 기반이 취약하다고요? 그럴수록 정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모든 이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명분을 똑바로 세워 상황을 돌파해야 하는 겁니다. 윤석열 정부는 기교(技巧)가 아니라 근본(根本) 위에 서야 합니다. 아마 문명화된 선진국에서 윤석열 대통령같이 불과 몇 달 만에 대통령에 오르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국민이나 언론이 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를 자세하게 모르는 점이지요. 윤 대통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그 속에는 자유·공정·민주주의·법치와 같은 개념이 들어 있어요. 이는 굉장히 중요한 국정 철학의 요소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불·탈법 행위에 대한 수사와 처벌의 강도와 방향을 짚어본다면?

“법에 따라 제대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일벌백계로 엄하게 다뤄야 일반 국민이 편합니다. 윤 대통령이 그걸 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제 생각에 윤 대통령은 복수심에 차서 ‘이제 내가 됐으니 반대편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할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사법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가운데 검찰의 칼끝이 어디를 향한다고 할 때 그걸 말릴 사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송 교수의 조부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지도자로 명망이 높았던 고하(古下) 송진우 선생이다. 할아버지의 암살 비극이 집안의 큰 트라우마로 작용하면서 후손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게 집안의 내력으로 굳어졌다고 송 교수는 회고록([고독한 도전, 정의의 길을 열다])에서 밝혔다. 또 국무총리와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상협 박사가 송 교수의 장인이기도 하다.

“왜곡된 역사 바로잡아야 헌법 가치 존중받아”


▎최근 고하 송진우 선생 일대기 [독립을 향한 집념]을 펴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제 강점기 국내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송상현 교수
김상협 박사는 유신 시절에는 고려대 총장, 5공 당시에는 국무총리를 지냈습니다. 그 시절 접한 권력의 민얼굴은 어떠하던가요?

“그 무렵은 정보 정치가 극에 달할 즈음이라 사회지도층 인물은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정부 기관에서 다 미행하고 도청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 동기가 있어 요인 동향을 기록한 일일 보고서 같은 것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중에는 김상협 총리가 어디에 전화하고 누구와 만나는지 소상하게, 그것도 정확하게 기록돼 있더군요. 총리 비서실장도 청와대에서 임명해 내려보내니까 총리실에 총리 편이 돼줄 사람이 있었겠어요? 그래서 한때 제가 장인어른이신 총리의 지시를 받아 은밀한 심부름을 많이 했지요. 임명직 공무원의 입지가 어떠하다는 걸 익히 꿰뚫어볼 기회였습니다. 총리 역할도 대통령과의 거리에 따라 허울뿐인 자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죠.”

고하 송진우 선생의 일대기인 [독립을 향한 집념]을 최근 펴냈습니다. 취지와 저술 과정도 함께 듣고자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한 권 전달했어요. 어떻게 바쁜 와중에 봤는지 모르겠는데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우리의 고대사는 이웃 나라에서 마음대로 왜곡하고 근현대사 특히 항일 독립운동사와 해방 전후사는 우리 내부의 일부 세력이 자의적으로 곡해하는 현실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마치 한두 세력의 노력으로만 광복된 것처럼 묘사해요. 그건 아니죠. 뜻있는 모든 국민의 염원과 희생에 따라 이룩된 광복입니다. 만주·상하이·러시아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저항하던 분들의 역할도 컸습니다. 해외 독립운동가들에게 군자금을 보내고, 많은 독립운동가의 쾌거를 신문으로 찍어 국민에게 알린 이들은 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분입니다. 그런데 국내 활동가들을 마치 다 친일이라도 한 것처럼 깎아내리는 경향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패망 전 일제가 고하 선생께 조선의 정권을 인수하라고 네 번이나 제안했으나 거절한 사실이 있어요. 그런데 이 건과 관련해 해방 후 일부 저자들이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리에 있지도 않은 몇몇 총독부 하급 관리의 허술한 주장을 근거로 우익의 조작이라는 식으로 몰아갔습니다. 저는 어릴 적 현장에 있었고 주변 정황을 분명히 목격한 사람입니다. 이 책이 역사 바로잡기의 한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판하게 된 것입니다. 학교 교육현장에서 이런 왜곡들은 시정돼야 합니다. 윤 대통령도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혀야만 헌법의 가치도 제대로 존중된다는 입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송상현 - 교수는 195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 대학 4년 때인 1962년 고등고시 행정과 1부(일반행정), 이듬해인 1963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내각사무처(후일 총무처)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에 입문한 그는 1970년 코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획득하고, 1972년 모교인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2007년 정년으로 퇴임할 때까지 35년 동안 교수 및 학장으로 후학 양성에 몰두했다. 또 2002년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 초대 재판관과 재판소장으로도 일했으며, 지금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inkyu@joongang.co.kr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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