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육개발원, 2017년에 ‘입학연령 하향안 설득력 약해’ 결론
■ 각종 기존 연구에서 강조한 ‘사회적 합의’ 무시했다가 역풍 자초
▎박순애(오른쪽) 교육부 장관이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논란을 둘러싸고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학부모 단체 간담회에서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의 손을 잡고 있다. 사진 방송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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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 연령 조정안에 대한 각계 비판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책 연구기관이 과거 입학연령 하향 조정을 골자로 한 학제개편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가 기존 연구를 확인했다면 졸속 추진 비판은 피했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자는 제안은 과거에도 있었다. 저출산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산업인력 수급 대책의 하나로 나온 아이디어였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19대 대선 때 학제 개편 논쟁이 있었다.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는 5-5-2제 학제개편을 공약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한 살 낮추고 10년의 공통교육과 2년의 진로 준비교육을 마치면 만 18세에 사회로 진출하게 돼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학제개편 논쟁이 일자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2017년 2월 ‘학제개편의 쟁점 분석’ 보고서를 냈다. 유치원 의무교육을 2년으로 하고 초등학교를 5년제로 하는 ‘2-5-5-2-4’ 학제개편안 추진 방법의 하나로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보고서는 우선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청소년의 사회 진출을 앞당길 수 있어 조기에 산업인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었다. 정치적으로도 만 18세 고교생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면 학업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전에 졸업하게 돼 긍정적이라고 봤다. 아동의 발달에 관해서도 만 6세 전후 아동의 발달속도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도 타당한 근거로 꼽았다.하지만 보고서는 학제개편을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발달심리학적인 면에서 아동의 정서적 유대감, 자아 정체감 확립이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 당시 초등학교 교사와 유아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5세 유아 입학 시 지도가 어렵다는 점은 현실적 한계였다. 앞서 장점으로 나열한 사회·경제·정치적 효과에 대해서도 “일찍 졸업한다고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1년 일찍 나온다고 고용률이 증가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5세 취학은 교육적으로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고 결론 내렸다.
“‘5세 유아 초등 입학’ 실효성 없고 부작용만 커”
▎만 5세 입학 논란 바라보는 2019년생 엄마·아빠의 고민.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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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DI는 2006, 2007년에도 두 차례 ‘미래사회에 대비한 학제개편 방안’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당시 보고서도 2017년과 비슷한 결론이다. 이 보고서에는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내놓은 ‘4년 완성안’, ‘12년 완성안’이 모두 담겨 있었다. 보고서는 특정 학년도 입학생의 과도한 경쟁과 갑작스러운 학제 개편에 따른 사회적 부담을 줄일 방법으로 단계적 입학 비율 조정안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소개하면서도 “지나치게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방안은 제도의 안정성을 저해함과 더불어 제도 목적의 효과를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학제 개편이 성공하려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 등 철저한 사전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전문가들은 박 장관이 이 같은 과거 연구 자료와 교육계 의견을 검토하지 않은 채 정책을 추진하려다 논란을 자초했다고 비판한다. 이미 수차례 부작용에 대한 경고가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뤄진 학제개편에 관한 여러 조사에서 부정적 여론이 상당히 높게 나온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검토 없이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억지는 아니다.정부는 결국 “확정된 게 아니다”라며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박 장관은 지난 2일 학부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대규모 설문조사를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학 연령 하향은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국정운영의 동력이 떨어지자 이슈를 이슈로 덮기 위해 교육을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