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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에게 듣는 노동분쟁 해법 

“흔들림 없는 법치주의 확립이 오히려 대화와 협상 촉진한다”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K자형 양극화 심해져 청년들 절망… 노동개혁 절실
법치주의 확립·노동법 개정·노동 관행 개정 및 정착을 개혁 3축으로 삼아야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은 윤 정부표 노동개혁의 3축 중 하나인 노동 관행 개선과 정착을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세대를 위한 3대 개혁과제를 제시하며 그 시발점으로 노동개혁을 꺼내들었다. 집권 2년 차 대통령의 권한이 가장 강할 때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윤석열 정부의 과감한 드라이브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와 민노총 총파업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국민 다수가 지지했기에 가능했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를 추진할 시행령을 3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히는 등 2023년에는 노동개혁에 속도전이 예고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노조를 적대시하고 개혁 의제 선정 과정에서 노동계를 패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간중앙은 1월 11일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을 만나 노동개혁과 노동 현안에 관해 물었다. 김 위원장은 윤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지명 리스트에 올랐을 만큼 정부가 인정하는 최고 노동 전문가다. 그는 윤 정부가 법과 원칙 기조에 맞춘 법치주의를 이어나가면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노동부 장관이라면 노조와의 대화를 위해 매일 찾아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개혁은 정치적 배팅… 노동시장 이중구조 타파해야

노동개혁이 중요한 시점이다. 분쟁을 조정하는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의 역할이 커졌다.

“그렇다. 우리 중노위는 한마디로 ‘피스메이커’다. 노동자들은 직장 생활에서 여러 가지 이해 충돌이 생긴다. 사업주와 충돌할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상사, 노조와의 충돌도 있을 수 있다. 노동위원회(이하 노동위)는 그 분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구다. 노동위의 기본 업무는 조정과 심판이다. 노동자들이 파업 사태까지 가지 않도록 돕는 것을 ‘조정’하고 부당한 해고나 징계 등에 있어서도 부당하지 않게끔 ‘심판’을 한다. 어떻게 보면 대신 따져주는 기관이다. 이 업무 영역에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 직장 내 괴롭힘, 성차별까지 들어간다. 중노위에서 1년에 대략 분쟁 2만 건을 다루는데, 100에서 98 정도는 이곳에서 종결(해결)된다.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노위는 노동계의 대법원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그렇다. 가령 지방노동위에서 처분을 내렸는데 본인이 동의 못한다면 그때 중노위로 온다. 일종의 2심제인 셈인데, 중노위 판정까지 납득 못 하겠다면 법원으로 가게 된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총 5심제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법원을 통해서 최종 판결을 받게 돼 있지만 법정까지 안 가고 노동위에서 해결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무엇보다 법원에 가서도 사건의 80%는 노동위 판정이 옳았다는 판결이 나온다. 노동위도 그 나름대로 권위가 지켜지는 곳이다.”

윤 대통령이 미래 세대를 위한 3대 개혁의 시작으로 노동개혁을 들고 나왔다. 윤정부는 왜 노동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건가?

“사실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말하며 굉장히 생소한 단어를 끄집어냈는데, 바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다. 한쪽에선 안정된 직장에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소득 수준이 계속 올라가는 층이 있지만, 다른 한쪽은 추락하는 층도 있다. 이들의 임금 격차가 계속 벌어지면서 K자형 양극화가 발생한다. 노동하면 할수록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된다. 청년들이 하는 말 중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신조어가 있지 않나. 이는 단순 부동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 윤 대통령은 이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라고 생각하고 개혁 카드를 꺼내든 것 같다.”

왜 지금이 개혁 적기라고 판단한 건가?

“도화선은 화물연대다. 윤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노조와 만나고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도도 도입해줬다. 그런데 노조가 국가 경제나 국민에 대한 고민은 없이 자신들만 생각하고 불법 파업까지 자행한다는 점에서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한편으로는 일종의 정치적 배팅이다. 올해는 여당 전당대회 말고는 큰 선거가 없는 만큼 의제를 끌어갈 의도인 셈이다. 모름지기 ‘개혁하자’라고 하면 여론은 따라온다. 야당도 국민에 반(反)개혁 세력으로 찍힐 순 없으니 자연스레 끌려올 것이다.”

노동개혁을 말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윤석열 정부표 노동개혁의 방향성, 그 구체적인 로드맵이 궁금하다.

“윤 정부의 노동개혁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첫째로 법치주의 개혁이다. 전임 정부는 법치에 대한 의지가 약했고 법치 확립이 안 됐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란 것은 대화에 윤활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개혁의 첫 단추다. 둘째로 임금, 근로시간, 고용 등 여러 부분에서 노동법 자체를 현대화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이러한 노동 관행의 변화와 정착이다. 법치주의 개혁의 경우는 고스란히 정부의 몫이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노동법 개정도 국회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노동 관행 개혁은 누가 주도할 거냐’라고 묻는다면 우리 노동위가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사실상 해고 불가한 사회… 제도 재정비 절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방문해 “한국노총의 친구가 되겠다”라고 밝혔다. 다만 민주노총과의 관계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노조의 깜깜이 회계를 손보겠다고 공언했는데 이를 추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있는지? 노조의 극렬 반발이 예상되는데 중노위의 입장에서 어떻게 파장을 최소화할 것인지 궁금하다.

“말인즉슨 노조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말 아니겠나. 현행 노동법상 회계의 투명성에 대한 방향성이 담겨 있다. 이를 고용노동부가 관리·감독해야 하는데 여태껏 안 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는 아예 정부가 회계 부분을 관리·감독하도록 의무화돼 있지만, 한국은 ‘회계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정도로 소극적으로 개입 가능한 정도다. 정부와 기업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시가 있듯이, 노조 회계 부분에서도 투명성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질 거라고 본다. 다만 그 기준을 두고 다툼이 생길 수는 있다. 현재는 그 문제로 노동위로 회부될 건이 별로 없다.”

52시간제 유연화 논의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노동의 유연화는 해고도 쉬워진다며 우려를 표한다. 그렇다면 해고에 대한 노동위 자체 기준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는 것인가?

“노동위는 법에 근거한 해석을 하고 대법원 판례 등을 참조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을 한다. 우리가 자체 기준을 만들어 적용할 권한은 애초에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가 사실은 취업하면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나라인데, 해고 제도에 대해 필히 재정비해야 한다. 공공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다수의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피해 보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억울한 해고는 분명 있다. 부당 해고는 우리 노동위가 막아주겠다. 원직으로 복귀시키든지, 보상을 하든지의 조치는 취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장 전체를 두고 봤을 때 ‘해고는 무조건 안 된다’라는 말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해야 한다.”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나 민노총 총파업 등 집권 초기부터 노조와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노조 문제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 취임 6개월간의 변화를 보고 말해야 한다. 대통령이 노조 자체에 대해 적대적으로 말한 적이 있나? 대부분 불법 파업이나 국민, 국가 경제를 외면하는 모습에 대한 언급이었다. 귀족 노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귀족 노조의 정의가 뭐냐?’ 하는 논쟁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노조는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조직이다. 노조는 기본적으로 근로자들이 만든 자주적 교사체일 뿐인데 어느 나라가 노조 사무실을 회사에서 제공하나? 노조 간부 월급을 회사가 챙겨주는 것도 특이하다. 그래서 귀족 노조라는 지적을 받는 것이고, 대통령도 그런 면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동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노동계를 패싱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지난 몇 달 사이의 모습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노정관계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 아닌가 싶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다. 제아무리 지지하지 않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함께 참여해서 대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리를 마련해도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무작정 반대 행위만을 이어나간다면 뭘 더 어떻게 해줘야 하나. 실제 대통령이 노총을 방문하지 않았나. 노조와 ‘친구가 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업 고수하면서 정부에 유연함 요구는 내로남불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은 정부 요인으로서 윤 정부 기조와 결을 함께하면서도, 노동계에서 제기하는 우려에도 일부 고개를 끄덕이는 합리적인 면모를 보였다.
한노총만 선택적으로 방문한 것 아닌가?

“민노총은 아예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사노위에도 민노총은 참석할 마음이 없는 거 아닌가. 이를 두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처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노동계가 너무 많은 걸 바란다’는 생각이 든다. 고용노동부 장관도 노조 출신이지 않냐. 무엇이든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해 우려스러운 점을 전달해야 할 것 아닌가. 노동계는 현 정부와 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노정 관계는 갈등이 지속해서 있었다. 문 정부에서도 노정 대화는 잘 안 됐다.”

대통령실이 모든 현안에 대해 ‘법과 원칙’ 기조로만 대응하고 있다. 너무 직선적이라 유연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원칙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원칙 자체가 흔들리면 대화가 진행되고 협상이 되겠는가? 법치주의라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촉진한다. 노사정 모두가 잘못한 부분은 서로 인정하고 책임질 부분은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동계가 ‘정부가 좀 유연한 면도 있어야지!’라는 잣대를 들이대는데 그렇다면 노동시장도 유연해야 하지 않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파업 등 강경한 해법을 고수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유연함을 요구하는 것, 이거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위원장은 중노위장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노동 분야를 연구한 전문가다. 윤 정부의 노동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제언을 한다면?

“정부 출범부터 지금까지 평가해본다면 ‘So far so good(여태까지는 그런대로 잘됐다)’이라고 본다. 정부의 법과 원칙 기조는 흔들림 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게 이행 안 되면 대화 협상도 안 된다. 노동법 개정은 단번에 진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 부분은 얼마나 국민에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그래야 다음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된다 하더라도 법 개정이 순탄할 거다. 노동 관행 개혁의 경우,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도 관행이 안 바뀌면 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는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닐뿐더러 국민이 일상적인 데서 체감하는 것들이다. 정부가 담당 기구인 중노위에 대한 인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제가 1990년대에 노동위 개편 방안을 낸 적이 있다. 그 당시 20%를 밑돌던 조정 승률이 개편 후 70%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다시 반절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제도가 녹슬었다는 의미다. 위원회 업무 분장이나 직원 확충 등에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 글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202302호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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