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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2030 부산엑스포 유치 A to Z(1)] 부산엑스포, 미래를 여는 축제를 꿈꾸다 

한국의 성장 경험을 전 세계와 공유할 기회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한국 최초의 등록박람회 개최 성공하면 60조원 넘는 경제 효과 발생
■尹 대통령 최전선에서 유치전 지휘, 한덕수 총리도 열정적으로 활동
■엑스포 통해 탄생한 파리 에펠탑처럼 미래 세대에 자극과 영감 제공


▎2022년 5월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전략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앞줄 가운데)과 최태원(앞줄 왼쪽 셋째) 대한상의 회장 등이 참석하며 민·관 ‘원팀’을 과시했다. 사진:연합뉴스
2023년 11월 말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열기가 가열되고 있다. 정식 명칭이 ‘2030 부산 세계박람회(World EXPO 2030 BUSAN, KOREA)’인 부산엑스포는 ‘세계박람회기구(BIE)’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전 세계 170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2023년 BIE 총회에서 회원국 투표로 개최국이 결정된다. 전쟁에서 이기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려는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와 산유국에서 하이테크 국가로 대전환을 노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그리고 고대와 현대가 함께 숨 쉬는 이탈리아의 고도(古都) 로마가 경쟁 상대다.

BIE가 공인하는 엑스포는 인간과 관련한 모든 주제를 다루는 ‘등록박람회(Registered Exposi tions)’와 제한된 주제를 앞세워 진행하는 ‘인정박람회(Recognized Expositions)’로 나뉜다. 인정박람회는 전문박람회라고도 부른다. 등록박람회는 5년마다 6개월 동안 열리며, 인정박람회는 등록박람회 개최 연도 사이에 3개월 동안 개최된다. 등록박람회는 개최국이 부지만 제공하고 그곳에 참가국이 각자의 국가관을 자체적으로 세운다. 인정박람회는 개최국이 국가관을 세워 참가국에 유·무상 임대하게 된다. 한국은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개최했지만, 이는 인정박람회였다. 등록박람회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이 2030 부산엑스포를 유치하게 되면 여름 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등록박람회를 모두 여는 세계 일곱 번째 나라가 된다.

개최국으로 확정되면 2030년 5월 1일~10월 31일 부산광역시 북항(옛 부산항을 새로 개발한 마리나 지역) 일원에서 2030 부산엑스포가 열린다.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라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며 개방적인 주제로 미래를 여는 글로벌 축제로 기획된다.

유치하면 전 세계 3480만 명이 부산 방문 예상


▎2022년 7월 BTS가 부산엑스포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박형준(앞줄 왼쪽) 부산시장도 용산의 하이브 사옥까지 찾아와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는 6개월에 걸친 부산엑스포 기간 중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3480만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통해 우선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9년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엑스포를 계기로 생산유발 효과 43조원, 부가가치 유발 규모 18조원 등 모두 60조원이 넘는 경제적 유발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50만 개에 이르는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 효과도 기대된다. 이를 위한 개최 비용 투자는 약 4조 9000억원으로 잠정 추정한다.

2030 부산엑스포에 3480만 명이 방문할 것이라는 예상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1세기에 열린 4차례 등록박람회를 살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열린 독일 하노버 엑스포는 ‘인간, 자연, 기술’이라는 주제로 155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려 1810만 명이 관람했다. 2005년 일본 아이치(愛知)현에서 ‘자연의 지혜’ 주제로 열린 엑스포에는 121개국이 참가하고 방문객 2204만 명을 맞았다. 2010년 중국 상하이(上海) 엑스포는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이라는 주제로 19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려 7308만 명이 찾았다. 중국이 전력을 다한 결과다.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생명의 나무’란 주제로 열린 세계박람회는 145개국이 참가하고 2150만 명이 방문했다. 2020년 두바이에서 열린 행사는 ‘마음을 연결하고 미래를 창조한다’는 매혹적인 주제로 열려 192개국이 참가하고 2400만 명이 함께했다.

한국은 이미 한류와 한국 음식 등의 매력 포인트를 바탕으로 문화적으로 전 세계 젊은이가 찾고 싶어 하는 나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과학기술을 결합해 정교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글로벌 협력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 또 부산은 지리적으로 아시아 태평양의 관문이며,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위치한 동아시아 중심지다. 교통과 관광 인프라 모두가 최상의 수준이다. 항구와 해변, 요트장, 강과 삼각주, 등산과 트레킹이 가능한 산과 언덕이 모두 존재하는 천혜의 관광지다. 한국의 보건의료 수준을 생각하면 의료 관광에서도 최적 입지다. 방문객 3480만 명이 상당 기간 머물면서 즐기고 유익함을 경험하는 부산엑스포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는 21세기 한국의 발전상과 국제적 위상, 그리고 문화적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리고 확산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과학기술과 문화를 활용해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산업구조 혁신을 비롯한 글로벌 과제를 해결할 열쇠를 전 세계와 함께 모색할 기회다.

유치위가 2030 부산엑스포 주제를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로 잡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나 전기차, 열차나 선박 등을 포함한 각종 제조업 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은 물론 전 세계가 동시에 치열하게 경쟁 중인 인공지능(AI), 6세대(6G) 통신, 3차원 가상세계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을 선보일 기회다. 이를 통해 초연결 사회를 주도하는 한국의 미래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킬 수 있다.

엑스포 세일즈 외교 활용한 각개격파 전략


▎배우 이정재를 내세운 부산엑스포 CF 영상. 한류 영향력이 큰 CJ ENM 계열 채널에서 집중 방영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울러 ‘테크놀로지 국가 코리아’라는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더욱 높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한류 문화 확산과 더불어 과학기술을 앞세워 미래를 개척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 국가브랜드 상승은 다시 한국 기업과 제품의 이미지와 가치를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 필연적이다. 유치위가 유치에 성공할 경우, ‘행사 기간 중 실제 시내 교통수단으로 도심항공교통(UAM)을 선보이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UAM은 300~600m 저고도에서 수직 이착륙할 수 있는 기체를 이용해 도심 상공을 운항하는 차세대 교통수단이다.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유치위는 2030 엑스포에서 UAM을 미래용 전시물이 아닌 방문객의 이동을 돕는 실제 교통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UAM이 성공적으로 운행한다면 2030 부산엑스포의 미래성과 진취성, 그리고 과학기술로 인간의 행복을 이끄는 이미지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030 부산엑스포의 유치 가능성은 어떨까. 아시안게임, 하계올림픽, 월드컵, 동계올림픽처럼 이번에도 한국은, 부산은 해낼 수 있을까? 지금 시점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정부 지도자의 확고한 의지다. 이 지점에서는 한국이 가장 앞선다고 자부할 수 있다.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의 최선봉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엑스포 유치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정부의 국정과제다. 윤 대통령은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로 뛰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엑스포 세일즈’ 외교를 이끌면서 유치 활동은 열기를 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17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2030 엑스포 개최) 역량과 인프라에 있어 우리는 사우디보다 훨씬 우수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한 국가, 한 국가를 1대1로 설득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윤 대통령의 의지는 해외 순방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왔다. 지난해 6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각국 정상을 만나 부산엑스포에 대한 지지와 관심을 당부했다. 한국은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의 4개 나토 파트너국가)의 하나로서 초청받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18~19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한국의 밤’ 행사를 열고 참석자에게 2030 엑스포 개최 후보지인 부산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국제협력 프로그램인 ‘부산 이니셔티브’ 추진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부산의 특성을 살려 각국 수요에 기반한 맞춤형 국제협력 프로그램인 부산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인이 소통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을 도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국제행사 하나를 유치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부산엑스포를 계기로 한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소통과 협력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대전환의 비전, ‘부산 이니셔티브’


▎2022년 11월 한덕수 국무총리는 파리에서 열린 BIE 총회에 참석해 2030 부산엑스포 개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 임했다. / 사진:국무총리실
윤 대통령은 직접 ‘엑스포 세일즈’에 나서는 것은 물론 외교부와 문화체육부 등에도 유치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이와 함께 관련 인프라 확보를 위한 적극적 지원도 정부 부처에 주문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31일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고 가덕도 신공항, 북항 재개발 등 주요 현안이 조속히 추진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윤 대통령은 국내에서도 민·관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무총리 직속으로 관계부처 장관이 참여하는 ‘정부 유치위원회’를 설치했다. 대통령실에서도 장성민 미래전략기획관이 유치 활동을 전담하고 있다.

2022년 5월 31일에는 민간 유치역량을 하나로 모을 ‘유치지원 민간위원회’가 출범했다. 민간위원회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10대 기업과 경제단체, 그리고 73개 지역상의 등이 참여한다. 대통령실은 “민간위원회를 중심으로 민간의 유치역량을 결집하고 과거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 성공 당시의 우리 기업들의 지원 경험과 노하우를 되살려 정부 유치위원회와 함께 민·관이 ‘코리아 원팀(Korea one team)’으로서 유치 활동을 본격화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에서 열린 민간위원회 출범식에 직접 참석해 격려한 것은 물론 민·관 합동 전략회의도 함께 열어 개최국인 한국 정부의 의지를 국내외에 보여줬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민간위원회 출범식 겸 유치전략회의’가 열린 장소부터 부산엑스포 예정부지인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로 잡았다.

이 자리에는 정부·국회·재계·공공기관을 비롯한 관련 기관의 주요 인사가 참석했으며, 산업부·외교부·해양수산부를 비롯한 관계 장관이 부처별 준비 상황을 윤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현대차·삼성·CJ 등 주요 기업의 구체적 유치지원 방안도 논의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을 비롯한 10대 그룹 경영인들도 기업 차원에서 유치 활동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민·관 합동 회의체 가동을 시작하면서 유치를 위한 범정부적 대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BIE 회원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통령 특사 파견을 검토하는 등 외교 역량도 총동원하기로 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최한 민·관 합동 전략회의의 주제를 ‘부산엑스포 유치’로 잡은 것은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사실 ‘개최국 정부의 강력한 유치 의지’는 최종 개최지 결정에서 중요한 평가요소다.

이성권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일본 견학


▎정부는 BIE 회원국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2030 부산엑스포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도 캠페인을 전개했다. /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도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공동 유치위원장인 한 총리는 한국을 찾은 외교 사절을 빠지지 않고 만나 2030 부산엑스포 유치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 또 수시로 주한 외교사절을 총리 공관으로 초청해 회동하고 있다. 한 총리는 외교 사절을 만나 한국과 각 국가 간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서 빼놓지 않고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각국의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 이른바 각개격파다.

한 총리는 “2030 부산엑스포는 기후변화·불평등·디지털 격차 등 인류적 도전 과제 앞에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대전환의 비전을 공유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각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한 총리는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한국 정부가 제안한 국제협력 프로그램인 ‘부산 이니셔티브’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과 비법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해나갈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특히 한 총리가 지난해 6월 21일 프랑스 파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BIE 총회에 참석해 개최 후보국 2차 프레젠테이션(PT) 발표자로 나선 것은 유치 외교의 백미로 통한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170개 회원국 대표 앞에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2차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챙겼다.

20분간 진행된 PT의 첫 연사로 나온 한 총리는 “대한민국은 20세기 중반 이후 전쟁·빈곤·경제위기 등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며 한국의 의지와 자신감을 강조했다. 이어 “한국의 성장 비결은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교육, 혁신 그리고 세계와의 협력에 힘써온 데 있다”고 설명하고 “한국은 이러한 경험을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국과 공유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성장 경험을 전 세계와 공유하며 21세기의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해 전 세계와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어 한 총리는 “2030 세계박람회를 통해 새로운 100년을 살아갈 다음 세대를 위해 영감을 주고,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 마련을 위해 세계인이 지혜를 모으는 장이 돼야 한다”며 공존을 적시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세계 대전환의 시점에서 세계와 함께 호흡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세계인과 함께 그릴 준비가 돼 있다”며 “대한민국 부산에서 2030년 세계인과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이처럼 윤석열 정부가 부산엑스포 유치에 강력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일본 전문가인 이성권 경제부시장을 비롯한 부산시 관계자의 활동도 갈수록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부시장과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 등은 지난 1월 30일부터 나흘 동안 일본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에서 일본 정부와 국회 주요 인사를 만나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교섭활동을 벌였다.

1월 30~31일엔 2025 오사카·간사이엑스포 주무부처인 일본 외무성과 경제산업성을 방문해 부산엑스포 준비 상황을 설명하고 지지를 당부했다. 일행은 외무상 출신인 고노 다로 디지털상과 야마시타 다카시, 오쿠시타 다케미츠, 야마모토 고세이, 모리시마 타다시 중의원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이 부시장이 한때 보좌관으로 일했던 고노 디지털상은 일행에게 “부산과 대한민국의 유치 노력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일본) 정부 관계자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앞으로 부산시의 의견이 잘 반영되도록 전달하겠다”고 화답했다. 1일에는 오사카에서 2025 오사카·간사이엑스포 개최 예정지를 찾아 현지 준비상황을 살폈으며, 다음 날에는 다카하시 토오루 오사카시 부시장을 만나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당부했다.

이런 노력이 쌓이고 쌓여 희망의 빛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부산엑스포를 전담하는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은 1월 26일 기자들과 만나 “상대국을 지지하던 국가들이 한국 지지로 선회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지고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 기획관은 “(한국 측이) 지난 7개월간 90여 개 국가 이상의 대통령, 총리, 외교부 장관 등 고위급 인사를 접촉했다”며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이 170개 국가라고 했을 때 절반을 넘어선다”고 밝혔다.

부산엑스포에서도 ‘에펠탑 효과’ 기대


▎ 사진:연합뉴스
부산이 남은 기간 적극적인 유치 활동과 최선의 글로벌 홍보업체 활용 등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거액을 들여 서구의 홍보대행사와 계약해 활용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누를 수 있는 방법은 그들보다 앞선 홍보전을 펴는 것이다.

엑스포 유치 효과로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자극과 영감 제공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오늘날 파리를 상징하는 강철구조물인 에펠탑을 설계하고 건설한 프랑스 건축가·구조공학자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1832~1923)을 들 수 있다. 이공계 수재였던 에펠은 그랑제콜(프랑스 특유의 소수정예 고등교육기관)인 에콜 상트랄 파리(École Centrale Paris·ECP)를 다녔는데 22살 때인 1855년 파리에서 프랑스 최초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파리 시내 샹젤리제 공원에서 그해 5~11월 ‘농업, 산업, 그리고 예술’을 주제로 열린 이 박람회에 27개국이 참가했으며 방문객 516만 명이 찾았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 황제가 통치하는 제2제정 시대였다. 프랑스는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첫 세계박람회(The Great Exhibition)와의 경쟁을 의식해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세계박람회에는 당시 새롭게 부각하던 산업과 함께 프랑스가 앞선 농업과 포도주 양조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적인 포도주 산지인 보르도의 와이너리가 대거 참가했다. 이는 농촌 민심을 의식한 나폴레옹 3세 황제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29개국에서 참가한 미술 작품도 전시됐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특징을 최대한 살린 행사였다. 아직 세계박람회의 구체적인 성격과 목적, 진행 방식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산업과 예술의 조화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지금 봐도 인간적인 행사였다. 약 420만 명이 산업전시회장을, 약 90만 명이 예술 전시회장으로 입장했다고 한다.

20대 공학도인 에펠은 어머니가 사준 시즌 티켓을 들고 15.2㏊ 넓이의 드넓은 박람회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전시물을 두루 관람했다. 다양한 산업과 시대의 변화를 한눈에 목격할 수 있었던 세계박람회는 젊은 에펠을 자극하고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강철의 시대가 왔음을 느꼈던 모양이다. 에펠은 에콜 상트랄에서 화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뒤 다리 놓는 기술을 배워 강철 구조물로 이뤄진 철교 등을 건설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그러다가 34년 뒤인 1889년 엑스포와 다시금 인연을 맺었다.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맞아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 행사장인 마르스 광장의 관문 자리에 거대한 에펠탑을 건축했다. 에펠은 공모전에서 선정돼 이를 설계했으며, 54세 때인 1887년 1월 건설을 시작해 56세 때인 1889년 3월 완공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에펠탑으로 불리는 영광을 얻었다.

에펠탑처럼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수직구조의 철탑 건축물은 이전에는 없었다. 하늘로 솟구치는 구조의 고딕 건물과 다른 새로운 형태다. 구조물 높이만 300m에 추가 설치된 첨탑을 포함하면 330m 높이의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다. 1930년 미국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의 자리를 지켰다. 일반 건물로 따지면 81층 높이에 해당한다.

에펠탑만큼 전 세계에서 유명한 건축·구조물은 없을 것이다. 격자 모양의 강철 구조물인 에펠탑은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를 대표할 뿐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구조물일 것이다. 매년 수백만 명이 찾을 정도로 파리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산업 혁명 이후 인류가 이룬 강철 문명을 대표하는 구조물로도 평가된다. 에펠은 에펠탑을 설계하기 전까지 파나마 운하의 수문과 뉴욕 자유의 여신상 등의 구조물을 설계하면서 경력을 쌓아왔다.

청년 세대 위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로 각인된 에펠탑. 엑스포가 낳은 세계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에펠탑은 건설 당시 격렬한 논란을 불렀다. 착공 당시 “추악한 철 구조물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설치 20년 뒤인 1909년 철거 위기를 맞았으나 통신탑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에펠탑을 뺀 파리는 생각할 수가 없게 됐다. 199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결국 22살 때 찾은 첫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자극받고 영감을 얻은 에펠이라는 공학도 청년이 34년 뒤 세계박람회와 파리와 함께 두고두고 기억될 에펠탑을 만든 것이다. 청년에 대한 엑스포 효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엑스포도 청년 세대에 꿈과 희망을 주는 이런 ‘에펠탑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효과와 국가브랜드 강화도 중요하지만 청년에게 미래로 다가서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런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엑스포가 미래 세대와 공유하는 효과다.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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